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국회의원 소환을 許하라
[최창렬 칼럼] 객체가 된 시민, 대의민주주의는 안녕한가?
나쁜 국회의원 소환을 許하라
맹자의 양혜왕 편에는 '오십보 백보'의 고사가 나온다. 전쟁에 겁을 먹고 갑옷과 창을 팽개치고 정신없이 도망가던 자가 백보 쯤 가서 멈췄다. 뒤 따라 오던 병사가 오십 보에 멈춰 서더니 백 보 도망친 자에게 겁쟁이라고 비웃었다는 얘기다. 본질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을 비유할 때 곧잘 인용되는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은 자칫 양비론으로 들릴 수 있다. 
 
국회 기능 상실 비판은 역대 모든 국회에 적용된다. 찬찬히 따져보면 어느 정당이 더 무리한 요구와 주장을 하는지 알 수 있지만 비정상적 상황이 오래가다 보면 국민 일반에게는 모두 불신의 대상일 뿐이다. 분명 잘못은 한국당의 과도한 패스트트랙 철회 요구와 철지난 색깔론·폭력과 극단의 망언들이지만, 한국정치에선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 자체가 부질없다. 민주당과 한국당은 협상 방식, 내용, 절차 등 어느 하나 접점이 없다. 기이한 정치다. 그러나 한국정치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부분이 양비론이다. 
 
양비론의 함정은 경계해야 하지만, 정치는 왜 존재하며 국회는 이대로 괜찮은가를 물을 때다. 중국식 사회주의 정치는 공산당에 의한 패권정당 체제다. 그러나 정당정치를 기본으로 하는 한국의 대의제가 중국정치보다 낫다고 할 시민이 얼마나 될까. 공동체가 지켜야 할 법과 제도, 약속들을 국회를 통하지 않고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낼 수 있다면 국회는 당장 폐지하면 된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국회만이 유일한 입법기구인 현재의 시스템을 대체할 묘안이 없다. 정치의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대의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역설이 시민의 광범한 지지를 얻으면 가능할까.  
 
시민이 합의해야 할 사항을 시민의 대표라는 대의기구에 위임했으나 민주주의가 작동되지 않는 체제, 폭력과 극단의 용어가 새로운 적폐로 등장하는 대의제를 언제까지 방관할 수는 없다. 대의제 자체를 대체할 시스템이 없다면 국회를 주권자가 통제할 수 있거나 현재의 국회를 근본부터 바꾸는 방법을 모색하면 된다. 국정을 농단하고 헌법을 유린한 집권세력을 주권자의 의지로 퇴출시켰다면 국회에도 이 모델을 적용 못할 게 없다. 
 
공정하고 주기적 선거가 대의제 민주주의의 척도인 것처럼 인식되는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이런 방식이 실질적 민주주의를 담보하지 못함은 물론 원천적으로 의사결정 능력과 의지를 상실한 국회에는 가당치 않은 원칙일 뿐이다. 
 
주권자가 자신의 권능을 행사할 수 있는 기회는 극히 제한적이다. SNS와 각종 미디어, 유튜브 등을 통한 여론 조성 등 디지털 시대의 장점을 활용할 수 있다 하더라도 결국 기본적인 정치참여 수단은 투표 행위 등으로 한정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선거를 통한 대표 교체는 4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하다. 
 
기득권을 가진 정치집단은 시민의 직접 통제가 대의제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포퓰리즘으로 변질될 수 있다고 비판할 것이다. 그러나 주민소환제에 대한 비판이 기우였듯이 이는 과도한 상상이다. 공화주의적 관점과 평등한 정치참여라는 민주주의의 대원칙과 공화주의적 관점에 비추어 볼 때 시민이 객체로 전락한 지금의 체제가 훨씬 위험한 체제다. 
 
혁명적 제도화를 통한 국회 개혁이 아니고는 상시적 교착을 겪는 국회는 바뀌지 않는다. 사회적 역량을 모아서 국회 개혁을 혁명적 담론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시민이 나서지 않고 일상적 언론과 정치권의 의제 설정만으로 정치를 바꿀 수 없다. 우선 국민소환 제도는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민주항쟁과 폭동을 분간하지 못하고, 틈만 나면 전쟁의 멍에인 이데올로기로 상대에 낙인을 찍었던 악마의 습성을 아직도 버리지 못하는 세력들이 국회의 한 축을 차지하는 지금의 국회는 분명 비정상이다. 이러한 국회 구조를 방치한 채 협상이니, 국회 정상화니 하는 몰정치는 얼마나 반민주적인가. 21세기에 '빨갱이' 발언을 서슴없이 내뱉고 이에 대해 "막말이라는 말부터 조심해야 한다"는 소위 제1야당의 대표라는 인사의 언급을 일방적으로 들어야 하는 지금의 상황은 반정치주의를 표상하고 상징할 뿐이다. 이러한 정치세력을 심판할 수 있는 선거는 아직도 1년 가까이 남았다. 
 
그 동안 또 얼마나 언어적 상상을 뛰어넘는 저급한 말들이 정치적 언어의 탈을 쓰고 시민들을 조롱할까. 적대와 증오의 언어들은 폭력 그 자체다. 이들을 선거 때 까지 시민대표로 인정하기에 선거는 너무 많이 남았다. 이는 국민소환의 당위이자, 시민이 나서야 하는 이유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ccr21@hanmail.net 다른 글 보기
▶ 필자 소개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다양한 방송 활동과 신문 칼럼을 통해 한국 정치를 날카롭게 비판해왔습니다. 한국 정치의 이론과 현실을 두루 섭렵한 검증된 시사평론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