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통치'라도 문재인이 하면 괜찮다?
[김성희의 정치발전소] 개헌, 최저임금, 그리고 통치의 실패
'잘못된 통치'라도 문재인이 하면 괜찮다?
미 백악관 홈페이지에는 '우리 정부(OUR GOVERNMENT)'라는 항목의 짧지만 인상적인 설명이 있다.

"연방정부는 세 개의 분립된 기관 : 입법부, 집행부(행정부) 그리고 사법부로 구성되며 각각의 권력은 미국 헌법에 따라 의회, 대통령과 연방법원에 부여된다(The federal government is composed of three distinct branches: legislative, executive, and judicial, whose powers are vested by the U.S. Constitution in the Congress, the President, and the federal courts, respectively)" (☞바로 가기)

이 설명은 두 가지 면에서 생경하다. 하나는 정부(Government)를 문재인 정부나 박근혜 정부처럼 대통령 중심이 아니라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를 포괄하는 공동 통치의 체계로 설명한다는 점, 둘째는 대통령 부서의 설명임에도 입법부를 가장 먼저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아무런 헌법적 근거가 없음에도 대통령을 '최고 통치권자'로 표현하는데 어색함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백악관은 대통령을 정부를 구성하는 세 기관 중 하나인 행정부 수장으로 명확히 한정한다. '트럼프의 정부'가 아니라 '트럼프 행정부'로 구분해 부르는 이유이다. 

유사한 대통령 중심제 국가임에도 정부를 보는 시각에 차이가 있는 것은 무엇보다 통치체제를 의미하는 정부(Government)와 집행부(executive 또는 administration)를 명확히 구분하지 않는 우리 정치언어의 불명료함에 원인이 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는 대통령이 전제 군주처럼 통치를 좌우했던 과거 권위주의 유산이 짙게 깔렸기 때문 아닐까 한다. 

민주적 정부란, 무엇보다 법을 만드는 입법부가 제1의 정부기관인 체제이다. 시민의 의사를 나누어 대표하는 정당으로 구성된 의회, 대통령, 법원이 함께 통치하는 체제이다. 이런 정신은 통치체제에서 입법부를 가장 먼저 호명하는 우리 헌법에서도 확인된다.   

최근 대통령 개헌안을 둘러싼 대통령과 의회(야당)의 갈등을 보며 '현실의 우리 정부는 과연 이런 민주적 정부의 원리를 구현하고 있는지' 묻게 된다. 일련의 상황에서 여전히 권위주의적 규범 안에 갇혀있는 우리 정부, 특히 대통령의 모습을 확인하게 된다. 

지난 24일 국회 본회의에 올라온 문재인 대통령의 개헌안은 의결 정족수에 미치지 못해 표결 자체가 무산됐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에서 정의당까지 모든 야당이 참여를 거부했다. 자신이 발의한 개헌안이 무산되자 대통령은 별도의 입장문을 내고 야당과 의회를 "진심이 없는 정치", "헌법 위반"이라며 강하게 비난했다. 개헌과 관련해 별다른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했던 집권 민주당 역시 야당을 '호헌세력'이란 익숙한 프레임으로 몰아붙였다. 통상의 입법이 아니라 한 나라의 기초법인 헌법을 고치는 문제였다. "통치의 실패"라 할 만한 사안이었으나 대통령과 집권당은 의회와 야당에게 모든 책임을 돌렸다. 과연 야당과 의회, 즉 입법부가 문제였을까?  

개헌 무산은 대통령의 개헌 발의 때부터 예고된 일이었다. 무엇보다 대통령이 개헌발의권을 행사한 것부터 잘못됐다. 대통령이 민주적 정부의 운영 원리를 생각했다면 개헌은 시민의 대표기관인 입법부가 추진하도록 보장했어야 한다. 특히 대통령 개헌발의권은 유신헌법에 다시 삽입된 이래 헌법까지 맘대로 하고자 했던 권위주의 통치자의 욕망을 표현한다. 박정희, 전두환 등 권위주의 대통령에 이어 문재인 대통령 역시 개헌발의권을 발동한 통치자로 이름을 올렸다. 나쁜 통치도 '내가 하면 괜찮다'는 것은 정당화되기 어렵다.   

정치를 적대적으로 양극화시키며 개헌할 수 없다.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던 문재인 대통령은 집권 이후 제1야당과 보수세력 전반을 적대화하는 적폐청산 담론을 주도했다. 현실적으로 개헌은 제1야당의 동의 없이는 불가능한데, 애초부터 협력의 가능성은 차단됐다. 헌법 개정엔 국회 3분의 2의 동의와 국민투표 과반수 찬성이 필요하다. 이처럼 까다로운 이유는 헌법이 권력을 가진 일개 정파의 의향에 따라 그때그때 변경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한 정치공동체의 공존 규범인 헌법을 바꾸는 일은 정당과 의회를 중심으로 작동 가능한 합의를 만들어가는 길 외에 다른 길은 없다. 헌법을 바꾸는 정치 없이 개헌은 가능하지 않다. 알리바이처럼 개헌안만 낸다고 개헌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쯤은 대통령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과연 대통령의 진심이 개헌이었을까? 나는 그것을 확인할 수 없었다. 

대통령은 신이 아니며 민심을 총화할 권한을 가진 군주 역시 아니다. 민주주의는 의견의 불일치를 조장함으로써 작동하는 정치체제다. 따라서 시민의 대표 누구도 전적인 확신과 분명함을 가지고 "민심"을 말할 수 없다. 대통령은 개헌안을 "촛불 민심"을 담은 "국민과의 약속"이라고 말했지만, 그것은 현실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설사 시민의 절대 다수가 개헌을 지지한다고 쳐도 그것이 대통령 개헌안인지도 의문이다. 촛불 시위의 요구를 법적으로 대표하는 가장 권위 있는 문건은 의회에서 3분의 2의 동의를 얻어 처리된 대통령 탄핵안과, 헌재의 탄핵 결정문이다. 두 문건은 공통적으로 '대통령의 위헌적인 권력남용과 기본권 침해'를 지적했다. 대통령 권력에 대한 문제제기의 대답이 왜 대통령제 폐지도 아닌, 중임제라는 대통령 권력 강화 개헌안으로 되돌아오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대통령은 자신의 정치행위를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것으로 정당화한다. 그러나 다른 경우도 있다. 

대통령이 개헌무산에 대한 입장문을 내던 날,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등 우리나라의 가장 중요한 시민 결사체는 전혀 다른 이유로 '대선공약 이행'을 요구하며 대규모 항의에 돌입했다. 민주당 주도로 추진되는 최저임금 산정범위 확대를 담은 최저임금법 개정안에 대한 문제제기였다. 최저임금법 개정안은 기존 최저임금 산정에 포함되지 않았던 상여금과 복리후생비 등을 추가해 최저임금 산정 범위 넓히는 것과 최저임금과 관련된 근로조건 사항을 노동자의 과반수 동의가 아니라 의견청취만으로 가능하도록 하는 안을 담고 있다. 

이 개정안은 산정범위를 확대해 최저임금제를 통해 보호하고자 한 저소득 노동자층 생계에 타격을 주는 것은 물론, 근로기준법의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금지' 원칙을 무력화한다. 노동자들이 최저임금 개정안을 위헌적이라고 비판하는 이유다. 최저임금위원회라는 사회적 합의기구가 엄연히 존재함에도 이를 우회해 민주당 주도로 속도전으로 입법화함으로써 협치를 무력화했다. 협상 룰을 바꿔버림을 통해 이해당사자 간 신뢰를 허문 것도 중대한 문제다. 

'사회적 대타협', '최저임금 1만 원', '소득주도 경제'는 문재인 대통령 사회·경제 공약의 기본 틀이다. 최저임금법 개정안은 문재인 대통령 공약의 기본 틀을 허문다. 노조를 비롯한 시민결사체가 이번 개정안을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 파기로 이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민주당은 개정안 처리를 위해 "적폐", "호헌세력"이라고 낙인찍던 제1야당과 손을 잡았다. 개헌과 함께 또 하나의 대통령 공약이 허물어지는 문제에 대해 청와대는 과연 어떤 입장을 내놓을까? 대통령은 "국민과의 약속"을 중요시한다. 과연 이 문제에 대해서도 대통령의 입장문이 나올지 두고 볼 일이다. 

▲ 국회 앞에서 농성하는 민주노총 조합원들. ⓒ프레시안(허환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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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소개
2002년부터 진보정당에서 일하며, 부대변인, 전략기획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2012년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과 정치교육, 교류, 연구의 공간인 <정치발전소>를 설립했다. 현재는 정치발전소 대표와 정치기획사인 파워플랜트 대표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