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혀둔 숙제' 사형은 필요한 형벌인가
[휴먼 라이츠 브리핑] ⑥ 사형은 언제 정당화되는가
'묵혀둔 숙제' 사형은 필요한 형벌인가

사형제에 관해 우리가 주목하지 않은 두 개의 사건이 최근 있었다. 하나는 2019년 2월 말, 우리 정부가 자유권 규약 제2선택의정서(사형제 폐지 국제규약) 가입에 대한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를 '불수용'하고,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를 비공개하기로 결정한 일이다. 이 의정서 안에는 사형 집행 중지와 폐지 절차 마련 등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 또 다른 하나는 2019년 7월 11일, 사형확정자 중 1인이 지병으로 사망한 일이다. 이로서 사형이 집행되지 않은 채 남아있는 사형확정자는 총 60명(민간인 56명, 군인 4명)이 되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우리나라는 1997년 12월 30일을 마지막으로 사형을 집행하지 않는다. 때문에 국제 앰네스티가 분류한 바에 따라 사실상 사형폐지국으로 불린다. 참고로 모든 범죄에 대한 사형을 폐지한 국가[사형제 전면 폐지]는 106개국, 전쟁 중 저지르는 범죄 등과 같이 예외적인 상황에서 저지르는 범죄에 대해 사형을 집행하는 국가[극단적 범죄를 제외한 폐지]는 7개국, 우리나라와 같이 지난 10년간 사형을 집행하지 않았고 사형을 집행하지 않는 것에 대한 정책 또는 관습이 있다고 여겨지는 국가[집행 폐지]는 총 29개국이며, 특정 범죄에 대한 사형을 집행하는 국가[사형집행국]는 56개국이다(2016년 10월 기준). 이는 모든 범죄에 대한 사형을 폐지한 국가가 92개국, 전쟁범죄를 제외한 일반범죄에 대하여 사형을 폐지한 국가가 10개국, 최근 10년 이상 사형집행을 하지 않은 국가가 36개국, 사형이 존치하는 국가가 59개국이었던 2008년 말과 비교해보면 큰 변화이다. 요컨대 사형제는 점진적인 축소 내지 폐지는 전지구적인 현상인 것이다. 왜 그럴까?

사형제가 사형수의 인간 존엄성을 침해하고 생명권을 박탈하여 공동체와의 연대성을 영원히 단절시키고, 회복불가능한 오판 가능성이 있다는 말을 새삼 강조하려는 것은 아니다. 인간 존엄성과 생명권에 대한 존중은 범죄피해자에게도 요청되는 것이기에 사형제 폐지의 논거로만 온전히 쓰일 수 없다. 포렌식을 통해 정밀해진 수사와 증거기반 재판에서 오판의 가능성이 예전에 비해 현저하게 낮은 것 또한 사실이다(물론 여전히 오판의 가능성이 있으며, 그 가능성은 사형제를 폐지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이다). 보다 중요한 이유는 사형의 '필요성'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사형제의 존립 근거는 무엇일까. 범죄자에게 형벌을 부과하는 목적은, 이는 국가 형벌의 목적 내지 존립근거이기도 하다, 그에게 범죄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하면서(응보) '동시에', 앞으로 그 범죄자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범죄를 저지르지 않도록 경고하는 것(일반예방과 특별예방)이다. 때문에 응보만을 위한 형벌은-예방의 측면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불가능하고 부당하다. "형벌은 사적 복수보다 경미한 수단에 의해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때 정당화"되는 것이다(이상돈, <형법강론>). 그렇다면 사형제를 통해 범죄가 예방될까? 사형제의 범죄예방 효과를 정확히 실험하는 것은 불가능할뿐더러, 일부 제한적인 데이터를 통해 이 제도가 범죄 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도 있고 없다는 연구도 있다. 다시 말해 사형의 효과성에 대한 실증연구는 아직 없다고 할 수 있다. 당연히 사형제가 축소되거나 폐지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흉악범죄가 증가했다는 전지구적인 통계는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사형을 선고하기 때문에) 흉악범죄가 감소했다거나, (사형을 집행하지 않기 때문에) 증가했다는 통계는 없다. 또한 생각해보자. 범죄자는 사형을 고려(계산)하면서 범죄를 저지를까. 범죄를 충동적으로 저지르는 경우(격정 범죄)와 계획적 내지 고의적으로 저지르는 경우(계획범 내지 고의범) 두가지를 상정해보면, 전자의 경우는 법정 최고형에 대한 계산은 안중에 없었을 것이고 후자의 경우는 기꺼이 결과를 감수하거나 무시했을 것이다. 즉, 사형을 통해 범죄에 대한 일반예방적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사형이 집행된 자는 자신의 과오를 뉘우치거나 예방할 수 없다는 점에서 특별예방의 효과는 처음부터 발생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다.

결국 사형제의 본질은 무엇일까. 죄의 대가를 죽음으로 치르게 한다는 정도일텐데 여기에는 상당부분 범죄자에 대한 분노와 불안이라는 보복감정이 자리잡고 있다. 범죄자의 희생을 통해 개인의 분노를 해소하고 사회의 안전을 가져올 수 있다는 '믿음'인 것이다. 물론 믿음에 대한 실증적인 근거는 없다. 오히려 그러한 믿음에 기댄 선동정치가 있을 뿐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를 살펴보자. 가장 권위주의적이었던 1964년부터 1979년 사이의 약 16년 동안 421명에게 사형을 선고했고 291명에게 사형을 집행했다. 1980년과 1997년의 약 18년 동안에는 425명(전두환 정부 188명, 노태우 정부 129명, 김영삼 정부 108명)에게 사형을 선고했고 166명에게 사형을 집행했다. 1998년부터 2018년의 약 20년 사이에는 120명에게 사형을 선고했지만, 이 기간 동안에는 사형이 집행되지 않았다.(이덕인, <사형제도의 실재> 참조). 최근 미국 트럼프 정부가 16년 만에 연방정부 차원에서 사형을 집행하기로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는 2020년 대선을 앞두고 사형 집행을 바라는 유권자들을 결집하기 위한 의도라는 평가가 다분하다. 요컨대 사형제도는 범죄자의 희생을 통해 사람들의 분노와 불안을 달래고, 권력이 작동하고 있음을 각인시키는 방법으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사형은 언제 정당화될까? 헌법재판소는 "국가는 때로 보다 더 소중한 가치를 지키기 위하여 소중한 가치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됨을 전제로 "무고한 일반국민의 생명이나 이에 준하는 중대한 공익을 지키기 위하여 이를 파괴하는 잔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른 자의 생명을 박탈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상황에 사형제도가 선택된다고 한다. 그러나 '생명을 박탈할 수 밖에 없는 불가피한 상황'은 또한 언제일까. 인용한 것처럼 형벌은 사적 복수보다 경미한 수단에 의해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정당화된다는 점에서 형벌로서 사형은 '적어도' 인간의 생명을 빼앗는 범죄행위에 국한되어야 한다. 이 경우에도 베카리아(Beccaria)가 강조한 것처럼 다음과 같은 조건이 더 필요하다. "한 시민의 죽음이 필요하다고 간주될 수 있는 경우는 다음 두 경우뿐이다. 첫째, 그가 자유를 박탈당하더라도 국가의 안전을 위협하기에 충분한 힘과 조직을 보유하고 있음이 명백한 때이다...(중략)...한 사람의 죽음이 타인들의 범죄를 억제하는 유일한 방법일 경우이다. 바로 그 쟁점은 사형이 정당하고 필요하다고 믿을 수 있느냐 하는 두 번째 이유일 것이다."(한인섭 역, <범죄와 형벌>) 그러나 '국가의 안전을 위협하기에 명백한 경우'에 대해서는 국가에게 입증책임이 있을 뿐만 아니라, 사형은 '타인의 범죄를 억제하는 유일한 방법'이 결코 '아니'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사형제도'에 대한 논의는 마치 책상 서랍 속에 오래 넣어두고 묵혀둔 방학 숙제와 같아서, 다들 그 존재를 알지만 애써 잊고 지내다가 때가 되면 허둥지둥 꺼내놓고 골머리를 앓게 된다. 잔인하고 흉악한 범죄가 발생하면 사람들은 비로소 분노하기 시작하고, 그에 맞춘 여론조사에서 사형제도는 높은 수치의 지지율을 보이며 우리들의 감정을 자극한다. 여론의 과정에서 사형에 대한 논의는, 마치 블랙홀처럼, 범죄의 분석과 해법에 대한 섬세한 숙고들을 빨아들이고는 오직 제도의 존폐 문제로 축소된다. 이제, 사형제의 필요성에 대한 진지한 고찰과 대체 형벌에 대한 적극적 모색을 통해, 형벌제도의 세계사적 흐름에 동참할 시기이다.


한국인권학회와 프레시안이 공동기획한 <휴먼 라이츠 브리핑>이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인권과 관련 있는 여러 학문의 최신 동향과 연구자들의 성찰을 독자들과 나누려 합니다. 그것을 통해 한국 사회의 인권담론이 풍부해지고, 인권현안을 깊은 차원에서 분석할 수 있는 시각이 늘어나기를 기대합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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