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과 을 모두 패배, 최저임금 경영계만 웃었다
문재인 정부 최저 인상률. 최저임금 1만 원 물거품
2019.07.12 15:09:44
을과 을 모두 패배, 최저임금 경영계만 웃었다
2020년 최저임금은 8590원이다. 12일 새벽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최저임금위원회 제13차 전원회의에서 이같이 결정됐다. 2019년 8350원에서 2.87%, 240원 오른 수치다. 역대 세 번째로 낮은 수치며 2%대 인상률은 문재인 정부 들어 최저치이자 2010년 이후 처음이다.

최저임금 속도조절론이 현실화했다는 평가다. 경영계의 판정승이다. 최저임금으로 인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부담이 크다'는 경영계의 지속적인 주장이 통한 결과로 풀이된다. '노동 존중 사회'는 '을과 을의 전쟁' 프레임을 극복하지 못했다.

노동계는 거세게 반발했다. 한국노총은 이날 성명을 통해 "최저임금 평균 인상률은 이전 정부와 별반 다른 게 없는데 최저임금법만 개악됐다"며 "양극화 해소, 노동 존중 사회 실현도 불가능해졌다"고 입장을 밝혔다. 민주노총 역시 최저임금 인상률에 비판적 입장을 내고 "총파업을 포함한 전면적인 투쟁을 조직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재계는 내심 반겼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이번 인상안이 경영계로서는 부담이 가중된 수준이지만, 어려운 국내의 경제 여건속에서 파국을 피하고 위기극복에 국민경제주체 모두 힘을 모아 나가야하는 차원에서 이를 감당해 나가도록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수용 의사를 밝혔다.

'중소기업, 소상공인, 자영업자'는 '최저임금 1만 원' 공약 초기부터 경영계의 방패였다. 높은 인건비 때문에 고용을 꺼리게 돼 실업자가 늘고 저임금 노동자의 소득 수준이 나빠지며 전체 경제 악화로 이어진다는 식의 논리였다. 대기업 불공정거래나 과도한 임대료 부담 따위의 이야기는 쏙 들어갔다. 영세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의 어려움은 인건비 부담보다는 전체적인 불황 때문이라는 조사보고서도 여러 번 나왔지만, 힘을 쓰지 못했다.
 
최저임금위원회 시작부터 그늘이 드리워졌다. 5월 30일 제1차 전원회의 개최와 함께 위촉된 박진수 최저임금위원회 위원장은 인사말에서 "(최저임금 인상이)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파악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소기업, 소상공인, 자영업자의 부담이 크다'는 경영계의 주장을 염두에 둔 발언이었다.
 
이후 '중소기업, 소상공인, 자영업자'는 앵무새처럼 등장했다. 최저임금위원회 사용자위원 측은 "중소기업, 소상공인 업계의 절박한 상황을 살펴 달라"며 업종별, 지역별, 규모별 차등화를 집요하게 요구했다. 대기업 중심의 경영계는 물론,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도 여기에 가세했다. 제3차 전원 회의를 앞두고 이들은 처음으로 함께 '최저임금 동결'을 주장하고 나섰다. 그동안 최저임금 차등적용을 주장하긴 했으나 동결을 주장한 것은 처음이었다. 최저임금은 바야흐로 '을들의 전쟁'으로 비화했다.

절정은 지난 3일의 제8차 전원 회의였다. '최저임금 차등적용 안'이 부결되자 집단퇴장한 뒤 전원 회의를 보이콧했던 사용자위원 측은, 일주일 만에 복귀하면서 동결도 아닌 '4.2% 삭감안'을 제시했다. 최저임금 삭감안은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가 불어 닥친 2009년, 사용자 측이 제시했던 5.8% 삭감안 이후 10년 만이다.

근로자위원들은 크게 반발했다. "국가 부도 상황도 아닌데 삭감안을 제시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며 "저임금노동자에 대한 모욕이고 최저임금제도의 취지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노동자 측이 최초 요구안이었던 1만 원에서 9670원으로 수정안을 제시할 때도 사용자 측은 165원 삭감한 8185원을 제시하면서 삭감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둘의 요구안 차는 1485원에 달했다.

11일 오후 4시부터 시작된 회의는 12일 오전 5시 30분경에야 끝났다. 결과는 사용자 측 8590원 15표, 노동자 측 8880원 11표, 기권 1표로 사용자 측의 승리로 끝났다.
 
정작 '중소기업,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을 위한 정책은 자취를 감췄다. 공정거래법 개정안 등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었던 경제민주화 법안들은 보수 야당의 반대로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대기업 중심의 불공정한 시장질서는 그대로다. 
 
최저임금 1만 원 공약은 지난 대선 당시 사회적 합의다. 단순히 임금을 올리겠다는 것이 아니라 '경제민주화'라는 큰 틀 안에서 노동자 삶의 질을 개선하는 하나의 정책이다. 주 52시간 노동,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과 맞물려있다.

최저임금이 집요한 공격의 대상이 된 것은 '중소기업, 소상공인, 자영업자'라는 '또 다른 을'이 있었기 때문이다. 경영계의 이런 반응은 예상 못 한 바는 아니다. 충분히 예상했던 공격에 무기력하게 물러난 정부의 정책 의지는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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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은 기자 pi@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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