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사라지면 '스냅사진'만 남는다
[휴먼 라이츠 브리핑] ① '기억상실'에 빠진 인권 논의를 벗어나려면...
'역사'가 사라지면 '스냅사진'만 남는다

한국인권학회와 프레시안이 공동기획한 <휴먼 라이츠 브리핑>이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인권과 관련 있는 여러 학문의 최신 동향과 연구자들의 성찰을 독자들과 나누려 합니다. 그것을 통해 한국 사회의 인권담론이 풍부해지고, 인권현안을 깊은 차원에서 분석할 수 있는 시각이 늘어나기를 기대합니다. (편집자주)


오래 전의 일이다. 어떤 사안을 놓고 여러 집단이 격렬하게 충돌한 사회문제가 발생해서 그것의 해결방안을 찾아 본 적이 있다. 갈등 당사자들의 주장을 비교하는 것으로 조사를 시작했다. 겉으로 드러나는 주장의 적실성만 따져 보면 그렇게까지 싸울 일이 아니었는데 왜 그리 심하게 갈등하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데 분쟁의 원인을 캐보니 뜻밖에도 갈등의 뿌리가 100년 전까지 올라간다는 것을 알게 됐다. 장기간에 걸쳐 누적된 상호불신과 공격적 피해의식이 바탕에 깔려 있어서 '합리적' 해법만으론 풀기 어려운 문제였다. 이런 배경을 모른 채 당사자들이 얘기하는 피상적인 주장만을 논리적으로 비교하여 해법을 찾으려 한다면 그런 '해법'은 겉핥기식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최근 진행되고 있는 북미관계를 보도하는 외국 언론을 잘 살펴보라. 아무리 세계적으로 유수의 매체라 해도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역사, 멀리 갈 것도 없이 20세기의 역사만이라도 제대로 짚는 경우는 드물다. 역사적 기억이 결여된 보도는 결국 스냅사진식 보도가 될 뿐이다. 그런 식으로 세계를 파악하면 현재 상황이 역사적으로 어떤 맥락에서 비롯되었는지, 왜 그렇게 협상이 어려운지, 당사자들에게 이 과정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제대로 알릴 수 없다. 


인권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사건의 역사적 배경을 대략이라도 이해하고, 인간행동의 동기와 패턴이 역사 속에서 어떤 방향으로 작동해 왔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시급한 당면과제와 싸워야 하는 인권운동에 있어서 역사를 감안하라는 주문이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인권을 공부하고 연구할 때에는 역사적 차원을 포함시킬 필요가 있다.


인권이 침해되었을 때 가해자를 가려서 처벌하고 피해자의 권리를 회복시켜 주는 방안을 연구하면 되지 왜 역사까지 들출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지도 모르겠다. 역사가 윌리엄 맥닐은 역사가 왜 필요한가 라는 질문을 받고 역사를 모르는 사람은 마치 기억상실에 빠진 사람과 같다고 대답한 적이 있다. 기억상실이 된 사람은 경험을 통해 쌓인 지혜와 통찰이 없으므로, 자기에게 닥친 목전의 상황에 단순한 반응만 할 수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인권에 역사적 시각을 도입하면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것의 근본원인을 찾고 근본대책을 마련하는 데 있어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경찰이 시민들의 집회를 과잉진압했다고 치자. 그 경찰이 규정대로 근무했는지 그날 상부의 명령이 어땠으며 지휘계통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따져 책임소재를 밝히는 것이 보통의 해결책일 것이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보면 경찰이 직무를 집행함에 있어 서로 다른 두 가지 관점이 존재한다. 하나는 '준법 원칙'을 중심에 두고 경찰의 핵심 임무가 '법과 질서'의 수호라고 보는 입장이 있다. 이런 입장을 따르면 경찰이 아무리 규정대로 잘 근무한다 해도 어쨌든 경찰의 기본적인 존재의의는 법을 지키는 게 된다. 따라서 법을 어기는 사람을 제재하고 저지하고 격리하여 사회질서를 지키는 것이 경찰의 사명이 될 수밖에 없다. 경찰이 아무리 직무규정대로 근무하더라도 경찰의 근본 지향은 변함이 없으니 언제라도 과잉진압과 같은 사건이 발생할 소지가 있다.


이와 반면, '문제해결'을 중심으로 역사적으로 형성된 경찰 철학이 있다. 법질서를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절대적인 목적이 아니라 사회에서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활용하는 하나의 원칙이라고 본다. 이때 경찰의 재량권이 커지며, 대민업무의 초점은 법의 수호라기보다 사회가 잘 돌아가도록 관리하는데 있다. 예를 들어, 집회 현장에서 시민들이 법을 얼마나 정확히 준수했는가를 따지기보다 (물론 그 점도 따지긴 하지만), 융통성을 발휘하여 집회가 평화롭고 상식적인 선에서 큰 갈등없이 잘 마무리되도록 하는 것을 더 중시한다.


한국은 법질서 수호의 경찰 패러다임이 강한 나라가 아닌가 한다. 어느 나라에서나 집회와 시위에 있어 인권문제가 발생할 소지는 있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서로 다르게 형성된 경찰 활동의 패러다임을 알지 못한 채 현장에서의 갈등 상황만 놓고 잘잘못을 따지게 되면 인권을 협소하게 이해하게 되어 비슷한 문제가 되풀이될 수 있다. 그 나라 특유의 치안유지 활동(policing)의 원칙이 근거하고 있는 감시와 처벌에 대한 인식과 문화를 바꿀 수 있는 방안, 그리고 경찰의 양성과정에 처음부터 개입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더 근본적인 인권운동이 될 것이다.


역사적 배경을 염두에 두고 인권을 연구하면 인권의 가해책임이 있는 측이 얼마나 인권침해의 근본원인을 왜곡하기 쉬운지 간파할 수 있다. 2015년 파리의 콘서트장에서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에 의한 테러가 발생하여 130명의 시민이 살해된 사건이 발생했을 때다. 


사건의 직접원인은 테러범들의 공격이었지만 그것의 근본원인은 훨씬 복잡했다. 여러 설명이 가능하겠지만, 서구의 대중동 정책의 역사적 유산과 중동에 군사적으로 개입했던 잘못된 선택이 서구권에서 거주하는 무슬림 후손들을 급진화시켜 잠재적인 테러범을 양산했던 사실을 빼놓으면 안 될 것이다. 


그 사건 당시 BBC방송은 무려 13시간 동안 생방송을 통해 현장속보와 전문가 분석 등을 내 보냈다. 그런데 방송내용을 모니터한 연구에 따르면 대중동 정책의 역사적 유산과 개입정책의 후유증을 거론한 내용이 13시간 중 고작 63초에 불과했다고 한다. 과거 제국주의 지배의 당사자였던 서구가 자신의 '원죄'에 해당하는 근본원인에 대해 얼마나 관심이 없는지—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잘 드러난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사실을 덮어 둔 채 테러 방지책만 궁리한다면 그것은 정직하지도, 효과적이지도 않은 미봉책에 불과하다.


역사를 아는 것은 인권 교육에서도 중요하다. 옛날 사람들이 자기 시대의 모순과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해 투쟁했던 사실을 배우면 자유를 원하는 인간의 보편적 조건과 인간의 의지를 너무나 생생하게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지금의 눈으로 보면 정말 말도 안 되는 문제를 바꾸는데 그렇게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오늘 우리가 당연시하는 이 정도의 현실이라도 그 뒤에는 엄청난 희생이 깔려 있다는 숙연한 실감을 할 수 있다. 그래서 인권에서 역사를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현실이 지금 당장 변하지 않더라도 결코 실망하지 않는 긴 안목, 오늘 내가 부르짖는 자유와 권리가 나 자신만이 아니라 미래세대를 위한 것일 수도 있다는 의도하지 않은 사실을 상기시켜 주기 때문이다.


(필자인 조효제 교수는 한국인권학회장입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hyojecho7@gmail.com 다른 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