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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호의 우리말 바로 알기] 프란체스카 여사는 호주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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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호의 우리말 바로 알기] 프란체스카 여사는 호주댁?

필자가 중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라디오 듣는 것이 낙이었다. 특히 방송극은 온국민을 울고 웃게 만드는 마력이 있었다. 성우의 목소리 하나에 귀를 기울이고 감동에 젖었던 기억이 있다. 그 중에 해방 전후를 극화한 것으로 이승만(1875 ~ 1965) 전 대통령의 이야기는 가슴 속에 오래 남아 있다. 특이한 것은 그 분의 어눌한 말투였는데, 성우(구민, 1924~)의 연기는 정말 이 대통령과 차이가 없을 정도였다. 아마 필자 또래의 독자들은 이미 성우 구민 씨의 목소리가 떠오를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의 부인은 프란체스카(1900 ~1992) 여사다. 당시 방송에서는 그녀를 ‘호주댁’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그 방송을 들은 모든 사람들은 그녀가 오스트레일리아(호주) 사람인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프란체스카 여사는 오스트리아 사람이었다. 작가가 비엔나가 있는 오스트리아와 오스트레일리아를 구분하지 못해서 생긴 오류인데 방송에서 이렇게 부르다 보니 당시 모든 사람들은 그렇게 알 수밖에 없었다. 이런 것을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고 한다.

누군가 문화적으로 상위 서열에 있는 사람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응, 그건 이거야.”라고 말하면 그것이 진실이 되어 버린다. 몇 년 전에 금산에서 노인들을 모시고 온양에 다녀온 적이 있다. 버스를 타고 오는데, 옆에 큰 학교 같은 건물이 보였다. 노인들이 “저게 뭐여?” 하고 물으니 “응, 저거 순천향대학교야.”라고 제일 권위 있는 노인이 말씀하였다. 사실은 경찰관련 학교였는데, 그 어른께서 하도 단정적으로 말씀하셔서 필자는 아무 말도 못하고 속으로 웃기만 했다. 그 이후로 버스에 탔던 금산의 모든 노인들은 그 학교를 순천향대학교라고 알고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집시’라는 단어가 있다. 보통은 ‘보헤미아 지방에서 노래 부르고, 춤도 추고, 사람들 손금도 봐주는 떠돌이들’이라고 알고 있다. 그들은 본래 인도의 펀잡지방 사람들이다. 인도에서 보헤미아지방까지 가서 생활하던 인도인들인데, 유럽인들이 보기에는 인도사람이나 이집트 사람이나 비슷하게 보였던 모양이다. 그래서 어느 유식한(?) 사람이 그들을 보고 ‘이집시안(Egyptian=이집트사람)’이라고 불렀다. ‘E'가 묵음으로 잘 들리지 않으니 사람들에게는 ‘집시’로 들리게 됐고, 그것이 굳어서 지금의 집시가 되었다. 펀잡 사람이 이집트 사람으로 바뀌어서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오호 통재라!

이렇게 잘못 알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위에서 말한 ‘여사’라는 단어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고 해야 할 것이지, 일본을 거쳐 오면서 와전된 것인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이 단어 또한 잘못 전달된 것은 맞다. ‘여사(女史)’는 중국에서 ‘황제의 밤일을 챙겨주는 나이 많은 궁녀’를 일컫는 말이다. 당연히 중국에서는 좋지 않은 이미지를 담고 있다. 주나라 왕실의 관직으로 황제와 동침하는 비빈의 순서를 정해주는 역할을 하였다. 금, 은, 동으로 순서를 정한다.(볼에 붉은 칠을 하면 생리 중) 그러므로 궁녀 중에는 힘(?) 있는 직책이라고 할 수 있다. 청나라 이후 중국에서는 창녀나 포주의 의미로 사용해 왔다. 그러던 것이 일제강점기(1910)를 지나면서 국내에서는 결혼한 여인의 존칭(?)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참으로 이상하지 않을 수 없다. 이웃나라에서는 모두 ‘여사’라고 하면 바람직하지 않은 의미를 담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만 좋은 의미를 담고 있다. 외국어에 관대한 민족성이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이런 단어는 조금 손을 보는 것이 좋겠다. 한 때 <김 여사 시리즈>가 유행한 적이 있다. 여기에 나오는 김 여사는 자동차를 험하게 몰고, 잘난 척 하다가 망신당하는 여인을 그리고 있는데, 위에 열거한 ‘여사’의 의미와 또 다른 면을 보여준다. 우선 ‘여사’를 대신할 수 있는 단어를 찾아야겠다.

외국어가 한국에 오면 고생을 한다는 말이 있다. 파크(park)가 여관으로, 모텔(motel)이 ‘러브 호텔(?)로, 가든(garden)이 식당으로 변했다. 그런가 하면 ‘물’은 ‘셀프(물은 셀프입니다. Water is self. water = self. I am a boy. I = boy)'로 바뀌었다.

단어를 만들 때는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성급하게 일반화하면 반드시 오류가 생기게 마련이다. ‘프란체스카 여사는 호주댁’이라는 말 속에는 무지한 우리의 언어수준이 그대로 나타나 있음을 알고 반성해야 한다.

/ 중부대학교 한국어학과 교수 최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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