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무한동력>·<신과 함께> 다음은 찌질한 당구장 아저씨들"
[인터뷰] 신의 세상에서 사람과 함께하는 만화가 주호민
"<짬>·<무한동력>·<신과 함께> 다음은 찌질한 당구장 아저씨들"
이제는 알 만한 사람은 모두 주호민(31)을 안다. 원고료도 받지 못하고 연재하던 <짬>으로 군대의 기억을 끄집어내더니, 88만 원 세대 정서를 뜨끈하게 매만진 <무한동력>에서 그는 여느 심리치료사보다 더 포근한 공감대를 또래 세대에게 나눠줬다.

지난해 1월 10일부터 포털 네이버에 연재를 시작한 <신과 함께>는 젊은 만화가 주호민을 강풀의 뒤를 잇는 차세대 웹툰 작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저승편-이승편-신화편' 3부작 중 이제 이승편까지 마무리한 <신과 함께>는 염라대왕, 저승차사, 다양한 잡귀 등 한국 민속신앙의 근간을 이루는 개성 강한 캐릭터들을 등장시켜 죽음과 삶의 세계를 그린 작품으로,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작가 특유의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담았다.

어느새 웹툰 시대를 대표하는 젊은 작가로 떠오른 주호민을 지난 7일 경기도 파주시 작가의 집(이자 작업실)에서 만났다. 특별히 만화가를 직업으로 꿈꿔본 적 없다는, 지극히 소박한 삶을 살아온 주호민은 만화에서 듬뿍 묻어나온 사람에 대한 애정을 가감없이 풀어놓았다. <편집자>


▲군대와 청년 실업, 도시 재개발 문제는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가장 아픈 순간을 이룬다. 주호민은 이곳에서 '사람'의 이야기를 찾아냈다. ⓒ프레시안(김하영)

용산 참사가 낳은 만화

프레시안 : 작가의 첫 장편이라 할 <신과 함께>의 이승편이 끝났다. 1년 8개월간 달려온 소감이 어떤가?

주호민 : 연재가 끝날 때마다 후련하면서도 섭섭하다. 이승편을 끝내고 나니 좀 찜찜하기도 하다. 만화를 그릴 때 내 생각을 노골적으로 작품에 투영하는 주입식 내용은 피하고 싶은데, 이승편은 강했다. 아쉬움이 조금 남는다.

프레시안 : 용산 참사를 연상시키는 마지막 장면이 특히 그렇다.

주호민 : 용산 참사를 보고 이승편을 기획했다. 마지막 장면을 보고 사람들이 그 사건을 떠올리도록 하고 싶었다.

프레시안 : <신과 함께>를 기획할 때부터 용산 참사를 염두에 뒀나?

주호민 : 그건 아니다. 저승편이 끝나고 가진 3개월 휴식기 동안 구체화했다. 다만 이승편에서 나오는 신(神)은 (저승의 염라대왕 등과 달리) 대부분 가택신인데,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가택신에게 찾아올 시련을 고민하게 됐다. 집이 없어지는 것만큼 큰 시련이 어디 있겠나? 그래서 재개발 문제와 엮어서 풀기로 했다.

프레시안 : <신과 함께>는 이전 작품들에 비해 스토리의 깊이와 완결성이 강화됐다. 저승편은 영화화도 결정됐다. 여러모로 본인에게 남다른 작품이겠다.

주호민 : 맞다. <짬>은 내 군대에서의 경험담을 그렸고, <무한동력>은 내 친구들을 소재로 그렸다. 비교적 수월했다.

주변에 국한된 소재에 갇혀 정체되지 않을까 싶어서, 보다 보편적인 이야기를 풀기로 마음 먹었었다. <신과 함께>로 시도해보니 사람들이 많이 좋아해주셔서 기쁘다. 어느 정도 성과를 얻은 것 같다.

프레시안 : <신과 함께>의 소재는 민간신앙이다. 평소에도 관심이 있었나?

주호민 : 다큐멘터리 <영매 - 산 자와 죽은 자의 화해>를 보고 무속인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너무나 극적인 이야기라 취재를 했는데, 이걸 그대로 만화로 그리기는 어렵겠더라. 상황 자체가 너무나 강해서.

관련 책들을 보다 보니 그분들이 모시는 신의 이야기에 흥미가 생기더라. 우리 민간신앙에 나오는 신들이 굉장히 종류도 많고 개성이 강하다. 그래서 한국 신화로 방향을 틀었다. 한국의 토속 저승관을 보여주면서, 이를 통해 보다 보편적인 이야기가 가능하겠다 싶었다. 소재는 소재일 뿐이고, 내가 <신과 함께>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건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다.

"재개발 문제를 고민하는 게 왜 좌파적인지 모르겠다"

▲"나는 내가 상식적인 사람이라 생각한다." ⓒ프레시안(김하영)
프레시안
: 본인도 아쉬움을 피력했지만, 이승편은 전작들에 비해 굉장히 '세다.' 아무래도 용산 참사가 이념의 틀에서 논의된 측면이 있다보니 불편해하는 독자들도 많았을 것 같다.

주호민 : 그런 의견도 많았다. 그런데 재개발의 문제점을 생각해보는 게 왜 좌파적인지는 잘 모르겠다.

프레시안 : 어릴 때부터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았나?

주호민 : 별로.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 음…. 굳이 따지자면 민중미술 화가였던 아버지(주재환)의 영향이 있지 않았나 싶긴 하다. 주로 어울리시던 분들이 있으니까….

그런데 입대할 때까지도 그런 문제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2004년 전역한 후 자연스럽게 뉴스를 보면서 세상에 관심을 가진 것 같다. 그러다보니 근현대사 책도 보게 되고, 뭐 그렇지.

프레시안 : 스스로를 '좌파'라거나 '빨갱이'로 생각하나?

주호민 : 전혀. 난 내가 상식적인 사람이라 생각한다. 내 주변 만화가들도 보면, 굳이 나누자면 언론에서 말하는 좌파 쪽에 가까운 사람이 많은 것 같은데, 그들도 정말 상식적인 보통 사람들이다. 만화가라는 게 대중적인 이야기를 만들어야 하는 사람이다보니, 보통사람보다 오히려 더 상식적인 생활을 한다.

다만 나를 그렇게(좌파라고) 부르는 분들도 (걔중에) 있긴 하더라.

88만 원 세대 만화가

프레시안 : 만화는 언제부터 그렸나?

주호민 : 어릴 때부터. (<보물섬>, <아이큐점프>가 나오던 시절부터?) 맞다. 왜, 어디나 그런 애들 있잖나. 연습장에 그림 끄적이고, 책 사이에 만화 그려서 친구들 보여주는. 그런 아이였다.

프레시안 : 본격적으로 만화가를 꿈꾸진 않은 건가?

주호민 : 그렇지. 난 평범한 인문계 고등학교를 나왔는데, 당연히 평범한 삶을 살거라 생각했다. 대학교 가고, 취업해서 회사원 되는…. 그런데, 여러 가지 우연한 상황이 겹치면서 어느새 만화가가 됐다. 입시에 실패하고, 학과는 사라지고….

프레시안 : 학과?

주호민 : 재수했는데 실패했다. 그러니 어머니가 '그림 그리는 것 좋아하니 이참에 그런 쪽으로 가보라'고 설득하셨다. 그래서 2005년에 직업전문학교의 애니메이션과에 입학했다.

시류에 맞춰 엉성하게 만든 과라는 느낌이었다. 작가적 소양을 키우는 수업이나 시나리오 구상 같은 건 안 가르치고, 포토샵 같은 기술만 가르치더라. 제대하고 나니 그 과도 인원 없다고 없어졌다.

프레시안 : 그게 데뷔로 연결된 건가?

주호민 : 맞다. 학교를 중퇴하고 하루아침에 백수가 됐다. 어떡하나 싶다가 <짬>을 블로그에 올렸는데, 그게 반응이 좋았다. 그렇게 데뷔했다.

프레시안 : <무한동력>을 보고 '작가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만화'라고 봤는데, 그건 아닌 거네?

주호민 : 취업준비는 안 했지만, 중퇴 후 대형 할인마트에서 비정규직으로 3개월 정도 일했다. 그때 정말 월급으로 딱 88만 원 받았다. 하하.

<무한동력>은 내 친구들이 소재가 됐다. 기획 당시 내 주변 사람들이 전부 비슷한 상황이었다. 대학 졸업반인 친구, 일찍 전문대를 졸업하고 저임금에 회사를 다니는 친구, 자영업을 준비하는 친구, 공시생….

그러니 맨날 모이면 하는 얘기들이 '면접 어떻게 됐냐' '어디 원서 냈냐' 이런 거였다. 그들을 유심히 관찰했고, 그걸로 <무한동력>을 그렸다.

이런 만화는 디테일이 생명이라, 꼬치꼬치 물어봤다. 면접상황 같은 것 말이다. '나오니까 (손에서 나온 땀으로) 무릎이 젖어 있더라' 이런 말 끌어내려 노력했다.

프레시안 : 그 친구들이 <무한동력> 모델이 된 건가?

주호민 : 그렇다. 고시생 등 대부분이 내 친구를 모델로 했다. 주인집 딸인 한수자의 모델은 내 아내다.

▲<신과 함께> 이승편의 한 장면. ⓒ주호민

"고우영 선생님처럼 그리고 싶어"

프레시안 : 주로 영향 받은 작가는 누군가?

주호민 : 사실 별로 없다. 내가 선배 작가들처럼 문하생 계보를 통해 데뷔한 케이스가 아니다. 다만 오래 만화를 봐 왔으니 여러 사람들로부터 자연스럽게 영향은 받았겠지.

프레시안 : 닮고 싶은 작가는 있나?

주호민 : 돌아가신 고우영 선생님. 그분처럼 그리려고 노력한다. 특히 <신(新)고전열전> 중 <놀부전>을 좋아한다.

프레시안 : 어떤 점을 닮고 싶나?

주호민 : 그 분 만화는 술술 읽힌다. 일본 만화처럼 만화적 연출을 과하게 사용하지 않는다. 같은 네모 칸들이 연속되고, 친근하다. 어찌 보면 보수적인 자세인데, 굉장히 쉽게 읽을 수 있다. 만화의 문법에 익숙지 않은 이도 부담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

항상 내 부모님이 내 만화를 쉽게 읽으실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작품을 만든다. 그러면 누구나 쉽게 읽을 테니까.

프레시안 : 그러고 보니 웹툰 특유의 스크롤 연출, 플래시 연출 등은 배제하는 것 같다.

주호민 : 그렇다. 나는 그냥 (전통적인 종이 만화처럼) 페이지로 나눈다. 그렇다고 해서 가독성에 영향을 주진 않는 것 같더라.

내 방식의 장점이, 책으로 낼 때도 수고를 덜 수 있다. 스크롤 연출을 책으로 만들 때 굉장히 고생하는데, 난 그냥 내 작품을 그대로 종이에 옮기면 된다. 하하.

▲<무한동력>, <신과 함께> 저승편에서 활약한 이 캐릭터는 그의 친구가 모델이 됐다. ⓒ프레시안(김하영)

웹툰 작가의 생활

프레시안 : 작업 속도는 빠른 편인가?

주호민 : 다행히도 그렇다.

프레시안 : <신과 함께>는 네이버에 매주 월금, 두 차례 업데이트 됐다. 작업스케줄이 어땠나?

주호민 : 매주 목요일까지 금요일 작품을 보내고, 금요일까진 월요일 작품을 보내야 한다. 주말에 네이버 담당자가 출근을 안 하니까. 그래서 매주 수목금이 마감 지옥이다. 난 거의 당일치기를 해서, 보통 금요일 작품은 수요일, 월요일 작품은 목요일에 작업을 시작했다.

프레시안 : 돈은 잘 버나?

주호민 : 현재는 먹고 사는데 지장 없다. 어느 순간부턴가 원고료가 많이 올랐다. 영화 판권도 생각보다 수입이 굉장히 크더라. 매체에 우열은 없다고 생각하는데, 사람들은 '저 작가는 영화 판권도 판 작가'라는 식으로 보면서 좀 더 비싸게 쳐주는 것 같다.

▲주호민은 이제 '영화 판권을 판' 만화작가다. 윤태호, 강풀의 길이기도 하다. ⓒ프레시안(김하영)
프레시안
: <무한동력>까지는 야후에서 연재했고, <신과 함께>는 네이버와 계약했다. 옮기는 과정 어땠나?

주호민 : 강풀, 양영순, 윤태호, 박철권 등의 선배 작가들이 '누룩미디어'라는 만화작가 매니지먼트 회사를 만들었다. 나도 거기 소속이 됐는데, 거기 협상하시는 분이 어느날 '신작 기획서 달라'고 하더라. 주니까 네이버와 계약해 오셨다.

내가 원고료협상 같은, 돈 거래를 정말 못하는데 그런 걸 해주시니 편하더라. 네이버, 다음이 웹툰계 양대산맥이라 좋았다. (다른 포털에 비해 네이버, 다음의 원고료가 세나?) (차이가 크다, 하하.)

프레시안 : 친한 작가는 누군가?

주호민 : 이말년, 기안84, 양영순, 윤태호…. 많은 동료작가, 선배작가와 친하다.

프레시안 : 다들 웹툰연재 때문에 생활사이클이 다를테니, 얼굴 보기도 힘들겠다.

주호민 : 각자 마감이 다르니 어쩔 수 없다.

프레시안 : 만화잡지, 단행본 시장이 줄어든데 대한 아쉬움 없나?

주호민 : 왜 없겠나. 나도 만화책을 손으로 넘겨보던 세대인데. 안타까운 게 인터넷을 제외하면 매체가 없다. 독자와 작가, 즉 수요와 공급은 있는데 시장은 없는, 굉장히 이상한 상황이다. 만화가 돈을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하고, 이를 위해 사람들이 할 역할이 있는데 그게 잘 안 된다. 새로운 매체를 만들어서 잘 팔리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한 듯하다.

프레시안 :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에 스스로를 '만화 노동자'로 설명했더라. '웹툰작가'라거나 '만화작가'로 쓰는 게 더 보편적일텐데?

주호민 : 하하…. 나는 그냥 '만화가'라고 다른 사람들에게 얘기한다. 웹툰이야 매체일 뿐이니 '웹툰작가'라고 말하는 건 좀 이상하다.

프레시안 : <신과 함께> 연재 종료 후 차기작도 구상한 게 있나?

주호민 : 장인께서 당구장을 운영하신다. 굉장히 '찌질한(추하고 지저분한)' 사람들이 나오는 당구 만화를 구상 중이다. 턱시도 맨 프로 당구선수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동네 아저씨들의 내기 당구 세계 말이다. '왜 그들은 대낮에 당구장에 있을 수밖에 없나'와 같은 이야기.

프레시안 : 역시 또 한국의 현실을 그리는 만화가 되겠다?

주호민 : 하하. 그렇네. 아직은 굉장히 막연한 단계라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프레시안 : 만화의 가치 홍보 말씀 하나 해달라.

주호민 : 만화는 누구나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는 대중문화다. 그림과 글이 결합됐으니 작가의 생각을 전달하기 굉장히 좋은 수단인 것 같다. 만화시장이 어렵다곤 하지만, 다른 대중예술이 대체하기 어려운 매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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