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대기 시간이 불만입니까? 그렇다면…"
[국민에게 주치의를!·下] 세 가지 오해와 대안
2011.05.03 14:28:00
"병원에서 대기 시간이 불만입니까? 그렇다면…"
<프레시안>은 지난 2일 '국민 주치의제도'를 소개했다. 이 제도가 의료 낭비 체계를 뜯어고치면서, 동시에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하는 한 해법이 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주치의제도는 의사들을 향한 인센티브를 바꾸는 게 핵심이다.

'주민들이 병원 치료를 많이 받아야 의사가 돈을 버는 구조'를 '주민들이 병원 신세를 질 필요가 없어질수록 의사의 수입이 느는 구조'로 바꾸는 것. 지금의 구조에선 의사들이 예방의료나 건강상담에 힘을 쏟게끔 하는 인센티브가 없다. 대신, 과잉진료를 유도하는 인센티브는 있다. 이걸 바꾸는 게 주치의제도다.

실제로 이 제도는 유럽에서 오랫동안 시행돼 왔다. 그동안 시행착오도 있었고, 한계도 있었다. 하지만 한국에선 이런 부정적인 면이 더 부각된 게 사실이다. 그래서 주치의제도에 대한 충분한 이해보다는 '오해'가 먼저 자리 잡았다. 이번에는 이런 오해를 △대기시간 △환자 선택권 △의료 서비스의 질이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뜯어보기로 했다. 이번 기획이 공공성 높은 의료제도에 대한 오해를 줄이고, 보다 생산적인 토론을 낳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편집자>

- 국민에게 주치의를!
☞(上)'3분 진료'? 환자가 인스턴트 식품이야?

"사랑니를 뽑으려고 했는데 이가 잘못 났다. 불안해서 대형병원에 예약하자 치료비가 동네병원의 4배 정도, 대기시간은 한 달이었다."

이른바 '좌파 의료제도'를 가진 외국의 이야기가 아니다. 동네병원 대신 대형병원을 이용하는 한국 환자의 이야기다. 국민 주치의제도를 지지하는 전문가들은 이 제도를 시행하면 대기시간이 길어진다는 우려에 대해 "지금도 한국은 '의료 쇼핑'과 과잉 진료 현상 때문에 대기시간이 충분히 길다"고 반박한다.

이들은 "주치의제도가 시행되면 국민의 의료 이용량이 적정한 수준으로 관리되기 때문에 오히려 불필요하게 병원에 오가는 일이 줄어든다"고 입을 모은다. OECD 국가의 2배에 달하는 의료 이용량을 '정상 수준'으로 줄이면, 병원에서 기다리는 시간도 줄어든다는 얘기다. 이진석 서울대 의대 교수(의료관리학)는 "주치의제도는 의사에 의해서 유발되는 과잉 진료와 의료이용 횟수를 줄인다"고 강조했다. 주치의의 인센티브는 '진료 횟수'가 아니라 '질병 예방 및 건강 증진'에서 오기 때문이다.

이재호 가톨릭대 의대 교수(가정의학)는 "주치의로부터 양질의 일차의료 서비스를 받아 본 경험이 없는 한국 환자들은 주치의가 더 잘 해결할 수 있는 1차 의료 문제를 가지고도 '명의' 또는 3차 병원을 찾아 몰려다니는 경향이 있다"며 "이 때문에 중증 환자들까지 3차 병원 대기시간이 길어지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 주치의제도가 도입되면 비응급 환자가 응급실을 방문하는 일이 줄어들기 때문에 응급 환자의 응급실 대기시간은 줄어든다"고 말했다.

환자 입장에서도 의료 이용량을 줄일 동기가 생긴다. 오랫동안 자신의 건강을 지켜본 주치의와 환자 사이에 신뢰 관계가 형성되면 '의료 쇼핑'을 할 유인책이 줄어든다. 주치의제도를 통해 국가가 동네병원의 수익을 보장하되, 의료 이용량이 줄도록 유도하면 의사는 환자의 건강 및 질병 상담에 집중할 수 있다.

▲ 환자들로 붐비는 대형병원 대기실. '동네병원'을 믿지 못해 대형병원을 찾는 환자들은 갈수록 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상급 종합병원(대형병원)의 외래진료비(입원을 제외한 통원 치료비) 점유율은 2005년 10.1%에서 2009년 14.1%로 늘었지만, 의원은 52.5%에서 47.5%로 줄었다. ⓒ연합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진다?…"예약 시스템 개선으로 해결 가능"

주치의제도에 대해 이야기할 때 흔히 나오는 게 '대기시간'에 대한 불만이다. 가벼운 질병에 걸린 환자가 주치의를 기다리는 시간이 길다는 말이다. 실제로 이 제도를 시행하는 미국과 유럽에서는 환자 한 명당 진료 시간이 20~30분에 달한다. 그만큼 다른 환자들이 차례를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질 수 있다. 실제로 그런 경우가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젠 사정이 달라졌다고 말한다. "서비스 개선 노력 덕분에 요즘은 기다리는 시간이 한국과 거의 비슷해졌다"라는 게다. 한국의 몇몇 병원과 마찬가지로 유럽에서는 예약 시스템이 발달해 있다는 것이다. 환자는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대신에 하루나 이틀 전에 예약해서 예약 시간에 맞춰서 가면 된다.

갑자기 아픈 사람은 어떻게 하느냐고? 주치의제도가 시행되는 유럽 국가에서도 응급 환자는 주치의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대형병원에 갈 수 있다. 문제는 응급 환자는 아니지만 중한 병에 걸렸을 것으로 의심되는 사람이다. 이들이 주치의를 먼저 거치고 나서 대형병원에 가면 처음부터 곧바로 대형병원부터 찾는 것보다 시간이 더 걸리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재호 교수는 "한국에서 스스로 병원을 찾아간 환자가 CT 검사를 원한다고 하면 의학적으로 불필요해도 바로 찍도록 해주는데, 이것이 바로 상업화된 의료 현실"이라며 "줄을 서는 일을 처음에는 불편하게 느끼는 사람이 많겠지만 결국 모든 이에게 혜택을 가져다주는 것처럼, 주치의제도가 바로 그러한 혜택을 국민에게 가져다 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환자가 주치의의 손을 떠난 뒤 상급병원에서 기다려야 하는 시간은 상급병원의 수나 상급병원에 고용된 의사 수, 상급병원을 찾는 환자 수와 관련이 있을 뿐 주치의제도와는 무관하다. 오히려 주치의제도는 가벼운 병에 걸린 환자의 '대형병원 쏠림 현상'을 막아 대형병원의 외래 환자를 줄일 수도 있다. 그만큼 대형병원 의사들은 중증질환 치료에 집중할 수 있다.

환자들의 선택권이 사라진다?…"마음에 안 들면 주치의 바꿀 수 있다"

일각에서는 주치의를 지정하면 환자들의 의료 서비스 선택권이 줄어들 수 있다고 걱정한다. 곧바로 대형병원에 가야 하는 상황이 오거나, 주치의의 실력이 미덥지 않은 경우에도 평생 한 주치의에게만 진료를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이진석 교수는 "주치의제도가 환자들의 선택권을 제한한다는 것은 오해"라고 잘라 말한다. 주치의는 환자가 직접 선택하고, 주치의 서비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6개월~1년마다 주치의를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주치의제도를 시행하는 국가에서도 비싼 병원비를 감수한다면 환자는 곧바로 상급병원에 갈 수도 있다.

의료의 질이 떨어진다?…"주치의 실력이 '상향 평준화'된다"

주치의제도를 시행하면 의료 서비스의 질이 떨어진다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무상 의료나 주치의제도를 실시하는 국가에서 평균 건강지수는 높은 편이다. 전문가들은 "1차 의료기관에서 지속적으로 건강을 관리하고, 큰 병에 걸려도 가난하다는 이유로 치료를 거절 받지 않으니 당연한 결과"라고 말한다. 의료서비스의 질을 환자의 건강한 정도로 따지면 1차 의료가 활성화된 국가에서 의료의 질은 결코 낮지 않다는 것이다.

이진석 교수는 "주치의가 받을 수 있는 환자 수에는 상한선이 있고, 환자는 마음에 들지 않는 주치의를 바꿀 수 있다 보니 주치의의 실력이 상향 평준화된다"며 "의사로서는 환자가 빠져나가면 안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질병관리 성과로 인센티브를 주기 때문에 의사들도 진료의 질적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 노력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국도 질병의 치료 수준이나 평균 수명은 세계에서 뒤지지 않는다. 문제는 주관적 건강상태나 '3분 진료'에 대한 불만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소아과를 찾은 대부분의 아이 보호자는 의사에게 "약 처방보다는 질병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원한다"고 답했다. 또 다른 지표도 있다. OECD 국가에서 주관적 건강상태가 양호한 국민의 비율은 평균 70.4%에 달했지만, 한국에서는 43.7%에 그쳤다. 한국에는 일상적으로 건강상담을 받을 수 있는 1차 의료 체계가 제도적으로 뒷받침되지 않았다.

"'30분 진료' 위해서는 의사 수 늘려야"

주치의제도를 도입하기 위해 건너야 할 산은 많다. 중·대형 병원은 외래 환자를 동네 주치의가 빼앗아 갈까봐 전전긍긍하고 있고, 일부 전문의들은 "주치의제도가 1차 의료기관의 경쟁을 심화시킨다"며 반발하고 있다.

주치의에 해당하는 일반의를 전문적으로 양성하는 시스템이 없다는 점도 난제다. 주치의제도를 도입한 국가에서 한국의 가정의학과 의사에 해당하는 의사는 30~60%에 달하지만, 한국에는 가정의학과 의사가 전체의 10%에 불과하다. 이러한 현실에서는 다른 분야 전문의와 가정의학 전문의 몇몇이 모여서 개원하고, 이들을 주치의로 등록하는 방식을 고려할 수도 있다.

전체 의사 수도 부족하다. OECD 국가에서 1000명당 활동 의사 수는 평균 3.05명이지만, 한국은 1.86명에 불과하다. 이진석 교수는 "지금처럼 '3분 진료'라면 의사 수는 늘어날 필요가 없다"면서도 "그러나 환자에 대해 20~30분씩 진료하고 환자에게 생활 습관을 조언하며 건강을 관리하는 주치의로서 기능하려면 한국에는 의사 수가 많이 모자라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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