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장자연, 죽음으로 고발한 '침묵의 카르텔'
[2009년, 잊을 수 없는 사람들·④] 우리 시대의 '슬픈' 노예들
2009.12.28 07:44:00
故 장자연, 죽음으로 고발한 '침묵의 카르텔'
이제 헌 달력을 버릴 날이 머지않았습니다. 해마다 이맘때면, 나쁜 기억은 씻어내고 좋은 기억만 남기리라 결심하곤 합니다.

올해가 유난스러웠던 걸까요. 버리려야 버릴 수 없는, 아니 두고두고 가슴에 담아두리라고 다짐하게 하는 기억들이 참 많습니다. 용산 참사, 전직 대통령의 잇따른 서거, 정부의 방송 장악 시도 등이 그렇습니다. 새로운 달력을 걸어도, 기억에서 지울 수 없는 '2009년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아 정리했습니다. <편집자>


"저는 나약하고 힘없는 신인 배우입니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지난 3월, 한 여성 연예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탤런트 장자연. 처음에 세상은 그의 죽음을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망 일주일 후 그가 폭행, 협박, 성 상납 등 지속적인 인권 유린에 시달려 왔음이 드러나면서 세상은 발칵 뒤집혔다.

특히 사람들은 그가 남긴 이른바 '장자연 리스트'에 주목했다. 이 문건은 장 씨가 '성 접대'를 한 언론사, 기획사, 방송사 등의 유력 인사의 이름을 언급했다. 연예계의 구조적 비리가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이다. 죽어서야 이름을 날린 여배우는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나는 김○○의 노예가 되겠습니다." (연예 기획사 대표 김모 씨가 소속 가수에게 요구한 각서)

장자연 씨의 사건이 채 수습되기 전인 6월 26일, 연예 기획사 대표 김모(47) 씨가 자신의 기획사에 소속된 여가수 A씨를 상습적으로 감금하고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됐다. 김 씨는 성 노예 각서에 준하는 전속 계약을 빌미로, A씨 같은 신인 연예인에게 각종 방송 출연을 대가로 성 상납을 강요했다. 또 이러한 장면을 동영상으로 찍어 지속적으로 해당 연예인을 협박했다. A씨는 이를 비관해 여러 차례 자살도 시도했다.

여성 연예인에게 요구되는 '이중 잣대'

우울증이 여성 연예인의 '직업병'이 되어버린 걸까. 해마다 많은 수의 여성 연예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 A씨의 고통이 장자연 씨와 같은 비극으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성을 매개로 한 여성 연예인에 대한 각종 인권 유린은 연예계의 고질적인 문제로 꼽힌다.

▲ 지난 3월 7일 자살로 생을 마감한 故 장자연 씨. ⓒ연합뉴스
경찰 조사 결과, 장자연 씨는 성 접대 등으로 고통에 시달리다 소속사를 옮기기 위해 문건을 작성했는데, 의도치 않게 이 문건이 외부로 유포되자 심리적 압박감을 느껴 자살을 선택했다. A씨가 기획사 사장의 끊임없는 성폭행에도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성폭행 영상을 찍어 유포하겠다는 사장의 협박이 있었기 때문이다.

'성(性) 스캔들'에 휘말릴 것에 대한 공포, 이것은 성 상납·성추행 등의 인권 유린에 시달리는 여성 연예인을 침묵하게 만든다. 비단 두 연예인의 문제만은 아니다. 이미지가 생명인 여성 연예인의 경우, 자신이 피해자라고 해도 자신의 성 문제와 관련한 스캔들은 곧 사회적 매장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연예계가 여성 연예인에게 요구하는 것은 때로 연예인으로서의 능력보다는 성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능력이다. 기획사는 이들의 성을 매개로 대중에게 '섹스 어필'을 하고 스폰서를 찾는 등 '장사'를 하지만, 정작 해당 연예인이 자신의 성에 대한 발언을 하거나 성 논란의 중심에 서는 것은 결코 '용서받지 못할 일'이다. 여성 연예인의 성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이중 잣대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지점이다.

비단 인권은 안중에도 없이 '장삿속' 채우기에 급급한 일부 기획사만의 문제일까. 아니다. 동국대 유지나 교수(영화영상학)는 지난 7월 국회에서 열린 한 토론회에서 "'정숙한 여자'와 '타락한 여자'로 여성성을 이분화한 후, 전자를 우러러보면서도 후자에 끌리는 이중성을 남성의 본능으로 정당화하면서, 여성에게 이중적 태도와 분열적 억압을 강제하는 사회 풍토"를 지적했다. 여성 연예인에게 조신하고 순결할 것을 요구하면서, 동시에 이들의 성을 소비하고 도구화하는 이중적인 인식이 우리 사회 전반에 깔려 있다는 지적이다.

대중이 요구하는 고정적인 섹슈얼리티에서 이탈하는 연예인들은 가혹하게 심판되고, 퇴출된다. 다이어트에 '성공'한 한 개그우먼은 지방 흡입 수술을 받았단 이유로 한동안 방송계에서 퇴출됐고, 한 여성 아나운서는 체중이 늘어났다는 이유로 프로그램 진행에서 낙마했다. 몇 년 전, 이른바 '섹스 비디오'로 혹독한 비난에 직면한 인기 가수 B씨는 자신이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대중에게 눈물로 사과하며 활동을 중단해야 했다.

장자연 사건에는 이윤에 눈이 먼 연예 기획사, 타락한 사회 기득권층 뿐 아니라, 끊임없이 여성 연예인의 성을 소비하고 동시에 심판하는, 냉정한 대중이 있었다.

연예인 5명 중 1명 "나 또는 동료가 성 상납 강요받았다"

거대한 연예계의 먹이 사슬에서, 언제든지 기득권을 위한 '성 노리개'로 활용될 수 있는 '소모품'의 위치에 있는 여성 연예인들의 현실을 보여준 사건. 장자연 씨의 죽음은 이 추악한 진실을 세상에 폭로했다. 그러나 그의 죽음에도 세상은 결코 변하지 않았다.

▲ 장자연 씨의 죽음 이후, 한 언론사가 공개한 문건. ⓒKBS

장자연 씨가 죽음으로 그 비리를 고발한 지 4개월이 지난 후, 연예계의 '노예 계약' 실태가 구체적인 수치를 통해 밝혀졌다. 지난 7월 한국방송영화공연예술인노동조합(위원장 김응석·이하 한예조)은 탤런트지부 조합원 19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 4월 실시한 설문조사는 애초 전체 탤런트 수의 95퍼센트에 이르는 20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지만, 응답한 사람은 191명에 불과했다.

공개된 설문조사 결과는 처참했다. 5명 중 1명이 '나 또는 동료가 성 상납을 강요받았다'고 응답했다. '인권 침해나 금품 요구를 받은 적 있느냐'는 물음에 '직접 피해를 당했다'고 응답한 연기자는 전체의 24.6퍼센트인 45명에 이르렀다. 본인이 직접 당하지는 않았지만 동료의 피해 사례를 들은 적이 있다는 응답은 68.2퍼센트(125명)에 육박했다.

구체적인 피해 유형을 묻는 질문(중복 답변 가능)에 '성 상납'을 지목한 이가 응답자의 19.1퍼센트인 35명이었다. '접대 강요'를 짚은 이는 34.3퍼센트에 달하는 63명이었다. 이밖에도 △금품 요구 78명(42.6퍼센트) △폭언·폭행 18명(9.8퍼센트) △인격 모독 72명(39.3퍼센트) 등이 있었다.

한예조의 설문 조사 결과는 또 다른 '장자연'들이 남몰래 고통스런 시간을 보내고 있음을 확인해 준 사례였다. 그들은 구체적인 '가해자'의 이름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설문 응답자들은 방송사 PD·간부, 연예 기획사 관계자, 정치인, 기업인 등의 가해자 이름을 적어냈다. 한예조는 확보된 '가해자 리스트'까지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여기에는 10여 명의 이름이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대다수 연예인들은 인권 침해를 겪거나 부당한 요구를 받았어도 혼자 삭이고 말았다. 장자연 씨도 밝혔듯, '나약하고 힘없는' 신인 배우를 둘러싼 권력 관계는 쉽게 깨기 어려운 법이다.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62.3퍼센트(114명)가 '성 상납을 비롯한 각종 부당한 요구를 거절했다가 캐스팅에 불이익을 받았다'고 답했다. 경쟁이 치열한 연예계에서 '캐스팅 불이익'은 연예인을 옥죄는 가장 효과적인 무기가 된다. A씨의 경우에도, 기획사 사장은 캐스팅을 빌미로 금품이나 성 상납을 요구했었다.

연예인 '직업병' 되는 우울증…"인권 침해 대응, 해봤자 달라질 것 없으니까"

'왜 법적 대응을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보면, 연예인의 답답한 현실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53.5퍼센트(98명)의 응답자가 '해봤자 달라질 것이 없을 것 같아서' 법적 대응을 포기했다. 나머지 20명(10.9퍼센트)은 '2차 피해가 두려워서', 14명(7.7퍼센트)은 '방법을 몰라서' 못했다. 응답자 중 배우 4명은 '법적 대응을 한 적이 있으나 오히려 피해를 입었다.' '법적 대응으로 피해 구제를 받았다'는 응답은 2명(1.1퍼센트)에 불과했다.

▲ 스스로 생을 마감한 장자연 씨 뿐만이 아니다. 한국방송영화공연예술인노동조합의 조사 결과, 많은 여성 연예인들이 성 접대 등, 부당한 인권 침해를 당해왔다고 증언했다. ⓒ뉴시스
상황이 이렇다보니, 우울증에 걸리는 연예인의 수는 해마다 늘어간다. 지난 3년간 자살했던 배우 이은주·정다빈·최진실 씨 등도 모두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설문 조사 결과, 응답자 가운데 33.3퍼센트(61명)가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평균적으로 일반인의 15퍼센트가 우울 장애를 겪는 것에 비해 2배 이상 높은 수치다.

23.5퍼센트(43명)는 불면증, 12퍼센트(22명)는 대인기피증을 앓고 있다고 응답했다. 지속적인 불안감을 호소한 이들도 32.3퍼센트(59명)였다. 13명은 알코올 중독으로까지 발전한 상태였다. '자살'로만 표출되던 연예인들의 우울증 실태다.

여성 연예인의 성 상납·성 접대 등으로 대표되는 연예계의 어두운 현실은 2006년 문화관광부가 펴낸 <방송·연예 종사자 실태 조사 및 개선 방안 연구>에서도 드러난다. 이 연구 자료를 보면, 여성 연예인의 성 상납이 관행적으로 이뤄진다는 사실을 나타낸 대목이 여러 차례 드러난다. 또한 이 자료는 "연예계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인물들과의 성 관계가 수치스러운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인식이 (일부 여자 연예인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고까지 밝히고 있다.

연장선상에서 가수 아이비도 올 초 자신의 홈페이지에 "만나만 줘도 3억 원을 주겠다는 제안을 받았지만 거절했다"며 "실질적으로 연예계에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밝혀 논란이 됐다. 소문으로만 무성하게 떠돌던 '스폰서'의 실체를 연예인이 공개적으로 거론한 일이었다. 파문이 커지자 아이비는 글을 삭제했다. 연예계 비리를 둘러싼 '침묵의 카르텔'에서 발화의 대가는 큰 법이다.

착취와 동조 그리고 침묵…장자연을 둘러싼 '세 가지 카르텔'

연예인을 '인간'이 아닌 '상품'으로 대하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구조, 젊은 여성과의 교제를 '성공의 척도'이며 자기 과시로 여기는 사회 지도층의 왜곡된 인식, 그리고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된 연예계 '노예 계약'의 문제. 장자연 사건은 이 모든 것들이 중첩된 상황에서 발생한, 우리 사회에 던지는 경고 메시지였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전통예술원)는 이 사건을 놓고 "힘없는 연예인을 둘러싸고 한국 사회가 어떤 권력 게임을 벌이고 있는지 보여준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이 교수는 "성 상납은 얼핏 성공을 위해 모든 것을 불사하는 연예인의 개인적인 문제로 보이지만, 그 실체를 뜯어보면 캐스팅을 통해 연예 활동을 좌지우지하는 방송사 인사들과 이들과 긴밀하게 관계 맺는 정치 권력, 이들에게 연예인을 '공급'함으로써 이윤을 얻는 기획사가 맺은 카르텔이 드러난다"고 꼬집었다.

이나영 중앙대 교수(사회학과)는 지난 5월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장자연 씨를 죽음으로 내몬 배경에는 연예계의 성 착취 관행에 대한 '침묵의 카르텔'이 존재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장자연 씨 사건을 둘러싼 '세 가지 카르텔'로 △연예 기획사·정치권·기업 사이에서 여성을 계약·거래에 동원하며 성 착취를 놀이 문화로 포장하는 '착취의 카르텔' △사생활 폭로를 '국민의 알 권리'로 포장하며 선정적인 보도를 일삼는 언론과, 성폭력 사건을 상대편의 약점을 잡기 위한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하는 '진보 남성'들의 '동조의 카르텔' △'알 권리'라는 이름으로 여성 연예인의 사생활 노출을 요구하고 동시에 이들을 재단하는 대중의 '침묵의 카르텔'을 꼽았다.

장자연 사건으로 드러난 연예인 인권의 처참한 현실에는, 사회 권력층과 연예 기획사뿐만 아니라, 여성 연예인의 성을 소비하고 대상화하는 대중 역시 피해갈 수 없는 '침묵의 공범자'라는 주장이다.

동방신기의 '정면 돌파'와 공정위 표준 계약서…연예계 '노예 계약' 개선할까

이 같은 상황에 대한 개선 방안은 없는 걸까. 장자연 씨 사건을 계기로 연예계 '노예 계약'이 사회 문제로 대두되자, 지난 7월 공정거래위원회는 연예인의 권익을 보호하고 연예 산업의 불공정한 계약 관행을 개선하기 위한 '표준 계약서'를 제정해 발표했다.

이 표준 계약서를 보면, 우선 연기자는 최장 7년 범위 내에서 계약 기간을 설정해야 한다. 가수의 경우엔 견습 기간을 고려해 계약 기간의 제한이 없지만, 일단 7년이 지나면 직접 계약 해지를 주장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연예인이 기획사 측의 부당한 요구를 거절할 수 있도록 명문화해 사생활 보장 등의 권리를 보호하도록 했다. 이는 종전 자신의 위치를 회사에 통보하거나, 사생활 일체를 회사와 미리 상의해 지시·감독에 따르도록 하는 등, 기획사가 연예인의 사생활을 과도하게 침해할 수 있는 조항을 없앤 것이다.

이밖에도 표준 계약서에는 연예 활동에 대한 연예인 자신의 통제권 강화, 연예인의 저작권 보호, 연예인의 자유로운 경제 활동 보장 및 수익의 정기 지급, 계약상 권리 이전 시 연예인의 사전 동의 등의 조항이 포함됐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이 같은 발표는 사실 불공정한 장기 계약으로 피해를 겪어온 연예인들의 요구에도 부합하는 것이었다. 한예조가 진행한 설문 조사 결과만 봐도, 현행 전속 계약서에서 시급히 개선돼야 할 사항으로 60명이 불리한 수익금 배분 조항, 51명이 계약 파기 시 과도한 손해 배상 조항, 48명이 지나치게 긴 계약 기간 조항, 36명이 사생활 침해 조항을 꼽았다.

▲ 장자연이 죽음으로 불공정 계약을 고발했다면, 동방신기는 법을 통한 정면 돌파를 선언했다. ⓒ뉴시스

아이돌 그룹 동방신기의 세 멤버 영웅재중·믹키유천·시아준수가 소속사인 SM엔터테인먼트를 대상으로 벌이는 법정 싸움 역시 불공정 계약에 따른 문제 제기다. 동방신기는 "SM 측과 맺은 13년 전속 계약은 사실상 종신 계약인데다, 수익 배분 역시 불공정했다"며 지난 7월 전속 계약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장자연 씨가 죽음으로 불공정 계약을 고발했다면, 동방신기는 법을 통한 정면 돌파를 선언한 셈이다.

그러나 공정거래위원회가 제정한 표준 계약서는 사실상 권고 사항에 불과한데다, 이를 수용해야할 연예 기획사 사이에서 이견 차가 존재해 실효성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당장 연예 기획사들의 연합체라 할 수 있는 한국연예제작자협회는 표준 계약서가 발표되자 마자, 이를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표준 계약서가 '당사자 간의 자유 계약 원칙을 위배'한데다가, '신인 연예인의 데뷔 준비 기간 등, 초기 투자 비용을 고려하지 않아 현실성이 없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이동연 교수는 "연예 산업이 리스크가 큰 사업이라는 점은 분명하지만, 투자나 경제 논리로만 연예 사업을 꾸려나간다면 결국 장자연 씨 사건은 반복될 것"이라며 "연예계에 만연한 경제 논리가 결국 문화 사업 전반을 소수가 성공하고 나머지는 외면되는 약육강식의 논리로 만들어버리지 않았나. 상호주의적인 관점으로 계약을 맺어야 기획사도, 연예인도 공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누가 '침묵의 카르텔'을 깰 것인가

고 장자연 씨를 둘러싼 사태부터, 동방신기의 소송까지. 연예계의 '노예 계약' 문제로 다사다난했던 한 해였다. 그러나 4개월을 끌며 수사에 지지부진함을 보였던 경찰은 결국 세간에 이름을 오르내렸던 PD와 언론사 사주, IT업체 사장 등 12명을 전원 무혐의 처리한 채, 소속사 전 대표와 전 매니저만을 불구속 기소하며 사건을 종결지었다. 사건의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사라진 셈이다.

▲ 장자연 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지만, 그가 죽음으로 고발한 '침묵의 카르텔'을 깨는 일은 남은 자들의 몫이다. 사진은 지난 11월 여성단체 '침묵을 깨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장자연 씨의 넋을 기리기 위해 조최한 씻김굿 행사. ⓒ프레시안 (사진=최형락 기자)

여성 연예인의 죽음이라는 '비극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비극의 반복'이다. 해마다 여성 연예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상황, 이 속에서 장자연 씨의 죽음은 그 개인의 불행을 넘어, 여성 연예인의 '보통 명사'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연예계를 둘러싼 '침묵의 카르텔', 그 견고함을 깰 수 있는 것은 피해 연예인뿐만 아니라, 그들을 소비하고 동시에 지탄하며 그 카르텔에 공조했던 사회 전체라는 것. '나약하고 힘없던', 그래서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었던 한 여배우가 세상에 남긴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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