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독식정치', 언제까지 방치할 건가
[초록發光] 지지율보다 많은 의석 확보, 위험하다
'승자독식정치', 언제까지 방치할 건가
이긴 자가 모든 것을 가져가는 승자독식의 사회. 간발의 차이로 2등한 스포츠 선수를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1등 중시 사회는 능력이나 과정을 살펴볼 겨를을 주지 않는다. 1등에게 거대한 보상이 뒤따르고, 그래서 1등 고지를 위해 모두가 달려간다. 아바(ABBA)의 한 노래(The Winner Takes It All)처럼, 승자가 모든 것을 차지하고 패자는 왜소한 모습으로 바닥으로 떨어져야 한다. 사회, 경제, 문화, 교육 등 예외 분야가 없다. 특히 정치 분야는 그 정도가 심하다. 1등이면 권력을 독점할 뿐만 아니라 거대 두 정당이 번갈아 1등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근현대 한국 정치의 비극은 이런 승자독식사회로부터 기인된 측면이 있다. 우리는 직‧간접선거를 통해 12명의 대통령을 배출했고, 그 중에서 이승만은 3번, 박정희는 5번, 전두환은 2번의 권력을 잡았다. '제왕적'이라는 단어가 대통령 앞에 붙는 관용어가 되었듯이 이들에게 주어진 권력은 막강했다. 그러나 대부분 대통령의 끝은 비극적이었다.

국회도 다를 바가 없다. 때때로 다당제의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역사적으로 국회의석 점유는 지금의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계열의 정당이 번갈아 여당이 돼 왔다. 국민 신뢰도 분야별 순위는 늘 꼴찌였고, 스스로 정치 불신의 원인을 제공해왔다. 선거공약을 밥 먹듯 뒤집고, 협상과 타협보다 당리당략 정치를 앞세웠다. 그러면서 특권은 내려놓지 않았다.

진보와 퇴보를 반복하며 정치구조가 변화해왔지만, 과거에 비해 정치가 더 나빠졌다고 볼 수는 없다. 물론 정치인 스스로 일신우일신 했다고 믿는 사람은 없다. 깨어 있는 시민들의 역할이 컸다. 그럼에도 다른 분야에 비해 변화의 속도는 더딜 뿐만 아니라 독점구조는 더 고착화 되었다. 지난 6월 지방선거 결과가 이를 잘 보여준다. 50%의 지지를 받은 정당이 90%가 넘는 지방의회 의석을 독차지했다. 민심에 비해 과대표된 현상. 여당은 권력을 잡았다고 좋아할 것이 아니라 이런 구조를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한다.

"나라의 운명과 국민의 삶을 어둡게 만드는 제왕적 대통령, 그리고 승자독식 양당제라는 두 개의 괴물을 반드시 물리치겠다."

바른미래당 손학규 후보가 당 대표 수락연설에서 밝힌 말이다. 선거제도를 고치겠다는 일성이었다. 그런데 엄밀히 따지면 대통령제와 양당제는 좋고 나쁜 성질의 것이 아닌, 가치중립성을 지닌 제도다. 이 두 가지가 괴물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면에는 승자독식을 지탱하는 법체계가 있다. 득표율과는 무관하게 1등만 된다면 모든 권력을 획득하게 되는 구조가 괴물을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러다보니 현직 대통령 또는 집권여당이 정치적인 업적이나 성과가 낮아야 반대편 정당이 다음 선거에서는 권력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그래서 여당 정책이 옳고 그름을 떠나 야당은 안티테제로 대응함으로써 여당의 지지도를 떨어뜨리는 방법을 채택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지금의 자유한국당이 그런 위치에 있다. 여당을 공격해야 야당이 반사이익을 얻기 때문이다.

며칠 전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보여준 태도가 그렇다. 이 자리에서 김성태 원내대표는 마이클 잭슨의 문워크 영상을 보여주기도 했고, '출산주도성장'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낯부끄러운 보수의 민낯을 보며 창피한 것은 국민의 몫이어야 했다. 이러한 현 제도의 생래적 문제점이 바뀌지 않으면 앞으로도 이런 태도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왜 무조건 반대하냐며 따져 묻는다고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두 당의 위치가 바뀌어도 마찬가지다. 승자독식구조를 바꾸지 않는다면 정책을 중심으로 정치적 협치와 협상은 요원한 문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큰 틀의 해답은 이미 많은 연구를 통해 제시되고 있다. 제왕적 대통령 권한을 분권화하고, 국회의원의 특권을 줄이면서 의회의 기능을 강화하고, 유권자의 표가 사표 없이 그대로 결과에 반영되는 공정한 선거제도로의 개혁이 정계는 물론이고 학계, 시민사회단체, 심지어 중앙선관위가 제시하는 방향이다. 대통령제와 같은 권력구조 개편은 헌법 개정사항이다. 정치권이 합의를 이뤄내기 어려운 지점이긴 하다. 그러나 선거제도는 헌법과 연계할 필요 없이 국회가 결정하면 된다. 대체로 지지받는 선거제도는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다. 이 제도는 사표가 발생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유권자가 전략투표보다는 소신투표, 차선이 아닌 최선에 투표할 수 있도록 설계된 제도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득표율에 따라 각 정당에 의석이 배분된다. 1등이 독식할 수 없는 구조다. 봉쇄조항만 넘는다면 2등과 3등, 4등과 5등뿐만 아니라 10등, 11등 정당도 득표율만큼 국회 몫을 가져간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가진 대부분의 나라들이 이런 모습을 보인다. 돈 많은 전문 직업을 가진 50대 남성이 지배하는 대한민국 국회가 매우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책과 가치를 중심으로 공동정부 구성이 수월해지면서 극심한 대립을 피할 수 있다. 더 이상 지역주의에 기대는 정치는 설 자리가 없게 된다. 물론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최선의 제도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녹색당이 제안하는 '봉쇄조항 없는 전면적 비례대표제'가 비례성과 다양성을 더 높일 수 있는 제도일 수 있다. 그 외에도 사회적 상황에 따라 제도 설계가 가능하다.

많은 이들은 지금이 선거제도 개혁의 최적기라고 말한다. 손학규 대표뿐만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은 비례대표제를 강력하게 지지한다고 말했고, 문희상 국회의장은 비례대표제가 원칙이라고 말했고,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도 선거제도 개혁으로 변화를 꾀하자고 했다.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도 선거제도 개혁이 제1 과제라고 말했고, 이정미 정의당 대표도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가자고 제안했다. 의기투합이라도 한 듯, 요 며칠 사이에 벌어진 일들이다.

더불어민주당이 키를 쥐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당론은 '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제'다. 당론대로 추진하면 된다. 그러나 지난 대선을 지나고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선거제도 개혁에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국회 교섭단체 연설에서 “선거법을 포함한 정치개혁 논의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이라고 밝히긴 했지만, 주도할 의사는 없어 보인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대통령의 지지도가 50% 초반대로 하락했고, 더불어민주당 지지율도 30%대로 주저앉았다. 다음 총선까지 높은 지지율을 유지할 것이라는 낙관은 접어야 한다. 지난 지방선거 결과의 반대 현상으로, 이후 선거에서 현재의 야당이 자신의 득표율보다 더 많은 의석을 차지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공정한 선거제도가 필요하다.

이젠 립서비스는 필요 없다. 두 개의 괴물을 낳은 승자독식과 표의 불비례성를 타파해야 한다. 행동으로 보여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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