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순이'의 프랑스어 '르 꼬르동 블루'
최연구의 '생활속 프랑스어로 문화읽기' <30>
'삼순이'의 프랑스어 '르 꼬르동 블루'
풍성한 몸매, 귀여운 자태, 거침없는 말투와 성격으로 올 상반기 시청자들의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던 삼순이, 그녀의 직업은 제과사다.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의 삼순이는 요리의 본고장 프랑스 유학파 출신의 실력있는 파티쉐로 나온다. 그녀는 세계 최고의 요리학교 파리 르 꼬르동 블루의 그랑 디플로마를 취득했고 레스토랑 보나뻬띠의 파티쉐로 근무한다. 이 드라마의 배경이 프랑스 요리 및 제과이므로 군데군데 프랑스어들이 나온다. 요리용어에 프랑스어는 부지기수로 많다. 드라마 김삼순에서 사용되는 프랑스어들을 보면 작가가 프랑스 요리를 성실하게 연구했다는 흔적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불어가 아닌 경우도 있고 정보가 좀 왜곡된 경우도 있다. 무엇부터 시작할까.

삼순이가 그렇게 자부심을 갖고 있는 요리학교 꼬르동 블루부터 이야기해보기로 하자. 꼬르동 블루의 정식명칭은 '르 꼬르동 블루(Le Cordon Bleu)'고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앞에 레꼴(L'Ecole : 학교)를 붙여주면 된다. '르 몽드(Le Monde)' 신문을 그냥 '몽드' 신문이라 할 수 없듯이, 정관사 르(Le 또는 라 La)는 엿장수 마음대로 임의로 빠뜨려서는 안 된다. 프랑스인들은 수다스럽기로 유명하다. 만나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떠들고 토론하고 담소한다. 그들의 대화주제는 주로 뭘까. 프랑스인들의 3대 이야기거리는 스포츠, 정치 그리고 요리다. 5800만 프랑스인들이 제각기 이 세 가지 중 하나에 대해서는 주관이 뚜렷하고 할 말도 많다. 하지만 이 세 가지를 뺀다면 프랑스인들은 과묵해질 수 있다. 아마도 프랑스인들의 국민성을 보여주는 한 단면일 것이다. 그들은 스포츠에 열광하고 굉장히 정치의식이 높으며 문화적 정수로서의 요리를 사랑하는 민족이다.

삼순이가 다녔던 르 꼬르동 블루는 요리와 제과제빵에 있어 100년이 넘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명문 사립학교다. 사실은 학교라기보다는 학원이라는 표현이 맞을 텐데, 체계적인 교육프로그램과 권위에 비추어 학교라고 부르기로 하겠다. 우리나라에서도 숙명여대가 이 학교를 유치해 꼬르동 블루-숙명 아카데미기 설립돼 있다. 돈까스집에 가면 돈까스안에 치즈가 든 코돈블루 돈까스라는 메뉴도 있어 이래저래 이 이름은 우리에게 제법 익숙하다.

'르 꼬르동 블루'는 말그대로는 '푸른 리본(또는 띠)'란 뜻인데 '뛰어난 요리'를 상징하는 프랑스어다. 그 연원을 따지자면 16세기까지로 거슬러 올라간다. 1578년 프랑스 국왕 앙리 3세는 '성령기사단(L'Ordre des Chevaliers du Saint Esprit)'을 창단했는데, 그 멤버들은 길게 늘어뜨려진 푸른 리본의 십자훈장을 달고 있었기에 '꼬르동 블루'라고 불렸다. 특히 성령기사단은 호화로운 만찬이 뒤따르는 격식있는 파티로 유명했다. 18세기에 들면서는 꼬르동 블루라는 말이 아예 훌륭한 요리라는 뜻으로만 쓰이게 된다.

19세기말경 언론인이던 마르뜨 디스텔 여사(Mme Marthe Distel)는 '라 뀌지니에르 꼬르동 블루(꼬르동 블루 요리사)'라는 주간지를 발간했는데 큰 성공을 거두었고 70여년에 걸쳐 세계 최고의 요리 레시피(프랑스어로는 르세뜨 recette)를 집대성하게 된다. 1896년 1월 14일 이 잡지의 요리들을 선보이기 위해 만들어진 학교가 바로 빠리의 르 꼬르동 블루다.

설립 첫 해부터 세계적인 관심을 불러모았던 르 꼬르동 블루는 1897년 첫 러시아 유학생이 입학한 후 1905년에는 일본인 학생이 입학하는 등 세계적인 요리학교로 받돋움한다. 1933년에 런던 분교가 설립되었는데 런던 르 꼬르동 블루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대관식 만찬을 케이터링해 더욱 유명해진다.

결정적으로 르 꼬르동 블루가 국제적인 유명세를 타게 된 것은 1954년 오드리 헵번이 주연한 영화 '사브리나' 때문이었다. 이 영화에서 오드리 헵번은 빠리의 르 꼬르동 블루에서 요리수업을 받는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르 꼬르동 블루에서는 '사브리나'요리 시리즈를 발간하기도 했다. 사브리나 요리 시리즈는 우리나라에서도 베스트홈(월간 쿠켄)에서 번역, 출간돼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1984년에 꼬냑 레미 마르땡을 생산하는 꾸앵트로(Cointreau)가문이 이 학교를 인수한 후 빠리 르 꼬르동 블루는 굴지의 국제요리학교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다지고 있다. 현재 런던, 캐나다 오타와, 호주 시드니 등 12개국에 20여개의 분교를 두고 있고 가장 중요한 빠리 르 꼬르동 블루에서는 한국을 비롯한 70여개국에서 온 유학생들이 체계적인 요리교육을 받고 있다.

르 꼬르동 블루가 역사적으로 유명한 쉐프(조리장)를 많이 배출한 것도 사실이고 이 학교의 졸업장인 그랑 디플로마가 요리업계에서 그 질을 인정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사실 프랑스 요리와 제과제빵을 가르치는 학교가 르 꼬르동 블루만 있는 것은 아니며 이 학교의 졸업 자체가 요리사로서의 완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요리사는 현장 속에서 창의성을 발휘할 때 진정한 쉐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르 꼬르동 블루 외에도 한국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EPMT(으뻬엠떼:식탁관련전문학교) 같은 조리전문학교들도 적은 수업료로 더 알찬 커리큘럼을 제공하는 우수한 학교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르 꼬르동 블루 졸업장보다 사실은 프랑스정부가 주관하는 까다로운 국가공인시험인 전문직자격증 CAP(쎄아뻬 Certificat d'Aptitude Professionelle)가 훨씬 더 어렵고 유용한 자격증이다. CAP(쎄아뻬)시험은 제과·제빵분야, 요리분야 등으로 나눠 치러지는데 르 꼬르동 블루를 나왔다고 해도 CAP가 없으면 별로 인정받을 수 없다. 쎄아뻬는 이론과 실기, 프랑스어 등 3과목을 통과해야 한다. 때문에 르 꼬르동블루를 나온 한국인 쉐프는 많아도 CAP를 가진 한국인 쉐프는 드문 것이다. 대개 제빵기술고등학교를 나온 이들이 응시한다. 3년 정도는 준비해야 한다. 당연히 이 자격증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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