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철도, '유라시아 철도 유관국'으로 인정받다
[기고] 싱가포르 국제운수노조연맹(ITF) 총회 현지 르포
한국 철도, '유라시아 철도 유관국'으로 인정받다
국제운수노조연맹(ITF) 44회 총회가 2018년 10월 14일부터 싱가포르 선텍(Suntec) 컨벤션 센터에서 열리고 있다. 동남아시아에서 처음 열리는 ITF 총회로 오는 20일까지 이어진다. 

이번 총회는 '운수노동자의 힘의 강화'(Transport Workers Building Power)라는 주제로 140개국 600여 운수 산업 관련 노조에서 약 2000여 명이 참가한다. 큰 행사다. 14일 열린 개막식에는 엔치멩(Ng Chee Meng) 싱가포르 노조 총연맹 사무총장이자 총리실 장관이 참석해 세계 운수노동자들의 안전과 권리를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ITF와 참가자들을 격려 했다. 

한국에서는 안전 운임 체제의 국제적 확대 안건을 제안한 화물연대를 비롯해 철도노조, 서울교통공사노조, 부산지하철노조, 대전지하철노조, 공항철도, 9호선 운영 노조, 서울메트로 9호선 노조, 공항항만운송본부의 쉥쿼노조와 DHL 노조가 공공운수노조의 지원 아래 참가했다. 

4년 주기로 열리는 ITF 총회는 가맹된 전 세계 해운, 항공, 도로, 철도 등 운수산업 관련 노동조합이 참가하는 국제회의로 대회 기간 동안 다양한 주제가 다뤄진다. 총회를 비롯해 철도분과 총회, 도로운수분과 총회, 해운분과 총회가 주요 분과 총회다. 그외에도 도시교통위원회, 여성위원회 등 각종 위원회와 청년행사 등 부대 행사가 있고, 그보다 더 많은 사이드 미팅들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15일 개최된 ITF 철도분과 국제철도협력기구 OSJD 관련국 세션 ⓒ박흥수

▲ 16일 내내 진행된 ITF 철도분과 총회, 세계적으로 문제가 지적되고 있는 공공분야 민영화에 대한 토론들이 오갔다 ⓒ박흥수

▲ 운수노동자의 힘의 강화란 주제로 싱가포르에서 열리고 있는 2018 ITF 총회 ⓒ박흥수


선텍 컨벤션센터 회의실마다 열리는 각 섹션별 모임에서는 분야별 공통 관심사들에 대해 세계 각국에서 모인 노동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뜨거운 토론을 이어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일본 해운노조는 미술 갤러리를 열어 노동자들이 직접 그리고 찍은 미술 작품과 사진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총회 집행위원회는 IT기술 지원과 의료 지원 부스도 열어 놓았다. 

특히 총회 참가자들에게 인기 있는 공간은 308호 회의실에 마련된 VR(증강현실)실이다. 인도 철도 기관사가 운전하는 기관차의 운전실에 탑승해 멋진 풍경과 함께 기관사가 거대한 기계를 다루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승객들의 안전을 책임진다는 자부심 가득한 철도 노동자의 육성까지 바로 옆에서 듣고 볼 수 있다. 

인도 철도 운행을 마치면 아르헨티나의 화물 비행기 파일럿과 함께 남아메리카 상공을 날 수 있다. 아르헨티나 노동자로부터 노조에 가입하게 되면서 비로소 보호 받게 된 삶의 소중함에 대해서도 함께 들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자유노조로 유명한 폴란드 항만의 컨테이너 기중기를 다루는 노동자를 만난다. 발 밑에 아래 수 백 개 컨테이너가 쌓여 있다. 이 컨테이너들은 배에서 항만으로 또는 항만에서 배로 옮겨진다. 그는 처음 거대 기중기에 오르는 것에 겁을 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고된 노동 속에서도 안전을 소흘히 하지 않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차분히 설명해준다. 그는 '나의 실수로 누군가를 다치게 할 수 없다는 책임감'이라고 말한다. 폴란드에서도 흔치 않은 여성 골리앗 기중기 노동자다. 기중기 조종실에서 보이는 노을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며 노조의 권리,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다. 

▲총회 측에서 마련한 의료 지원 부스 ⓒ 박흥수

▲ ITF총회 참가 노동자들에게 인기가 높은 VR룸 ⓒ 박흥수

▲ 일본 해운노조가 준비한 미술,사진 전시회 ⓒ박흥수


15일 오후 2시에는 한국철도 노조 대표단과 중국 교통분과, 러시아 철도노조 연맹 니콜라이(NIKOLAI)위원장과 독립국가연합 14개국이 가입된 ICTURW(International Confederation Trade Union of Railway Workers)철도노조 연맹 제나디 코소라포브(GENNADY KOSOLAPOV)사무총장(우크라이나)이 참여한 국제철도협력기구(OSJD) 섹션이 열렸다.

한국은 그간 OSJD에 가입돼 있지 않았다. OSJD는 북한, 중국, 러시아, 몽골을 비롯해 중앙아시아와 동유럽 국가들이 철도 국제협력을 위해 만든 협의체로 국제열차 운행에 따른 표준화와 국경통관 협력 등 다양한 철도관련 협의를 하고 있는 기구다. '섬 나라(?)' 한국의 철도가 북한을 건너 대륙으로 이어가기 위한 모든 것들이 이 기구에 담겨 있다. '철의 실크로드'를 위한 기구다. 

OSJD 섹션에 한국이 정회원국으로 당당하게 참여한 것은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신규 회원 가입은 정회원국의 만장일치로 승인되는데, 지난 6월 키르기즈스탄 비슈케크에서 열린 OSJD 장관회의에서 대한민국의 정회원 가입이 의결됐다는 의미는, 그간 반대해왔던 북한의 찬성이 있었다는 것을 뜻한다. 자칫 간과되기 쉬운 뉴스지만, 한국 철도가 대륙으로 나가는 것을 국제 사회가 공인해주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이슈다.  


특히 시베리아 횡단철도는 물론이고 중국횡단철도, 만주횡단철도, 몽골횡단철도 등이 모두 OSJD 회원국 관련 노선인데, 이 노선과 연관된 OSJD 회원국들은 남북철도 연결이 본궤도에 오를 때 긴밀하게 협력해야 할 대상이기도 하다. 철도노조는 ITF 총회 기간 중 OSJD 관련국간의 회의를 추진해 ITF철도분과 의장의 주제로 중국, 러시아, 몽골 철도 노조가 참여하는 OSJD섹션 기획에 참여했다.   

고무적인 것은 이 섹션에서 한국대표단이 제안한 남북철도 연결과 동아시아 평화체제 구축에 대한 OSJD회의 참여 국가들의 지지 결의안이 제출되었다는 점이다. 결의안은 남북철도 연결 및 착공식 지지 및 연대, 철도 연결과 동아시아 평화체제 구축 지원 연대 및 유라시아 국제철도 운송, 각국 철도산업 정책 및 노동조건에 관한 정보 공유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상상력과 현실이 녹아 있는 소중한 결의안이다. 

회의를 주제한 철도분과 오이스틴 아슬락센 의장(노르웨이)은 한국에서 제출한 결의안이 동아시아 평화체제와 남북철도 연결을 통한 유라시아 철도의 완결을 이루는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OSJD 섹션이 아니라 철도분과 총회 보고 후 전체 총회 의제로 제출할 것을 권고했다. 한국을 포함한 OSJD분과 회의 참석국은 남북철도 현안 총회 상정을 제안한 아슬락센 의장에 고마움을 표하고 회의를 마쳤다. 

이동의 자유는 인간의 본능이요 권리다. 우리는 얼마나 이 권리를 스스로 옭죄고 살아 왔는가. 이제 한국 철도는 한 걸음 더 내딛었다. 한국 철도는 이제 '유라시아 철도 유관국'이 된 셈이다. 연초 부터 한국발 국제뉴스로 남북관계 진전을 알고 있는 외국 참가자들은 남북철도 연결이 현실화 되는 성과가 있기를 바라는 응원의 눈빛을 보였다.

16일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 까지 진행된 ITF 철도분과 총회에서는 OSJD분과 회의에서 결의된 남북철도연결을 통한 동아시아 평화체제지지, 연대 안건의 전체 총회 상정이 보고 됐다. 이에 따라 폐막일을 하루 앞둔 19일 열리게 될 ITF 총회에서 남북철도 현안이 다뤄질 예정이다. 

총회에서 남북철도연결지지 안건이 채택되면 ITF 본부와 전 세계 해운, 도로, 항공, 철도 가맹국 노조는 동아시아 평화와 유라시아 철의 실크로드를 여는 남북한의 노력에 적극 호응하고 ITF의 공식 사업으로 지원하게 된다. 희망이 보인다. 이 희망이 무지와 시샘으로 깨지지 않기를 희망하며.

철도 기관사 박흥수는 사회공공연구원 철도정책객원연구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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