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가 번지수 잘못 찾은 대연정, 제대로 만들어보라"
[기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제1야당 민주당에 남긴 유훈
"盧가 번지수 잘못 찾은 대연정, 제대로 만들어보라"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주기를 앞두고 각종 추모 행사가 열리고 있다. 이 와중에 10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는 '노무현이 꿈꾼 진보의 미래'라는 추모 심포지움이 열렸다.

이 심포지움의 첫 세션인 '민주정부 10년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토론자로 참석한 서울대 법학대학원 조국 교수는 <노무현 대통령이 '제1야당' 민주당에게 남기는 유훈 ― '좌 클릭'과 '연대'만이 살 길이다>는 자신의 토론문 전문을 <프레시안>에 보내왔다.

이 글에서 조 교수는 민주당의 '좌클릭'만이 6월 지방선거는 물론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개혁진영'과 '진보진영'의 연대를 끌어낼 수 있고 나아가 선거 승리와 '공동 정부 구성'까지 바라볼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다음은 조 교수가 보내온 글의 전문이다. <편집자>



▲ 각종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행사가 이어지고 있다ⓒ한국미래발전연구원

1.

2004년 3월 12일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 발의로 시작된 뜨거운 탄핵정국은 5월 14일 헌법재판소의 기각결정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런데 2005년 7월 28일, 노무현 대통령은 갑작스럽게 지역구도 극복을 위한 선거제도 개편을 전제로 총리지명권, 조각권 등을 한나라당이 행사하는 대연정을 제안하였다. 고질화된 지역주의 정치구도를 타파하기 위해서, 무조건적인 국정 발목잡기에 '올 인'하는 한나라당과 국정에 대한 책임을 공유하려는 '바보 노무현'의 '순정'이 발현된 것이었다. 그러나 권력탈환을 확신하고 있었던 한나라당이 이 '순정'을 받아줄리 만무하였던 바, 진보·개혁진영 내부의 자중지란만 초래하고 상황은 종료되었다.

필자가 한참 지나간 일을 거론하는 이유가 있다. 대통령 탄핵소추 가결에 분노한 전국적 촛불시위가 일어나고, 4월 15일 치러진 제17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과반이 넘는 152석을 획득하고, 민주노동당은 10석을 확보하여 원내진출에 성공했던 2004년이야말로 진보·개혁진영이 한국 사회의 '판'을 바꿀 수 있었던 절호의 시기였다고 보기 때문이다. 대중적 열기는 고조되어 있는 상태에서 행정부와 입법부 양 쪽 모두에서 진보·개혁진영이 다수파를 점하고 있지 않았던가. 당시 한나라당은 121석, 새천년민주당은 9석, 자유민주연합은 4석을 얻은 상태였다.

만약 2004년 총선 직후 노 대통령이 민주노동당을 향해 대연정을 제안하고 민주노동당이 이를 받아들여 국정방향을 한 걸음 '좌 클릭'하여 끌고 갔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역사적 상상을 해본다. 예컨대, 이 대연정이 국가보안법 제7조 폐지, 정당명부 비례대표제의 강화 또는 중선거구제 채택,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사용을 제한하는 노동법 개정 등을 합의 성사시키고, 아파트 분양원가를 공개하여 집값을 잡았다면 등등. 왜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던가. 거칠게 말해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의 '좌측 깜빡이 켠 우회전' 노선과, 진보정당으로서의 차별성은 드러내었으나 국정분담의 능력은 갖추지 못했던 민주노동당의 상태가 결합되어 그런 결과가 발생하였다. 이에 대한 자세한 분석과 평가는 뒤로 미루자. 문제는 미래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한국 민주주의는 위기에 처해있다. 한나라당의 '잃어버린 10년' 주장은 보수의 재집권을 위한 프레임으로는 효과가 있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집권 후 "'주술', '사익', '경제적 합리성'을 핵심으로 하는 전근대적이고 비합리적인 식민적 아비투스"를 부활시키고, 정치적 민주주의의 수준을 10년 이전으로 되돌리려고 한다는 점에서 문제는 심각하다.1) 김정훈 교수는 이명박 정권이 헤게모니 보다는 강제에 의존하고, 연고주의 네트워크가 국가를 장악하고 있으면서 보수언론·재벌·보수단체와 강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한국의 국가는 조폭국가 또는 조폭국가화되고 있다."2)

그러나 이러한 퇴행을 비판하면서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시절이 그래도 나았지 않았느냐?"라고 말하는 것은 서민대중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이 전혀 아니다. 물론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은 "현대적 합리성"과 "상식"을 구현하려던 10년이었다.3) 그리고 두 민주정부는 정부가 정치적 민주주의를 강화하고 평화통일과 복지정책의 초석을 놓았으며 사법개혁을 이루어냈다. 그러나 두 정부는 신자유주의 노선을 수용함으로써 비정규직 노동자 양산, 사교육 창궐, 집값 폭등 등 민생 문제 해결에 실패했고, 이것이 이명박 정부의 출범을 낳았다. 김대중, 노무현은 "한국 자본주의 체제의 가장 중요한 수호자들"이었으므로 "진보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체제를 지키는 세력"이며 "진보풍의 신자유주의 세력"4)이라는 평가는 너무 근본주의적이다.

그렇지만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은 단지 "국민과 함께 승리한 10년"5)이라고만 규정하는 것은 '승리사관'식 평가이며, 이렇게 해서는 새로운 전진을 이룰 수 없다.

임기를 마치고 퇴임한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이 추구한 정책에 대한 반성적 고려를 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노동의 유연화, 그것도 우리가 할 수 있어'하고 놔버린 게 진보주의의 제일 아픈 데죠. 가장 아팠던 대목이 이 대목입니다. (...) 우리가 무너진 건, 그 핵심은 노동이에요. 핵심적으로 아주 중요한 벽이 무너진 것은 노동의 유연성을, 우리가 정리해고를 받아들인 것이에요. (...) 내가 잘못했던 거는 오히려 예산을 가져오면 색연필을 들고 '사회정책 지출 끌어올려' 하고 위로 쫙 그어 버리고, '여기에 숫자 맞춰서 갖고 와' 이 정도로 나갔어야 하는데 (...) 그래 무식하게 했어야 되는데 바보같이 해서 (...) 더 강력하게 연대주의의 법과 제도들을 만들어 나가고, 사회 문화들은 그렇게 만들어 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이고요."6)

사후적이어서 아쉽지만, 그는 실권의 근본원인이 무엇이었는지 정확히 보고 있었다. 1987년 헌법체제를 낳았던 사회적 힘은 바로 신자유주의 정책의 필연적 산물인 사회양극화로 인하여 소진되어 갔고, 그 결과는 이명박 정부의 탄생이었다.

2.

민주당은 2008년 '뉴 민주당 비전위원회'를 발족시켜 2010년 3월 '뉴 민주당 플랜'을 발표하였다. 위원회 활동 초기에는 '우경화' 노선을 채택하는 듯하여 '우경화' 논란이 있었으나, 다행히도 최종 발표된 안은 보편적 무상급식, 영·유아 교육의 전면 무상화, 반값 등록금, 고등학교 의무교육, 국립대 공동학위제, 공공임대주택 확충, 비정규직의 사용사유 제한제, 불공정 거래행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기업형 슈퍼마켓 허가제 등 진보정당의 정책을 상당 부분 수용하였다. 2010년 6월 지방선거 운동과정에서 민주당 소속 후보들도 민생과 복지에 중심으로 두는 공약을 제시한 바 있다.

이상의 점을 볼 때 민주당은 정책차원에서는 중도보수 자유주의에서 한 걸음 '좌 클릭'을 하였다. 이는 2010년 1월 창당된 국민참여당의 정책―유시민 씨의 정식화에 따르면 "사회자유주의"7)정책―과 큰 차이가 없다. 이러한 흐름이 지속·강화된다면, 김대중·노무현 노선을 잇는 개혁파 자유주의 정당과 그 노선을 넘어서려는 사회(민주)주의적 진보정당과의 정책연합은 그다지 어렵지 않게 성사될 것이다.

이제 '반MB'를 넘어 나아가야 할 기본방향은 잡혔다. 그것은 바로 '사회권'(social rights), 즉 사회·경제적 기본권 실현을 위한 진보·개혁대연합이다. '경제적·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대한 국제규약'(International Covenant on Economic, Social and Cultural Rights)이 규정하는 권리 목록을 빌어 말하자면, 여성에 대한 차별 금지 및 평등 대우(제2조, 제3조), 근로할 자유와 근로에 대한 기회(제4조), 공정한 임금 및 적정 수준의 근로조건(제7조), 노동조합을 조직하고 파업할 권리(제8조), 사회보장(제9조), 모성 및 연소자에 대한 특별 보호(제10조), 적절한 식량, 의복 및 주거에 대한 권리(제11조), 기본적 의료·보건 서비스를 받을 권리(제12조), 교육을 받을 권리(제13조), 문화생활과 과학 발전에 참여할 권리(제15조) 등을 구현하기 위한 정치연합이 필요하다. 2010년 6월 지방선거 과정에서 '무상급식' 이슈를 계기로 하여 이 연합의 첫 단추는 꿰어졌다.

만약 민주당이 과거 1992년 대선 시기 '뉴DJ 플랜'처럼 중산층을 잡아야 한다는 정치공학적 판단에 따라 다시 중도보수 자유주의로 '우 클릭'한다면―이는 과거 개혁파 자유주의 경제정책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김대중 대통령의 '대중경제론'8)으로부터의 이탈이었다―, 민주당은 '집토끼'를 잃음은 물론, 서울대 폐지와 무상급식을 주장하는 원희룡, '반값 아파트'를 주장하는 홍준표―'반값 아파트'(='토지임대부 주택') 공약은 1992년 대선 시기 국민당을 창당하여 출마한 재벌 총수 정주영 후보의 공약이었음을 기억하라―, 외고폐지를 주장하는 정두언 등 한나라당 인사들과의 차이가 없어지면서 '산토끼'도 잡지 못하는 꼴이 될 것이다.9)

조희연 교수의 1992년 대선 시기 '뉴DJ 플랜'에 대한 평가도 지금도 유의미하다.

"'뉴DJ 플랜'으로 미소를 보냈던 보수적 유권자층은 냉담하고, 오히려 잠재적인 지지자층이라고 할 수 있는 청년층 및 하층서민 유권자의 적극적 견인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했던 것이다. 사실 민주당은 그 미시적인 선거전략 때문에 92년 선거에서 개혁적인 선거쟁점을 선점할 수 없었으며, 오히려 국민당과 민자당이 시종일관 선거의 이슈를 창출하고 선도해 가는 형국을 낳고 말았다."10)

아마 민주당의 '우 클릭'을 원하는 중도보수 자유주의자들은 과거 김대중 전 대통령이 대선에 두 번 실패한 후인 1997년 대선에서 충청도를 끌어들이는 지역주의 연합인 'DJP 연합'을 통해서 집권했고, 2002년 대선 시기 노무현 후보는 정몽준 후보와 여의도 포장마차에서 '러브 샷'을 나누며 연합에 합의했었다는 점을 거론할지 모른다. 그러나 1997년 김대중의 승리는 'DJP 연합'이라는 지역주의 연합이 먹혀서 이루어진 것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IMF 위기'로 인하여 기존의 보수 집권세력의 무능이 백일하에 드러났다는 점이 더 크게 작용하였기에 가능하였다고 보아야 한다. 또한 2002년 노무현의 승리의 근본원인은 유권자가 서민의 냄새가 온 몸에 물씬 배여 있는 '이단아' 또는 '풍운아'에게 매료되었기 때문이었다.

요컨대, 두 민주정부 동안 본격 진행된 사회양극화와 중산층의 붕괴가 더욱 가속화되는 현재 상황에서 중산층의 불안을 해결해주는 것은 '우 클릭' 이 아니라 '좌 클릭' 정책이다. 조지 레이코프(George Lakoff)는 진보파가 빠지기 쉬운 "열두 가지 덫"을 지적하며, 다음과 같이 충고한 바 있다.

"일반적으로 잘못된 이념 때문에 많은 진보주의자들은 더 많은 표를 얻기 위해 '오른쪽으로 이동해야' 한다고 믿었다. 사실 이것은 역효과를 낸다. 오른쪽으로 이동함으로써 진보주의자들은 실제로 우파의 가치를 활성화하고 자신들 고유의 가치를 포기하고 만다. 또한 이 과정에서 그들은 자신의 정치적 지지자들을 소외시킨다."11)

3.

그런데 제1야당 민주당의 '좌 클릭'은 정책 차원 외에서도 일어나야 한다. 불쾌하게 들리겠지만 현재 민주당의 인물, 지지기반, 지지율 등을 냉정히 평가하면, 양강(兩强) 정당구도 속의 제1야당 자리는 계속 유지할 수 있겠으나 자력으로 단독 재집권하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향후 민주당이 재집권에 성공하려면, 가까이는 똑같이 '노무현의 후예'를 자처하는 국민참여당과의 연대와 통합을 이루어야 한다. 두 정당의 지역 기반이 호남과 영남으로 다르다는 것, 열린우리당 창당, 노무현 탄핵, 열린우리당 분당을 거치며 서로 간에 사감과 구원이 쌓여 있다는 것은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바깥에서 볼 때 두 정당 간의 가시 돋친 설전은 2012년 전후 지분 확보를 위한 힘겨루기 정도로 보일 뿐이다. 그리고 민주당은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과의 연대도 모색해야 한다. 2005년 노 대통령이 방향을 잘못 잡아 제안했던 대연정을 제대로 만들어보라는 것이다. 한국 보수의 벽은 높고 층은 두껍고, 여러 분란과 내홍에도 불구하고 1990년 '보수대연합'을 통하여 민주자유당을 창당한 후 당을 깨지 않고 결속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만약 우리가 결선투표제가 운영되는 프랑스 대통령 선거제도, 비례대표와 지역구 비율이 50 대 50 정도인 독일식 국회의원 선거구제 또는 한 지역구에서 국회의원 셋 이상을 뽑는 중선거구 제도를 가지고 있다면, 12) 진보·개혁진영의 정당들이 이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또는 미국의 민주당처럼 자유주의, 사회자유주의, 사회(민주)주의 성향의 정치세력이 한 정당의 틀 안에 모여 있는 경우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조건 아래에서는, 진보·개혁진영의 각 정당들은 서로 경쟁을 하면서도 정치력을 발휘하여 선거연합이나 공동정부를 도모해야 한다. 한국의 예로는 2009년 4월, 민주당·민주노동당·진보신당과 시민·사회단체가 연대하여 김상곤 한신대 교수를 경기도 교육감 선거 단일후보로 만들어 승리한 경험이 있다. 2010년 지방선거를 위하여 선거역사상 최초로 민주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창조한국당, 국민참여당 등 야5당의 부산시당이 시장, 시의원, 구의원의 단일화를 이루었고, 이어 경기도 고양시에서도 야5당이 시민·사회단체 모임인 '고양무지개연대'의 중재를 통하여 시장, 도의원, 시의원 단일화에 합의하였다.

타국의 예로는 한국과 유사하게 지역주의, 이념대립 그리고 상하원의 75%를 단순다수대표제로 선출하는 선거제도를 가지고 있는 이탈리아에서 1995년 6개의 중도 및 좌파 정당이 '올리브 동맹'(L'Ulivo)이라는 선거연합체를 형성하여 지역별로 단일후보를 내세워 정권교체를 이룬 적이 있다.13)

정당으로서 다른 정당을 위하여 선거구를 양보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어느 선거구나 입신을 꿈꾸며 오랜 기간 동안 '표밭갈이'를 해 온 사람들이 있으며, 당내 계파 사이에도 이해관계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1 야당으로서 다른 신생 또는 진보정당의 존재이유를 무시하고 그 정당을 없어져야 할 정당으로 치부하면서 민주당 중심 단결을 말하는 것은 고장 난 축음기로 한참 철지난 옛 노래를 트는 격이다. 민주화 이후 치러진 1987년, 1992년, 1997년 대선에서 매번 등장했던 '김대중 비판적 지지론', 2002년 대선에서의 '노무현 비판적 지지론' 등의 '비판적 지지론'은 더 이상 효용을 잃었다. 반독재 자유주의 정파가 연이어 10년간 집권을 한 후 실권을 한 마당에, 진보정치세력에 대하여 다시 자신을 지지해달라고 말하는 것은 정치 도의에도 맞지 않고 실현가능성도 없다.

그런데 2009년 10월 안산 상록을 재보궐선거에서 지역 시민단체는 물론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창조한국당이 무소속 임종인 후보를 지원하기로 합의하였지만, 민주당은 애초 양보할 생각이 없었다. 2010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의 텃밭인 광주시 의회는 경찰력을 동원해 기초의원 4인 선거구 여섯 곳을 모두 2인 선거구제로 쪼갰다. '반MB 연대'에서 민주당은 야권 내 기득권 굳히기 전략, 다른 정당 찍으면 '사표'가 된다는 민주당 중심 단결론을 고수하면서, 당세가 약한 지역만 타 정당에게 내주는 작전을 쓴 것으로 보인다. 이해영 교수가 지적하였듯이, 민주당은 "마치 '놀부가 양손에 떡 들고 흥부 다루듯'한 심보"를 가지고 다른 정당을 대하지는 않았는지, 혹여 후보단일화 결렬을 내심 바라고 있지는 않았는지 성찰해야 한다. 14)

향후 민주당이 '반MB 연대'를 주도하고 나아가 재집권을 하려면 욕심쟁이 놀부같이 행동해서는 안 된다. 공자(孔子)는 거보라는 고을의 행정책임자로 나간 제자 자하(子夏)가 "정치를 어떻게 하느냐"고 묻자, 다음과 같이 조언했다.

"무견소리(無見小利) 견소리즉대사불성(見小利則大事不成)."

즉, "작은 이익을 보지 마라. 작은 이익을 보면 큰일을 이루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민주당은 감동과 역동이 있는 정치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서울시장 후보를 결정하기 위하여 치열한 경선을 보여준 한나라당과 달리 민주당은 '안전모드'로 일관했다. 컴퓨터 구동시 '안전모드'는 안전하지만 기능은 대폭 제한됨을 왜 모르는가. 당내 후보는 물론 다른 정당 후보와의 공개토론과 뜨거운 공방을 통하여 흥행의 판을 벌이고, 타 후보의 비전과 정책을 흡수하면서 단일화로 나아가는 길을 걷는 것을 왜 두려워하는가.

한편, 국회 의석이 모자라 뭘 할 수가 없다는 변명도 궁색하다. 여당 생활을 오래하다 보니 몸과 마음에서 결기가 사라졌다. 민주당은 탄핵 정국 이후 여의도 공터에 '천막당사'를 친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를 배워야 한다. 원내의 안락한 둥지에만 머무르지 말고 민생과 민심의 바다로 뛰어 들어야 한다. 2009년 가을, 여의도를 뛰쳐나와 '민생 포장마차'를 끌고 전국을 돌면서 '집나간 민심'이 돌아오도록 가을 전어를 굽고 서민들과 술잔을 나누는 천정배 의원의 모습은 당파와 계파를 떠나 아름다웠다. '쇼'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선수(選數)와 급을 따지면서 무게를 잡는 모습 보다는 이런 '쇼'를 보고 싶다.

게다가 현재 당내 대권주자를 자처하는 정세균, 정동영, 손학규, 김근태 씨 등은"준마라는 이름을 붙이기에는 파괴력이나 대중의 지지도, 카리스마가 모자란 조랑말급"15)이라는 평을 받는다. 현재의 이들의 대선후보로서의 지지율은 한나라당의 박근혜 의원의 지지율은 물론, 신생정당인 국민참여당의 유시민 씨의 지지율 보다 낮다. 다들 능력과 경력이 대단한 정치인들인데 왜 그런 것일까? 이들이 '왕권'은 포기하고 '영토'와 '가신' 관리에만 신경 쓰는 '영주'같은 모습을 대중에게 보여주기 때문이 아닐까. 대중은 정치인의 행태에서 '왕'급인지 '영주'급인지를 직감적으로 알아차린다.

1971년 대선을 앞두고 패기 있게 '40대 기수론'을 치고 나와 야당 내 새 흐름을 만든 김대중, 지역주의 타파를 위하여 의도적 패배를 계속했던 '바보 정신'의 구현자 노무현, 두 대통령과 같은 모습을 보이는 정치인이 나타날 때 대중은 "왕의 귀환"을 감지할 것이다. 16)

지금은 무게 잡는 '조랑말'이 아니라 치열한 경주하는 '조랑말'이 필요하다. 그러한 '조랑말'만 '준마'로 변신하는 기회를 잡을 것이다. 서울시장 후보가 되면서 대선 후보로도 인식되고 있는 한명숙 전 총리, 그리고 과거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수혈'되었던 '젊은 피'의 '386 정치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의 충고를 하고 싶다.

그리고 민주당은 대중과의 소통체계가 약하다. 유력 국회의원 개인에게 충성도 높은 당인(黨人)들은 있겠지만, 촛불 시민 또는 "깨어 있는 시민"―노무현 대통령이 자신의 유언의 집행자로 설정한―의 생활 속에 얼마나 뿌리내리고 있는지 의문스럽다. 선거할 때가 되면 촛불 시민은 결국 다 자신을 지지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 그리고 20-30대 청년층이 진보·개혁적 성향을 갖는데, 민주당 내에 국민참여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이 가지고 있는 '청년문화'는 보이지 않는다. 각 지역이나 대학에서 나는 민주당원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며 활동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인가. 청년층을 격동(激動)시키고 '투표 짱돌'을 던지게 할 인물과 정책 없이 진보·개혁정당의 선거 승리와 집권은 무망하다.

1987년 헌법체제가 가능했던 원동력은 80년대 '거리의 정치'에 적극 참여했던 청년층의 힘이 있었고, 2002년 대선에서 노 대통령의 집권도 청년층의 높은 투표 참여에 힘입은 바 컸음을 기억해야 한다.

4.

진정성과 지속성이 있는 정책과 연대에서의 '좌 클릭'이 계속될 때만 민주당은 '불임정당'을 면할 수 있다. 만약 이러한 '좌 클릭' 없이 보수진영의 실수나 '거리의 정치'의 부활을 기다리거나 정치공학적 정치전략에 의존해서 승리를 도모한다면 고사(枯死)의 길을 면치 못할 것이다.

필자는 진보·개혁진영의 정당이 2010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진행하고 있는 사상 최초의 본격적인 선거연합 실험을 교훈으로 삼아, 2012년에는 총선에서는 공동정책을 전제로 하여 합리적인 선거구 조정을 이루어내기를, 나아가 대선에서는 연합정부를 구성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야구로 치면 진보·개혁진영 전체는 지고 있는 경기의 9회 말 마지막 공격 상황에 놓여 있다. 타석의 기회는 몇 번 남지 않았다. 이제 소속 정당 보다는 실력 중심으로 타자를 내보내야 할 때이다. 그래서 역전의 명승부를 일구어내야 한다. 2012년과 2017년을 연속으로 한나라당이 집권할 경우 진보·개혁진영 전체는 초라한 소수로 명맥만 유지하는 신세가 될 것이다. 어느 정당이건 자신만이 '적통' 또는 '정통'이라는 오만을 버려야 한다. 서로를 인정하고 '몫'을 나누어야 모두가 커지고, 커져야 이기는 법이다.

필자는 이 모든 희망이 실현되는 것은 녹녹치 않음을 잘 안다. 그러나 어려운 과제이지만 포기할 수는 없다. 진성당원의 목소리 외에, 정당에 가입하지 않은 다수의 '촛불시민'의 시각을 같이 고려하여 상황을 푸는 것만이 올바른 길이고 승리하는 길이다. 1992년 연극연출가 이윤택씨는 "우리에게는 또 다른 정부가 있다"라는 제목의 책이 낸 적이 있다. 17) 그렇다. 정치적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연대주의의 법과 제도를 무식하게"―노무현 대통령의 표현을 빌자면―실현해 낼 "또 다른 정부"를 만들어내 보자.

1)김정훈,『87년 체제를 넘어서』(한울아카데미, 2010), 31면.
2)Id. 60면.
3)Id. 19면.
4)김규항, 『가장 왼쪽에서 가장 아래쪽까지』(2010, 알마), 138-139, 142면.
5)유시민, 『대한민국 개조론』(돌베게, 2007), 70면.
6)노무현, 『진보의 미래』(동녘, 2009), 211, 232-234, 287-288면(강조는 인용자).
7)유시민, 『후불제 민주주의』(돌베게, 2009), 337-342면.
8)김대중, 『대중경제론』(청사, 1986).
9)2010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경기도당은 과천시장 후보로 뉴라이트전국연합 출신으로 박근혜 한나라당 후보의 조직특보, 이명박 대선 후보의 선대위 특보를 역임한 홍순권 후보를 단독 공천했다. 이러한 행태는 민주당의 '우 클릭'이 재현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실례이다.
10)조희연, 『한국의 국가·민주주의·정치변동』(당대, 1998), 304면.
11)죠지 레이코프 지음, 나석주 옮김, 『프레임 전쟁』(창비, 2006), 24면.
12)유시민,『대한민국 개조론』(돌베게, 2007), 259면; 진보정치연구소,『사회국가, 한국 사회 재설계도』(후마니타스, 2007), 249-253면.
13)정병기, "응집하라, 승리하리니", <한겨레 21> 제793호(2010.01.08); 차명제, "전후 최초, 이탈리아 중도좌파 올리브 동맹의 총선 승리: 그람시의 손자들이 승리했다", 『월간 사회평론 길』 제96권 제6호(1996).
14)이해영, "선거연합 협상, 반보만 물러서보라", <경향신문>(2010.04.27).
15)김종구, "민주당의 네 마리 조랑말". <한겨레>(2010.04.30).
16)J.R.R. Tolkien, The Return of the King (Harper Collins Publishers Ltd, 2005).
17)이윤택, 『우리에게는 또 다른 정부가 있다』(민음사,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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