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80년 광주' 기억하는데 한국은 다 잊었나"
[기고] 버마 민주화와 동아시아 그리고 한국
2005.12.13 11:20:00
"우리는 '80년 광주' 기억하는데 한국은 다 잊었나"
지난 12월 2일부터 3일까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버마 민주화를 위한 아세안 의원 모임(AIPMC)'이 주최한 국제 컨퍼런스에 참여했던 조승수 민주노동당 전 국회의원이 〈프레시안〉에 참가기를 보내왔다.

그는 의원 재직 당시 미얀마 민주화운동, 우리나라의 공적개발원조(ODA) 등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보여 왔다.

그는 이 글에서 '미얀마연방공화국'이라는 공식 국가명 대신 '버마'로 표기하고 있다. 그는 "'버마'라는 국가명은 버마 군부의 압박을 벗고 조국의 민주화를 이루기 위해 목숨과 청춘을 바친 버마 민주화운동 활동가들에 대한 존경과 지지의 뜻을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편집자〉

지난 12월 2일부터 3일까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버마 민주화를 위한 아세안 의원 모임'이 주최한 국제 컨퍼런스가 열렸다. 이 모임에는 아세안 회원 10개국 중 7개국 국회의원과 두 명의 한국인 초청자인 필자와 열린우리당 이미경 의원 등 28명이 공식 일원으로 참여했다. 그 외에 버마 관련 각 국 인권단체, 버마 난민 지원 단체, 버마 민주화 활동가 그리고 민주노동당 진보정치연구소의 김범석 사무국장 등 수십 명도 참여했다.

'버마 민주화를 위한 아세안 의원 모임'은 2004년 11월 경 아웅산 수지의 석방과 버마 민주화 회복을 위한 캠페인 과정에서 아세안 5개국이 중심이 되어 준비 모임을 위한 워크숍을 거쳐 이번에 공식 모임으로 처음 열리게 되었다. 필자는 이 모임이 끝난 뒤 사흘 더 체류하면서 말레시아의 인권단체와 활동가, 야당의 지도자 그리고 버마인 단체를 방문하며 많은 대화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이 모임은 원칙적으로 각 국 국회의원들의 모임이었으나 현직이 아닌 필자가 초청되어 발표자로 선정된 것은 필자가 국회 산업자원위원회에서 의정활동을 하면서 버마에서의 자원개발 과정에서의 인권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한 것이 계기였다. 이러한 활동이 국제 인권단체를 통해 알려져서 이제 현직이 아니라고 확인해 주었지만 문제없다는 답변과 함께 공식 초청장을 보낸 것이다.

***버마 민주화를 위한 아세안 각국 국회의원들의 노력**

1988년 민중항생(랑군의 봄)을 무력으로 진압한 군부는 1990년 총선을 통해 83%라는 압도적 지지를 받은, 아웅산 수지가 이끄는 NLD(민족민주동맹)를 인정하지 않고, 수지를 가택 연금하는 한편 소속 국회의원들을 구속 수감하는 등 탄압했다. 또한 1988년 18만 명에 불과했던 군대는 현재 40만 명으로 증강됐고, 지금도 계속 증강하고 있다고 한다. 해외자본과 군부가 공동으로 하는 자원개발에서 얻어지는 수입을 바탕으로 정부예산의 약 40%가 군부정권을 유지하는 국방비로 지출되고 있다. 이에 반해 버마에서는 강제노동도 광범위하게 자행되고 있는데 임금은 시간당 100원으로 한 달에 1만 원이 채 안 된다.

이러한 버마의 상황이 있기에 아직 완전한 민주국가로 볼 수 없는 많은 아세안 회원국들조차 버마의 민주화를 촉구하며 나서고 있다. 특히 인접한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에는 수십만 명의 버마 난민이 몰려와 이들 나라 내부에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현실이 아세안 회원국들의 인접국의 정치문제에 대한 전통적인 불개입 원칙에도 불구하고, 버마 문제에 대한 개입을 지속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되고 있다.

'버마 민주화를 위한 아세안 의원 모임'은 국익이라는 정부 차원의 이중적인 태도에 비해 의원들의 모임이기 때문에 좀 더 자유로운 논의와 강력한 결의가 가능했다. 이 모임은 회의 폐막 성명서를 통해 버마의 민주화 촉구, 아웅산 수지의 연금 해제, 90년 총선결과 수용 등을 촉구했다. 성명서 외에 이번 회의의 결정 사항으로 내년 2월말 경, 버마 난민이 집단 거주하고 있는 국경 지역인 태국의 치앙마이를 모임의 국회의원들이 구호품을 가지고 방문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번 회의에서 필자와 이미경 의원은 한국의 국회 내에 '버마 민주화를 위한 의원모임'을 조속한 시일 내에 구성해 이 활동에 한국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결의를 밝혔다.

***버마 군사정권 치하에서의 투자는 버마 민주화를 막는다**

버마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는 활동가들은 군사정권 치하에서의 버마에 대한 해외 투자가 인권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며 이를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 최근 다국적 에너지 회사인 미국의 유노칼과 프랑스의 토탈이 버마에서의 가스개발 과정에서 강제노동, 성폭력 등 인권유린, 강제이주 등의 혐의로 법정에서 거액의 배상금을 지급한 사례에서 보듯이, 버마에의 투자가 인권유린으로 이어지는 상황을 국제 인권단체들은 매우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버마의 자원개발 과정에서의 인권유린은 더 이상 먼 나라인 미국과 프랑스의 얘기만은 아니다. 매장량이 4~6조 입방피트 규모로 추정되는 버마 A-1 광구는 대우인터내셔널이 지분 60%, 한국가스공사 10%, 인도국영석유사 20%, 인도국영가스사 10%의 참여로 개발되고 있다. 이 지역출신 난민들의 증언과 인권단체의 보고서에 따르면, 유노칼의 사례와 유사한 인권유린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 10월 14일 국제인권단체들은 이날을 '안티대우'의 날로 정하고, 대우인터내셔널 본사 및 각국 한국 대사관 앞에서 대우인터내셔널의 버마가스개발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사실 한국과 버마 군부는 정치ㆍ경제적 이해관계를 통해 서로 매우 유착되어 있다. 한국은 버마에 매년 약 10억 달러의 상품을 수출하고 있으며, 1991년부터 2004년까지 무상원조로 1100만 달러를 지원했다. 이는 무상원조 지원 대상국 120개 국가 중 8위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높다(사실 우리의 대외원조 수준이 전반적으로 워낙 낮기 때문이지만).

이러한 무상원조 외에도 한국은 버마에 8320만 달러(총 6건)의 유상원조를 제공했다. 대외협력개발기금(EDCF)에서 지원하는 유상원조는 도로나 댐 건설 등에 쓰이는데, 이는 100% 구속성 원조(Tied Aid) 형태다. 즉 말이 원조이지 전액 우리 기업이 수주해서 제공된 차관의 이자와 원리금 상환뿐만이 아니라 이윤까지 챙겨오는 생색내기식이다. 이러한 원조가 버마 민중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 쓰이기보다는 반민주적인 군부정권의 정권유지에 사용되고 있다는 국제사회의 비판이 높다. 특히 상당수 버마 민주화 인사들은 버마군부에 대한 원조나 투자를 제한 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버마군부와는 협력하면서도 NLD(버마민족민주동맹) 회원들의 난민 신청은 외면해 결과적으로 버마군부를 이롭게 하는 부도덕한 행위를 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아시아에서 한국은 어떤 나라인가?**

버마 민주화는 어려운 과정은 있겠지만 희망적으로 보인다. 지난 12월 3일 필자는 말레이시아 이주노동자나 탈출한 난민 중 아라칸주의 아라칸족으로 구성되어 있는 아라칸 민족회의(ANC)의 3개월마다 열리는 정례회의에 참석할 기회를 가졌다. 현직도 아닌 전직 한국 국회의원을 단지 자신들을 지지, 지원한다는 이유로 따뜻하게 맞아 주었다.

그곳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1980년대의 우리 상황이 떠올랐다. 옥외 집회를 할 수 없는 관계로 20여 평 되는 아파트를 사무실로 쓰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그곳에 100여 명의 사람들이 몸을 움직일 수도 없이 빼곡하게 앉아 있었다. 대부분 20~30대인 그들이 30도에 가까운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불편한 내색 없이 내 말 한마디 한마디를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 진지하게 듣는 모습을 보면서 이 민족은 희망이 있는 민족이라는 확신을 하게 되었다.

필자가 이번 경험을 통해 가장 절실히 느낀 부분은 아시아에서 한국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이번 모임과정에서 아세안 국가 의원들과 인권단체들은 한국에 대한 그간의 섭섭함을 직설적으로 드러내곤 했다. 자신들은 한국이 아시아 국가에서 놀라운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모범적으로 이뤄가고 있는 나라로 찬사를 보내고 있지만, 한국이 아시아의 인권과 민주주의 그리고 국제연대 활동에 기여하는 점이 너무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자신들은 심지어 광주민중항쟁에 대해 한국의 군부를 규탄하고 국제연대를 표방하는 등 한국의 민주화에 일정 부분 기여했다고 생각하는데, 지금의 한국은 국제적으로 특히 동아시아 대해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는 '얌체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필자는 얼굴이 화끈거리는 부끄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지금 동아시아 국가 어디를 가든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한류의 반응은 대단했다. 그런데 우리 정치권은 이 한류를 바탕으로 우리 상품을 어떻게 지속적으로 팔아먹을 수 있을까 하는 천박한 장사꾼의 주판알을 튀고 있는 것은 아닌가? 미국과 동북아라는 지금까지의 폐쇄적인 무대가 아니라 25억의 인구와 지구 면적의 3분의 1, 그리고 고대로부터 오랜 교류와 관계 속에 맺어진 동아시아를 새롭게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휴대폰, 자동차 몇 대 더 팔아볼까 하는 장사꾼이 아니라, 진정으로 아시아의 정신적 연대를 주도할 수 있는 품격 있는 문화를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동아시아 외교의 격전장 쿠알라룸푸르, 우리는 무엇을 준비하고 있나**

필자가 입국한 다음날인 지난 8일 노무현 대통령이 말레이시아에서 열리는 제1차 동아시아 정상회의 참석차 출국했다는 발표가 있었다. 평소 같으면 그런 회의가 있는가 보다 하고 지나칠 수도 있었겠지만, 이번 쿠알라룸푸르 방문을 통해 필자에게는 이 회의의 의미를 나름대로 재해석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번 주 쿠알라룸푸르에서는 3개의 규모 있는 다자간 정상급 회의가 연이어 열리게 된다. 먼저 아세안 회원 10개국의 연례모임인 '아세안 회의', 둘째 아세안과 한국ㆍ중국ㆍ일본이 참여하는 이른바 '아세안+3 회의' 그리고 아세안+3에 인도ㆍ호주ㆍ뉴질랜드가 참여하는 아세안+3+3 즉 '동아시아 정상회의'가 열리는 것이다. 동아시아 정상회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처음 제안한 것으로 이번에 처음 개최되는데, 이번 회의를 관통하는 주제는 아시아 국가간 상호 협력과 공동번영이다. 궁극적으로는 동아시아 공동체를 결성하자는 제안도 나와 있다.

일련의 다자간 정상회의 개최 과정에서 주목할 점은 동아시아에서의 중국의 영향력 확대와 이를 저지하려는 미국과 일본, 아세안의 주도권 유지 하에 동아시아 협력관계를 모색하려는 말레이시아와 태국, 그리고 중국 등의 외교전이 이번 다자간 정상회의를 둘러싸고 치열한 물밑 외교전이 전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기본적으로 동아시아 국가만의 공동체 결성이나 아시아통화기금(AMF) 창설에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고, 일본과 싱가포르 그리고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우려하는 베트남 등을 끌어들이는 한편, 제1차 동아시아 정상회의에 호주, 뉴질랜드, 인도를 참가하도록 유도해 동아시아에서의 중국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고, 이 지역에서의 미국의 영향력을 온존, 강화시키려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 정부는 기본적으로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 4강을 주 대상으로 하는 '동북아'라는 공간적 무대를 외교의 중심으로 두고 있고, 이를 업그레이드한 것이 이른바 '동북아 중심국가론'이었으나, 중국의 강력한 반발과 내적 문제로 교착상태에 빠졌다. 동아시아라는 확장된 공간에서 본다면 자신의 텃밭이라고 할 수 있는 동아시아라는 거대한 영역을 등지고 서서 저 멀리 태평양 건너 미국을 바라보는 형국이다. 물론 싫건 좋건 대미관계를 최우선해야 하는 우리의 현실을 부정할 수 없을지는 모르만, 지리적ㆍ문화적ㆍ역사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어온 동아시아는 이른바 국익적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하며, 우리가 뒤돌아서서 보면 우리의 앞마당이 된다는 사실을 지적하고자 한다.

〈상자 시작〉

***버마 민주화운동의 역사**

오늘날의 버마를 어떻게 볼 것인가? 그것은 국제사회가 '미얀마 연방공화국'이라는 공식 국가명을 외면한 채 '버마'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를 고집하는 데에 압축적으로 나타나 있다. 버마 군부정권이 88년 정권위기를 타개하고자 '버마 사회주의연방공화국'이라는 이름을 '미얀마 연방공화국'으로 바꾸었지만, 국제사회는 버마라는 이름을 고집함으로써 버마군부에 대한 압력의 상징적 표현으로 부르고 있는 것이다.

1948년 영국으로부터 독립된 후 정정불안이 지속되는 가운데 네윈이 이끄는 군부가 62년부터 실권을 장악하고 자급자족형의 이른바 '버마식 사회주의'를 통치이념으로 국가를 운영했다. 이름뿐인 사회주의 정권은 국가를 병영화하고 국민경제를 파탄으로 몰아 88년 UN에 최빈국 대우를 요청하기에 이르렀고 이에 분노한 민중들의 시위가 격화되면서 '랑군의 봄'이라는 민중항쟁이 발생하게 된다.

항쟁을 유혈진압한 군부는 유화책으로 90년 총선을 치르게 되는데 군부정권(SPDC)은 단 2%의 득표에 그친 반면 아웅산 수지가 이끄는 민족민주동맹(NLD)은 83%라는 압도적 지지를 받지만 군부는 이를 거부하고 현재까지 무단통치를 계속하고 있다.

1990년 5월 총선에서 당선된 민족민주동맹 국회의원 392명 중 34명이 수감돼 있고, 36명은 1996년부터 지금까지 속칭 국가 영빈관에 갇혀 있다. 37명은 병석에서 신음하고 있고, 14명은 국외에 망명했으며, 123명은 강제로 의원직을 반납할 수밖에 없었다. 소수 부족 출신 국회의원 당선자들도 민족민주동맹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감금되어 있다고 한다.

군부 정권에 대한 공공연한 반대는 최고 20년형, 팩시밀리나 모뎀을 허가없이 소유하는 것은 15년형에 해당될 수 있는 '범죄'다. 군사정권의 입맛에 따라 그날 그날 바뀌는 훈령이 있을 뿐, 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의회도 없다.

반면 1988년 18만 명에 불과했던 군대는 현재 40만 명으로 증강됐고, 지금도 계속 증강하고 있다고 한다. 해외자본과 군부가 공동으로 하는 자원개발에서 얻어지는 수입을 바탕으로 정부예산의 약40%가 군부정권을 유지하는 국방비로 지출되고 있다. 버마에는 강제노역에 따른 노동착취도 광범위하게 자행되고 있는데, 임금은 시간당 100원으로 한 달에 1만 원이 채 안 된다.

〈상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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