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잡는 '피자 30분 배달제', 한국에만 있는 비극"
속도 경쟁 속 죽어가는 배달 노동자…피자헛, '30분 배달제' 폐지
2011.02.08 17:49:00
"사람 잡는 '피자 30분 배달제', 한국에만 있는 비극"
"피자를 주문했습니다. 상냥한 목소리의 여직원이 '30분 내에 도착하도록 하겠습니다'라는 마무리 멘트를 하기에 '저는 피자 30분 배달제에 반대하는 사람입니다'라고 했더니 '네?'라고 되묻기에 다시 반복해서 이야기하면서 천천히 와도 되는 집이니 서둘러 오지 않기를 바랐습니다.…(배달 노동자들의 사정을) 몰랐으면 '네, 빨리 보내주세요!'라는 대답을 했을 텐데 저 혼자 뿌듯한 하루를 보낸 날이었습니다."(김순화)

"빠른 배달로 인해 누군가가 힘들어하거나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면 과감히 30분 배달제를 폐지해야죠. 난 30분 이상 기다릴 여유가 있답니다. 배고픔은 참으면 되지만 사고가 나면 안 되죠."(박창석)

'피자업체 30분 배달제 폐지운동'이 벌어지는 페이스북에 누리꾼들이 올린 글이다. 청년유니온과 노동환경건강연구소, 민주노총 서비스연맹은 누리꾼들의 서명을 모아 8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도미노피자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30분 배달제 폐지를 위한 공개서한'을 도미노피자 측에 전달했다.

▲ 8일 청년유니온, 노동환경건강연구소,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등은 도미노피자 본사 앞에서 '피자업체 30분 배달제 폐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다음은 기자회견 후 배달 노동자가 "사람 잡는 30분 배달제"라는 피켓을 들고 오토바이 앞에 서 있는 퍼포먼스를 벌이는 모습. ⓒ프레시안(김윤나영)
이들은 "배달 속도경쟁이 청년노동자의 삶을 무너뜨리고 있다"며 "배달노동자 피해를 막는 최선의 방법은 속도 경쟁을 부추기는 30분 배달제나 유사한 지침을 없애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현재까지 '피자 30분 배달제'에 반대한 누리꾼은 배우 김여진, 공지영 작가, 홍희덕 민주노동당 의원, 조국 서울대 교수 등을 비롯해 3000여 명에 달한다.

이들이 행동에 나서게 된 데는 지난해 12월, 피자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던 청년 노동자 최 아무개 씨(24)가 택시와 충돌해 사망하는 사고가 계기가 됐다. 30분 안에 피자를 배달해야 했던 최 씨는 교통신호가 바뀌자마자 출발하다 변을 당했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그가 부족한 등록금을 메우기 위해 배달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사실은 주위 사람들을 더욱 안타깝게 했다.

문제는 최 씨가 일했던 피자 업체에서만 지난해 교통사고로 사망한 배달 노동자가 3명이었다는 점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오토바이 사고 산업재해자는 7081명에 달한다. 이들 단체는 "배달노동자 대부분이 비정규직이고, 최 씨처럼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수많은 피해자는 자비로 치료하거나 다쳐서 일을 그만두는 상황이라 실제 재해자는 더 많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도미노피자는 일명 '3082, 30분 내에 빨리'라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며 "주문과 동시에 30분 안에 피자를 배달하지 못하면 불이익을 받는 피자배달원들에게 이 제도는 어쩔 수 없이 위험한 질주를 하도록 만들어왔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다국적회사인 도미노피자는 자국 내에서는 배달 노동자 사망사건이 벌어지면서 이미 1995년에 30분 배달제를 폐지했지만, 유독 한국에서만 이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한편, 이날 기자회견에서 서한을 받은 도미노피자 관계자는 "(피자업체 30분 배달제 폐지 촉구 공개서한을) 받았으니 검토하겠다"고 말했지만, 구체적인 대응책에 대해서는 "저희 입장에서 할 얘기가 없다"고 말하며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프레시안(김윤나영)
"도미노 피자에 노조 있었다면 '30분 배달제'는 폐지됐을 것"

피자헛은 대형 피자업체 중 가장 먼저 '30분 배달제'를 폐지했다. 사측이 노동조합의 요구를 발 빠르게 수용한 것이다. 김용원 피자헛 노동조합위원장은 "만약 다른 대형 피자업체에도 노동조합이 조직됐다면 30분 배달제는 폐지됐을 것"이라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김 위원장에게 배달 노동자들의 안전 실태에 대해 들어봤다.

- 배달노동자들의 안전 위험 실태는 얼마나 심각한가?

김용원 : 피자 한 판을 만드는 데 14분이 걸리므로 15분 안에 배달해야 한다. 주문이 얼마 없을 때는 가능하지만 배달이 폭주하는 시간에는 위험하다. 30분 안에 배달하기 위해 한 사람이 피자를 몇 개씩 들고 가기도 한다. 마음이 급하다 보니 오토바이에서 미끄러져 넘어지기가 일쑤다. 빙판길이 많은 겨울에는 특히 더 위험하다. 현장에 있다 보면 배달하다가 다친 사람들이 많다.

- 배달 노동자들의 노동 조건은?

김용원 : 업체에서는 고용을 최소화하다 보니 배달부가 배달뿐만 아니라 잡일도 한다. 영세 사업장에서 일하는 사람은 배달 다녀와서 피자도 만들고 설거지도 해야 한다. 그러다 주문이 몰리면 하루에 50~60건씩 배달하기도 한다.

풀타임은 최저임금만 받고 하루에 10시간 정도 일한다. (점심시간에 주문이 몰리다 보니) 밥도 서서 먹을 때가 많다. 라면 먹다가 배달 가기도 한다. 쉬는 시간도 주는 게 원칙이지만 못 쉬기 일쑤다.

일이 워낙 힘드니 배달 기사가 수급이 잘 안 된다. 똑같은 최저임금 받고 다른 일을 할 수 있으니 배달은 안 하려고 한다. 오토바이 타다가 사고 나고 넘어지는 모습을 보고 부모들도 자녀에게 배달일은 가급적 안 시키려고 한다.

- 배달 노동자들의 안전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김용원 : 일단 적정 인원을 고용해 노동 강도를 낮춰줘야 한다. 하지만 회사 측에서는 "배달 인원을 구해도 안 들어온다"며 버틴다. 일이 힘들고 비정규직에 박봉이니 인력이 잘 안 들어오는 것은 사실이다. 차라리 배달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서 기업이 적정 인원을 수급해야 한다. 하지만 기업은 인건비가 부담된다며 안 하려 한다.

둘째로 안전 장비를 회사에서 책임지고 마련해줘야 한다. 급하게 배달하다 보면 안전장비가 엉망일 때가 많다. 고장 난 끈이 달린 헬멧을 쓰고 달리기도 한다. 무릎‧팔꿈치 보호대, 헬멧 등의 비용을 노동자 개인이 부담하도록 하는 것은 기업이 안전사고를 방관하는 것이다.

- 피자헛 노조는 어떻게 생겼나?

김용원 : 1988년에 생겼다. 그때는 전국에 매장도 10여 개밖에 없었고 100% 정규직이었다. 나는 1995년에 대구에서 우연히 입사했다. 8시간 노동 규정이 있는데도 회사는 일이 많으면 초과 근로를 시켰다. 그런데도 연장수당을 받을 수 없었고, 휴식 시간도 제대로 제공받지 못했다. 체불 임금을 비롯한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려고 노동조합을 만들게 됐다.

사업장 내 정규직은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예전에는 100% 정규직으로만 고용해서 1200명 정도였는데 요즘은 350명으로 줄었다. 매니저 등 최소 인원만 두고 나머지는 다 비정규직으로 고용하는 추세다.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있게끔 노력하고 있지만 어려움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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