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반대"…황교안 벽에 가로막힌 文대통령
실질적 대책 담지 못한 추상적 합의, 이유는?
2019.07.19 00:46:12
"나는 반대"…황교안 벽에 가로막힌 文대통령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5당 대표가 18일 청와대에서 3시간에 걸친 회동을 갖고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 철회 촉구와 비상협력기구 설치 등 4개 항목을 담은 공동발표문에 합의했다. 

대통령과 여야 정치지도자들이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를 "경제 보복"으로 규정하고, 기존 조치의 철회 및 화이트리스트 배제 등 일본의 예상되는 추가 조치에 한목소리로 경고음을 냈다는 데에 의미가 적지 않다. 

사태 해결을 위한 외교적 노력과 함께 범국가적 차원의 비상협력기구 설치에 의견을 모은 점도 국가적 위기 앞에 당파적 갈등을 제어하기 위한 장치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회동 결과물인 공동발표문은 추가경정예산 등 구체적인 국정 현안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지 못해 추상적이고 원론적인 만남에 그친 듯한 뒷맛을 남겼다. 여야 5당 대표는 청와대 회동 뒤 국회로 돌아와 각각 기자간담회를 갖고 비공개 회동자리에서 오간 대화를 전했다. 

文대통령 10번도 넘게 추경 당부했지만...

3시간가량 진행된 이날 회담에서 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경제적 위기 앞에 조속한 추경 처리를 야당에 거듭 요청했지만 끝내 합의문에 담지는 못했다.

이해찬 대표는 "대통령과 내가 추경을 강력히 요구했지만 자유한국당이 국회 사안이라며 응답하지 않아 발표문에 못 넣었는데 그 점을 문 대통령은 아쉽게 생각했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추경이 매듭되지 않아 내일 처리가 안 되면 언제 처리될지 모른다"며 "이런 부분을 외면하는 한국당에 유감스럽다"고 했다.

반면 황교안 대표는 "문 대통령은 추경에 관한 얘기를 공동발표문에 넣자는 생각이 강했지만, 나는 충분한 논의도 되지 않았고 협의해야 할 부분이 많이 남아 섣불리 발표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판단했다"고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민주평화당 정동영 대표는 "문 대통령이 10번도 넘게 추경 처리를 강조했다"면서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당이 요구하는 정경두 국방부 장관 해임건의안 상정을 여당이 받아들이는 양보를 해야 한다"고 절충안을 제안했다. 

그러나 이해찬 대표는 "국방부 장관 해임결의안은 전혀 안 되는 일을 억지로 주장하는 것"이라며 "목선이라는 것은 1년에 수십 척이 내려오는데, 목선 내려왔다고 장관을 해임하면 아주 나쁜 국회의 전례를 남기는 것"이라고 강하게 반대했다.

"법률적 지원 빼자고 할 줄은 상상도 못해"

공동발표문에는 '국가 경제의 펀더멘털 및 소재·부품·장비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함께 노력한다'는 문구가 담겼다. 그러나 법적·제도적 뒷받침이 명시되지 않은 채 '~노력한다'라는 표현으로 처리돼 구체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이해찬 대표는 "소재·부품·장비 산업에 대한 법률적 지원을 넣는 것에 한국당의 반대가 많았다"면서 "(한국당이) 그것을 빼자고 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고 아쉬운 기색을 보였다.

정의당 심상정 대표는 "문 대통령은 '관련 산업에 법적·제도적 지원책을 강구토록 하는 조항이 꼭 들어가야 구체적인 경제 대책으로 합의의 의미를 살릴 수 있다'는 견해였지만, 황교안 대표가 '예산이 수반될 수 있다'는 이유로 계속 반대를 했다"고 전했다. 

황 대표는 이와 관련해 "당 내에서 논의 정리가 되지 않은 상태"라며 "예민한 법제도 문제는 충분히 논의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공동발표문에 들어가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반대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최종적으로 발표문에 포함됐지만 '화이트리스트 배제 등의 추가적 조치는 한일관계 및 동북아 안보협력을 저해한다'는 문구를 담자는 제안에 대해서도 한국당은 당초 난색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해찬 대표는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배제 관련 문구를 발표문에 넣을 것인지를 놓고 한국당의 (반대) 주장이 있어 논의에 시간이 많이 걸렸다"고 했다. 

이밖에 심 대표는 "19일 본회의에서 일본의 조치에 대한 규탄과 철회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하고 아베 정부의 경제 보복 대응을 위한 국회 특별위원회 구성에 여야 4당 대표가 동의했지만, 끝내 황교안 대표가 그것은 원내 소관이라는 이유로 답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낙연·최상용 등 대일 특사 파견 제안에는 문 대통령이 난색

황교안 대표와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 등이 "외교적 노력"에 방점을 두며 제안한 대일 특사 파견에 대해선 문 대통령이 난색을 표했다.

황 대표는 "조속히 양국 정상이 마주앉을 것을 거듭 요청했다"며 "기업들의 손실과 우리 경제에 닥칠 후폭풍을 막아야 하기 때문에 서둘러 특사를 파견할 것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손 대표도 "한일 정상회담 개최와 특사 파견을 요구했다"며 "그냥 특사가 아니라 전문성이 있는 이낙연 총리를 (특사로) 생각해달라고 했다"고 밝혔다.

정동영 대표는 "정부 특사와 민간 특사를 함께 보내는 게 좋겠다"며 "일본 국민들과 교감할 필요가 있다는 차원에서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준비했던 최상용 전 주일대사를 민간특사로 보내자"고 제안했다.

이 같은 다양한 특사 파견 제안에 문 대통령은 "특사나 고위급회담이 해법이 된다면 언제든 가능하지만 무조건 보낸다고 되는 건 아닐 것"이라며 "협상 끝에 해결 방법으로 논해져야 할 것"이라고 반대 입장을 표했다고 청와대는 밝혔다.

정동영 대표도 "문 대통령은 특사 파견으로 논의가 모이는 것을 부담스러워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다만 손학규 대표는 "문 대통령이 특사 파견이나 한일 정상회담을 검토해서 효과적이라고 판단되면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손 대표는 또 강제징용 문제와 관련해 "정부가 너무 손을 놓고 있었다"고 지적하면서 해법 차워에서 "기금을 통해 먼저 배상하고 구상권을 후에 청구하는 방식이 있다고 제안했다"고 배석했던 장진영 대변인이 밝혔다. 손 대표는 "강제징용 배상 판결이 법적으로는 맞지만, (판결 이후) 어떻게 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이) 정부이고 외교라는 말을 했다"고 설명했다.

장 대변인에 따르면, 이에 대해 문 대통령은 "과거 위안부 협상 사례를 언급하며 피해자들이 동의하겠나"고 반대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홍익표 대변인도 "문 대통령은 피해자들의 수용, 국민적 동의가 전제되지 않은 외교적 협상은 하지 않은 것만 못하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파기 주장에 정의용 "상황에 따라 재검토"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파기를 지렛대로 활용하자는 파격적인 제안도 나왔다. 일본이 화이트리스트 배제 등 추가 조치를 취할 경우, 우리도 상응하는 행동을 하겠다는 메시지를 발산함으로써 일본을 단속하고 미국의 중재를 끌어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정동영 대표는 "일본 정부가 화이트 리스트 배제 등 추가 보복 조치를 한다면 그것은 한일관계와 동북아 안보협력을 저해한다"면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이 파기될 수 있다는 경고가 발표문에 담겨 있다"고 밝혔다.

정 대표는 "정의용 안보실장이 '7월 30일이나 8월 1일에 일본이 화이트리스트 배제를 발표할 것으로 예측한다'고 보고했다"면서 "그렇게 되면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안보상 신뢰할 수 없는 국가가 된다"고 군사정보보호협정 파기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정 대표는 "일본의 조치는 한미일 삼각동맹을 추구하는 미국의 동북아 안보협력 체제와도 정면으로 배치된다"며 "이 부분을 일본에 분명히 경고하고 미국에도 팔짱 끼고 볼 일이 아니다는 경고를 보낸 것"이라고 했다.

심 대표도 "화이트리스트 배제는 일본이 대한민국을 안보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기 때문에 군사정보를 제공할 이유가 없다"며 "행동 대 행동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이는 한미일 안보 공조와 동북아 안보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미국의 협력을 실질적으로 이끌어내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며 "정부가 나서서 협정을 파기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국회는 분명히 경고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문 대통령은 별다른 언급이 없었지만, 정의용 안보실장은 "지금은 (군사정보보호협정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상황에 따라 재검토할 수 있다"고 답변했다고 심 대표는 전했다.

군사정보보호협정은 1년 단위로 효력을 발휘하며, 효력 만료 90일 전 어느 쪽이라도 파기 의사를 서면 통보하면 종료된다. 

민감한 사안인 만큼, 청와대는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과 관련한 정의용 실장의 발언은 기본적으로 유지 입장이며, 다만 상황에 따라 어떻게 해야 할지 검토해볼 수 있다는 원론적 입장의 발언이었다"고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정치개혁, 경제정책, 노동정책도 논의됐지만…

이밖에 이날 회동에선 손학규, 정동영, 심상정 대표 등이 선거법 개정과 개헌 등 정치개혁에 관한 주문도 했다. 손학규 대표는 "선거법 개정을 촉구했고 개헌 문제를 다시 논의하자고 했다"고 밝혔다.

황교안 대표는 소득주도 성장 등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의 전환을 문 대통령에게 촉구했다. 황 대표는 "소득주도 성장 폐기와 경제정책 대전환 결단을 강력하게 요청했다"며 "저의 주장에 대통령도 큰 틀의 동의를 해 준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황 대표 등의 요구에 "시간이 없고, 여기서 구체적으로 말할 사안이 아니다"라며 구체적 언급을 피했다고 손 대표는 전했다.

정동영, 심상정 대표는 노동정책과 재벌 대기업 정책 전환을 촉구했다. 정 대표는 "30대 재벌 기업이 소유한 비업무용 토지에 중과세를 하고 토지 정보를 공개하라"고 요청했고, 이에 "문 대통령은 김상조 정책실장에게 '적극적으로 잘 챙겨서 검토하고 보고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심 대표는 최저임금과 탄력근로제 등 노동정책 후퇴와 ILO 협약 비준을 촉구하며 "노동 정책에 대한 전반적 재검토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1년 4개월 만의 만남, 5당 대표 평가는…

회동 뒤 각당 대표들은 1년 4개월 만에 이뤄진 대통령과 여야 대표들의 만남을 대체로 의미 있게 평가했으나 정례화 여부는 불투명해 보인다.

이해찬 대표는 "한일 경제 갈등이 증폭되는 엄중한 시기에 여야정이 함께 모여 오직 국민과 국익을 위한 의미 있는 자리였다"면서 "일본의 경제적 침략 행위에 대한 집중적 논의와 함께 다양한 현안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논의했다"고 평가했다.

반면 황교안 대표는 "5당 대표가 모여 얘기하다 보니 내가 준비한 얘기도 다 못했다"며 "의미  있고 깊이 있는 실질적인 대화가 이뤄지려면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일대일로 만나서 현안들과 국가 미래에 관해 논의하는 것이 필요한 일"이라고 했다.

손학규 대표는 "여야와 대통령 간에 대화의 장이 열렸다는 것이 의미"라며 "많은 분들이 이런 모임을 정례화 해달라고 요청했고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상당한 공감대를 이뤘다"고 전했다.

정동영 대표는 "일본의 경제보복 앞에 여야를 넘어 초당적 협력을 강조하고 확인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면서 "불안감과 위기감을 갖고 있는 국민들께 위로와 힘이 될 것"이라고 했다.

심상정 대표도 "5당 대표들 간의 새로운 시작으로, '아이스 브레이킹'은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했다. 

한편 회동 시간이 당초 예정보다 길어지면서 문 대통령은 각당 대표들에게 "같이 저녁을 하면서 더 얘기하자"고 제안했으나, 황교안 대표가 "일정이 있어서 함께 못하겠다. 다음에 하자"고 사양해 만찬 회동으로 이어지지는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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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구 기자 hilltop@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2001년에 입사한 첫 직장 프레시안에 뼈를 묻는 중입니다. 국회와 청와대를 전전하며 정치팀을 주로 담당했습니다. 잠시 편집국장도 했습니다. 2015년 협동조합팀에서 일했고 현재 국제한반도팀장을 맡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