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교육과 인권교육, 그리고 새로운 인간
[휴먼 라이츠 브리핑] ③ 범국민적 과거사 교육을 제안한다
5·18교육과 인권교육, 그리고 새로운 인간

올해 광주의 5월은 역사의 진보를 부인하는 극우세력의 도발로부터 시작하는 것 같다. 필자는 광주에서 자랐고 대부분의 학교를 마쳤다. 대학 시절, 전두환 일당의 5·18 학살 만행을 규탄하는 붉은 페인트의 벽서를 고려대 성북동 캠퍼스에 썼던 일로 지명수배, 제적된 적이 있고, 5·18기념재단 기획위원장으로 참여했던 경험도 있다. 지금은 대학에서 5·18을 강의한다. 평생 5·18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최근 5·18기념재단은 <너와 나의 5·18>(오월의봄, 2019)을 발행했다. 필자는 책임연구원으로 집필에 참여했다. 이런 경험을 토대로 5·18 대학교재 집필 과정 그리고 5·18 교육과 인권교육의 관계를 피력하겠다.


5·18 대학교재 집필 동기와 과정

▲ <너와 나의 5·18>, 김정인. 김정한. 은우근. 정문영. 한순미 지음, 5.18기념재단 기획, 오월의 봄 펴냄. ⓒ 오월의 봄.

광주대, 전남대, 조선대에서는 약 10여 년 전부터 5·18을 강의하고 있다. <5·18 그리고 역사>(최영태 외 지음, 길, 2008)가 있지만, 거의 10년이 지나면서 새로운 교재가 필요하다는 공감이 형성되었다. 5·18기념재단의 지원으로 2015년 5·18 대학교육을 위한 새 교재와 방법론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2016년부터 2년 동안 연구를 진행하고 최종보고서를 제출한 이후에도 실제 수업에 활용한 후 학생과 교수들의 피드백을 수정에 반영하는 과정을 거쳤다. 도합 4년이었다.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광주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펴냄, 창비, 2017) 개정판의 발간을 보면서 우리는 기록으로서의 역사 보다 해석과 실천에 중점을 두는 구성을 결정했다. 또 5·18을 관통하는 핵심 주제가 '국가와 인간'이라는 것을 함께 인식했다. 


필자는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책 서문의 제목을 '5·18, 우리 역사의 위대한 질문'으로 달았다. 5월민중은 군사반란세력이 연출한 고립된 '폭력극장'(최정운 교수)의 한 복판에서 총을 든 채 다음 질문을 던졌던 것이다. 분단 한반도에서 민중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국가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이는 세월호 이후 촛불민중이 던진 '이게 나라냐?'라는 질문과 비슷하다. 제주 4.3항쟁과 여순민중항쟁에서 던져진 질문도 마찬가지 아닐까? 그런데 왜 한반도 민중은 수 십 년 째 동일한 질문을 고통스럽게 던져야만 하는가? 그것은 비인간화된 냉전 구조로부터 해방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5·18교육과 인권교육, 그리고 새로운 인간

왜 우리는 과거사를 가르쳐야 하는가? 그것은 인권교육과 어떤 관련을 지닐까? 답은 자명하다. 인권과 민주주의가 어떤 전통과 노력에 뿌리 내리고 있으며 그 조건과 한계는 무엇이고 어떻게 나아가야 할 것인가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인권 교육은 세계인권선언이나 헌법에 대한 지식을 통해서 뿐 아니라, 구체적인 역사적 조건과 상황 속에서의 실천을 학습함으로써 효과적으로 이뤄진다.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 인간다운 인간의 모습이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서다. "이제야말로 우리는 결단의 때를 맞이하였습니다. 비굴해져서 짐승같이 천한 생명을 유지할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인간다운 민주시민으로서 살기 위하여 생명을 걸고 싸워야 할 것인지" (1980년 5월 23일 김성용 신부 강론) 5·18은 군사반란세력에 의해 개, 돼지 보다 못한 취급을 받았던 민중이 죽음을 무릅쓴 저항을 통해 스스로를 인간으로 인정하게 되는 감동적인 드라마다.


아도르노는 '아우슈비츠 이후의 교육'(1966)에서 저항권 교육을 강조했다. 부당한 권위를 맹목적으로 받아들이고 생각 없이 추종하는 순응적인 인간이 나치의 지배를 용인했다고 한다. 그는 자율적 존재로서의 모습을 상실한 물질과 같은 사람이다. 민주주의는 성숙한 인간을 요구하며 '성숙함'은 저항하는 교육이 가능한 곳에서 이루어진다고 한다. 이도 아브람은 야만의 본질을 공감 능력의 결핍으로 규정한다. 


인간의 성숙함은 타자의 고통에 대한 공감에서 비롯하며, 야만의 지배에 저항하는 인권 주체는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인간이다. 필자는 5·18은 민중의 공감능력이 가장 극대화된 사건이라고 여긴다(부끄러움과 질문하는 역사의식, 2012). 5·18은 분단체제의 관리자로서 폭력화된 국가를 장악한 야만적 군사반란세력과 맨주먹 민중의 대결이었다. 공감능력이 극대화된 민중은 한 때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고 '생명공동체'를 이룩했지만, 완전히 두려움을 떨칠 수는 없었다. 일부 사람들은 죽음을 무릅쓴 저항을 포기하지 않았다. 5월민중은 죽어간 자들에 대한 부끄러움과 죄책감 속에서 성숙하여 다시 하나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인간형이 출현했다. 역사의식으로 각성한 인간이 집단적으로 등장한 것이다. 국가폭력의 야만에 맞서 싸우는 가운데 도덕적으로 성숙한 인간이 출현했으며 그 인간의 도덕적 힘이 5·18 이후의 민주화를 이끌었다. 인간이 다른 인간의 슬픔, 고통, 절망을 깊게, 함께 느낄 때 역사는 전진한다. 타자의 고통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인간, 그 고통을 끝까지 끌어안으려는 인간의 실천이 역사를 변화시킬 수 있다. 5월민중의 위대한 항쟁은 그것을 증명했다. 비참한 패배를 겪으면서도 역사가 전진하는 것은 바로 그 패배 속에서 인간의 성숙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역사의 변화와 인간의 변화는 상호 규정한다. 민중은 패배 속에서도 저항의 과정에서 새롭게 태어난다. 각성한 민중은 옛사람이 아니다. 성숙한 민중은 인간해방을 위한 새로운 싸움을 준비한다. 따라서 이러한 역사 속에서 능동적인 존재는 언제나 저항하는 민중이다. 각성된 새로운 인간형이 역사 발전의 주체인 것이다.


공감능력은 공감적 이해능력이다. 그것은 자신과 타자에 대한 반성능력, 즉 도덕적 능력의 가장 중요한 기초이다. 공감을 배양하지 못하는 교육은 야만을 잉태하며 괴물을 만들어낸다. 세월호 유족 앞에서 폭식 투쟁을 하며 5·18희생자를 홍어로 조롱하는 행위는 야만의 절정을 보여주었다. 그 뿐이랴. 우리는 과거 정부 권력기관과 정치권에 또아리를 틀었던 괴물들의 모습을 목도하고 있지 않는가?

5·18교육은 인권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내면화시키고 부당한 권위에 쉬이 복종하지 않는 성숙한 인간을 함양하는 교육이어야 한다. 필자는 범국민적으로 과거사 교육을 포함한 인권교육 및 민주시민교육 운동을 펼칠 것을 제안한다. 이 운동이 역사의식이 결여된 야만적 인간을 대량생산하는 죽은 교육을 되살릴 방도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국회에게 과거사 교육과 연관된 민주시민교육, 인권교육의 법제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교육감과 자치단체장들이 시민사회와 협력해야 한다. 이를 통해 인권의 주체인 성숙한 인간, 새로운 시민이 탄생할 수 있다. 그가 정의와 평화가 강물처럼 굽이치고 민주주의가 실현될 한반도의 주인공이다.


한국인권학회와 프레시안이 공동기획한 <휴먼 라이츠 브리핑>이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인권과 관련 있는 여러 학문의 최신 동향과 연구자들의 성찰을 독자들과 나누려 합니다. 그것을 통해 한국 사회의 인권담론이 풍부해지고, 인권현안을 깊은 차원에서 분석할 수 있는 시각이 늘어나기를 기대합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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