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샌더스 "억만장자들의 정치와 싸워야 할 때"
"이 나라엔 '부자 사회주의'만 있다"…'민주적 사회주의' 전면화
2019.06.14 18:46:39
다시 샌더스 "억만장자들의 정치와 싸워야 할 때"
2020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조 바이든 전 부통령,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 등과 함께 야권 후보군 선두 그룹에 포함된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민주적 사회주의'를 전면화시키며 대선 경쟁을 본격화했다.

지난 수십 년간, 그리고 2016년 미 대선에서도 샌더스는 민주적 사회주의를 강조했다. 그 덕에 최근 미국 언론과 유권자들도 그의 주장에 과거와는 다른 수준의 관심을 보이고 있다.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등 유력 매체를 비롯해 많은 현지 언론이 샌더스의 지난 12일 조지워싱턴대학교 연설을 비중 있게 다뤘다. 샌더스의 연설은 자신이 주장하는 '민주적 사회주의'를 정의(定義)하는 내용이었다.

세계 자본주의의 본산인 미국에서 시민들이 '민주적 사회주의'에 보이는 관심은 의미가 각별하다. 지난달 20일 발표된 미국 여론조사기관 '갤럽' 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 유권자의 43%는 '사회주의는 미국에 좋은 것'이라고 답변했다. 물론 '사회주의는 미국에 나쁜 것'이라는 응답이 51%로 과반이었으나, 43%라는 숫자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체제 경쟁이 한창이던 1940년대 초반에 비해서도 18%포인트나 높은 수치였다.

사회주의권과의 냉전 대결을 승리로 끝낸 '자유 세계의 리더' 미국의 유권자들이 왜 2019년에는 샌더스의 '민주적 사회주의'라는 주장에 귀를 귀울이게 된 걸까. 샌더스의 연설 내용에 일정한 답이 있다.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 그리고 이를 부추기는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에 대한 반발이 그 요체다.

워싱턴D.C.에 위치한 조지워싱턴대 연설에서, 샌더스는 "21세기에, 세계 역사상 가장 부유한 나라에서 인권은 곧 경제적 권리라는 것(economic rights are human rights)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며 "그리고 그것이 나의 '민주적 사회주의'의 의미"라고 말했다.

그는 "생활 가능한 임금을 지급하는 괜찮은 일자리(decent job)를 가질 권리, 양질의 건강보험을 누릴 권리, 교육을 마칠 권리, 적절한 수준의 주택(affordable housing)을 가질 권리, 깨끗한 환경을 누릴 권리와 은퇴를 보장받을 권리"를 강조했다.

그는 자신의 '민주적 사회주의'가 프랭클린 D. 루스벨트 전 대통령의 뉴딜 정책을 계승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2010년대의 오늘, 우리는 미완의 뉴딜을 계승해 완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회보장연금, 실업급여, 노조 결성권, 최저임금제, 농민 보호, 월스트리트 규제, 대량의 인프라 개선 같은 '뉴딜 의제'들은 오늘날 미국 사회를 지탱하는 기둥"이라며 "그러나 루스벨트를 매도하던 당시의 과두제주의자들은 이런 대중적 (뉴딜) 프로그램을 '사회주의'라고 비난했다"고 그는 언급했다. 연설 후반부에서 그는 이렇게 역설했다.

"내가 믿는 것은 미국인들은 자유를 누릴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자유는 자주 사용되는 말이지만, 지금은 이 말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엄밀히 살펴볼 때다.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자유롭다는 것은 진정 무엇을 의미하는가?

당신이 아플 때 의사에게 갈 수 없다면, 당신은 진정 자유로운가? 당신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약을 살 돈이 없다면, 당신은 진정 자유로운가? 70세가 넘었는데도 연금이나 은퇴하기에 충분한 돈이 없어 노동을 강요받는다면, 당신은 진정 자유로운가? 당신 가족이 돈이 없어서 대학이나 직업학교에 가지 못한다면, 당신은 진정 자유로운가? 적정임금을 받지 못해 주당 60~80시간을 일해야 한다면, 당신은 진정 자유로운가? 당신의 아이가 태어났는데 육아휴직을 쓸 수 없어 출산 직후 일터로 복귀해야 한다면, 당신은 진정 자유로운가? 지구상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에서 이 질문들에 대한 대답이 '노(no)라면, 당신은 자유롭지 않다.

권리장전은 전제정부의 압제로부터 우리를 보호하지만, 지배층의 다수는 미국인들을 과두정, (즉) 다국적 기업, 월스트리트의 은행과 억만장자들의 전제정치에 복종시키고 싶어한다. 미국인들은 일어나 자유, 인간의 존엄성, 안전을 위한 권리를 얻기 위해 싸워야 할 때이고, 사실 그 때는 이미 오래 전에 지났다."

그는 자신이 비판하는 "과두정", 즉 '소수의 지배'란 "바로 지금, 미국에서는 세 가문(家門)의 부(富)가 하위 50%인 1억6000만 미국인 보다 많"은 등 "상위 1%가 하위 92%보다 많은 부를 소유"한 결과, "미국이 1920년대 이후 최악의 경제적 불평등"을 겪고 있는 현실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가 연설에서 뉴딜정책 등을 언급한 대목은, 그의 '사회적 민주주의'가 북유럽식 사회민주주의와 무엇이 다르냐는 의문을 낳고 있기도 하다고 <NYT>는 지적했다. 신문은 '민주적 사회주의'의 개념을 다룬 별도 해설 기사에서 "민주적 사회주의자들 사람 수만큼 '민주적 사회주의'의 개념이 있다"고 모호성을 꼬집기도 했다.

샌더스는 이날 연설에서 사회주의라는 말이 금기어가 아님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과두제적 동료들은 우리가 민주적 사회주의를 지지한다고 우리를 공격하지만, 그들도 모든 형태의 사회주의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그들은 근로대중(working people)에게 이익을 주는 민주적 사회주의는 증오하겠지만, 트럼프 자신과 다른 억만장자들을 더 부자로 만들어 주는 '기업-사회주의(corporate socialism)'는 절대적으로 사랑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트럼프는 부자와 권력자를 위한 '기업-사회주의'를 믿는다. 나는 이 나라의 근로대중 가족을 위한 민주적 사회주의를 믿는다. 이것이 트럼프와 나의 차이"라고도 했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월스트리트의 자본가들이 수 조에서 수십 조 원의 구제금융을 받아간 일을 거론하며 "월스트리트가 하룻밤에 '큰 정부 사회주의자'들이 됐었다"고 그는 비꼬았다.

그는 그러면서 미국의 민권운동 대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말을 인용했다. "이 나라에는 부자들을 위한 사회주의가 있지만,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는 단호한 개인주의만이 있다"는 말이었다. 그는 "트럼프가 사회주의를 공격할 때, 나는 이 말이 생각난다"고 말했다.

그는 연설에서 이처럼 트럼프 대통령을 실명으로 8회나 거론하며 맹비판했다. <NYT>는 그가 자신과 트럼프를 선명하게 대조시키면서 스스로를 트럼프의 맞수로 끌어올리는 전략을 썼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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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훈 기자 nowhere@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국제팀에서 '아랍의 봄'과 위키리크스 사태를 겪었고, 후쿠시마 사태 당시 동일본 현지를 다녀왔습니다. 통일부 출입기자 시절 연평도 사태가 터졌고, 김정일이 사망했습니다. 2012년 총선 때부터는 정치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