"'내부자들', 세월호 특위에 들어와 있다"
[세월호, 어디로 가나 ⑤] 김형완 인권정책연구소 소장
2016.01.12 10:27:51
"'내부자들', 세월호 특위에 들어와 있다"
"정부 측의 비협조로 인해 특조위의 인적, 물적 기반을 마련하는 데에도 여러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조사활동 역시 매끄럽게 이뤄지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 (중략) ~ 진상조사의 핵심 직위인 진상규명국장에 대한 채용이 진행되고 있지 않은 것, 정부가 일방적으로 제정한 시행령에 따른 공무원 파견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특조위 활동을 방해하는 행위입니다. 하지만 (정부는) 이유에 대한 답변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 5일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의 정례 브리핑 내용이다. 세월호 특위가 구성된 지 1년이 다 되어 가는 시점인데도 아직 조사관조차 제대로 뽑지 못한 상황이다. 새누리당에 입당하고 국회의원 선거 예비후보에 등록함으로써 당연 퇴직된 석동현‧황전원 두 위원 자리도 아직 공석이다. 여당 몫 위원이지만 새누리당에서는 아직 후임자 선출작업조차 하지 않고 있다. 

운영에 한시적 기간이 정해져 있는 특위 입장에서는 하루하루가 촉박하다. 삭감된 예산으로 인한 자금난에, 인력난까지 겹쳤다. 거기에 파견 공무원 조사관과 민간 출신 조사관 사이 반목이 심각하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온다. 세월호 특위가 안과 밖에서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 

김형완 인권정책연구소 소장은 "예상됐던 일"이라고 말했다. 김 소장은 2001년 출범한 국가인권위원회를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인권위 산파'다. 국가인권위 설립기획단부터 시작해 인권위에서 9년간 일한 인물이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때, 현병철 국가인권위 위원장이 임명되면서 얼마 못 가 사표를 제출했다. '더는 인권위에서 할 일이 없다'는 게 이유였다. (관련기사 바로가기 ☞ : "현병철, 비선 가동해 '북한인권 괴문서' 국회 보고")

그런 김 소장에게 특조위가 현재 왜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지를 물었다. 국가인권위와 세월호 특위는 조직 정체성과 구성 등이 상당히 비슷하다. 그는 인권위와 비교하며 세월호 특위의 문제점을 짚어나갔다. 

▲ 김형완 소장. ⓒ프레시안(허환주)


"권력 비판 조직, 김대중 정부도 껄끄러워했다"

프레시안 : 인권위와 세월호 특위는 매우 닮은 듯합니다. 구성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정부에서 이 조직을 무척 껄끄러워한다는 점이 그렇습니다. 무력화 시도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김형완 : 맞습니다. 인권위는 김대중 정부 때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 조직을 상당히 껄끄러워했습니다. 인권위가 만들어질 때, 정부는 인권위에 상당히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기존 국가권력 작용에 심각한 장애가 생긴다는 인식이 팽배했습니다. 지금까지 '소도'와 같이 여겨졌던 검찰 수사 업무, 교도소 보안과, 징벌방 등을 모두 인권위 조사관이 들어갈 수 있게 되기 때문이었죠. 사법부, 입법부, 행정부 간섭을 인권위는 할 수 있습니다. 국가권력을 견제하는 게 인권위 역할이니깐요. 

현재 국회의원인 A씨가 그때 청와대 법무비서관으로 있었어요. 다른 나라 인권기구는 대부분 특수법인으로 돼 있었죠. 그때 A비서관이 해외 사례를 예로 들며 '우리나라도 인권위를 특수법인으로 만드는 게 맞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대통령에게 제출했어요. A비서관은 당시 신분이 법무부에서 청와대에 파견 나온 검사였어요. 법무부 입장에서는 인권위를 법인으로 만들어 법무부 산하로 두고 싶었던 거였죠. 인권위 감사는 물론, 인사도 하려는 의도였어요. 법인이 됐다면 인권위는 법무부의 '개'가 될 수 있었어요.

김대중 대통령도 보고서를 받고는 마음이 법인으로 기울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때 인권위 설립을 위해 시민‧사회단체들이 공대위를 만들었는데, 거기 사람들이 엄청나게 애를 써서 대통령을 설득했어요. 그 결과 대통령도 어디에 소속되지 않는 독립기구로 지금의 국가인권위를 만들었죠. 법무부는 대통령이 번복할 수 없는 명령을 내리니 어쩔 수 없이 수긍했죠. 

출범 이후에도 첩첩산중…"지속해서 방해하는 정부"

프레시안 : 국가권력의 견제 역할을 해야 하는 인권위를 국가 감시하에 두려고 했던 것이겠죠. 그렇게 어렵게 인권위가 출범했지만 이후 과정도 쉽지 않았습니다. 인권위 정원을 두고 여러 논란이 생겼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김형완 : 2001년 11월 25일이 인권위 출범 날이었죠. 앞서 6개월 동안은 정상적인 업무수행이 가능하도록 준비하는 기간이었죠. 위원 선임하고 사무처를 구성하는 일 등. 하지만 11월 25일이 되도록 조직편성을 하지 못했어요. 인권위 사무처와 행정자치부 간 인권위 정원을 얼마로 할지를 합의하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프레시안 : 왜 합의가 이뤄지지 못했나요? 세월호 특위 때처럼 정부가 정원을 줄이려 했나요? 

김형완 : 당시 우리가 행자부 파견 공무원 힘을 빌려 법이 정한 인권위 업무분석을 해봤어요. 그랬더니 업무수행을 제대로 하려면 약 480명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왔어요. 법이 정한 업무만 계산했었죠. 반대로 이야기하면 480명이 안 되면 법이 정한 업무를 못하는 거예요 하지만 인권위 초대위원장 김창국 씨는 480명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불가능하다'고 했어요. 행자부와 이야기해봐야 관철될 리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죠. 그러면서 '2선으로 안을 하나 더 만들라'고 했어요. 그래서 딱 잘라 '340명 안'을 만들어 갔죠. 그랬더니 저쪽(행자부)에서는 72명 안을 들고 왔어요. 세월호 특위 논란이랑 똑같죠? 이유도 말하지 않았어요. 이유라고 대는 게 여성부 정원이 70여 명 정도 되니깐 그 정도 선에서 정하자는 식이었죠.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어요. 

결국,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과 행자부 장관, 인권위원장이 만나서 담판을 지었어요. 그 결과, 정원 180명, 전문위원 20명, 파견공무원 15명. 총 운영인력을 215명으로 정하고, 차차 늘려가는 것으로 했죠. 그렇게 위원장이 합의하고 돌아왔어요. 내부에서는 난리가 났죠. 그 합의안을 놓고 '이 인원으로는 일 못 한다'고 반발했죠. 그러자 위원장이 '그럼 나보고 어쩌라는 거냐'며 나가버렸어요.(웃음) 그렇게 정원이 정해졌죠

프레시안 : 세월호 특위와 무척 비슷하군요. 특위도 정원이 애초보다 줄었습니다. 정부는 특위가 세월호 특별법(제15조)에 근거해 요구한 120명(상임위원 5명 제외)보다 30명이 줄어든 90명으로 축소하자고 했죠. 하지만 반발에 부딪히자 90명으로 출범한 뒤, 차차 120명까지 늘릴 수 있도록 했죠. 하지만 아직도 이 인원은 채우지 못했습니다. 

김형완 : 인권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차차 늘려가기로 했지만 불가능했습니다. 그나마도 이명박 정권 때 더욱 줄었습니다. 어쨌든, 그렇게 정원이 정해졌지만 이후에도 지속해서 싸워야 했습니다. 정해진 정원에서 공무원 대 민간 비율을 어떻게 할 것이냐를 두고도 싸워야 했죠. 정부는 민간 비율을 최소화하려고 했고 인권위 사무처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결국, 오랜 싸움 끝에 공무원 대 민간 비율을 5:5로 정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이후 민간 직원 자격을 두고 싸워야 했습니다. 정부가 제시하는 자격이 까다롭다 못해 말이 안 됐기 때문이었습니다.  

민간 지원 자격을 두고 정부는 학사를 취득한 이후 12년 동안 인권 관련 분야에서 활동한 사람으로 한정했습니다. 이게 사무관 자격 기준이었습니다. 게다가 12년 동안 월급 받고 일한 것을 증명해야 했습니다. 인권위가 출범한 게 2001년이었습니다. 거기서 12년 전이라면 1980년대 후반이 됩니다. 그때 누가 인권 단체에서 상근을 했겠어요? 그것도 월급을 받아가면서요. 

ⓒ프레시안(최형락)


의도적인 조직 무력화 시도하는 정부

프레시안 : 지금 인권단체들도 활동가들에게 제대로 월급을 주지 못하는 실정 아닌가요? 하물며 1980년대 후반이면 말할 것도 없겠네요. 

김형완 : 맞습니다. 의도적이었습니다. 정부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자격요건을 해놓으면 할 사람이 없다는 것을. 그래놓고 합리적 기준을 제시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결국, 그때 우수한 재원들이 인권위에 지원했지만 서류심사단계에서 다 떨어졌습니다. 이 때문에 이듬해인 2002년 4월까지 인권위 사무처를 만들지 못했습니다. 180명이 정원이었는데 그해 7월이 되도록 70명 수준 밖에 인원을 채우지 못했습니다. 물론, 저들이 자격요건을 엄격하게 한 점도 있었지만 막무가내로 사람을 뽑을 수 없었던 이유도 있었습니다. 어느 정도 인권 감수성이 있는 사람이 인권위에서 일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부족한 인원을 어떻게 할 수가 없는 상황까지 오게 됐죠. 빗발치는 진정서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인원을 우후죽순 충원하는 상황까지 가게 됩니다. 그때 들어온 인물 중 아직도 기억나는 인물이 있습니다. 당시 제가 면접위원이었죠. 공무원인데 자기가 평소 인권단체에 관심이 많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인권단체 3개만 이야기해보라고 했더니 국제앰네스티 하나를 대고는 더 이야기하지 못했습니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어요. 황당했죠. 이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인권위에 들어오면 하고 싶은 일이 뭐냐고 하니 '불법체류자'들을 그들 고국으로 강제추방하는데, 무턱대고 내보내는 게 아니라 한국에 좋은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도록 그들에게 인권교육을 시키는 것을 하고 싶다고 했어요. 

프레시안 : 이주노동자 인권을 보호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 게 인권위인데 거꾸로 이들의 추방을 돕겠다는 식이군요. 

김형완 : 전혀 인권 감수성이 없던 사람이었죠. 그저 인권위에 들어오려 끼워 맞추기 식으로 이야기하다 보니 그런 '사고'를 낸 겁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뽑혔고 지금까지 인권위에서 일하고 있죠. 현병철 위원장 시절, 요직에도 있었던 사람입니다. 

프레시안 : 현병철 위원장이 인권위에 오면서 공무원 사기를 진작시킨다며 공무원 출신들을 요직에 앉혔던 게 기억납니다. 그런데 그건 '인권위 식물화'를 위한 고도의 수법이 아니었나 싶군요.  

김형완 : 저는 그런 공무원들과 제대로 일하기 위해서는 민간출신 직원들이 그들보다 도덕적 우월성은 물론, 업무적 우월성을 지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야만 민간출신 조사관들이 인권위의 헤게모니를 쥘 수 있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막 밀어붙였습니다. 일과 시간 이후 인권 관련 학습을 진행했죠. 그러니 불만들이 터져 나왔어요. 그래도 어쩔 수 없었어요. 인권위가 제대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 현병철 전 국가인권위원장. ⓒ연합뉴스


"공무원에게 헤게모니 넘어가면 아무 일 못 한다"

프레시안 : 그때 당시 김형완 소장님에게 '스탈린'이라는 별명도 붙여졌던 것으로 기억합니다.(웃음) 그만큼 절박한 마음이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김형완 : 공무원에게 헤게모니가 넘어가면 아무런 일도 할 수 없게 된다고 생각했어요. 국민의 이해나 국민의 편익은 안중에 없기 때문이죠. 공무원은 조직보위에만 신경을 씁니다.  

프레시안 : 소장님은 인권위에 합류하기 전에는 국회 등에서 공무원으로 재직했습니다. 인권위까지 합하면 20년 가까이 공무원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공무원에게는 매우 부정적인 듯합니다. 

김형완 : 그건 공무원 사회 생리를 잘 몰라서 하는 이야기입니다. 제가 인권위 있을 때 어느 공무원이 심각하게 질문을 했습니다. '과장님, 공무원은 영혼이 있으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자기 가치관이 스며들기 시작하면 행정이 제자리를 잃게 됩니다' 그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정말 고민이 돼서 제게 질문한 거였습니다. 많은 공무원이 자기는 영혼이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세월호 청문회 때도 이는 여실히 드러났죠. 공무원 누구도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기는 최선을 다했다고 이야기합니다. '나는 나에게 주어진 사명을 위해서 최선을 다했는데 왜 그러느냐'. 자기 본래 사명을 실종한 거죠. 그리고 거대한 권력의 톱니바퀴로써 피동적으로 움직이는 게 공무원입니다. 그 톱니바퀴가 제대로 돌아가도록 하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하죠. 우리가 흔히 말하는 복지부동입니다. 관료주의의 병폐죠. 

물론, 도덕적 부패 문제에도 그렇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상당수는 양심적이고 합리적입니다. 다만, 그 양심과 합리성을 담는 그릇자체가 잘못 설정돼 있는 거죠. 일도양단해서 공무원은 부패집단이고 반 서민조직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들을 그렇게 내모는 배경, 즉 그릇이 문제라는 이야기입니다. 

"세월호 특위, 이미 '내부자들'이 들어와 있다"

프레시안 : 세월호 특위는 인권위와 여러 면에서 비슷하지만 반면, 인권위가 만들어질 때보다 힘든 상황인 듯합니다. 한시적 활동 기간이 법으로 정해져 있을 뿐만 아니라 정권도 보수정권입니다. 등 떠밀리듯 세월호 특위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정부의 협조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협조는커녕 방해만 놓는 실정이죠. 이대로 시간만 끌다가 흐지부지 특위가 해산되기만을 기다리는 듯합니다.  

김형완 : 지금 특위 내부가 어떻게 돌아갈지 안 봐도 뻔합니다. 백그라운드에 따라 이합집산 된 곳이 세월호 특위입니다. 그 안에서 구성원간 커뮤니케이션이 안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난맥상으로 운영되겠죠. 게다가 인권위 경험상 내부에서는 공무원과 어떤 식으로든 협조관계를 유지하면서 가야 한다는 어줍잖은 타협론도 이야기될 겁니다. 예전 박사 특채로 인권위에 들어온 사람이 있었습니다. 매일 공무원들과 싸우는 제게 '왜 당신은 공무원과 사사건건 부딪치느냐. 협조적 관계를 맺어서 도움받는 순환구조로 가야 하지 않느냐'고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아까 이야기했듯이 공무원을 담는 기본 그릇이 잘못돼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공무원과 협조적 관계를 맺기는 불가능합니다. 자칫 그 그릇에 들어가는 꼴이 됩니다. 

하려면 공무원을 이용하고 활용하는 방식은 가능합니다. 그들에게 협조를 받을 수는 없습니다. 인권위 민간 조사관들에게 일과 이외 시간에 교육하고 도덕적 우위를 가지도록 당부했던 이유입니다. 헤게모니를 쥐고 공무원을 좌지우지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답이 없습니다. 그들의 협조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프레시안 : 더구나 세월호 특위에는 소위 '내부자들'이 들어와 있습니다. 특위가 조사해야 하는 행안부, 해수부 소속 공무원들이 파견 나와 있습니다. 이들이 있는데 과연 제대로 조사가 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김형완 : 인권위는 검찰, 경찰 출신 파견 공무원이 내부로 들어오는 것을 초기단계에서 막았습니다. 하지만 이후 관계개선이 필요하다는 문제제기가 있었죠. 그래서 이 의견을 받았습니다. 대신 검‧경찰 파견 공무원들은 비 조사 부서에 배치했습니다. 언젠가는 친정으로 돌아갈 사람들 아닙니까. 자기 조직 내부 일인데 제대로 조사하기 어렵죠. 그쪽에서 파견 나온 공무원은 홍보, 교육 등을 맡기는 식으로 배치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세월호 특위는 '내부자들'이 조사를 하고 있어요. 세월호 특위 조사관들이 세월호 청문회 전 증인으로 출석하는 사람들을 찾아가 인사하기 바빴다고 하지 않나요? 파견 전 자기 부처 상사잖아요. 내부자들이 특조위에 들어와 있으니 청문회는 관심도 없고, 증인으로 나오는 상사에게만 신경 쓰는 꼴이 됐죠. 더 큰 문제는 이후예요. 결국, 이들이 세월호 특위 활동을 어떻게든 축소‧방해하려 하지 않겠어요? 그래야 특위 활동이 끝나고 돌아갈 자기 조직에 피해가 안 가겠죠. 자연히 자기가 받을 불이익도 없을 테고요. 누가 자기를 건드리는 부하직원을 좋아하겠어요? 그러니 특위 조사가 제대로 진행될 리 만무하죠.  

ⓒ프레시안(손문상)


"'국가란 무엇인가'란 물음에 스스로 답하게 해야 한다"

프레시: 지금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무슨 방법이 있을까요?

김형완 : 저는 리더의 역할이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예전 인권위 초창기에 여성 직원이 맨발로 샌들을 신고 다녔어요. 그것을 공무원 복무규정에 어긋난다고 공무원 출신 국장들이 징계를 건의했어요. 민간 조사관 길들이기 식이었죠. 그러자 당시 인권위 위원장이 한 마디 했어요. '샌들 신고 다니는 게 업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그리고 그것을 처벌해야 하는 법적 근거는 무엇인가'. 할 말이 없었죠. 

위원장 등 세월호 특위 수장들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리더가 되면 공정하고 중립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여기에 포로가 되면 끝이에요. 자기 스탠스를 조금만 움직이면 당파적으로 비칠까 봐, 그리고 그런 잣대가 부당하다면서 스스로를 검열하죠. 하지만 세월호 특위도 그렇고 인권위도 그렇고 기본적으로 국가에 대한 감시견 역할을 해야 해요. 이는 그 조직들의 정체성이죠. 물론, 세월호 특위의 지적을 두고 관련부처가 난처한 상황에 부닥칠 수 있어요. 하지만 그건 그들이 변명하고 책임져야 하는 일이에요. 감시단체에서 이를 고민할 필요가 없어요. 검찰이 범죄자의 범죄행위를 두고 불가피성을 이야기하지 않아요. 범죄자의 범죄행위에 따른 문제점만 이야기해요. 그게 본분이고 사명이에요. 

세월호 특위도 마찬가지죠. 국가의 치부가 밝혀지는 것을 두고 이것을 국가가 어떻게 책임질지, 그에 따라 특위가 어떻게 보이는지 생각할 필요가 없어요. 특위는 문제점을 밝혀내라고 만들어졌어요. 이는 당파성 문제가 아니라 정체성 문제예요. 그 정체성을 당파성으로 대체하면 정체성이 무력화돼요. 이것을 왜 하는지, 무엇을 위해 하는지가 사라져요. 특위가 제대로 역할을 해야 지금은 쓰지만, 나중에 '국가란 무엇인가'에 국가 스스로 답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프레시안 : 오랜 시간 말씀 감사합니다.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과 안전 관련 제도 개선을 위해 설치된 행정기관이다. 하지만 그 역할 수행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아직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내‧외부에서의 '특위 흔들기'도 끊이지 않고 있다. 이대로는 특위 활동이 '찻잔 속 태풍'으로 그칠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프레시안>은 특위가 제대로 역할을 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을 짚어보고자 한다. 


<세월호, 어디로 가나>
(1) 대구지하철참사 유족 "세월호 시작도 안 했다"
(2) "세월호 농성장서 치킨 먹는 일베, 불쌍하다"
(3) "세월호 한 달 뒤...내게도 재앙이 왔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허환주 기자 kakiru@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