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기술유출범?"…누명 쓰는 개발자들
[IT 일상다반사] '국익지상주의'가 남긴 상처
2010.08.24 07:46:00
"내가 기술유출범?"…누명 쓰는 개발자들
전남대 물리학과 이형종 교수. 미국 벨 연구소와 루슨트 테크놀로지에서 일했던 그는 광집적회로(OIC, Optical Integrated Circuit) 분야 전문가다.

학자로서의 이력을 차곡차곡 쌓아가던 그의 삶은, 지난 1999년 변곡점을 맞는다. 온 나라가 '벤처 열풍'에 휩싸였던 때다. 당시 그는 자신의 전공 분야 기술을 사업화하는 벤처기업을 차렸다. 그 무렵 유행하던 실험실 벤처였다. 직원 대부분이 이 교수가 가르치던 대학원생이었다.

악몽의 시작…지명수배된 대학 교수

그러나 학자가 사업가로 변신하기란 쉽지 않았다. 투자자와 갈등이 생겼고, 결국 이 교수는 대표이사직을 관뒀다. 그게 2002년 말이다. 제자들도 뒤따라 퇴사했다. 문제는 그 다음에 터졌다. 얼마 뒤, 이 교수는 오스트레일리아의 한 전자공학 교수와 공동연구를 하게 됐다. 당시 이 교수는 본업인 연구에만 전념할 생각이었고, 실제로도 그랬다.

그런데 2005년 4월, 이 교수가 떠났던 그 벤처기업이 이 교수와 그의 제자들을 검찰에 고소했다. 이 교수와 그의 제자들이 오스트레일리아 교수와 공동 연구하는 과정에서 이 벤처기업의 핵심기술을 빼돌렸다는 게다. 악몽의 시작이었다.

검찰은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1심 법원은 혐의를 인정해서 이 교수와 그의 제자 5명을 모두 유죄로 판결했다. 언론에서는 난리가 났다. 진보, 보수 매체를 가리지 않고 천편일률적인 기사가 쏟아졌다. 이 교수는 졸지에 '지능적 수법으로 국부(國富)를 유출한 파렴치범'이 됐다. 당시 이 교수는 공동연구 때문에 오스트레일리아에 머물고 있었다. 그는 지명수배범 명단에 올랐고, 귀국과 동시에 구속됐다. 대학 당국은 법원 판결까지도 기다리지 않았다. 검찰이 기소하고 여론이 들끓자 바로 교수 직을 정지시켰다.

사건의 전모를 차근차근 따져보려는 이는 없었다. 대부분 일단 나쁜 놈 취급하고 보는 식이었다. 이 교수를 고소한 회사 측이 유출됐다고 주장하는 기술은 대학생 교재 수준이라는 점, 그래서 해당 분야 전문가들에게는 상식이라는 점은 안중에 없었다. 기자도, 검사도, 판사도, 심지어 대학당국도 다 마찬가지였다.

끔찍한 3년이 지나고, 이 교수와 제자들은 다시 법정에 섰다. 2008년 4월, 광주지법 형사항소3부는 이 교수와 제자들 전원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항소심 법원은 "이 교수와 제자들이 개인 노트북 등에 가지고 있던 자료들은 이미 공개된 내용이며 영업 비밀에도 해당하지 않는다"라고 판시했다. 그리고 3개월 뒤, 대법원 역시 같은 판결을 내렸다. '이형종 외 5명, 무죄.' 그리고 끝이었다. 이 교수를 파렴치범으로 몰았던 언론은 잠잠했다. 대학에는 복직했지만, 잃어버린 명예는 회복할 길이 없었다. 제자들이 입은 상처는 더 컸다. 연구자 인생의 출발선에서 발이 묶여 버렸다.

그렇다면 이 교수와 제자들이 1000억 원대 기술을 유출했다며 고소했던 벤처기업 사장은? 지금도 멀쩡하게 사업을 하고 있다.

기술 유출 사건 무죄율, 평균치의 63배…'개발자 누명 씌우기'가 대부분

▲ <도난당한 열정-그들은 정말 산업스파이였을까>. 이 책에는 기술유출범이라는 누명을 쓴 개발자들의 사연이 다양하게 소개돼 있다.
영화 같은 이야기다. 그런데 이런 일이 현실에서 흔하다. 책 한 권을 거뜬히 묶어서 낼 만큼 흔하다. 윤건일 <전자신문> 기자가 쓴 <도난당한 열정-그들은 정말 산업스파이였을까>(<도난당한 열정>)에는 이런 사례가 빼곡하다. 그리고 이런 일이 특히 흔한 분야가 IT업종이다. 기업은 신기술 확보에 사활을 걸고, 개발자들은 직장을 자주 옮긴다는 특징 때문이다.

방식은 늘 똑같다. 근무 여건이나 급여가 불만족스러운 개발자는 회사를 옮기고 싶어 한다. 그 개발자가 유능하다면, 회사는 그를 붙잡으려 한다. 그래도 굳이 떠나겠다면, 회사 입장에선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대부분의 회사는 그냥 놔준다.

그러나 일부 악덕업체가 있다. 이들 기업 경영자는 놀부 심보가 된다. 내가 쓰지 못하는 인력이라면, 남도 못쓰게 하겠다는 게다. 또 회사에 남아 있는 다른 개발자들이 딴 마음을 먹지 못하도록 본보기를 만들 필요도 있다. 그래서 쓰는 수단이 기술 혹은 영업 비밀을 유출했다는 혐의로 고소하는 것이다. 그 다음 과정은 대개 뻔하다.

이렇게 접수된 사건 가운데 개발자가 실제로 기술을 유출한 경우는 드물다. 대개는 전혀 예상치 못한 상태에서 소송에 휘말린다. 그래서 이들 사건 가운데 대부분은 무혐의 처리 된다. 혐의가 인정돼 기소가 돼도, 법원이 무죄 판결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 <도난당한 열정>에 따르면, 지난 10년 간 기술유출 사건에 대한 1심 무죄 선고율은 11.95%다. 이는 같은 기간 전체 사건의 1심 무죄 선고율인 0.19%의 63배에 달한다.

설령 유죄가 확정된 경우도 형량이 가벼운 편이다. 이들이 산업스파이가 아닌 한, 고의성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거의 대부분 집행유예로 풀려난다.

법원이 유독 기술유출 사범에게 관대한 걸까. 그럴 리는 없다. 오히려 반대일 가능성이 크다. 국민 여론은 기술유출에 대한 강도 높은 처벌을 원하는 쪽이다. '국익 지상주의'에 사로잡힌 언론은 한술 더 뜬다. 법관이라고 해서, 이런 정서로부터 자유로울 리는 없다. 그럼에도 무죄율이 높다는 점은, 기술유출 혐의 가운데 상당수가 '누명'이라는 점을 입증한다.

'산업보안' 강조하는 국정원의 속내

이런 사건의 주연은 해당 기업 경영진이다. 그리고 이들은 고소만으로 목적을 달성했다. 길고 지루한 수사와 재판은 결과와 관계없이 개발자를 위축시킨다. 설령 무죄가 확정됐다고 해도 말이다. 경영진 입장에선 내부 직원들에게 충분한 경고를 보낸 셈이 된다.

그런데 여기서 빠뜨릴 수 없는 조연이 있다. 바로 국가정보원이다. 군사독재가 끝난 뒤, 국정원은 정체성 변화를 겪었다. 과거 이뤄졌던 정치공작의 빈자리를 메운 게 기업을 돕는 역할이다. 정권교체와 맞물렸던 IMF 외환위기는 이런 변화에 정당성을 심었다. 새로운 역할 가운데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산업보안'이다. 국내 기업의 핵심 기술이 해외로 유출되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국정원은 지난 2003년 10월 산업기밀보호센터를 설립했다. 국정원 안에서 기술유출 사건을 전담하는 기구다.

이런 변화는 국정원 요원을 소재로 삼은 영화 '7급 공무원'에서도 잘 나타난다. 국내 기술의 해외 유출을 막으려 애쓰는 국정원 직원이 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그러나 국정원의 이런 역할이 순수하게 '경제 살리기'만 겨냥한 것은 아니다. '기술 유출 사범'을 잡아냈다는 국정원의 발표에는 늘 이런 설명이 따른다. "기술 유출 범죄는 날로 지능화, 첨단화하고 있다. 이를 막으려면 국정원의 감청 권한이 강화돼야 한다." 기술 유출 단속을 핑계로 사실상 무차별 감청을 하겠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이런 감청 기능이 꼭 기술 유출 단속을 위해서만 쓰인다는 보장도 없다.

▲ 영화 '7급 공무원'의 한 장면. 국내 기술의 해외 유출을 막으려 애쓰는 국정원 직원이 주인공인 영화다.

"3000억 원짜리 회사에서 15조 원이 유출됐다?"

지난 2007년 5월 국정원이 발표한 기술 유출 사건이 딱 이런 경우다. 당시 국정원은 "15조 원 가치의 '와이브로 기술'이 미국으로 샐 뻔 했다"며 "국부 유출을 막기 위한 법 개정이 시급하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냈다. 문제의 기술은 포스데이타 전직 연구원이 개발했다. 그런데 여기에 모순이 있다. 국정원의 설명대로라면, 이 기술은 원래 포스데이타의 것이다. 그렇다면, 기술 소유주인 포스데이타의 기업 가치는 해당 기술의 가치보다 커야 자연스럽다. 하지만 당시 이 회사의 매출은 3379억 원, 자산 총계는 2701억3800만 원, 자본금은 407억 7600만 원 규모였다.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다. (☞관련 기사: 국정원은 '무제한 감청'의 길 열려 한다)

황당한 일은 또 있다. 보도자료가 나온 다음날, 거의 모든 일간지가 이 사건을 보도했다. 그런데 내용이 똑같았다. 모두 국정원의 보도자료를 그대로 요약했을 뿐이다. '자산이 3000억 원 이하인 회사에서 유출된 기술이 어떻게 15조 원일 수 있느냐'라는 당연한 의문은 설 자리가 없었다.

보도자료 속 모순은 국정원의 성과 부풀리기에서 비롯됐다. 김만복 당시 국정원장은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에 사활을 걸고 있었다. 국정원의 감청이 제도적으로 보장되는 법안이다. 이런 법안의 필요성을 강조하려면, 기술 유출의 위험을 과장해야 했다. 그러자면 유출됐다는 기술의 가치는 클수록 유리했다.

'비즈니스 프렌들리' 시대의 검찰도 비슷한 양상을 띤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본부는 지난 2005년 2월 기존 '컴퓨터수사과'를 '첨단범죄수사과'로 확대개편했다. 기술 유출 사건은 이곳에서 담당한다. 수사 결과를 포장하려면, 유출된 기술의 가치를 부풀려야 했다. 기술 유출 사건에서 유난히 높은 무죄율은, 검찰의 이런 행태를 법원이 꿰뚫어봤기 때문이기도 하다.

회사 입장에서도 이런 식의 과장이 나쁠 게 없다. 회사가 입은 피해 규모가 클수록, 이후 진행될 법정 분쟁에서 유리해진다. 회사가 승소할 경우 보상액 역시 커진다. 그래서 모든 기술 유출 사건에서 회사 측은 피해 규모, 즉 유출된 기술의 가치를 부풀리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언론은 이처럼 부풀려진 수치를 그대로 인용한다. 보도를 접한 대중은 흥분한다. 망국과 빈곤, 압축적 근대화를 경험한 우리 국민에게 과학기술은 아직도 국력의 상징으로 통한다. 과거 군사정부가 과학기술 진흥 구호를 국가주의 선동이나 체제 정당성 확보 차원에서 활용했던 것도 한 이유다. 그러니 기술 유출 보도에 뜨거운 반응을 보일 밖에. 그리고 뜨거운 반응을 싫어하는 언론은 없다.

그렇다면, 앞서 포스데이타 사건에서 유출된 와이브로 기술의 실제 가치는 얼마로 봐야할까. 기술은 무형자산이므로 정확한 가치를 계산하기가 쉽지 않다. 다만 분명한 것은 지난해까지 와이브로 기술로 포스데이타가 일으킨 매출의 총계가 약 200억 원이라는 점, 그리고 포스데이타는 지난 2009년 와이브로 관련 사업을 접었다는 점이다. 경제성이 없다는 게 이유였다.

늘 이런 식이다. 기업은 개발자들의 발을 묶어서 싼값에 부려먹으려 든다. 수사기관은 '비즈니스 프렌들리' 시대에 어울리는 실적을 원한다. 그래서 이들은 각각 나름의 이유로 기술유출의 위험을 과장한다. 언론은 이를 그대로 받아서 선정적으로 보도한다. 그럼 국익지상주의에 물든 대중은 흥분한다.

기술유출, 꼭 통제로만 막아야 하나…"직무발명 보상, 강화해야"

이런 현실은 언제까지 이어질까. 대기업 경영진을 상대로 법률 자문을 하는 한 로펌 변호사는 "권리 위에서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는 법률 격언으로 말문을 열었다. 개발자 스스로 권리에 눈 뜨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게다. 그는 "개발자 출신 경영자가 늘어난다고 해서, 개발자의 처지가 나아지리라고 믿는다면, 너무 유치한 생각"이라고 말했다. 법률 자문을 하며 만난 기업 경영진 가운데는 기술 개발로 직장 경력을 시작한 이들이 꽤 있었지만, 그들 역시 다른 경영자와 마찬가지였다는 설명이다. 경영자는 개발자를 묶어두고 쥐어짜는 방향으로 이해관계가 짜여있다는 게다. 이를 견제하는 힘이 없다면, 개발자 인권 보호는 영영 불가능한 일이 된다. 이 변호사의 이어진 설명이다.

"기술 유출을 막는 법률적 장치는 크게 두 종류다. 하나는 '산업기술의 유출 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기밀 보호에 관한 법률' 등이다. 개발자들이 취업할 때 작성하는 고용계약에 종종 포함돼 있는 전직 금지 조항(개발자가 퇴사 이후 2년 동안 경쟁사로 옮길 수 없다는 조항)도 비슷한 역할을 한다. 이는 모두 규제를 통해 기술 유출을 막겠다는 취지다. 그런데 이들 규제 장치는 아주 조심스럽게 적용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개발자의 기본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크다.

다른 하나는 직무발명(임직원이 직장 업무를 통해 이룬 발명, 업무와 관계없이 이룬 발명인 '자유발명'과 대비되는 개념이다)에 대한 보상을 강화하고 이를 제도화하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규제장치와 달리 인센티브를 통해 기술 유출을 막는다는 것이다. 기술 유출 사건이 터질 때마다 정책 대안으로 거론되곤 했다. 실제로 정부 기관 및 국책 연구소는 직무발명에 따른 수익 가운데 일정 비율을 해당 개발자에게 주도록 돼 있다. 그리고 이런 제도는 꽤 효과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민간 기업에서 이를 의무화하기는 어렵다. 자율적으로 도입해야 하는데, 기술유출 방지에 관한 한 아직까지는 인센티브보다 규제를 선호하는 게 대기업 경영진의 분위기다. 그리고 개발자들이 적극적으로 직무발명에 대한 권리를 요구하지 않는 한 이런 분위기가 바뀔 가능성은 없다."


<조선일보>도 인정하는 부작용, 그러나 여전히 견고한 '국익지상주의'

<조선일보> 김기천 논설위원도 비슷한 지적을 했다. 김 위원은 "연구원·기술자만 희생시키는 轉職 금지"라는 지난 7월 27일자 칼럼에서 "기업들이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전직 직원에 대해 '산업스파이' 혐의를 뒤집어씌우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그는 "대부분의 기술인력들이 업무의 중요성과 실적에 걸맞은 보상을 받지도 못하면서, 다른 직종과는 달리 전직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희생만 치르고 있는 게 우리 현실"이라고도 했다.

지나치게 엄격한 전직제한, 무리하게 적용되는 기술유출 혐의 등이 심각한 부작용을 낳는다는 점은 보수 언론도 선선히 인정하는 셈이다. 1등 신문이라는 <조선일보>까지 거들고 나섰으니, 현실이 좀 달라질까. 그건 아직 미지수다. 개발자를 '양계장에 가둔 닭'쯤으로 여기는 기업 경영진, 기업주의 이익과 국익을 구별하지 않는 대중 정서, 그리고 장시간 노동과 불합리한 노동조건으로 힘들어하면서도 노동자성 인정은 꺼려하는 상당수 중소기업 개발자들의 태도에 변화가 생겼다는 소식은 아직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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