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테크 노동자들의 6년 싸움
[오래도록 싸우는 사람들] 더 낮은 노동으로 밀려가지 않기 위한 전쟁
2019.06.07 16:41:54
레이테크 노동자들의 6년 싸움

"우리 오빠도 사업을 하는데, 내가 이걸(노조) 한다고 하니까 이런 소리를 하는 거예요. 노조 만들어지면 자기라도 회사 문 닫는다고. 자기가 하는 것들이 제재 받고 간섭 받고. 머리 아파서 안 한다는 거야."

'오빠 사장님'의 말을 전해준 이는 현재 실직 상태다. 다니던 회사가 노조 생기고 3개월 만에 문을 닫았다. 사장은 조회 때면 직원들을 불러다 놓고 "노조 만들면 가만 안 두겠다"고 했다. 노조가 생겼고 진짜 그 말대로 했다. 그렇지만 이 회사가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은 아니다.

노동조합 싫어하는 사장님들이야 많다. 취재를 하다보면, 생기지도 않은 노조를 두고 협박을 일삼는 중소업체 사장님을 종종 본다. 내 쪽에서 '그거 부당노동행위인데'라고 중얼거려 봤자다. 6년 간 노동조합과 전투를 벌인 사장님도 있다.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 레이테크코리 노동자들의 선전전. ⓒ희정


고용창출 우수기업, 해고시켜 달라는 직원들

'레이테크 코리아'는 문구용품을 만드는 제조업체다. 문구 생산에서 포장, 유통까지 모두 담당하는 기업으로 잘 나갈 때는 포장부에만 60명 넘게 근무했다. 이곳에도 노조가 생겼다. 포장부 직원들이 노조를 만든 것은 해고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 여기서 일하는 거 원치 않으면, 다른 회사 찾아보며 실업수당이라도 받을 수 있게 잘라달라고 했는데 회사가 안 된다고 했어요. 싫으면 그냥 나가라고."

왜 그렇게 '잘리고' 싶었던 걸까.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자. 어느 날 회사가 근로계약서를 다시 쓰라고 했다. 당시 포장부 팀장이던 이필자 분회장의 기억을 빌린다.

"우리가 최저임금이지만 그래도 기한 정함 없음(정규직)으로 일했는데, 갑자기 근로계약서를 다시 쓰라고 하는 거예요. 노동 상식이 아무리 없어도 근로계약서는 입사할 때 한 번만 작성하는 걸로 아는데 왜 쓰라 할까. 봤더니, 계약직이라고. 그것도 조그맣게 연필로 계약직이라고 써 놓은 것을 봤어요. 이건 뭐지? 우리 계약직이에요? 물었어요."

그랬더니 계약서를 회수해갔다. 다른 계약서가 왔다. 이번에는 근로시간이 다르게 적혀 있었다. 하루 5시간 근무. 알바와 다를 바가 없었다. "아, 우리를 내쫓으려 하는구나 직감했죠." 내쫓으려 하기에 해고시켜 달라고 했다. 그러나 회사는 거부했다. 잘리지 못한 포장부 직원들은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노동조합만 아니라면, 2013년은 레이테크 코리아(이하 레이테크)에게 경사스러운 해였다. 1월'고용창출 우수기업'에 선정된 것이다. 일자리 부족 시대에 고용창출이라는 사회적 책무에 앞장선 기업에게 홍보와 재정 지원은 물론 근로감독과 세무조사까지 유예시켜주는 제도다. 참으로 편리한 혜택을 받았다. 그러니 해고란 있을 수 없다. 알아서 나가길 바랄 뿐이다.

"'그때까지 회사는 ‘당신 그만두세요' 라고 이야기한 적이 없어요. 자르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한테 다른 부서에서 일하라 그래요. 공장가서 일해라, 어디 가서 일해라. 사람이 뺑뺑이를 돌다보면 그만 두게 되잖아요. 그런 식으로 사람을 잘랐어요."

'해고'가 없다. '알아서 나간' 사람만 있을 뿐이다. 그 자리에 새 사람을 뽑으면 '고용 창출'이다.

노조하고 똑똑해진 사람들

그러나 사람 일은 늘 변수가 존재한다. 나가라 했더니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당시 사장은 "내가 아줌마들을 만만하게 봤다"며 아들에게 회사를 맡기고 물러났다. 골치 아프다는 게다. 노조가 없던 시절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예전에는 정신없이 일하고 있으면 (관리자가) 무슨 서류 들고 와서 여기 여기 싸인해라."

그 서류가 취업규칙일 수도, 임금명세서일 수도 있었다. 노조가 생긴 후 그런 일은 가능하지 않다. 아무것도 모르던 때와 다르다.

"연차(휴가)라는 게 있는지도 모르고 일했어요."

2011년에 입사했다는 정해선 씨의 이야기다. 있는 줄도 몰랐다는 연차는 공휴일로 대체됐다. 빨간 날을 연차휴일로 대체할 경우 근로자 대표가 서면합의를 해야 한다지만, 근로자 대표가 누구인지 아는 노동자가 몇이나 될까. "안다고 해도 콩이니 팥이니 따지는 사람"이 있을 리 없다. 뺑뺑이 돌다가 자발적으로 나가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당시 해선 씨는 유치원생 자녀가 있었다. 육아와 직장을 병행하며 연차를 한 번도 안 썼다니. 놀랍다는 말에 쑥스러운 듯 웃는다. 노조 생기고 몇 년 후에 육아휴직을 썼다고 한다. 한 달을 쉬었다. 연차도 모르던 사람이 변했다.

"노조 하고 나서 똑똑해진 것 같아요."

사실 노조 만들고 호된 경험을 한 이들이다. 레이테크 코리아라는 회사명을 검색하면 '여성 탈의실 CCTV, 성희롱, 막말' 같은 험악한 단어들이 나온다. 매일같이 오가는 고성은 덤이다. 사연을 전해 듣는 나조차 위축될 것만 같은데 오히려 똑똑해졌다고 한다.

"확실히 우리 권리를 이야기하게 됐죠. 지금도 부당한 건 확실히 부당하다고 말해요."

글 초입에서 '오빠 사장님'이 머리 아픈 간섭과 제재라고 한 것. 바로 그 노동의 권리를 알아버렸다.

▲ 레이테크코리아 안산공장을 찾아가 항의선전물을 부착하는 노동자들. ⓒ희정


이름을 불러준 첫 직장


아버지에서 아들로 사장이 바뀌고 얼마 되지 않아, 회사는 안성으로 공장을 이전하겠다고 발표했다. 부지의 저렴함 등이 이유라고 했지만 여성 노동자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하나였다. 이들은 대부분 집 가까운 직장을 찾아 왔다. '집안일'에서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 집이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많은 것을 감내했다. 최저임금, 반말, 노동강도 같은 것들 말이다. 안성은 서울에서 차로 한 시간 반 걸리는 곳이다. 나가라는 말과 다를 바 없었다.

"애기 어린데 안성까지 거의 1년을 출퇴근 했거든요. 애기가 엄마 오늘 하루만 안 가면 안 돼? 감기 기운 있어가지고. 그래도 대충 다독거려놓고. 열 떨어지면 애 맡겨놓고. 그 시간에는 통근버스는 벌써 갔으니까. 혼자 고속버스 타고 가고. 큰 길까지만 버스가 서요. 거기서부터 공장까지 걸어가야 해요."

사람들 제보에 따르면 정해선 씨는 울면서 출근했다. 그런데도 왜 그만두질 않았나.

"이 일자리 없어지면… 정말 절박했어요."

어린 아이를 맡기고 다니는 직장이다. 그만큼의 사정이 있다. 그러나 생계가 이유의 전부는 아니었다.

"저는 결혼하고 여기가 첫 직장이에요. 일할 때 팀장님들이 이름을 부르잖아요. 누구누구 씨라고 부르는데, 가끔 이름만 부를 때가 있어요. 해선아, 하고. 저는 그렇게 불러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그게 너무 좋았어요."

이름으로 불렸다. '나'라는 사람을 되찾는 느낌. 그래서 열심히 일했다. 오래 근무하고 싶었다.

"하루에 2000개, 3000개. 해야 할 수량이 있었어요. 누가 수량을 맞춰라, 그런 게 아니어도 그만큼은 해줘야 한다는 생각들이 다 있었어요. 내가 책임감 갖고 좋은 제품을 만들어야지 회사에 득이 되고 그래야 나도 좋은 거라고."

지금은? 후회한다. 해고됐기 때문이 아니다.(이들은 올해 4월 해고통지를 받았다.) "당신들은 시급 1000원짜리 노동"이라는 사장의 말이 잊히질 않아서다.

천 원짜리 노동과 물 먹는 하마

천 원짜리 노동. 이 논리는 포장부서를 없앨 때도 이어졌다. 작년, 포장부에 근무하던 이들이 뜬금없이 영업부로 발령난다. 포장은 이제 밖에서 해온다고 했다. 외주화한 것이다. 역시 '나가라'는 소리였다.

여태껏 회사는 이들을 추가 비용, 아니 '손해'라고 여겼다. 마침 레이테크 임태수 사장의 입장을 담은 기사가 있어 일부 가져온다.

"내부에서 제품 하나를 포장하는 데 드는 비용이 120원인데 외부에 맡기면 25~35원 정도"라며 "그동안 무리하게 포장부 고용을 유지해오다가 최근 매출 및 일감이 줄면서 불가피하게 외주화와 전환 배치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참여와혁신, 이동희 기자, 2018.02.07.)

의문이 들었다. 아무리 외주업체라 해도 인건비가 4분의 1 차이가 나다니. 포장부 직원 대부분이 최저임금을 받았다. 임대료 등을 고려한다고 해도 어떻게 이보다 몇 배나 낮을 수 있을까.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포장 외주 일을 부업업체에 맡겼다. 인형 눈알 하나 붙이는 데 1원이라는, 그 부업 말이다. 제품 하나 포장하는 데 든다는 '25원'은 부업 노동자의 임금을 가리켰다. 아니 중간에서 업체가 떼어가는 수수료 포함 금액이다.

노동 값이 끝을 모르고 내려간다. 그러니 아무리 최저임금으로 몸을 낮춰도 비교 당한다. 바다 건너 제 3세계 노동력이 존재하고, 국내에는 부업 일 하는 영세 사업장이 존재한다. 그러니 "당신들은 시급 1000원짜리 노동을 하고 있다"라는 소리가 나온다.

조합원들은 이 말이 사장 인성에서 나왔다고 여기지만, 아니다. 나름 철저한 계산에서 나온 소리다. 25원짜리 노동력과 비교하면 최저임금 노동자는 돈 먹는 하마로 보인다. 한국사회에 낮은 값 노동이 제재 받지 않고 존재하는 까닭이다.

질 낮은 일자리를 채우는 사람들

소위 질 나쁜 일자리가 만연하다. 이를 정부가 앞장서 권장했다. 2013년 레이테크가 내민 5시간짜리 시간제 일자리 계약서는 실은 정부 정책의 결과였다. 당시 박근혜 정부는 고용률을 높인다면서 시간제 일자리를 확대했다. 고용촉진을 그런 식으로 했다. 6년이 지나고 해고된 노동자들은 묻는다. 변한 것이 없어 보여서다.

"정부에서 일자리를 늘리겠다고 하는데, 어떻게 늘릴 거냐고요. 지금 우리 같은 일자리도 관리가 안 되는데."

그간 레이테크가 외부업체 맡긴 것은 포장업무만이 아니었다. 여러 부서가 외주로 넘어갔다. 일자리는 그렇게 사라졌다. 사라지는 일자리도, 외주화로 생겨난 일자리도 주목받진 못한다. 고용률은 수치로만 드러날 뿐이다.

그러는 사이 누구도 눈 여겨 보지 않는 사각지대 일자리는 여성들로 채워졌다. '반찬값이나 벌려고 나온' 여자 노동은 권리와 거리가 먼 단어였다. 해고되어도 '해고'라는 이름을 가질 수 없었다. 여자들은 '잘렸다' 하지 않고 '쉰다'고 했다. 집에서 '논다'고 했다. 그러니 중년 여성들이 하루아침에 해고된 사건은 관심 받지 못 한다.

세상이 귀하게 여기는 몸이 아니다. '꽃 같은' 젊음도 없다. '가장'도 아니라 한다. '아무나 할 수 있다' 여기는 생산직종에 종사한다.

"물건 하나가 나가더라도 제대로 인정받고 싶은 거죠. 내가 만든 제품이 덜렁덜렁. 이런 걸 만들었어? 그런 소리는 듣고 싶지 않잖아요."

외주업체에서 한 포장은 아무래도 티가 난다고 안타까워하는, 오래 일한 여자의 말엔 누구도 귀 기울이지 않는다. 그런 목소리가 스피커를 얻을 수 있는 공간은 노동조합이었다. 그러니 노조를 포기하지 못 한다.

▲ 레이테크코리아 노동자들의 고용노동청 앞 집. ⓒ희정


더럽고도 동등한 존재

그럼에도 많이들 떠났다. 19명이 남았다. 60여 명이던 조합원은 안성 공장을 거쳐 다시 서울 작업장으로, 그리고 전환배치와 해고까지 6년을 지나오며 반 넘게 버티지 못했다. 소수가 남을수록 묻게 된다. 왜 지금까지 남아 싸우는지.

이들은 사연이 너무 많아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자신들이 당한 이야기를 시작하면 몇 시간이 훌쩍 간다. 사장은 화가 나면 조합원 얼굴을 빤히 마주하고 이렇게 말한다고 했다. "어휴, 더러워."

노조는 번거로운 존재다. 차라리 문 닫겠다는 소리 나오게 하는 존재다. 법도 제도도 기업을 제어하지 못하는 사회에서, 거의 유일하게 기업하는 일에 제동을 거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미운털 박힌다. 그런데 사람이 더럽다니. 당사자가 느낀 것은 모욕감일 테지만, 한 발 떨어져 곱씹는다. 무엇이 더러운 걸까.

자주 듣는 말이 또 있다고 했다. "감히 사장한테." 감히, 사장하고 한 테이블에 앉아 협상하는 존재가 노동조합이다. 예전에는 부탁하거나 체념했다면 이제는 협의한다. '귀하지 않은' 존재들이 동동한 위치에 앉으려 해서 '더러운 걸까'.

이들이 노조를 모른 채 눈치주면 말 못하고 알아서 나가는 직원으로 머물렀다면 '더럽지' 않았을까. 깨끗한 종업원이 될 수 없어 더럽게 싸운다. 싸움 그 자체가 의미라고 이필자 분회장은 말한다.

"굴하지 않고 싸운다는 자체만으로 정말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더러워서 피할 수도 있었지만 나는 맞서 싸우겠다. 온갖 갑질에 맞서 싸우고 있다는 것만으로 큰 의미라고 생각해요."

동시에 걱정한다. "우리가 노동조합에 가입해서 지금까지 훌륭하게 싸웠는데. 생계 때문에 이 싸움을 포기할까 봐." 올해 4월 8일자로 포장부는 전원해고 됐다.

지난 1년 동안 부당 배치전환에 항의하여 파업하고 회사의 억지 교육에 끌려 다니느라 월급을 제대로 받은 적 없다. 실업급여도 제대로 받지 못할 게 뻔했다. 당장 생계가 막막하다.

밑바닥 대의

해고된 후 노조는 지방노동위원회(지노위)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다. 영업부 발령이 부당하다는 판결은 지난해 8월에 받았다. 판결 직후 회사는 마지못해 포장부 일감을 주는가 하더니 정리해고를 통보했다. 이제 노조는 부당해고 건으로 지노위를 찾는다. 조합원들은 안다. 지노위가 부당해고라 판결내리면 회사는 항소할 것이다. 그러면 중앙노동위원회 가야하고 고법, 대법이 기다리고 있다. "콜텍이 (복직하는 데) 13년이 걸렸다면서요?"라고 묻는다. 법도 세상도 이들에게 별 도움되지 않는다.

말이 길었다. 이들은 왜 계속 싸우나. 정해선 씨는 좋은 끝맺음을 위해서라고 했다.

"좋은 끝이라는 것이 뭔가요?"

"끝나고 언니들과 어디서 봐도 반갑게 볼 수 있는 사이로 남는 거요."

그래서 먼저 포기하지 않는다. "해고됐는데 어딜 나가냐?" 가족들이 물어도 노조 사무실로 온다. 의리를 지킨다. 정이기도 하다. 그리고 덧붙인다. "밑바닥에 요만큼은, 작은 부분에는" 싸워야 하는 이유가 있다고.

"내가 여기서 주저앉으면 이 사람(임태수 사장)은 평생 이렇게 사업을 할 거잖아요. 이렇게 했더니 쟤네들 못 버티고 가버려. 이걸 보여주는 거잖아요."

다른 교훈을 남기기 위해 견딘다.

"나의 생계를 위해서 싸우지만 100퍼센트 생계만은 아니거든요. 밑바닥 요만큼은, 작은 부분에는, 내가 이걸 견디지 못하면 나 아닌 내 가족들, 내 주변 누군가가 겪을 일이라 생각하니까. 내가 여기서 조금이라도 견뎌주면 누군가에게 갈 어려움이 줄지 않을까. 그런 마음이 있는 거거든요."

노조 만든 지 햇수로 7년. 돌아보면 자신들을 만만하게 보는 모든 것과의 전쟁이었다. 일하는 여자들의 가치를 하찮게 여기는 회사, 아니 더 나아가 기업의 횡포를 내버려두는 세상에 맞서 싸웠다. '밑바닥 요만큼'이라고 소박하게 표현하지만, 그것이 대의다.

모든 것과의 전쟁에서 이들이 승리하길, 바라는 대로 좋은 끝을 맺길 바란다. 그래야 우리 사회가 새로운 교훈을 얻을 수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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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소개
기록노동자다. 저서로는 르포집 <노동자 쓰러지다>, <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