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돈' 때문에 삼성반도체에서 일했다고요?"
[인터뷰] '삼성 백혈병' 연재 마친 르포 작가 희정
2010.12.21 08:45:00
"그들이 '돈' 때문에 삼성반도체에서 일했다고요?"
<프레시안>은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가 백혈병‧뇌종양 등의 직업성 암을 얻은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르포를 지난 10월 12일부터 12월 7일까지 매주 화요일마다 9회에 걸쳐 연재했다. 이미 알려진, 또 아직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이 지면을 채워가면서 피해자들의 편에서 산업재해 인정을 위해 싸우는 단체인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 카페에도 응원과 제보가 늘어가고 있다.

르포를 기고한 희정(29) 씨는 올해 처음으로 인터넷 매체 등에 글을 쓰면서 '작가'라는 직함을 달았다. 노동 운동과 평범한 삶 사이를 배회하다 글을 쓸 결심을 하고 이화여대 청소 노동자부터 쌍용자동차 해고자, 반올림까지 상처받고 소외된 노동자를 찾아다녔다. 등장하는 노동자들을 단지 어려움만을 호소하는 객체가 아닌, 개개인의 역동성과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까지 갖춘 주체로 담아내는 게 그의 바람이란다. 짧은 연재 간격으로 인해 미처 담아내지 못했던 이야기들은 내년에 책으로 묶여 세상에 선보일 예정이다.

16일 서울 마포의 한 카페에서 만난 희정 씨에게서 들은 노동과 글쓰기, 반올림에 대한 이야기를 일문일답 형식으로 정리했다. <편집자>


"타워 크레인에 안전장치도 없이 올라가면 '달인'인가?"

▲ 르포 작가 희정.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르포 작가가 첫 직업인가.

희정: 졸업하고 1년 정도 이주노동자방송(MWTV)에 있었고 그 뒤에는 작은 출판사에서 다시 1년 동안 일했다. 사직서를 내고 나선 아르바이트를 하며 글쓰기를 시작했다.

프레시안: 학생 때부터 노동 이슈에 관심이 많았나?

희정: 노동자 학생 연대(노학연대) 활동을 하며 이런저런 곳을 많이 다녔다.

프레시안: 예전부터 노동 소설을 즐겨 읽었나?

희정: 별로 많이 읽진 않았다. <게공선>같은 책을 봐도 '너무 선동적이야, 가르치려 들어' 이런 생각을 많이 했다. 다른 소설을 좋아했다. 조정래, 조지 오웰이나 이사벨 아옌데 등의 작품들. 정작 대학에서는 많이 못 읽었다.

프레시안: 졸업한 후에도 노동 관련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나?

희정: 학창시절에도 운동 언저리에 머문 편이었다. 이주노동자방송 활동도 그 연장선상에 있었고. 확 떠나지도 들어가지도 못하고 고민을 했다. 노동 운동 하는 건 힘들고 개인적으로 충족되지 않는 부분도 많아서다. 사실 삶이 좀 피폐해지지 않은가. 어떻게 살지 고민하다 회사를 관두고 하고 싶은걸 해보겠다고 결심했다. 소설을 쓰고 싶었는데 노동 소설이 어떨까 생각했다. 그래서 만난 선배들에게 르포라는 장르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노동 소설도 좋지만 시의성 있게 노동자 만나갈 수 있는 장점이 있더라.

프레시안: 어떻게 보면 관성에 따랐다는 얘긴데, 개인적인 관심사도 있을 것 같다.

희정: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웃음). 노동 소설을 쓰고 싶다고 생각한 이유가 그들의 투쟁을 알리고 정당화하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단지 내가 바라본 노동 환경이 너무 어처구니가 없었다. 대학교 1학년 때 봐도 충격적이었고 2학년 때 봐도 마찬가지더라. 몇 년을 그렇게 봐 오면서 노동 현장의 열악함을 알만큼 안다고 생각했는데 또 다른 데를 가보면 인간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열악한 데가 또 나온다. 타워 크레인처럼 높은 곳을 안전장치도 없이 올라가는데 그걸 보면서 '오, 저게 경력이다, 달인이다' 라고 포장하는 게 뇌리에 깊게 남았다. 저런 현장 자체가 어처구니없다는 걸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반올림 이야기, 연재로만 끝나면 남는 게 없다"

프레시안: 그런 결심을 할 때 앞으로의 생활에 대한 부담은 없었나?

희정: 딱히 돈이 많았던 적이 없어서…(웃음). 이주노동자방송에서도 40만 원 받고 일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니 지원금도 끊기더라. 끊임없이 돈이 없으니 경제적으로 크게 힘들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이주노동자방송 때는 먹여주고 재워주기라고 했는데, 출판사를 그만두고 나니 그때부터 좀 힘들긴 했다. 원고료를 받고 글을 쓰는 것도 아니고, 자비로 현장 쫓아다니다 보니 아르바이트를 열심히 할 수밖에 없다. 지금도 하고 있다.

프레시안: 대학을 졸업한 이들이 일반적으로 밟는 삶이 아니라는 불안은 없었나. 부모님의 우려라든지.

희정: 크게 신경 쓰시진 않더다. 노동 운동한다고 하는 것보단 나으니 그랬을지도 모른다(웃음). 어머니는 소설 쓴다고 하니 공지영 같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될 줄 아신다. 나도 '몇 년만 기다려 보라'라고 되지도 않는 소리도 하고.

불안감은 없다. 오히려 글을 쓰면서 삶이 재밌어졌다. 학생 운동하고 노학연대 현장 다니던 시절에도 뭔가 부족한 느낌이 있었다. '즐거워서 한다'라고는 차마 말 못하겠는 정도? 해야 되니까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글을 쓰는 건 원해서 하는 거니 행복하다.

돈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노동 르포가 인정받는 장르도 아니고 돈도 더더욱 안 되니 젊은 층이 오기 힘든 구조다. 사안을 깊이 다루고 싶은 욕구가 있어도 돈이 걸림돌이 되는 경우도 있다. 일례로 반올림의 이야기가 연재로만 끝나면 남는 게 없다. '피해자들 아팠데', '삼성은 나쁘데', '반도체는 위험하데'라는 말 밖에는.

더 깊게 들어가 피해 노동자나 가족들의 삶이 어떻게 굴러가고 있고, 이런 구조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담으려면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 작업을 하게 하는 힘은 작업비다. 다른 작가들도 마찬가지의 고민을 한다. 가정이 있고 생활에 시달리니 당장 원고료를 주는 일감에 끌린다. 좀 더 밀도 있는 글을 쓰고 싶어도 안되는 것이다.

"'노동자 민중'은 선한 게 아니라 악착같이 사는 것"

프레시안: 처음 르포를 쓴 건 언제였나.

희정: 올해 초 이화여대 청소 노동자 노동조합 건설과정을 쓴 게 처음이었다. 글을 쓰겠다고 결심하고 회사를 그만둔 후 쫓아다닌 첫 사례였다.

프레시안: 청소 노동자를 보면서 어떤 이미지가 떠올랐나?

희정: 후배 얘기를 듣고 찾아간 건데 의미 있는 움직임이라서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참여했다. 그런데 계속 지켜보니 그들은 세간의 인식처럼 불쌍하거나 무지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리고 한편으론 이 사람들이 생각보다 더 불쌍하고 무지하다는 감정도 동시에 들었다.

개개인을 보면 자신들의 삶이 분명 있다. 심지어 노동조합 가입원서를 쓰러 오던 한 분은 가지고 있던 집이 재개발이 된다며 재개발 관련 책을 펴놓고 공부하고 있더라. 종교 활동에 열심인 이도 있다. 연륜도 있어 나보다 훨씬 똑똑하게 사는 이들이 많았다. 그런데 그들이 60대,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이라는 것 하나만으로 비정규직 청소 노동자라는 직업군이 형성되고 차별과 탄압이 합리화된다. 노동자들도 그걸 수용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래서 불쌍한 처지의 사람들로 확 변하는 거다. 시스템이 참 무섭다는 게 상기되더라.

프레시안: 청소 노동자 이후에는 어떤 글을 썼나?

희정: 쌍용자동차 파업 1주년을 기념한 기고에 참여했다. 그때까지 달랑 르포 3편 쓴 처지에 하겠다고 지원했다. '77일 파업' 당시 한 번도 못 가봐서 일종의 죄책감이 든 게 이유였다. 당시 사는 게 팍팍하다 보니 파업에 대한 기사도 잘 안 보게 되더라. 어쩌면 자원한 것도 그 죄책감을 해소하고 싶어서일지도 모른다. 일종의 절충이지만 그런 식으로도 위안이 됐다. '아직 세상에 안착하지 않고 뭔가를 하려고 한다'라는 위안.

프레시안: 파업 1년 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은 어떤 분위기였나?

희정: 우울했다. 자살하는 분들도 있었으니 안 좋았을 수밖에 없다. 난 가족대책위원회에 있는 노동자 부인들을 만나려 했는데 잘 되지 않았다. 대신에 노동 활동가들의 배우자를 중심으로 취재를 했다.

ⓒ프레시안(최형락)
좋은 경험이었다. 처음엔 운동을 하는 남편 따라서 갔다보다 정도로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곳에서 아이를 낳고 7~8년 살면서 그곳이 삶의 터전이 되어갔다. 77일 파업까지도 자기 삶이 된 거다. 글은 쓰고 싶었지만 노동 운동을 그만두고 너무 절충하고 사는 것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 있었는데, 그들을 보면서 힘들고 어려운데도 자기 삶을 지켜가는 여성들, 그런 '생(生) 노동자'가 없었으면 쌍용차 싸움이 어떻게 일어났을까 생각도 했다. 너무 교과서적인 답변이지만 당시 받았던 느낌은 그랬다.

프레시안: 힘든 상황을 보다 자신이 분위기에 동화돼 힘들어진 적은 없나?

희정: 힘들어하는 이들의 사연을 들어도 잘 안 울려고 한다. 당시에 얘기 듣고 그 순간에만 울다가 돌아서서 잊어버리는 게 너무 간사해보일 것 같았다. 한편으로는 이야기를 듣고 와서 글을 쓸 때는 힘들어하는 부분을 앞세울 때가 있다. 잘 살고 있는 부분이 있고, 또 아닌 부분이 있는데 좀 더 많이 알려졌으면 하는 생각 때문에 안 좋은 부분을 부각시킨다. 그러다가도 ' 지금 뭐하는 짓인가, 이 사람들 또 한 번 대상화하고 있구나'라는 죄책감이 계속 들기도 하고.

프레시안: 청소 노동자와는 다른 느낌이다.

희정: 다르다기보다는 바득바득 살아가는 동시에 체면을 지키려는 모습을 봤다. 마치 친구가 겪은 이야기처럼 말하다가도 '나도 그런 적 있는데' 하면서 한 마디씩 흘리는 거다. 상식을 가진 보통 사람들이 자기의 삶을 끌어가는 모습니다. 다만 그들에게 위기가 닥치고 시스템에 희생당했을 뿐이다. 청소 노동자들도 개별적으로는 잘 살고 있잖은가. '노동자 민중은 선하다'라는 게 아니라 악착같이 살아가고 하는 거다.

반올림도 마찬가지다. 나라면 그 약품냄새 나는 곳에서 일 못했을 거다. 그런데도 그들이 일한 건 돈이 없어서가 아니다. 인간으로서 책임감 때문이다. 하나의 생계를 가지고 삶을 꾸려나가는. 직장에 다녀 돈을 벌고 하나의 인간으로 살아야한다는 의지다. 그 의지가 말도 안 되는 노동 환경에서 버틴 이유다. 언론에서는 '여공'이란 표현을 쓰면서 마치 1970년대로 회귀한 듯이 동정하고 그 시절을 모르는 나도 그런 말을 쓸 때가 있지만 한편으론 이렇게 생존력이 강하고 자기 삶을 잘 지켜내는 이들이 존경스럽다.

"'삼성 백혈병', 처음부터 '삼성이 나쁘다'고 했으면 안 믿었을 것"

프레시안: 반올림을 만나게 된 계기는.

희정: 동료 작가의 소개로 올해 7월에 처음 만났다. 그 전에도 산업재해에 관심이 있었다. 산재가 말도 안 되는 작업환경이 가장 처참하게 드러나는 경우였으니까. 반올림의 활동은 막연한 관심만 있는 수준이었는데 막상 만나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더 충격적이었다. 매번 놀란다 놀란다 했지만 이런 작업환경 시스템에서 일을 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프레시안: 본인이 반올림 피해자들의 증언의 진정성을 의심치 않아도 객관성이라는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글을 쓰면서 삼성과 피해 노동자 사이의 엇갈리게 주장 속에서 진위를 판단하는 게 힘들지 않았나.

희정: 반올림에 들어오는 제보들이 모두 다른 공간에서 온다. 제보자들의 연령도 제각각이다. 그런데 그들이 말하는 작업환경이 다 한결같았다. 그 자체가 증명의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이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다 비슷한 말을 할수 있을까. 사실 아우슈비츠에서도 믿을 건 증언밖에 없었다. 전범들이 수용소 설비를 다 없애고 나중에 독가스를 안 넣고 밀가루를 넣었다고 주장한다 해도 남은 이들의 증언이 일치하기 때문에 믿는 거 아니겠는가. 그런 접근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들을 믿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부정하지 않는다.

프레시안: 믿게 된 계기가 있었나?

희정: 나도 처음엔 일한 지 1년밖에 안 된 경우가 산재가 맞을까 갸우뚱 했다. 그래도 우리 사회에서 노동자를 생각하지 않는 작업 환경이 수두룩하다는 걸 알고 있었고, 삼성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한편으로는 그들이 무지해서 무지한 이야기를 한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자기주장에 대한 논리적인 구체성을 다 갖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구체적인건 자기 경험, 생생한 경험과 증언을 듣다보면 산재가 아니라고 할 수 없었다.

정애정 씨, 이윤정 씨의 이야기를 예로 들면 그들이 처음부터 '사건이 이렇고 저렇게 돼서 삼성이 참 나쁘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랬다면 안 믿을 거다. 그런데 이들이 반올림 사람들을 만나 처음 보였던 반응은 '어, 산재가 맞나?'더라. 그래서 다음날 또 만나서 얘기해 보면 더 구체적으로 기억나는 작업 환경이 있고 유해한 환경이었다는 걸 알게 되는 거다. 그동안 그런 환경을 무심하게 여겼다는 점이 오히려 믿음이 가는 이유가 됐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삼성 백혈병' 논란이 해마다 국정감사에서 이슈가 되고 피해자들이 더 나타나면서 좀 더 논의가 다양하게 이루어지는 느낌이다. 당시 작업 환경에 대한 증명의 문제가 있고, 증명 여부를 떠나 피해 당사자들이 정당한 산재 치료를 받게 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어느 쪽에 방점이 찍힌다고 보나.

희정: 처음 글을 쓸 때 세 가지 주제가 있었다. 반도체 산업 자체의 유해성, 산재 보상에 대한 문제, 삼성으로 대표되는 기업 논리에 대한 지적이다. 사실 쓰면서 삼성을 그만 내세워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일종의 면죄부라고 생각했다. 삼성이라는 개별 자본이 사악해서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이라도 느껴지는 게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가도 삼성이라는 기업이 가진 상징성을 무시할 수 없다는 생각도 든다. 반도체 산업 자체가 국가의 산업전략 속에서 비호 받으며 자본주의 체제에서 지원과 혜택은 다 받는다. 누군가가 반도체 산업에서 유해하지 않는 건 물 밖에 없다고 했다. 그런 산업이 커갈 수 있었던 건 국가와 산업 논리가 다 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걸 부각할지에 대한 고민은 계속 남지만 한편으로는 세 주제가 모두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삼성에 대한 비판을 한다는 데 부담은 없었나?

희정: 글을 쓰면서 주위를 관찰하다 보면 우리가 '삼성 논리'에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이 젖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일종의 삼성 이데올로기라고 해야하나? '사실이 아니다'라는 해명을 믿는 차원이 아니라 돈을 많이 주면 노동자를 더 많이 부려먹어도 되고, 삼성처럼 큰 기업이 나라를 살리고 국민 개개인에 도움이 된다는 이데올로기다. 따지고 보면 '돈돈돈' 거리는 풍조 속에 삼성이 커온 것 아닌가. 그 논리가 뼛속 깊이 들어와 있고, 노동자 역시 돈 한 푼에 벌벌 떨 수밖에 없는 현실이 됐다. 부정적으로만 볼 수 없는 게, 정규직도 비정규직으로 추락하는 현실에서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정규직에 성과급까지 주는 기업이 있으니 들어가서 무슨 일이든 못했겠는가.

"그들이 내 글을 보고 스스로 이야기하고 싶어지게 만들고 싶다"

프레시안: 이미 기고된 이외에 더 많은 증언을 남아 책을 낼 계획이라고 들었다. 기존 연재 내용과 달라지는 점이 있나?

희정: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추가할 생각이다. 매체 기고에는 그들이 어떻게 일했고 어떻게 아팠는지 기술하느라 그들의 삶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담지 못했다. 그들은 피해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생존자이기도 하다. 그들이 서로 모여서 공통의 문제를 깨트리는 과정역시 보충할 부분이다.

프레시안: 노동 르포를 쓰는 최종 목적이 있다면?

ⓒ프레시안(최형락)
희정:
처음엔 내 글이 누군가에게 읽힌다는 희열보다는 이 상황이 알려져야 한다는 조급함만 있었다. 그래서 글을 받아준 인터넷 매체가 그저 고마웠다.

르포에서 사회적인 목표만 얘기할 수도 있지만 일단은 그들의 상황을 왜곡하지 않고, 대상화하지 않으려 한다. 취재원들에게 보여주기 부끄럽지 않는 정도, 그들이 내 글을 읽고 이렇게 쓸 줄은 몰랐다고 말하지 않는 정도로. 자신을 존중하지 않았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런 반응이 오면 움츠러들 때도 있다.

그렇게 쓰려고 노력하다보면 언젠가는 저들이 스스로 자기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 있다. 반올림처럼. 내 이야기만 전달하는데 그치지 않고 사람들이 스스로 이야기하고 싶어지게 만드는 글을 쓰고 싶다. 반올림 르포를 쓰면서 산업재해 분야의 관심이 더 커졌다. 앞으로도 이 분야에 집중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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