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약청과 기업의 유착이 '국민 건강'에 더 큰 문제"
[기고] 이형기 교수에 반론…"식약청의 구시대적 틀 깨야"
"식약청과 기업의 유착이 '국민 건강'에 더 큰 문제"
지난 10월 6일 <프레시안>에 실린 식품의약품안전청 개혁 방향에 대한 미국 피츠버그 의과대학 이형기 교수의 글에 대해 강건일 전 숙명여대 약학대학 교수가 반론을 제기했다.

강건일 교수는 "여전이 우리 식약청은 의약품 안전 관리의 기본적인 시스템에 대한 이해도 결여돼 있는 게 사실이지만 그것이 이형기 교수가 강조한 의사 중심의 리더십을 강조한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며 "오히려 환자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기업의 이해관계에 휘둘릴 가능성에 대해서 좀더 경각심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이 교수와 다른 각도에서 식약청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편집자>

지난 10월 6일 피츠버그 의과대학 이형기 교수는 에이즈 오염 원료로 제조된 혈액제제를 판매토록 식품의약품안전청이 허용한 문제 등이 약 중심의 안전 관리에서 비롯됐으며 식약청에 약학이 아닌 환자 중심의 의학 전문인의 리더십이 요구된다는 취지의 기고를 <프레시안>에 했다. 그 중 환자 중심적 패러다임 전환으로 표현한 1990년대 초 미국 식품의약품안전청(FDA)의 변화는 실은 환자 중심 안전 관리의 부정적 측면을 내포한 사례라는 점에서 다른 각도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80년대 말부터 FDA는 신약 허가 기간을 단축하라는 압력을 받았다. 죽음에 직면한 에이즈 환자에게는 실험적 약이라도 사용해 보는 것이 절실한 희망이었다. 1992년 FDA는 에이즈 등 치명적인 질병에 듣는 약의 허가를 촉진하는 조처를 마련했다. 일단 신약을 허가한 다음에 판매 후 모니터링에 의해 안전성 문제를 보완하겠다는 발상이었다. 또한 신약 심사 인력을 대폭 증원하여 그 경비를 조기 발매의 수혜자인 제약기업이 부담하도록 했다. FDA가 제약기업을 파트너로 삼아 환자 지향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라는 정치적 결정이었다.

이것이 이 교수가 주장한 환자 중심의 패러다임인지는 알지 못하나 이 FDA의 정책 변화가 초래한 문제는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데이비드 윌먼 기자의 2001년 퓰리처상 추적 보도에 나타나 있다. 환자가 접하는 신약의 수는 증가했으나 안전성이 제대로 검증 되지 않아 부작용으로 인한 수많은 사망자를 남기고서야 판매가 철회되는 약의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최근 FDA 청장의 경질과도 관련되었으며 비(非)스테로이드성 진통 소염제 '바이옥스'의 문제도 포함돼 보도되고 있다.

1999년 발매된 바이옥스는 2004년 9월 제조사가 자진 철회하기까지 연간 매출액 25억 달러로 성장한 거대 제품이었다. 그런데 이 약의 심장발작과 뇌졸중 부작용으로 인해 미국에서만 3만 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추정이 나왔다. 이런 약이 어떻게 허가돼 방치될 수 있었는지 의회와 언론은 FDA의 책임을 추궁했다. 과연 기업의 돈에 의존하는 신약 심사가 어떻게 이뤄졌겠느냐는 문제도 제기됐으며 FDA도 판매 후 안전성 모니터링이 부실했던 문제를 시인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지난 2월 FDA의 관련 자문위원회는 바이옥스에 대해 부작용 경고를 보강해 시장에 복귀시키는 결정을 내렸다. 32명의 의사와 과학자로 구성된 위원회의 표결 결과는 찬성 17, 반대 15였다. 이 문제를 조사한 상원 위원회는 자문 위원 중에 10명이 제약기업과 이해관계가 있다는 문제를 들어 FDA 약 심사의 투명성과 안전 관리의 취약성을 지적했다. 언론에서도 FDA가 환자와 국민을 위한 목적보다는 기업의 이해를 우선한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했음은 물론이다.

이런 불신의 와중에 FDA 청장이 경질되었으나, 이 사건은 의약품의 안전성 결정은 전(前)임상과 임상 자료 그리고 발매 후 임상 자료의 투명하고 엄격한 판단이 최선이며 전부라는 것을 말해준다. 더구나 약의 안전성 결정은 관련 위원회가 제대로 기능하는지에 전적으로 의존하며, 위원회의 구성은 FDA가 그렇듯이 우리 식약청도 의사 중심으로 돼 있다. 이번에 식약청에서 에이즈 오염 원료로 제조된 혈액제제를 그대로 유통시킨 것도 대한수혈학회와 국립보건원의 의사가 참여한 혈액매개전염인자관리위원회에서 결정된 지침을 따른 것이다.

이 경우 거꾸로 약의 제조 공정과 제조 안전성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의사가 기업체에게 설득 당했을 가능성도 있다. FDA에서 혈액 및 혈액제제의 안전 지침과 관련된 위원회의 논의가 공개되고 외부 의견이 수렴돼 최선의 안이 마련되는 과정을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식약청이 이런 지침을 정한 과정은 공개되지 않았다. 지침을 정하기 전에 혈액 관리와 제조 관리 보완의 필요성이 논의되었는지 누가 어떤 판단 근거로 현재 상태로 안전성이 보장된다고 보았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이러한 정책 결정의 과정적 합리성과 투명성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 이전에 최근 보도되고 있는 혈액 관리와 제조 관리의 문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지극히 상식적인 이해의 범위에 속한다. 이형기 교수도 보고서로 지적했듯이 우리의 식약청은 FDA와 같이 각 관리 단계를 세밀하게 규정하고 엄격한 처벌로 이행을 감독하지 못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의약품 안전 관리의 기본적인 시스템에 대한 이해조차 없다고밖에 볼 수 없다.

그러면서 식약청은 바이러스 불활성화 공정에 의해 제품의 안전성이 보장된다고 기업체와 연대하여 환자와 국민을 설득하고 있다. 식약청은 환자를 위해 기업체를 감시할 위치에 있어야 하는데, 이 양상에는 식약청의 책임 회피, 기업체와의 유착, 전문성과 행정 능력의 결여 등 의심받을 제반 문제가 들어 있다. 우리 식약청의 문제는 조직이나 구성보다는 의식이 문제이며 이 구시대적 의식의 틀을 깨는 것이 개혁의 과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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