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켄슈타인과의 동거 계약서"
[공무원을 위한 FTA 해설서·1] 한미FTA로 공무원 업무지침 사라져
2007.05.25 10:02:00
"프랑켄슈타인과의 동거 계약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정문 공개에 맞춰 송기호 통상 전문 변호사가 '공무원을 위한 한미 FTA 해설서'를 연재한다. 굳이 '공무원'을 특정 대상으로 하는 이유는 송 변호사가 보기에 한미 FTA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하는, 또한 이 협정으로 인한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을 공무원들이 정작 협정문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송 변호사가 제시하는 한미 FTA 해설서는 곧 모든 공무원들의 책상 위에 놓일, 정부의 일방적인 선전과 홍보를 담은 해설서가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공무원용 해설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송 변호사의 해설서가 공무원들을 위한 것만은 아니다. 일반 독자들이 이 해설서를 읽을 경우에는 한미 FTA를, 특히 투자 분야의 협상 내용을 새로운 각도에서 보고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편집자>


한미 FTA 협정문(이하 '협정문')이 오늘 공개되었습니다. 매우 방대한 분량의 국제계약서입니다. 국제계약 분야의 변호사들도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협정문의 내용과 효과를 가장 정확히 알아야 할 대표적인 집단이지만, 막상 가장 막연히만 알고 있는 두 집단이 있습니다. 바로 공무원들과 기업 오너들입니다.

상당히 많은 공무원들은 한미 FTA 협정문의 발효가 자신들의 업무 처리에 어떤 영향을 줄지 아직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저 '미국인 투자자를 한국인에 비해 차별하지 않으면 되겠지'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기업 오너들은 이 협정으로 인해 자신의 경영권이 투기자본의 공격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번 연재는 주로 공무원들을 위한 것이고, 일부는 기업 오너들을 위한 것입니다.

협정문에는 다음과 같은 취지의 조항이 있습니다.
<표 1>
각 당사국은 이 협정에 따라 이 절에 따른 중재에 청구를 제기하는 것에 동의한다. (…) 분쟁당사자의 서면 동의에 의한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협약 제2장(센터의 관할권)과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 추가절차규칙의 요건, 그리고 "서면 합의"를 위한 뉴욕협약 제2조의 요건. (제11.17조)
[국가는 투자자의 국제 중재 회부에 동의하며, 이 동의는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의 관할권에 대한 서면 동의와 같은 효력을 갖는다-편집자 주]

<표 1>의 조항을 이해하는 것이 협정문 이해의 출발입니다. 왜냐면 이 조항은 교사와 군인을 제외한 모든 공무원의 업무에 적용되는 가장 광범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공무원들 가운데는 협정문의 투자 조항이 외국인투자 유치를 담당하는 공무원들에게만 적용되는 줄 아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협정문은 매우 광범위한 개념의 재산권을 투자로 인정합니다. 그리고 투자 전 단계와 투자 후 단계를 모두 다 협정 적용 대상으로 합니다. 한국의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의 공무원들 가운데 투자 조항의 적용을 받지 않을 공무원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표 1>의 조항은 협정문에서 가장 중요하면서 가장 어려운 조항의 하나입니다. 먼저 '중재' 또는 '중재판정'의 개념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당사자들이 법원의 3심 재판절차를 포기하고, 그 대신 스스로 선정한 중재인들의 단 한 차례의 판정에 분쟁을 맡기는 것입니다.

이 절차의 특징은 당사자들의 합의 없이 개시될 수 없는 점입니다. 즉, 중재에 회부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중재에 동의한다는 합의서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이 점에서 절차 개시에 상대방의 동의가 필요 없는 재판과는 다릅니다. 소송을 하는 데에 상대방이 재판 받는 것에 동의한다는 합의서는 필요 없습니다.

<표 1> 조항은 '중재 동의서'에 해당합니다. 이 조항에 있기에, 투자자는 국가의 규제를 중재에 회부할 수 있습니다. 공무원들의 행정 업무가 투자자에 의해 국제 중재에 회부당하는 것입니다.

<표 1> 조항에서의 '동의'란, 세계은행(World Bank) 산하 '국제투자분쟁처리센터(ICSID)' 등과 같은 국제중재기관의 관할권을 미리 포괄적으로 동의해 준다는 뜻입니다. 바로 이 부분이 협정문의 성격을 결정하는 특징적 내용입니다. 좀 어렵겠지만, 이 조항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표 1> 조항이 협정문에 들어간 이유는 오늘날 외국인 투자자와 국가 사이의 분쟁에 대한 국제투자분쟁처리센터의 관할권을 미리 포괄적으로 동의해 주는 국제적 조약이 기왕에 존재하기 않기 때문입니다.

한국이 가입한 '국제투자분쟁처리센터에 관한 조약'은 국가의 서면 동의가 있을 때에만 센터가 관할권을 가진다고 돼 있습니다. 이는 투자자가 국가를 센터의 국제 중재에 회부하려 할 경우 국가가 이를 동의해야만 센터가 관할권을 가지고 중재를 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 1931년 영화 <프랑켄슈타인>에 나온 프랑켄슈타인의 모습. ⓒ연합뉴스

이처럼 센터의 관할권을 국가가 사전에 포괄적으로 인정하는 국제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표 1> 조항은, 국가의 서면 동의가 없으면 센터의 관할권 자체가 발생하지 않은 국제법 현실에서, 국가가 센터에 관할권을 포괄적으로 사전 부여하는 서면 동의 조항입니다.

이 조항이 있기 때문에, 장차 그 어떠한 투자자도 국가의 서면 동의를 따로 받을 필요가 없게 됩니다. 표 1의 조항은 투자자가 언제든지 센터의 문을 열 수 있는 '만능열쇠'입니다. 이 조항이 없는 센터를 '한국이 언제든지 거부할 수 있는 프랑켄슈타인'에 비유한다면, 이 조항은 '프랑켄슈타인과 한국의 동거 명령서'라 할 수 있습니다.

<표 1> 조항은 투자자가 선택만 하면 공무원들의 업무가 국제중재에 회부되도록 하는 조항입니다. 이 조항만 없다면 그 선택권은 여전히 한국에게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이 조항은 '중재 개시 선택권이 한국 정부에서 투자자로 넘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마도 여기까지는 상당수의 공무원들도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펴보지 않으면 안 될 본질적 조항이 아래와 같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표 2>
중재판정부는 이 협정과 적용가능한 국제법 규칙에 따라 분쟁 중인 쟁점을 결정한다. (제11.22조 1항)

이 조항의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요? 바로 '국내법이 배제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공무원 여러분들이 협정문을 막연히만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국내법을 배제하는' 내용의 이 조항이 어떤 의미와 효력을 가지는지를 제대로 알고 있는 공무원들을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공무원 여러분의 책상 위에는 언제나 업무 관련 법령집이 놓여 있습니다. 여러분의 업무는 한국의 헌법과 법령에 근거해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표 2> 조항에 따라, 한국의 헌법과 법령은 여러분이 투자자의 민원을 처리하는 업무를 수행할 때 그 정당성을 부여받을 수 없게 됩니다.

국제중재 시 국내법이 배제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알려면, 국제중재 판례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2003년 한 외국기업이 멕시코 공무원에게 허가 갱신을 신청했다가 불허받자 이에 맞서 멕시코 정부를 국제중재에 회부한 '텍메드 사건'(사건의 자세한 내용은 다음에 소개하겠습니다)에서 국제 중재부는 멕시코 공무원이 허가 갱신을 불허 처분한 것이 멕시코 국내법 기준으로 적법하고 정당한 것이라도, 이는 중재부의 주된 고려사항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2003년 5월 29일 선고 판정문 116항, 119항, 120항.)

2002년 '몬데브 사건'과 2003년 '에이디에프' 사건에서도 각 중재부는 자신들에게는 문제가 된 국가 규제가 국내법적으로 정당한지를 검토할 권한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몬데브 판정문 136항, 에이디에프 판정문 190항)

투자자의 민원은 매우 광범위합니다. 그러나 이들의 민원을 처리하는 여러분의 업무가 정당한지 아닌지는 이제 협정문과 국제법에 의해서 판단됩니다. 한국의 헌법과 법령을 근거로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협정문과 국제법에 따라 업무를 처리하면 되지 않느냐고요? 그런데 이 점을 잘 알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의 업무가 운송 사업을 허가해 주는 것이라고 합시다. 여러분이 이 업무에 적용할 '운송사업 허가 규정'은 협정문이나 국제법에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

대신 협정문은 '공정·공평한 대우', '국제법의 최소기준 대우', '완전한 보호와 보장 대우' 등과 같은 추상적인 표현으로 여러분이 투자자에게 해줘야 할 대우를 규정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이 의미는 무엇이고, 도대체 어느 국제법전에 근거해야 여러분의 업무는 이런 대우를 지킨 것이 될까요?

그러나 여러분의 책상 위에 놓인 법령집의 내용처럼 이런 대우 기준을 구체적으로 정해 놓은 국제조약이나 국제법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는 너무나 당연합니다. 재산권 보호에 대한 판단 기준이 각 나라의 헌법마다 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가령, 한국처럼 비좁은 나라에서는 토지 재산권에 대한 경제적 규제가 부득이합니다. 한국의 토지거래 허가제는 한국적 특성의 산물입니다. 그러나 호주처럼 넓은 토지를 가진 나라에서는 환경 규제 외에는 사실상 토지의 거래 및 이용에 대한 규제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각 나라가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재산권 대우에 대한 국제법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제중재 판정에서 분쟁 발생 국가의 국내법 적용을 배제하는 국제조약도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처리센터 설치 조약에서도 국내법이 국제법과 함께 적용됨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25조 1항)

투자자의 국제중재 회부는 국가 대 국가 사이의 조약 분쟁이 아니기 때문에 국제법과 국내법을 동시에 중재 판정에 적용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국제법상 국가는 다른 국가의 국내법 적용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국가와 국가 사이의 분쟁에서는 국내법이 적용되지 않지만, 투자자는 국내법의 적용을 받기로 하고 국내에 들어와 경제활동을 하는 경제주체이므로 그 투자자와 관련된 국제중재에서는 국내법이 적용되는 것입니다.

<표 2> 조항은, 이런 국제조약에도 불구하고, 국내법을 중재판정에서 원천적으로 배제하는 조항입니다. 이는 헌법과 법령에 대한 이혼 명령서입니다. 미국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나프타) 1131조를 그대로 심어 놓은 조항입니다.

여러분의 업무가 투자자와 관련된 이상 그 업무의 정당성은 국내 헌법과 법령 대신 법전도 없는 국제법에 따라 판단되게 됩니다.

한국의 헌법과 법령 대신 국제법에 따라 투자자의 민원을 처리하는 공무원이 되신 것이 자랑스러운가요? 그러나 이 자긍심을 잠시만 미뤄두기 바랍니다. 다음 글에서 '국제법 대우' 기준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난 뒤에 판단을 해도 늦지 않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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