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민주정치의 '참모관'을 정립할 때
[김성희의 정치발전소] 민정수석의 개헌 발표에 부쳐
이제 민주정치의 '참모관'을 정립할 때
1961년 4월 4일 미국 국무성.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비롯해 딘 러스크 국무장관, 로버트 맥나마라 국방장관, 앨런 델레스 CIA 국장 등 전략 참모들이 훗날 '피그만 사건'으로 알려진 쿠바 침공 계획을 논의하기 위해 모였다. CIA는 쿠바 망명자들을 동원해 쿠바를 침공하고, 봉기를 통해 정권을 장악한다는 기대 가득한 계획을 발표했다. 참모들은 아무도 이 계획에 반대하지 않았다. 몇몇 참모만 자신의 의구심이 드러나지 않도록 소극적인 질문 몇 개를 던졌을 뿐이었다.

참모들의 침묵 속에서 이 계획은 실행됐고, 결과는 이미 알고 있듯 비참한 실패였다. 치욕적 대가를 치른 후, 애초 그 계획이 꺼림칙했던 케네디는 "내가 어쩌다 그런 어리석은 계획을 추진했을까"라고 한탄했지만 돌이킬 수 없었다. 훗날 쿠바 침공을 결정한 비밀회의의 분위기를 아서 슐레진저(Arthur Schlesinger, Jr.)는 다음과 같이 술회했다.

"참모들은 그 계획에 의심을 품었지만 자칫 '온건파'라는 딱지가 붙는 것을 두려워했고, 또 감히 동료들의 시선을 거스를 수 없었기 때문에 그런 의심을 적극적으로 개진하지 않았다. (중략) 만약 단 한 명의 참모라도 반대했다면, 케네디가 그 계획을 취소했을 것이라 확신한다."

<넛지(Nudge)>(안진환 옮김, 리더스북 펴냄)의 공저자 선스타인(Cass R. Sunstein)은 이런 상황을 '근친상간적 증폭(Incestuous amplification)'이라는 개념을 들어 설명한다. 같은 편 사람들끼리 동일한 의견만 서로 강화시켜 결국 판단 착오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슐레진저의 고백처럼 이견을 제시하는 단 한 명의 참모만 있었어도 리더는 오판을 피했을 것이다.

참모의 의미를 생각해 보게 하는 다른 사례도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건이다. 물론 이 사건의 본질은 헌법과 법률을 위배한 대통령을 탄핵한 것이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보면 이 사건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참모의 문제다. 대통령의 참모들이 이른바 '문고리 권력'을 행사하며 서로 동조하고, 숨겨진 참모인 최순실은 대통령의 권한과 권위를 이용해 공직 인사에 개입하고 기업으로부터 돈을 뜯어냈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이 부족해 이런 일을 했다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참모의 잘못된 권력관이 리더를 탄핵으로 내몰았다.

두 사례는 민주 정치에 적합한 '참모관'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한다.

▲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할 정부 개헌안을 브리핑하는 모습. ⓒ청와대


참모란 누구인가?

참모는 '스텝(staff)'의 번역어이다. 스텝의 어원은 보좌, 보조라는 의미가 명료하게 연상되는 '지팡이(walking stick)'다. 원래는 군사 용어로 '고급 지휘관이나 장군을 보좌해 전략, 용병 등의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이지만, 근래에는 정치와 경제 등 모든 영역에서 리더를 보좌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통용된다.

그러나 참모는 그 어원적 의미가 사뭇 다르다. 참모(參謀)는 직역하면 '모의 또는 토론에 참여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참(參)' 자를 풀면, 서로 다른 세 사람 또는 세 개의 별이 스스로 빛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參'은 참여라는 뜻 외에 '(서로 달라) 가지런하지 않다', '서로 다른 것을 비교하다' 등의 의미도 있다. '모(謀)' 자의 옛 뜻은 '군주가 어려운 문제를 자문한다(咨難爲謀, <춘추>의 대표적인 주석서 <춘추좌씨전> 중)'이다. 즉, 참모란 뚜렷한 자기 의견을 갖고 군주나 리더의 어려운 문제에 대해 자문하고 토론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스텝이 아닌 참모의 맥락에서 '참모론'을 제시한 사람은 마키아벨리이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 23장 '아첨꾼을 어떻게 피할 것인가'를 통해 권력 주변에 우글거리는 아첨꾼들로부터 군주 스스로를 지켜 좋은 결정을 끌어내는 방법을 다뤘다. 마키아벨리는 무엇보다 지혜로운 조언자를 선발해 중용할 것을 강조했다. 군주는 불쾌한 조언을 듣더라도 결코 화를 내서는 안 되지만 동시에 아무나 그런 조언을 하도록 허락해서도 안 된다며, 해결책으로 "주위에 사려 깊은 사람을 선임하여 그들에게만 솔직하게 의견을 제시할 수 있도록 허용할 것"을 제안했다. 물론 마키아벨리는 이들의 의견을 진지하게 듣더라도 결국 최종적 결정은 군주가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마키아벨리의 논지에서 참모란, 군주가 질문했을 때 사안의 중대함에 비춰 사려 깊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사람으로 이견을 말해도 안전이 보장된 '직언할 수 있는 책임 있는 소수'라고 할 수 있다.

참모란, 정치적 결정을 내리는 리더가 의견의 다원성을 보장해 오판이나 편견에 빠져들 가능성을 줄이는 오래된 지혜이다. 아무나 참모가 되는 것은 아니다. 리더의 신뢰 위에서 이견의 자유가 보장되는 만큼 책임성과 역할에 대한 엄격한 기준과 제한을 요구받는 존재이기도 하다.

'문재인 청와대'는 안전한가


미래는 불확실한 반면, 시민은 늘 확고한 방침을 요구한다. 딜레마적 상황에서 리더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 리더 혼자 이 모든 일을 감당할 수 없다. 이견들에 기초한 다원적 구조를 갖는 민주주의하에서도 책임 있는 참모는 절실하다.

그러나 권력자인 리더 곁에서 그의 신뢰 위에 있는 참모는 늘 위임받지 않은 권력을 행사하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리더의 결정을 돕는 조언자가 아니라 스스로 리더의 권력을 쪼개 나눠 갖고 이를 사유화할 때 시민 주권의 민주적 위계는 무너진다.

참모는 리더를 위해 특별한 역할을 수행하지만, 그 역시 동등한 시민권을 가진 동료 시민이다. 시민은 기본적으로 자유롭고 평등하며, 자기 결정과 정치적 선택 능력을 갖춘 존재라는 '민주적 시민관'을 리더 스스로 저버리게 될 때 참모는 지팡이나 아첨꾼 신세로 전락하고 조직은 생명력을 잃는다.

참모는 인간 사회의 오래된 지혜이지만, 정치 리더와 참모 사이의 독직·부정·비리 같은 문제가 역사에서 수없이 반복됐다. 이는 민주화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민주적 참모관'이라는 새로운 규범을 창출하는 것은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다. 그것은 '민주주의 기본적 인간관'과 '민주주의에 부합하는 권력관'이라는 엄정한 두 기준 위에 서 있어야 한다.

촛불 이후 더 나은 민주주의에 대한 시민의 요구가 높다. 우리는 참모론을 포함해 민주주의의 새로운 규범을 하나하나 만들어 가고 있을까?

최근 대통령의 개헌안을 참모인 조국 민정수석이 발표했다. 유신 헌법에 박정희가 최초로 삽입한 것이 124조 대통령의 개헌 발의권이다. 권위주의 독재를 상징하는 이 조항은 민주화 이후 단 한 번도 발동되지 않은 사실상 사문화된 조항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 조항을 살려내 헌법 개정안을 발의하려 한다.

대통령을 대신해 헌법 개정안을 발표한 사람은 민정·공직기강·법무·민원 등의 업무를 보좌하는 민정수석, 곧 대통령의 참모다. 과도하게 막강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지만, 그의 역할 어디에도 '개헌'은 없다. 시민의 위임에 기초한 민주주의에서 참모의 권한은 엄격하게 절제되어야 한다. 대통령이 개헌 발의권을 굳이 사용하겠다면, 대통령이 시민에게 직접 설명하는 것이 그나마 위임된 권한에 부합하는 일이다.

법학자 출신의 참모로서 전문성을 살린 것이라고 항변할 수 있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우병우 전 민정수석은 이른바 소년 급제한 법률가이다. 만약 과거 정부에서 대통령의 권한과 권력을 빌어 전횡을 일삼았던 우병우 민정수석이 박근혜 대통령을 대신해 개헌안을 발표하고 설명했다면, 전문성이라는 말로 이런 행위가 용인될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더 위험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개헌'이라는 중대 문제를 다루는 청와대 참모진의 태도다. 헌법이라는 최고 규범을 다루고 있고, 대통령의 개헌 발의권 발동에 야당의 다수가 반대하거나 우려를 표명했다. 이런 중대 문제에 참모들 사이에 의미 있는 이견이 나오거나 이를 둘러싼 토론이 진행되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청와대 참모진 내에서도 동일한 의견을 가진 사람 간에 서로의 생각을 강화하는 '근친상간적 증폭'이라는 오판의 기제가 작동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헌법은 한 공동체의 최고 규범이자 국가 권력을 제한하는 입헌적 장치다. 그러나 지금 헌법의 발의도, 발표도 그에 상응하는 것 같지 않다. '시민이 권력을 통제한다'는 헌법을 앞에 두고, 우리는 위임되지 않는 권력의 오용을 보고 있다. 대통령의 '스텝'만 있을 뿐, 책임 있는 참모의 역할은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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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소개
2002년부터 진보정당에서 일하며, 부대변인, 전략기획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2012년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과 정치교육, 교류, 연구의 공간인 <정치발전소>를 설립했다. 현재는 정치발전소 대표와 정치기획사인 파워플랜트 대표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