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베네수엘라는 내전을 치른 것도 아닌데, 경제 몰락으로 웬만한 내전을 치른 나라보다 더 비참하게 파탄난 국가로 묘사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올해 베네수엘라의 물가상승률이 1000만%까지 오를 것으로 전망할 정도로 베네수엘라는 살인적인 초인플레이션에 시달리고 있다. '커피값만 1년 새 3500배 오르는 나라'로 불린다. IMF에 따르면 베네수엘라의 국내총생산(GDP)은 마두로가 집권한 2013년 2344억 달러에서 지난해 985억 달러로 60% 가까이 감소했다. 올해에는 765억 달러로 취임 연도 대비 3분의 1 토막이 날 전망이다.
외국으로 탈출한 사람도 2014년부터 300만 명을 넘는 전체 인구의 10%에 달해 '국민 엑소더스' 상태다. 미국의 <블룸버그>는인플레이션과 실업률 등을 토대로 산출하는 '비참 지수(Misery Index)'에서 "베네수엘라가 5년째 1위'라고 보도했다.
마두로의 두 번째 6년 임기가 시작된 지 불과 13일 뒤인 지난 1월 23일, 수도 카라카스에서 열린 반정부 집회에서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은 자신을 과도정부의 '임시 대통령'이라고 선언하고 나섰다. 미국은 마두로 대신, 과이도를 베네수엘라의 대통령으로 인정하는 등 노골적으로 정권 교체를 추진하고 있다. 미국뿐 아니라 유럽연합(EU) 주요국, 브라질과 콜롬비아 등 중남미 우파 정부 등 50여 개국이 과이도 의장을 임시 대통령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도 마두로 정권은 버티고 있다. 현지 전문가들은 마두로 정권이 무너지지 않는 배경으로 비제도권 서민층을 중심으로 한 대중과 군부의 강력한 지지를 꼽고 있다. 왜 베네수엘라의 서민층과 군부는 경제를 파탄낸 마두로 정권을 지지하는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 심지어 정반대의 시각도 존재한다.
우선, 베네수엘라의 서민층과 군부가 마두로를 지지하는 이유를 냉소적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석유를 팔아 서민층에게 퍼주기를 한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의 '사회주의를 가장한 마약식 포퓰리즘'에 중독된 것이라고 표현한다. 군부가 마두로 정권을 지지하는 이유도 차베스 정권의 유산으로 본다. 차베스 시절처럼 군부의 지지를 얻기 위해 경제 전분야의 산업을 군부가 장악하도록 특권을 주고 있으며, 군부는 포퓰리즘으로 가격이 통제돼 정상적으로 기능을 못하는 시장 메커니즘을 자본주의적으로 역이용해 막대한 수익을 거두고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베네수엘라의 사회주의는 '위장된 자본주의'이며, 그 대가를 지금 베네수엘라의 서민들이 값비싸게 치르고 있다는 시각이다.
이런 분석과 다른 시각이 있다. 베네수엘라의 위기는 반미 독자 노선을 걷는 차베스주의와 갈등을 빚은 외세가 자본주의를 등에 업고 개입한 탓이라는 시각이다. 식민 지배를 벗어난 이후 베네수엘라에는 외세 개입에 대한 강한 저항의 연대가 있으며, 베네수엘라의 미래는 베네수엘라 민중의 의지에 달렸다는 시각이다.
안태환 한국외국어대학교 스페인어과 강사의 분석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는 "현재 많은 나라들(칠레, 페루, 콜롬비아, 스페인, 캐나다 등)이 베네수엘라의 외부 군사개입에 반대하고 있다"며 차베스주의가 표방하는 '21세기 사회주의'는 제도권 노동자 계급을 뛰어넘어 비제도권 서민을 위한 이념으로서, 이를 체험한 베네수엘라의 대중이 외세의 개입을 배척하고 베네수엘라의 미래를 정할 동력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편집자

'21세기 사회주의' 가 가져온 베네수엘라 대중 의식의 변화
식품과 의약품을 중심으로 한 베네수엘라의 경제 위기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도 왜 아직도 베네수엘라 대중은 마두로 정부를 지지하는가. 물론 상당수 대중이 무조건 마두로를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정부가 특히 경제정책에서 무능하며, 산업 전반의 생산력이 낮고 정책의 효율성도 낮고 부정부패도 심하다고 이들은 생각한다.
우선 지적해야 할 것은 현재 베네수엘라의 국면에 대한 국내 언론 보도는 현실을 정확히 전하지 않고 있다. 유럽과 미국의 주류 미디어를 추종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 4월 30일 과이도의 군사반란 시도의 실패다. 라틴아메리카의 좌파 매체들은 아예 "쿠데타 시도의 실패"라고도 하지 않는다. 반란 시도에 참여한 군부의 숫자가 너무 미미하기 때문이다. 반란 시도 참여혐의로 의회 부의장이 체포되었고 약 55명의 장교가 추방되었다.
미국의 경제 제재는 2017년 8월부터 시작되었다. 당시는 금융부문의 제재였다. 2019년 1월부터 무역 금수의 제재가 시작되었다. 대상은 물론 원유다. 그야말로 베네수엘라의 목줄을 조이는 것이다. 베네수엘라 수출액의 98%는 원유다. 외교적 압박은 미주기구(OAS)에서는 성공했다. 미주기구가 과이도 정부를 합법정부로 인정하자 베네수엘라는 미주기구에서 탈퇴했다. 그러나 러시아와 중국의 비토로 유엔에서는 거부되었다. 현재 약 50여개 국가가 과이도를 대통령으로 인정하고 있지만 세계의 약 75% 국가들은 마두로를 지지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2019년 초반 본격화된 미국의 지나친 개입과 과이도의 출현이 경제정책 실패에 대한 베네수엘라 대중의 항의를 제대로 현재화되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의약품, 식품 공급의 부족과 같은 일상생활의 어려움에 대해 대중은 강력하게 비판, 항의하고 있음에도 미국의 개입 전략은 그 전략 자체가 실패하고 있는 것 같다. 라틴아메리카 대부분의 대중이 그렇지만, 특히 베네수엘라 대중은 외세에 의한 간섭과 통제에 극히 반발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 대해 미국의 라틴아메리카 전문 학자들은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의 네오콘적 강경파 전략가들에 의해 현재의 개입이 진행되고 있다.
카라카스 출신의 지도자이자 장군인 시몬 볼리바르와 함께 1810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한 베네수엘라 민중들의 역사적, 집단적 기억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특히 차베스와 마두로 정부의 약 20년 집권 기간 동안 볼리바르의 외세 간섭 반대 정서는 대중 속에 깊이 뿌리내렸다.
그러므로 라틴아메리카의 정치와 사회를 이해하기 위한 핵심어는 반외세 민족주의적 감정과 대중의 주체성이다. 물론 우리의 역사적 맥락과 달라 민족주의의 의미가 매우 다르다. 포퓰리즘과 민주주의의 상관관계가 우리나라나 유럽과 달리 라틴아메리카에서는 매우 독특하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일반적 인식과 달리 베네수엘라는 매우 자본주의적 ‘시장’과 ‘사회’를 가지고 있다. 차베스 혁명 이후 '국가'가 이데올로기 수준에서, 그리고 실천적 수준에서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국가와 가난한 대중에 의해 어느 정도 변혁에는 성공했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시장과 사회는 자본주의에 포섭되어 있다.
특히 차베스 혁명은 노동자 계급을 위한 혁명이 아니었다. 노조에 가입된 정규 노동자들보다 더 하위에 있는 행상 등 비공식 노동자들과 가난한 대중의 "인간다운 삶의 발전"을 최우선에 두는 것이 소위 "21세기 사회주의"의 핵심 가치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베네수엘라의 체제는 전통적 의미의 사회주의가 아니다. 사회적 적대 전선도 '부르주아 대 프롤레타리아'가 아니다. '소수 엘리트 대 다수 대중'이 대치한 전선이다. 가난한 대중은 차베스 집권 시대에 극심한 가난에서 벗어났고 자녀들도 대학도 갈 수 있어 '행복했다'고 생각한다.
구체적으로 차베스는 가난한 학생들에게 교복, 구두, 음식, 컴퓨터(태블릿 PC)까지 주었다.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차베스가 대중의 정체성 형성의 한 가운데에 있었다는 점이다. 소위 "가난한 사람들의 감성적 코드를 해석하고 그들의 문화와 영성까지 함께 하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냥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대중이 모여 사는 동네에 '깊이' 들어가서 그들의 존엄성(DIGNITY)에 공감한 것이다. 따라서 제도권에 의해 '배제'되어왔던 대중은 현재 마두로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을 지키려는 것이다.
차베스는 기존의 자유주의적 정치가와 달랐다. 특히 대중에게 시몬 볼리바르의 생생한 혁명정신을 가르쳤다. 볼리바르는 카라카스에서 태어난 그들의 영웅이다. 이런 대중과 함께하는 '차비스모(차비즘. 차베스주의의 스페인어 표기)'의 힘을 야당은 이해할 능력이 없다. 이들은 대중을 중시하는 차비스모가 권력, 정부, 국가의 경계 자체를 넘어섰다는 점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야당만이 아니라 외부의 좌파 지식인들도 쉽게 이해하기가 힘들다. 현재의 베네수엘라 대중(lo popular)은 지식인들 머리 속에 있는 '노동자 계급'이 아니기 때문이다.
차비스모의 힘이 차베스 개인에게서 나왔다고 볼 수는 없다. 식민지 시대인 17세기 이래, 넓은 의미의 라틴아메리카 대중의 잠재적 역능에서 나온 것이다. 개인적 파편화에 머물지 않는 집단적(사회적) 조직화의 능력이다. 가난한 동네에 촘촘히 네트워크가 작동하는 것이다.
현재 베네수엘라 야당 지지자들 중에는 지식인 등 엘리트들이 많다. 그런데 야당 지지자들조차 다수 대중과 함께 외세 개입에는 격렬하게 반대한다.
만약 향후 베네수엘라의 위기가 잦아들고 마두로 정부가 조정과 변화를 통해 정책 실패를 교정하고 경제를 안정시킨다면, 차베스 혁명의 장기적 성공 또는 실패의 열쇠는 국가가 아니라 '사회'가 얼마나 새로운 사회주의의 방향으로 변화될 것인가에 달려있다. 매우 중요한 지점이다. 이런 맥락에서 차베스가 출현하기 전인 1980년대부터 베네수엘라 사회에서 자발적, 집단적인 공동체주의 실험(코무나스(COMUNAS)로 부름)이 있었음을 인식해야 한다.
가난한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그러나 불법적으로 모여 살던 동네 공동체를 공권력으로 철거하기보다 정부가 "집단적 주거권"을 법률적 권리로 인정한 것을 대표적인 코무나스의 사례로 들 수 있다. 현재의 긴박한 정치 상황 속에서 상당수 코무나스들이 차베스 혁명을 지키기 위한 저항의 보루로 자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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