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원하는 건 평화인가 평화상인가
[김성희의 정치발전소] 남북관계 진전과 남남갈등 격화
청와대가 원하는 건 평화인가 평화상인가
시민들에게 평화는 왜 중요할까? 북한을 돕기 위해서이거나 고상한 인류애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 중심 이유는 아닐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평화가 중요하고 절실한 것은 그것이 시민과 공동체의 안전과 안정을 보장하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대통령이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평화는 무엇이어야 할까? 개인이라면 소신에 따른 특정한 가치와 이념의 실현이 중요할 수 있다. 그러나 시민의 대표인 대통령이라면 무엇보다 분단과 전쟁으로 인해 오랫동안 우리 공동체 내부에 각인된 이념 갈등과 적대의 정치 구조를 개선하는 것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시민의 안전과 안정을 보장하는 평화와 통합의 기반이 다져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청와대는 남북관계 개선에 높은 정책적 우선순위를 부여한다. 어느 대통령도 하지 못했던 세 차례 남북 정상회담과 두 차례 정상간 합의가 있었다. 남북관계 개선을 의제로 한 해외 방문과 회담도 많았다. 국정감사 중에도 대통령은 멀리 유럽을 방문해 교황에게 북한 방문을 제안하고, 유럽 정상들에게 비핵화 이전 북한 제재 완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모든 사례는 남북관계 개선에 대해 청와대가 가지고 있는 열의와 관심을 확인시켜 주는데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청와대가 열의와 관심을 보일수록, 청와대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점점 더 의문스럽다. 청와대의 남북관계 개선 노력이 평화를 위한 것이라면, 무엇보다 분단으로 인한 국내정치의 냉전 구조가 약해지고 이와 더불어 정치적 협력과 사회의 통합력 역시 높아져야 한다. 

그러나 상황은 정반대이다. 청와대가 남북관계 개선에 몰두할수록 국내정치의 적대적 갈등은 오히려 격렬해지고 있다. 심각한 것은 정치 양극화가 정치에 머물지 않고 시민사회의 분열과 단절로 확대 증폭된다는 점이다. 정치적 시각이 다르다면 가족사이, 친구사이에서조차도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가기 어려울 만큼 시민과 공동체는 내면으로부터 황폐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우익 행동주의도 전례 없이 힘을 얻고 있다. 과거 재야 운동의 전유물이었던 대통령 퇴진 서명이나 집회, 지식인 선언 등을 이제는 우파가 나서서 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고립되어 소멸할 것으로 여겨졌던 태극기를 든 시위대는 이제 주말이면 여지없이 서울 도심을 메울 뿐만 아니라 그 규모와 격렬함 역시 커지고 있다. 

타협과 조정을 통해 갈등을 줄이고 사회를 통합시키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다. 정치가 적대적이 되면, 그 여파는 시민사회 내부의 갈등과 분열, 단절로 이어진다. 내전(civil war)은 한 공동체에서 정치의 기능이 중지됐을 때 발생하는 시민과 시민 사이의 전쟁상태를 말한다. 현재 우리 사회는 총만 들지 않았을 뿐, 정서적으론 이미 내전 상태에 가깝다. 

대통령은 유럽을 돌며 한국 촛불 민주주의의 위대함에 대해 말했다. 그러나 촛불의 위대함은 이제 과거가 된 지 오래다. 촛불은 그 자체로서 사회적 대연정이자 통합이며 시민적 협력의 결과였다. 그러나 청와대는 시민이 만들어준 통합의 공간을 파당적 정치로 깨버렸다. 대통령의 자신감 넘치는 연설과 달리, 오늘 우리 사회는 협력과 통합의 기회를 잃고 있으며, 이제 다시금 정치의 위기 앞에 서 있다.    

청와대는 북한이 원하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 평화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청와대가 추구하는 것이 국내 정치와 사회 그리고 우리 내면을 더 분열시키고 시민들을 적대적 갈등으로 몰아넣는다면, 이것은 평화의 길과 아무 상관이 없다. 

오히려 청와대가 정말 원하는 것은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성과를 야당과는 결코 나누지 않겠다는 것이며, 정치 내전으로 야당을 궤멸시키겠다는 것임이 시간이 갈수록 분명해진다. 이것은 강자의 논리이다.   

일각에서는 대통령이 유럽에 가고, 교황을 만나고, 남북관계 업적을 강조하는 것이 노벨 평화상 프로젝트의 일환이라고 말한다. 평화상은 분명 영예로운 것이고 퇴임 후 '대통령의 평화'를 보장할 것이다. 그러나 그 평화상이 평화의 결과가 아니라 야당과 비판자들을 밟고 선 정치전쟁의 트로피라면 그것은 분열의 상징이지 평화의 상징은 아니다.  

정부는 남북관계 개선에 있어 독일의 사례를 강조한다. 독일의 1972년 동서독기본조약은  평화의 전환점이다. 그러나 이 조약의 비준안은 서독 연방하원에서 268:217로 아슬아슬하게 가결됐다. 독일 역사가 하겐 슐체(Hagen Schulze)는 이때를 "독일 의회사의 가장 빛나는 순간"이라고 말했다. 

야당의 반대를 억누르고 비준안을 통과시켰기 때문이 아니다. 하겐 슐체는 당시 서독 의원들이 진지하게 논쟁한 것은 비준 찬반이 아니라 '독일의 미래가 어떠해야 하는가'였다고 했다. 독일은 어느 정당이 집권하더라도 야당에게 굴복을 요구하지 않았다. 야당은 언제나 독일 외교의 파트너이자 공동 통치자로 존중되었다. 상호 존중에 기초한 좌-우 정치세력 간의 양보와 타협은 변화를 이끌어냈다. 그래서 동서독기본조약은 사민당 정부 하의 결과였지만, 통일을 실현한 주역은 기민/기사연합이 될 수 있었다. 독일의 미래를 위해 불가피했던 1972년의 논쟁과 그를 둘러싼 '진짜 평화'를 향한 정치는 향후 통일 독일과 유럽연합(EU)를 만드는 독일 정치의 공고한 합의로 이어졌다. 

기념비적인 평화의 전진은 단지 도덕적 우월성만을 앞세워 반대파를 악마화하는 과정에서,  난관의 책임을 반대파에게 떠넘기려는 비겁한 속셈에서 이루어지지 않았다. 독일에서 청와대가 배워야 할 것은 '해야만 하는 불가피성'이 있다면 정치의 방법으로 이견을 다루는 것이다. 시민적 협력과 통합을 창출하는 통치자들의 적극성이다. 

나는 다시 묻는다. 오늘 청와대가 진짜 원하는 것은 평화인가, 평화상인가. 평화를 통한 시민의 안전과 안정인가, 분열과 내전을 통한 승리의 트로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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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소개
2002년부터 진보정당에서 일하며, 부대변인, 전략기획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2012년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과 정치교육, 교류, 연구의 공간인 <정치발전소>를 설립했다. 현재는 정치발전소 대표와 정치기획사인 파워플랜트 대표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