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씨 부자'가 손을 떼야 '삼성'이 산다"
홍성태의 '세상 읽기' <13> '삼성공화국' 폐지돼야 한다
"'李씨 부자'가 손을 떼야 '삼성'이 산다"
삼성재벌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또 다시 삼성재벌의 문제를 둘러싸고 온 나라가 들썩이고 있다. 그 동안 삼성재벌은 온갖 불법과 의혹으로 숱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런데 이번에는 상황이 훨씬 심각하다. 삼성재벌에서 법무팀장으로 일했던 김용철 변호사가 자신이 챙겨놓은 각종 자료와 겪은 일들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1970년대에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 났나'라는 노랫말의 노래가 유행했었다. 급속한 산업화로 배금주의가 만연한 세태를 비판적으로 풍자하는 노래였다. 그 뒤로도 이 문제는 계속 악화되었다. 그 결과 마침내 온갖 죄를 짓고도 돈만 있으면 해결되는 현실 앞에서 사람들은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을 매일같이 되뇌게 되었다. 온갖 죄를 지은 '죄벌'이 가장 돈이 많은 '재벌'이 되는 상황이야말로 이러한 반사회적 문제의 원천이다. '삼성공화국'은 이러한 상황에 대한 강력한 비판의 뜻을 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삼성공화국'이 아니라 '삼성왕국' 또는 '이건희 왕국'이라고 말한다. 정말로 그렇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건희 회장을 신처럼 또는 교주처럼 떠받드는 것은 삼성재벌의 가장 중요한 경영방식인 것 같다. 그런데 바로 이 때문에 '삼성공화국'이라는 말은 심각한 비판적 의미를 지닐 수 있다. 공화국은 주권자의 범위에 따라 귀족공화국과 민주공화국으로 나뉘기는 하지만 아무튼 주권자의 토론과 합의를 통해 운영된다. '삼성공화국'이라는 말은 삼성재벌이 전혀 공화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한다.

사실 '삼성공화국'의 실상과 문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우선 1994년에 이건희 회장의 독단적 결정에 의해 삼성자동차가 설립되고, 이 때문에 삼성재벌은 물론이고 한국 경제가 휘청거린 일을 떠올려야 한다. 그리고 불과 16억 원의 세금만을 내고 삼성재벌을 아들 이재용 상무에게 상속한 것은 삼성재벌이 법을 얼마나 우습게 여기고 있는가를 보여준 대표적 사건이었다. 가장 거대한 기업이 법을 우스갯거리로 만들었어도 사법부는 이에 대해 무기력하기만 하니 사람들이 법을 믿을 리 없다.

삼성재벌은 이미 창업자인 이병철 회장 때부터 정경유착과 편법탈세로 이름이 높았다. 그 기술이야말로 세계적인 특허를 낼 만한 것인지 모른다. 2003년에 SK 비자금에 관한 수사가 이루어졌는데, 이 수사는 2002년 대선의 불법자금 수사로 확대되었다. 삼성재벌은 한나라당에 152억 원을, 민주당에 30억 원을 제공한 것으로 밝혀졌다. 한나라당에 제공한 152억 원 중에서 112억 원은 책 속에 채권을 감춰서 마치 책을 주는 것처럼 건네는 '책떼기' 수법이 사용되었다. 현대와 LG의 '차떼기'와 달리 삼성은 '책떼기'를 사용했던 것이다.

오늘날 삼성재벌은 매년 15조 원 정도의 세전이익을 올리는 세계적 대기업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엄청난 부정과 불법이 저질러지고 있으며, 그 결과 이 나라 자체가 항상적 위기 속에 놓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문제의 근원은 삼성그룹을 삼성재벌로 만드는 전근대적 총수체제에 있다. 원천적으로 성립할 수 없는 총수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이건희 회장은 이 나라 자체를 '삼성공화국'으로 만들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정경유착과 편법탈세는 그 핵심적 방식이다.

2005년 6월, '삼성공화국'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밝혀주는 자료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문화방송의 이상호 기자가 태평양을 몇 차례나 오가며 미국에서 어렵게 구한 그 자료는 '삼성X파일'로 알려졌다. 그것은 1997년 9월에 안기부에서 삼성재벌의 이학수 부회장과 중앙일보의 홍석현 회장이 나눈 사적 대화를 녹음한 자료였다. 이 자료에서 우리는 이건희 회장의 지시를 받아 두 사람이 당시 이회창 후보와 김대중 후보에게 어떻게 불법자금을 제공했는가, 나아가 삼성재벌이 이 나라를 어떻게 요리하고 있는가를 엿볼 수 있다.

'삼성X파일'은 참으로 희귀한 보물급 사료가 아닐 수 없다. 이 자료는 시급히 문화재로 지정해야 한다. 우리는 이 자료에서 국가의 정보기관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가를, 그리고 민주화와 함께 재벌이 어떻게 국가권력을 능가하게 되었는가를 알 수 있다. 그런데 '삼성X파일'이 가장 잘 보여준 것은 바로 이건희 회장의 힘이다. 그는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언터처블'이다. 정몽구 회장, 최태원 회장 등 다른 재벌의 총수들이 줄줄이 감옥에서 썩을 동안 그는 일본이나 미국에서 유유히 새로운 정경유착을 모색하며 쉬었다.

또 다시 '삼성공화국'의 문제가 크게 불거졌다. 지난 10월 29일 김용철 변호사는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을 통해 서울의 제기동 성당에서 양심선언을 했다. 김 변호사는 삼성재벌이 자기도 모르게 자기의 이름으로 차명계좌를 개설해서 50억 원 가량의 현금을 입출금했다고 발표했다. 여기서 나아가 김 변호사는 삼성재벌이 전현직 임원의 차명계좌를 이용해서 천문학적 금액의 비자금을 조성하고, 그것을 정계는 물론이고 사법부, 행정부, 언론계, 학계에 뿌려서 나라 전체를 매수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11월 5일, 김 변호사는 사제단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어서 자신의 심경을 밝히고 삼성재벌의 개혁을 촉구했다. 그에 대한 여러 부정적 견해들이 떠돌고 있기도 하지만 사제단이 밝히고 있듯이 그의 진정성은 분명한 것 같다.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삼성재벌의 문제는 너무나 크다. 김 변호사와 그 가족에게 준 고통만 하더라도 그렇다. 삼성재벌은 모든 걸 부정하고 있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욱 의심스럽다. 꼬리 아홉 달린 여우가 온갖 재주를 부리다가 문득 본모습을 드러내고는 스스로 놀라 날뛰는 것 같다.

꼬리가 길면 밟히고,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지는 법이다. 2005년 8월에 참여연대는 '삼성보고서'를 발표했다. 그 핵심은 삼성재벌이 정계, 관계, 법계, 학계, 언론계 등에 엄청난 인맥을 형성해서 사실상 스스로 국가가 되고자 한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삼성재벌은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자 위협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마도 삼성재벌은 '삼성보고서'를 우습게 여겼을 것 같다. 이미 오래 전부터 검찰은 '삼성의 검찰'이라는 비판을 듣고 있기 때문이다. 정말 삼성재벌 앞에서 검찰은 너무 작아져서 아예 보이질 않는다.

지난 주말에 공개된 '회장 지시사항'을 보니, 이건희 회장은 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들도 얼마든지 돈으로 매수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나는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이렇게 현실을 모르는 사람이 '천재경영론'을 외치고 다닌다는 말인가? 하긴 그와 그의 아들이 삼성재벌의 총수가 된 것은 천재이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아무튼 이제 모든 책임은 검찰에게 넘어갔다. '삼성의 검찰'이라는 의혹을 재확인해 줄 것인가, 아니면 '국민의 검찰'로서 '삼성공화국'이라는 희한한 조직의 폐지에 적극 나설 것인가?

사족 한마디. '삼성공화국'의 폐지는 삼성그룹의 해체를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만악의 근원인 전근대적 총수체제를 폐지해서 전근대적 삼성재벌이 세계적인 삼성그룹으로 진정 거듭나는 것을 뜻한다. 온갖 죄를 짓고 경제를 농락하며 부를 누리는 재벌의 총수는 사회적 대타협이 아니라 그저 전면적 개혁의 대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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