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에서 개벽으로
[기고] 다시 여는 글
혁명에서 개벽으로
여기저기에서 "촛불혁명 이후로 달라진 게 별로 없다"는 말을 듣곤 한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아마도 촛불이 개벽이 아니라 혁명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혁명이 일회적 사건이라면 개벽은 일상의 연속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불매운동'이 과거와 달리 일상화가 되고 있다면, 그것은 개벽적 차원에서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리라. 마찬가지로 1894년의 동학농민혁명이 25년 뒤에 3.1독립운동으로까지 이어졌다면, 그것은 혁명이 아닌 개벽을 지향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운동이 오늘날의 촛불혁명으로 이어졌다면, 그 운동은 실패한 혁명이 아니라 지속적 개벽으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최근에 전개되고 있는 '탈일'(脫日)운동은 일본으로부터 기술적으로, 경제적으로 독립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지 결코 일본과 담을 쌓거나 일본을 지배하겠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그런 점에서 후쿠자와 유키치의 탈아(脫亞)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왜냐하면 결국 일본은 아시아를 벗어나는 것을 넘어서 아시아를 지배하는 길로 나아갔기 때문이다. 반면에 동학의 개벽은 철학적 탈아(脫亞)를 추구하였다. '하늘'이라는 자신의 언어로 '하늘한다'(天道)는 자신의 철학을 시도해 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편협한 국수주의나 이기적인 자기중심주의(各自爲心)에 빠진 것도 아니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자기 안의 보편적인 하늘을 발견해서, 그 하늘을 실천하는 삶을 지향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그것은 또 다른 의미에서의 탈아(脫我)라고 할 수 있다.  

일본 근대가 추구한 탈아입구는 중국 대신에 서구라고 하는 또 다른 질서로의 편입이었다는 점에서 태생적인 한계를 안고 있었다. 자신이 직접 새로운 세계관을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세계관에 기대는(有待) 것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궁극적으로 벗어난(脫) 것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진정으로 벗어나려면 ‘탈아입구’에서 ‘탈아출구’(脫亞出歐)로까지 나아갔어야 했다. 그리고 이때의 ‘탈’도 침탈을 위한 ‘탈’이 아니라 진정한 자유와 독립을 위한 ‘탈’이 되었어야 했다. 그런 탈아입구적 근대화의 한계가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일본의 모습이다.      

그러나 이것은 한가한 남 얘기가 아니다. 해방 이후에 우리의 사상적 지형도가 개벽에서 개화로 넘어간 것은 일본의 탈아입구적 근대화를 따라갔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서구라는 또 다른 중국에의 정신적 종속이었다. 그리고 그 예속성은 근대화의 후발주자이니만큼, 그리고 식민지지배까지 겪은 나라이니만큼, 일본보다도 훨씬 더 심각했다. <개벽파선언>의 첫머리가 ‘디톡스’(해독) 이야기로 시작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지난 촛불혁명과 최근의 탈일운동은 이제 우리가 진정으로 입구(入歐)에서 출구(出歐)로까지 나아가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는 역사적 신호일 것이다. 그것은 다른 말로 하면 “서구적 근대화로부터의 탈출”이고 “한국적 근대화로의 재진입”이다. 동학 식으로 말하면 ‘다시 개벽’인 셈이다. 외국 문헌만 많이 인용하면 논문으로 인정받던 시대, 외국에서 인정받아야 국내에서 알아주는 풍토. 이런 20세기적 문화는 모두 서구적 근대화의 잔재에 다름 아니다. 그것은 당사자인 자신들에게는 좋을지 몰라도 그들의 수업이나 지도를 받는 학생들에게는 세뇌나 곤욕에 다름 아니다. 나는 이런 교육을 받고 자란 개화세대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 선언을 기획하고 제안한 이병한 선생이야말로 학계의 진정한 “개벽의 일꾼”이다. 그 연배에서 그 만큼 개벽의 의지가 확고한 학자를 본 적이 없다. 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비전과 실천까지 겸비하고 있다. 이 선언이 하나의 계기가 되어 우리 사회가 진정으로 “개벽하러 가는 길”로 나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설령 그 짐이 버겁고 그 길이 멀지라도 말이다(任重道遠). 

개벽학당의 자리타가 “개벽의 길을 떠나려 하니 울고 싶어졌다”고 했는데, 그러면 울면서 하면 되지 않을까? “독립운동은 못 했어도 불매운동은 한다”는 게 요즘 젊은이들의 구호이던데,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매일같이 울었을 것이다. 그 짐이 너무 무겁고 그 길이 너무 험난한데, 그것을 대신해 줄 사람도 없고 그것을 피해갈 수도 없었기 때문이리라. 개벽이 힘들면 울면서 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개벽파선언>도 이병한 선생과 둘이서 ‘공공’ 했듯이, '삼일독립선언문'도 33인이 같이 낭독하고 전 국민이 함께 동참했듯이, 같이 하면 울어도 즐겁고 덜 힘든 법이다. 그것이 “한(恨)을 넘어선 한(天)의 경지”일 것이다.

2019년 8월 13일 새별 조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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