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의 '행복 추진'?…보수, 안 맞는 옷 입었다
[기고] 행복 연구자가 본 박근혜의 '행복 정치'
박근혜의 '행복 추진'?…보수, 안 맞는 옷 입었다
18대 대선 예비후보들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한 10대공약에서, 박근혜 후보와 안철수 후보는 '경제민주화'를, 문재인 후보는 '일자리창출'을 최우선 공약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소속이 다른 여당과 야당, 무소속 후보임에도 불구하고, 3인의 공약이 경제민주화, 복지, 일자리 등으로 거의 비슷하고 차이가 별로 없어 보인다.

미국의 대선을 보면 진보성향의 민주당과 보수인 공화당의 정책은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특히 정부의 역할에 대해 민주당 오바마는 큰 정부를, 공화당 롬니는 작은 정부를 내세우며, 부유층 소득세율 인상에 대해 대립한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진보와 보수의 생각이 비슷해서 이러한 차이가 없는 것인가?

우리나라에서도 진보와 보수는 정권의 교체, 특히 노무현·이명박 대통령의 정책을 거치면서 법인세와 종부세 등 감세정책과 복지의 확대에 대해, 성장과 분배의 철학을 두고 대결해 왔으므로 그렇게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진보와 보수가 추구해 온 철학의 바탕에서 이들이 표방하고 있는 정책들이 일관성이 있는지 따져봐야만, 이들 정책들이 제대로 추진될 것인지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행복을 추구하는 행복정책은 무엇인가

필자는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공공정책에 대해 관심을 가져왔으므로, 이를 지향하는 행복정책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박근혜 후보는 대통령 출마 선언문에서, "국가는 발전했고, 경제는 성장했다는데, 나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고, 나의 행복은 커지지 않았습니다. … 이제,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합니다. 국정운영의 기조를 '국가'에서 '국민'으로 바꿔야 합니다." 라고 하고 있다. 뒤이어 이러한 국민행복을 위한 3대 핵심과제로 '경제민주화 실현', '일자리 창출', 그리고 '한국형 복지의 확립'을 들었다.
▲ 박근혜 후보는 '국민행복추진위원회를 만들고 김종인 위원장을 영입했다. '국민 행복'을 어떻게 추진하겠다는 것일까. ⓒ뉴시스

행복을 추구하는 정책, 행복정책은 국민 개개인의 행복을 증진시키는 정책을 펼치겠다는 것인데, 최근 들어 개인의 행복에 관한 많은 과학적 연구에 힘입은 것이다. 행복연구는 자기계발이나 처세술과는 다른 것으로, 행복에 영향을 주는 요인들을 통계적이고 실증적으로 분석해 내는 과학적 학문이다. 원래는 심리학자들이 주도하였으나, 경제성장을 이루었는데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행복 수준이 제자리걸음하는 소위 '행복의 역설' 이 미국의 경제학자 이스털린에 의해 조명되면서 본격적으로 발달하였고, 지금은 사회과학뿐만 아니라, 뇌과학 등 자연과학에 이르기까지 학제적인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행복학자들은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행복이 증가하지 않는 행복의 역설이 발생하는 원인으로, 개인적으로는 적응(adaptation), 그리고 사회적으로는 비교(comparison)를 든다. 로또에 당첨 되어도 삼년 안에 그 효과가 거의 사라진다. 어떤 것이든 더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이를 당연히 여기게 되어, 본래 가진 것으로 인한 기쁨이 점점 줄어들게 되는 것이 적응이다. 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것처럼, 내가 많이 가졌다고 해도 나보다 많이 가진 남과 비교하면 행복이 줄어든다. 한마디로, 좋은 것도 많으면 싫증나고, 또 비교하면 초라해져, 행복이 줄어드는 것이다.

둘 중에서 정책적으로 보다 더 의미 있는 것은 사회적인 비교인데, 특히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소위 과시적 소비(conspicious consumption)는 행복을 저해하는 해로운 효과가 있는 부정적 외부효과를 만들어 낸다. 남들에게 자랑하기 위한 목적이 큰 아주 값비싼 고급차량이나 명품 같은 것들은 이를 가지지 못한 주위 사람들의 행복을 낮출 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이와 비슷한 목적의 또 다른 재화를 사고 싶은 욕구를 부채질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로버트 프랭크와 같은 경제학자에 따르면, 국민들의 행복을 높이기 위해서는 과시적 소비의 효과가 큰 사치재에 세금을 더 높여야 한다. 결과만 보면 부유세와 비슷하지만, 논리는 비교효과를 통한 행복의 감소를 줄이자는 것이며, 소득보다 지출, 특히 사치재의 지출에 세금을 매겨야 한다는 주장이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소득, 재산의 격차를 줄이는 평등을 추구하여, 비교와 경쟁을 줄이는 것이 행복을 증진시키는데 중요할 것이다.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여 계층 간 소득의 불평등을 치유하려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특정사람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두가 사용가능한 공공재는 공해와 같은 부정적인 효과가 아니라 오히려 사회전체의 행복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다주므로, 정부가 나서서 더 많이 늘려줘야 할 것이다. 깨끗한 환경 같은 것이 이러한 긍정적인 외부효과를 만드는 대표적인 예라고 하겠으며, 이밖에도 사람들 사이의 신뢰와 같은 사회적 자본, 정치적·혹은 공동체에의 참여와 같은 것들이 많은 학자들이 행복을 증진시키는 요인들로 밝혀낸 것들이다.

박근혜 진영의 '행복'은 수사에 불과할 뿐

이렇게 보면, 보수의 철학과 정책이 앞서 언급했던 행복학들의 결과와는 양립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다. 무엇보다도 보수주의자들은 경쟁을 통해 효율성을 높이는 것을 금과옥조로 삼아 성장을 우선하는데, 대다수의 행복학자들은 물신주의와 지나친 경쟁을 통한 성장제일주의를 배격해야만 진정한 행복을 달성할 수 있다고 하고 있다. 근본적으로는 자기이익과 행복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어서, 개개인의 이익 추구가 때로는 자신의 행복과 사회전체의 행복을 저해하기도 하며, 따라서 정책적 개입의 여지도 있다.

잘 알다시피 진보와 보수는 시장에 대한 정부의 개입에 대해 다른 입장인데, 진보주의는 정부가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계층 간 소득의 불평등을 치유하려 노력해야 한다고 보고, 보수주의는 정부가 시장에 대해 개입하는 것을 반대하여 최대한 개인이 스스로 자유롭게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보수는 정부의 개입, 특히 세금은 최소한이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보수주의의 주장은 불평등을 줄여야 행복이 증진되며, 이를 위해 정부가 개입해야 할 필요성을 인정하는 행복학자들의 논의와 잘 맞지 않는다.

또, 행복연구들은 사적인 영역보다는 공적인 영역, 공공재를 늘리는 것이 행복을 높이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하는데, 보수주의자들은 근본적으로 이에 찬성하기 어렵다. 보수주의자들은 개개의 인간이 자신의 이익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으며, 사회·집단이 이러한 경제적·도구적 합리성을 넘어설 수 없다고 믿는다. 따라서 공적인 영역을 늘리는 것은 비효율적이며 시장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보는 것이다. 박근혜 후보도 이번 10대공약 발표에서 민영화 추진을 반대하지 않는다고 하여 이러한 보수의 입장을 따르고 있다.

이러한 진보와 보수의 차이는 인간에 대한 가정, 사회에 대한 가정, 그리고 인식론의 차원 등 근본적인 정치철학의 차이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진보와 보수의 철학적 가정이 다르기 때문에, 구체적인 정부 역할에 대해서도 견해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진보는 각 개인이 그렇게까지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이지 않다고 보기 때문에 시장에 대한 정부 개입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반면, 보수는 개인들이 이성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다고 보기 때문에 합리적 개인들에게 최대한의 자유를 보장하고자 하는 것이다.

나아가, 진보와 보수에 대해 최근에는 인지과학이나 자연과학적인 접근을 하는 이들도 있다. 인지언어학자인 레이코프는 인지과학의 입장에서 현실의 진보·보수를 분석하는데, 보수는 자기이익(self interest)과 권위(authority)에 바탕을 두고 있는데 비해, 진보는 공감(empathy)과 책임(responsibility)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고 한다. 크리스 무니는 '똑똑한 바보들'(원제: the republican brain)이란 책에서, 뇌과학과 신경과학 연구 결과를 동원하여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는 뇌부터 다르다는 주장까지 하고 있다.

이렇게 보수와 진보의 철학이 다르고, 또 보수주의와 행복정책의 철학적 배경과 함의가 다른데, 보수가 행복정책을 추진하며 과연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단지 정치적으로 좋은 이미지를 위한 하나의 수사(rhetoric)로서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국민들 입장에서 뿐만 아니라, 보수 내에서도 여러 가지로 혼란스러운 것은 당연하다.

원조 보수를 자처하는 조갑제 씨는 박근혜씨의 대선 출마 선언에 대해 "국민국가에서 국가와 국민 관계를 적대적으로 설정하는 것은 계급투쟁적 발상이고 국가의 존립근거를 흔드는 것이며 국민 복리를 위협한다"면서, "박 의원의 사고체계엔 중도기회주의적이거나 좌익적 세계관이 깊이 들어가 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각론으로 들어가 경제민주화의 방향을 논의하면서, 보수 내 갈등이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박근혜 후보의 정책팀 내에서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과 이한구 원내대표가 경제 민주화의 구체적인 추진 방향을 놓고 갈등한 데 이어, 다시 경기부양이 공약인지를 놓고 국민행복추진위 산하 '힘찬경제 추진단'의 단장 김광두 서강대 교수와 김종인씨가 충돌하였다.

보수의 철학과 행복학의 원리나 정책적 함의가 서로 근본적으로 상충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아마 앞으로도 이러한 일들이 계속 일어날 것이다. 또, 철학적 바탕이 다르기 때문에 보수의 행복정책 추진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를 어떻게 접붙이기 하겠다는 것인지,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기 위해 몸을 자르겠다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보수가 보수 다워야 진보도 발전

보수는 보수로서의 책임과 역할이 있고 이에 적합한 철학과 정책방향이 있다. 우리 사회의 많은 보수들이 견지하는 철학과 다른 방향을 내세우면서 과연 보수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인지, 선거를 위해 정체성마저 흔들려야 하는 것인지, 또 과연 그래서 선거를 이길 수 있는 것인지 되물어 봐야 할 것이다.

보수가 보수로서 중심을 잡고 제자리를 잡아야 진보도 진보로서의 자리를 찾을 수 있다.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위해 필요하다. 중간에 서는 것이 언뜻 봐서는 안전해 보이지만, 자신 뿐 아니라 사회 전체를 위험하게 만들 수 있다. 시소를 타면서 둘 다 중간으로 오려고 한다면 오히려 시소는 심하게 흔들릴 것이다. 좌와 우, 진보와 보수가 분명한 위치를 가지고 때로는 한쪽이 우위를 점하고 다른 쪽이 양보하며 균형을 맞추는 것이 서로의 발전에 도움이 되고, 사회 전체를 건강하게 만드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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