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이하 노동력만 갖고 뭘 하겠다는 겁니까"
[저출산고령화의 덫 5] 중고령자의 구직난 '비명'
2005.11.04 10:49:00
"50대 이하 노동력만 갖고 뭘 하겠다는 겁니까"
"내가 이래 봬도 은행 지점장까지 했던 사람이라 그러네! 월급 100만 원 주는 데가 진짜 그렇게 없소?"

고령자취업알선센터에서 일하는 이들은 이럴 때 정말 난감하다. '어르신, 이제 사무실에 정기적으로 출퇴근하면서 그것도 100만 원씩 버는 직장 찾기는 정말 힘들어요'라는 말을 차마 할 수가 없다. 나날이 열악해지는 노인 일자리 시장 앞에서 노인들이 자괴감과 실망으로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수없이 보아 왔기 때문이다.

"세상에, 실버취업박람회라는 데를 몇 바퀴 돌아도 할 만한 게 없어. 할 만한 게"라며 한숨을 푹푹 쉬던 금융권 출신 박진석(가명, 56) 씨는 결국 시급 3000원에 주유원 생활을 시작했지만 얼마 못 가 그만뒀다.

"가르치는 일을 아무리 잘 해도 늙어서 싫대. 애들도, 애들 엄마들도." EBS방송에서 강의했던 경험까지 있는 영어강사 강정길(가명, 61) 씨는 사업이 망해 당장 돈이 급했다. 화려한 경력이었지만 나이가 '원죄'였다. 주차관리원 자리밖에 없다는 말에 입술을 깨물던 강 씨는 그 일 역시 결국 체력이 달려 그만뒀다.

"요즘 노인 일자리 시장에도 중간층이 없어요. 번역같은 극소수의 전문직과 대다수의 저임금 단순노무직으로 갈리죠. 그나마 노무직도 최근에 직장을 그만두고 쏟아져나온 40~50대가 60대 분들이 하던 직종에 대신 들어차고 있어 노인 일자리 수가 전체적으로 크게 부족합니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취업알선센터 관계자는 "거기다 60~70대 여성들이 대거 노동시장에 나오는 것도 특별한 현상"이라며 "평생 가정주부만 하다가 남편이 실직하는 바람에 갑자기 나오신 분들은 대개 가사도우미나 보모를 하는데, 그것도 최근 바다를 건너온 값싼 중국인력과 경쟁해야 하는 처지"라고 고개를 흔들었다.

이래저래 65세 이상 구직자가 크게 늘었는데 이들이 갈 데가 없다는 것이다. 특히 업체들은 60세가 넘었다고 하면 손사래부터 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중고령자의 "일하고 싶다"는 비명은 '현재 젊은 이들의 미래'**

<프레시안>의 이번 '저출산고령화' 기획을 보고 "저출산이 뭐가 문제냐"고 되묻는 사람도 있었다. 이제 우리나라도 인구가 좀 줄어야지, 좁은 땅덩이에 계속 사람이 넘치면 부모는 교육비에 허리 휘고, 태어난 자녀는 피 터지게 경쟁하며 고생할 텐데 누구 좋으라고 애를 낳느냐는 냉소적인 반응이었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저출산, 고령화 현상을 두고 인구의 '절대 규모'보다는 '연령구성의 변화'가 끼칠 사회경제적 파장이 더 큰 문제라고 말한다. 자녀를 부양하느라 딱히 모아둔 돈도 없지, 사회보장 체계가 미약하니 연금소득도 없지, 거기에 일자리마저 없어 발을 동동 구르는 오늘날 노인들의 고단한 풍경을 보라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앞으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한다면 모르겠지만 이대로 간다면 그런 노인들의 모습은 현재 젊은 세대 대다수의 미래를 보여주는 거울이라는 얘기다.

사실 이러한 '고령자의 구직난'은 우리 사회가 처음 겪는 현상이다. 그간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인구는 주로 농촌에 거주했고, 노인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기에는 노인집단의 규모가 작았다. 한국은 2000년도에 고령화 사회의 문턱을 넘기 전까지는 상당히 '젊은' 개발도상국이었고, 고령층은 누가 고용해주지 않아도 농촌에서, 자영업 현장에서 알아서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그림 1><그림2>

장지연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재 50대 후반 이상 임금노동자의 직종분포를 보면 고위관리자(17.4%)와 단순생산직(59%)으로의 집중현상이 뚜렷하다"며 "향후 대거 쏟아질 도시의 중간관리 사무직 퇴직자들이 갈 곳이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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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고령층 인구의 절대 수는 늘어나는데, 그동안 고령 근로자들을 흡수해 온 농업과 자영업 부분은 계속 위축되고 있다. 앞으로 '도시 임금노동자'들에 대한 일자리 창출이 적극적으로 이뤄지지 않는 이상 이들은 그대로 복지의존도가 심한 고령 실업자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고령층이 이렇게 절박하게 일자리에 목을 매는 것은 '생존'을 위해서다. 김수완 국민연금연구원 연구위원은 "공적 연금 등 다층적 소득보장 체계가 미흡한 한국에서 근로소득의 상실은 그 자체가 곧 생존의 위협"이라며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의 노후 소득구성은 근로소득의 비율이 높고 국민연금 등 공적 이전소득의 비율이 낮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65~69세 가구의 빈곤율이 현저히 높다는 것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의 노인들은 생계를 위해 고단한 몸을 계속 부려야 한다.

<그림 4><그림 5>

**"베이비붐 세대, '산업일꾼'에서 '인구부채'로**

지금까지 정부의 노인복지 정책 대상은 기초생활수급자에 그쳤다. 그러나 이제는 인구구조의 큰 변화로 인해 정부가 계속해서 '일부 자립능력이 없는 계층만 국가가 챙길 테니 나머지는 각자가 알아서 하라'는 태도를 유지하기가 어렵다.

전광희 충남대 교수(사회학)는 "6.25전쟁이 휴전된 1953년부터 정부가 가족계획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직전인 1965년까지 태어난 1000만~1200만 명의 베이비붐 세대는 1970~80년대에 '젊고 값싼 노동력'으로 한국경제를 일으켰지만 21세기에 들어서면서 그대로 '인구부채'로 전환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산업일꾼'으로 추켜세워지던 베이비붐 세대는 현재 중년을 넘어서면서 이미 사회로부터 여기저기서 '출입금지 명령'을 받고 좌절하고 있다.

그는 "그래도 한국은 개발도상국형에서 선진국형 인구체제로 가기까지 아직 10~15년의 유예기간이 있다"며 "거대한 베이비붐 세대가 노동시장에서 완전히 은퇴하는 시점이자 1980년대에 태어난 그들의 자식 세대가 노동력의 중추를 이루는 2020년까지 우리는 노동시장과 사회 전반에 대한 대비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지 못할 경우 늘어나는 공공지출을 뒷받침하기 위한 조세와 사회보장 기여금의 부담을 둘러싸고 '세대간 갈등'이 빚어질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고, 1인1표의 정치적 민주주의가 지속되는 한 현역 노동자들의 정치적 영향력이 위축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임금피크제의 현실 적용에는 여러가지 어려움**

방하남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신규진입 부진과 조기퇴직을 특징으로 하는 현 노동시장의 상황이 계속돼 30~50대에 한정된 짧은 근로생애만 허용된다면 한국의 장기적인 경제발전은 힘들다"고 우려했다.

그는 "노후까지 안정된 근로생애를 보장받는 문제는 사실 고령층뿐 아니라 전 세대에 해당되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사회는 특수 직역(공무원, 교사, 군인)만 제외하고는 누구에게나 개인적으로 과도한 짐을 지우고 있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고령화에 따른 노동력 공급 감소에 대응하고 노동자에게 일자리를 보장하기 위한 해법으로 '정년 연장'과 '사회적 일자리 창출'이 거론되고 있다. 지난달 26일 노동부는 '고령자 고용 연장을 위한 임금피크제 도입 지원방안'에 관한 공청회를 열고, 고용보험법 시행령을 연내에 개정해 내년 1월부터 시행할 방침임을 밝혔다.

고용보험기금을 재원으로 연공급이 아닌 성과주의 임금제가 정착될 때까지 한시적으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해 운영한다는 것이다. 이는 최저 57세 이상까지 고용을 보장하는 것을 전제로 임금삭감에 노사가 합의하는 사업장에 대해서는 정부가 그 근로자에게 최장 6년간 노사합의로 삭감된 차액의 일부를 지원하는 제도다.

임금피크제는 2003년 7월 신용보증기금을 시작으로 민간 제조업체와 금융회사, 공사 등을 중심으로 이미 13개 기업이 자발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한국생산성본부 경영컨설팅사업부 관계자는 "현재 임금피크제를 도입했거나 도입할 예정인 곳들은 IMF 위기 때 구조조정이 안 됐거나 구조조정의 필요성이 없었던 회사들"이라며 "이런 회사들이 조직 안에서 고령화가 진행되자 이에 대응하는 방법의 하나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근로자의 입장에서는 임금피크제가 일자리 유지를 위한 것이라기보다 회사에서 임금을 삭감하는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으로 보고 반발하는 경우가 많고, 사용자들도 임금피크제가 인건비 절감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보거나 임금피크제의 적용 대상과 관련 직무의 개발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제도의 좋은 취지와 달리 현실에서 구체적으로 시행하는 데에는 해결해야 할 어려움이 많은 것이다.

***"정부가 창출하는 사회적 일자리가 민간에 정착하려면 장기적 투자 필요"**

그렇다면 사회적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은 어떨까. 지난해 초에 개소한 국민연금공단의 노인인력운영센터를 통해 사회적 일자리를 갖게 된 인원은 지난해에 3만5000명이었다. 올해는 이미 상반기에 3만5000명이 넘어섰다고 하니, 사회적 일자리에 대한 폭발적인 수요가 존재함을 알 수 있다. 올해 이 센터를 통해 일자리를 구한 사람들 가운데 공익형(자연환경 정비, 거리환경 개선, 행정기관 보조 등)은 2만4000여 명, 교육강사형(숲생태 및 문화재 해설사, 종이접기 지도사, 예절 지도사 등)은 8000여 명, 자립지원형(주유원, 주례, 간병인, 가사도우미, 지하철택배 등)은 3100명 등이다.

그러나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일자리를 요구하는 노인 구직자가 급증하고 있는 데 비해 정부는 '생계 보조수단 혹은 어르신 역할 찾아주기' 정도로만 노인 일자리 공급사업을 유지하고 있을 뿐 그 이상의 적극적인 대책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노인인력운영센터에서 공급하는 것과 같은 노인 일자리는 실제로 1번 이상 참여하기가 어렵고, 임금의 액수도 월 20만 원(시급 3000~4000원) 정도에 불과해 그야말로 생계보조의 수준이다. 이런 식이라면 2009년까지 노인 일자리 30만 개를 창출하겠다고 한 노무현 대통령의 최근 공언도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다.

국민연금공단 우제광 기획홍보팀장은 "내년 예산을 올해 400억 원에서 100억 더 늘리고 취업기간도 6개월에서 7개월로 늘리기로 했지만 여전히 대기인원에 비하면 부족하다"며 "민간 업계에서 노인들을 활용하도록 정부와 공공기관이 가교의 역할을 해야 하지만, 아직 사회적 인식이나 노인들 본인의 태도 등에서 개선할 점이 많다"고 설명했다.

공공기관의 보조금이 끊겨도 민간에서 일자리가 이어지려면 노인 구직자 본인도 적극적으로 재교육을 받고, 공공기관도 노인 구직자에 대한 재교육을 적극 뒷받침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 팀장은 "재교육에 대한 요구가 실제로 점점 더 커지고 있다"며 "고령층의 학력과 경력이 점점 더 다양해지는만큼 그들이 민간의 일자리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려면 재교육 등에서 장기적인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지연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고령화 시대의 노동시장 정책 방향으로 ▲유ㆍ무급 자원봉사의 확대와 사회적 일자리 창출 ▲보상ㆍ인사관리 체계의 개선과 연령차별 금지, 평생학습권 보장 ▲취업알선 인프라 구축 등을 제시했다. 그는 "전문ㆍ관리직과 단순노무직으로 크게 양분된 우리나라 고령자 취업시장 상황을 볼 때 자원봉사 조직의 성격과 종류를 다양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문지식을 가진 은퇴노인에게는 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에 은퇴했으나 재취업하기에는 기능이 부족하거나 없는 이들에게는 훈련의 기회를 제공하고, 생계를 염려하는 그 다음 계층에게는 공공근로 같은 직접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림 6>

***"이제 12~16년의 정규교육으로 40여 년의 근로생애 유지 불가"**

또 연령이 아닌 직무 중심의 보상ㆍ인사관리 시스템의 정착, 연령차별 금지, 평생학습권 보장은 동시에 이뤄져야 효과가 있다. 우리보다 일찍 고령화 사회를 맞은 유럽연합(EU)은 2000년에 회원국의 의무사항으로 성별뿐 아니라 종교, 장애, 연령에 근거한 차별을 금지하는 입법을 하라는 지침을 정했다. 미국은 이미 1967년에 연령차별금지법(Age Discrimination in Employment Act)을 제정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1세기에는 평생학습이 필수적이며 모든 사람이 평생학습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내용의 '만인을 위한 평생학습(Lifelong Learning For All)' 선언을 하기도 했다.

지식과 정보의 양이 폭증하고 그 생성과 소멸의 주기가 빨라지는 사회에서 12~16년의 정규교육 과정만으로는 40여 년에 걸친 근로생애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없다. 게다가 기업은 자체적으로 인적자원을 개발하기보다는 외부에서 필요한 인력을 조달하는 경향을 점점 더 분명히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근로자 개개인으로서도 스스로 이직에 대비한 능력과 기술을 배양하기를 게을리할 수 없다.

장지연 연구위원은 "이를테면 자율적 재교육을 위한 '학습휴가제'를 도입하는 방안도 검토해볼 만하다"며 "이와 더불어 노동부의 고령자인재은행, 복지부의 노인취업지원센터, 지자체의 고령자취업알선센터 등 기관별로 분리된 채 비효율적으로 운영되는 취업알선 체계를 일원화하고 노인취업 컨설턴트를 육성하기 위한 투자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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