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는 왜 FTA 모라토리엄을 선언했나
[한미FTA 뜯어보기 15] NAFTA와 멕시코 사례 (1)
2006.03.16 10:24:00
멕시코는 왜 FTA 모라토리엄을 선언했나
우리 정부가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서두르고 있는 가운데 우리보다 12년 앞서 미국과 FTA를 체결한 멕시코가 새삼 주목받고 있다.

미국 바로 아래 위치한 멕시코는 우리나라와 비슷한 정서와 비슷한 경제규모를 가지고 있는 나라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세계경제전망 2005'에 따르면 2005년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은 7997억 달러로 세계 11위 수준이고, 멕시코의 GDP는 한국과 비슷한 7581억 달러로 세계 13위 수준이다.

멕시코는 1994년 1월 미국, 캐나다와 북대서양자유무역협정(NAFTA)를 체결한 직후 흔히 '페소화 위기'로 불리는 예기치 못한 경제위기에 봉착하는 동시에 마르코스가 이끄는 사파티스타 농민혁명 운동이 일어나는 등 정치적 대격변을 겪었다.

이어 멕시코는 2003년 11월 일본과의 FTA 체결을 끝으로 당분간 어떤 나라와도 FTA를 추가로 체결하지 않겠다는 이른바 'FTA 모라토리엄'을 선언했다. NAFTA가 사상 첫 FTA였던 멕시코는 FTA 모라토리엄을 선언하기 전까지 전 세계 42개국과 11개의 FTA를 체결했었으나, 현재 이들 국가와의 무역에서 대부분 적자를 보고 있다.

NAFTA가 멕시코의 정치·사회·경제에 어떤 방식으로 정확히 얼마만큼의 영향을 미쳤는지를 알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NAFTA를 체결한 뒤 멕시코 사회가 어떤 변화를 겪어 왔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미국과의 FTA 협상에 들어간 우리에게 분명 많은 시사점을 던져줄 것이다.

***한미 FTA 밀어붙이는 한국정부, NAFTA 선전했던 멕시코 정부와 닮은 꼴**

1991년 2월 멕시코는 미국, 캐나다와 NAFTA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고, 1991년 6월 공식 협상에 들어갔다. 이들 3개국은 협상을 개시한 지 약 14개월 만인 1992년 8월 12일에 NAFTA를 비준했으나 그 해에 미국 대선이 있다는 이유로 1994년 1월로 NAFTA의 발효 날짜가 미뤄졌다.

14개월 동안 진행된 NAFTA 협상에서 멕시코, 미국, 캐나다는 현재 한미 FTA 협상에서 협상대상에 올라 있는 안건들과 거의 같은 안건들을 논의했다. 세 나라는 NAFTA를 통해 무역장벽과 외국인투자 규제를 철폐하는 것은 물론이고 에너지, 무선통신, 금융 등의 분야에서 외국인투자자에 대해 100% 내국인 대우를 해주기로 했다. 또 협정 당사국들 간에 분쟁이 발생할 때 이를 조정할 수 있는 장치도 마련하기도 했다.

멕시코 정부는 NAFTA의 이점을 국민들에게 선전하면서 이 협정을 통해 대미 무역을 확대하고 광대한 북미시장을 개척할 수 있으며, 그에 따라 고용의 기회도 증가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무엇보다도 멕시코 정부는 NAFTA를 계기로 외국인투자에 대한 규제와 법률이 철폐되면 마킬라도라(면세 부품과 원료를 수입·조립해 완제품을 수출하는 멕시코 국경지대 공장지역), 에너지, 금융 등에서 외국인직접투자(FDI)가 늘어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리 정부도 한미 FTA를 체결하면 국내로 유입되는 외국인직접투자가 증가해 우리나라가 동북아 금융허브로 성장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멕시코 정부는 미국이 자국의 취약산업인 섬유, 의류, 보조농업에 대한 관세 및 비관세 장벽을 유지하고 이를 2009년까지 단계적으로 철폐하도록 허용하는 아량까지 베풀었다. 당시 멕시코산 수입품에 대한 미국의 관세는 평균 4% 수준이었던 데 비해 멕시코의 관세는 11% 수준이었다. 이는 현재 한국 제품에 대한 미국의 관세는 평균 1.5% 수준인 데 비해 한국의 관세는 7.2% 수준인 것과 비슷하다.

멕시코 정부는 NAFTA의 이런 효과들로 미국의 관세가 거의 철폐되는 2009년에는 고용이 6% 증가하고 실질소득도 12%나 그 이상으로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이것도 최근 우리 정부가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의 연구 결과를 인용해 한미 FTA가 체결되면 GDP가 2~7% 증가하고 일자리도 10만 개 이상 더 창출될 것이라고 선전하고 있는 것과 유사하다.

***미국경제에 거의 종속된 수준**

멕시코 정부의 전망은 어떤 의미에서는 그리 틀리지 않았다. 대미 수입과 대미 수출이 증가했고, 해외투자가 미국에 집중됐으며, 미국에 대한 관세 및 비관세 장벽이 거의 다 철폐됐다.

2003년 현재 멕시코의 수출품 중 90%가 미국으로 간다. NAFTA를 체결하기 이전인 1990년에는 이 비율이 79%였다. 또 1990년 초반에는 65% 수준이었던 수입품 중 미국산 제품의 비중이 2003년에는 85%까지 확대됐다. 또 멕시코의 해외투자 중 4분의 3이 미국으로 향하고 있다. 한편 멕시코의 관세는 2003년 현재 평균 2% 수준으로 떨어졌고 쿼터제, 수입인증제 등 기타 비관세 장벽들은 모두 사라졌다. 멕시코 정부가 NAFTA 체결을 통해 꿈꾸던 것들이 거의 다 이뤄진 셈이다.

그러나 이렇게 NAFTA를 계기로 미국 경제에 대한 멕시코 경제의 구조적 의존이 깊어지면서 멕시코는 미국에서 상대적으로 가벼운 경기후퇴가 일어나도 엄청난 경기침체를 겪게 되는, 이른바 '경제 동조화' 현상으로 고통받기 시작했다.

2001~2002년 미국에서 경기가 침체되기 시작하자 멕시코의 생산과 고용은 격감했다. 2001년 국내총생산(GDP)은 1% 감소했고 1인당 GDP는 2.5%나 떨어졌다. 특히 NAFTA의 체결로 크게 성장했던 마킬라도라 지역에서는 생산과 고용이 각각 9.2%, 20% 감소했다. 대미 수출도 4.9% 감소했다.

게다가 이런 미국과의 경제 동조화 현상은 최근 미국 경제가 천문학적인 수치로 쌓인 쌍둥이 적자와 끝이 보이지 않는 이라크전 전비 지출로 휘청이면서 멕시코 경제의 가장 큰 걱정거리 중 하나로 급부상했다.

***외자 증가?…미국계 투기자본 유입은 확실히 늘어났다**

물론 멕시코 정부의 전망대로 NAFTA가 체결된 뒤에 멕시코의 외국인투자, 특히 외국인직접투자(FDI)가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1985년부터 1993년까지 모두 33억 달러에 지나지 않았던 멕시코의 외국인직접투자 유입액은 1994년부터 2000년 사이에는 그 세 배 이상인 113억 달러로 껑충 뛰었다.

그러나 1990년대부터 외국인투자가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한 것은 1982~1988년의 미구엘 정부와 1988~1994년의 살리나스 정부가 추구한 자유화, 탈규제화, 민영화 정책이라는 보다 큰 틀에서 봐야 한다는 것이 대다수 멕시코 전문가들의 견해다. NAFTA는 이런 흐름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일 뿐 외국인투자를 증가시킨 독자적인 변수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렇게 해서 늘어난 외국인투자 중 상당 부분이 주식시장에서의 단기차익이나 적대적 기업인수합병(M&A)을 통한 시세차익을 노리는 포트폴리오성 단기투자로 판명됐다. 1993년 멕시코에 유입된 외국자본 170억 달러 중 약 70%가 주식시장으로 유입됐고 공장, 기계, 설비 등에 투자된 직접투자 금액의 비중은 30%에 불과했다.

물론 멕시코의 외국인직접투자가 1990년대에 비약적으로 늘어난 것만은 사실이고, 한국 정부도 바로 이 사실을 들어 한미 FTA를 체결할 경우 우리나라로 외국자본이 더 많이 유입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외국인직접투자의 증가 효과는 실제보다 과장됐다는 것이 멕시코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멕시코에 유입된 외국인직접투자 중 상당 부분이 결국 미국에 있는 모회사에 이윤과 배당의 형태로 되돌아갔기 때문이다.

1990년대 멕시코로 흘러든 외국인직접투자 중 순수하게 총 고정자본 형성에 기여한 자본의 비중을 계산해보면 이런 사실이 잘 드러난다. 1990년부터 10년 동안 멕시코에 유입된 총 외국인직접투자 금액 중 55.6%에 해당하는 금액이 미국 등으로 다시 유출됐다.

표 삽입-〈총고정자본형성 대비 외국인직접투자(FDI) 유입액(%), 1990~2000년〉

게다가 그나마 증가세를 보이던 외국인직접투자도 1998년 이후에는 감소세로 돌아섰다. NAFTA가 '장기적'으로 외국자본을 끌어당기는 유인이 될 것이라던 멕시코 정부의 주장이 틀렸음이 증명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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