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마 시위가 끝나지 않는 까닭은?
[버마이야기] ① 버마 학생운동의 뿌리와 역사
버마 시위가 끝나지 않는 까닭은?
버마에서 가장 힘 있는 집단은 학생과 스님이다. 8888 민중항쟁을 이끈 학생들은 1988년 9월 18일 군부가 저지른 쿠데타 이후 네 가지 활동 방향을 가지고 군정에 저항해 왔다. 정치운동, 지하운동, 무장투쟁, 해외연대가 바로 그것이다. 각각의 활동 방식과 역사에 대해 짤막하게 알아본다.

■ 정치운동

1948년 영국과 일본으로부터 독립한 이후부터 62년까지 버마는 민주주의 국가였다. 62년까지만 해도 버마는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였다. 또한 1961년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한 것은 훌륭한 교육 제도 덕택이 컸다.

그러나 62년 군사 쿠데타 이후 경제와 교육의 수준은 후퇴하기 시작했다. 74년 군사 정권이 만들어 놓은 이른바 '버마식 사회주의'는 군부독재의 다른 이름으로 아시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 버마를 가난한 국가로 바꾸어 놓았다. 이에 버마의 민주화를 바라는 시민들의 목소리는 높아졌고 이는 8888 민주화항쟁을 통해 나타났다. 그 항쟁은 학생, 스님, 노동자, 공무원, 심지어 군인들까지 참여한 대규모 시위였다.

이어 88년 9월 18일 군부 쿠데타가 다시 일어났고 군인들은 90년에 총선거를 실시하겠다고 약속했다. 군인들은 '민주주의 국가를 만들자'고 말했지만, 민주주의 국가라면 당연히 허락되어야 할 학생·노동자·농민 조직을 설립할 수 있는 자유를 주지 않았다.
▲ '새로운 사회를 위한 민주당' (DPNS) 로고 ⓒDPNS 홈페이지

민주화 운동을 위해 아웅산 수치와 같은 정치인들은 정당을 만들었는데, 어떤 학생들은 민주주의민족동맹(NLD) 같은 정당에 들어가기도 했고, '새로운 사회를 위한 민주당'(Democratic Party for New Society, DPNS)을 만들기도 했다. DPNS는 NLD의 지도자 아웅산 수지에 대한 지지 운동, 그리고 다른 학생 조직들과의 연대 활동을 해왔다. 그러나 90년 총선거 이후 군부에 의해 해산됐으며, 현재 버마-태국 국경지역에 기반을 두고 활동하고 있다.

■ 지하운동
▲ 버마 지하운동의 핵심 민꼬나잉(가운데) ⓒwww.hittaing.org

정당에 관심이 없는 학생들은 한국의 전대협·한총련 같은 학생조직을 만들거나, 지하운동을 해왔다. 지하운동의 가장 핵심적인 인물은 몬(Mon) 족 출신 민꼬나잉(Min Ko Naing)이란 사람이다. 그는 버마전국학생연합(All Burma Student Federation Union, ABSFU)의 지도자였고, 지하운동도 이 단체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ABSFU는 주로 시위 조직화와 유인물 배포, NLD 등 정당 지지 활동을 하며 학생들과 국민들, 그리고 정치인들을 이어 주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 무장투쟁
▲ 무장투쟁으로 민주화를 이루겠다는 전버마학생민주전선 조직원들의 모습 ⓒ http://www.absdf8888.org/photo-gallery/index.html

전버마학생민주전선(All Burma Students' Democratic Front, ABSDF)이 중심적이다. 이들은 비록 무장투쟁을 하고 있지만, 대화를 통해 버마 민주화를 달성하려는 아웅산 수치와 NLD를 지지하고 있다. 또한 무장투쟁을 하고 있는 소수민족들과의 화해와 연대활동을 하고 있다. 88년 이후부터 다민족간의 화해에 있어 큰 역할을 해왔다.

■ 해외연대

버마는 여러 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어 8888 항쟁 출신의 학생들 중에는 태국, 중국, 인도, 방글라데시 국경 지대에서 진출해 해외연대 운동을 하는 활동가들이 있다. 그 외에도 미국, 유럽, 일본 등지로 망명한 버마 사람들은 그 나라를 기반을 두고 국제연대를 하고 있다.

버마의 모든 미디어는 군부에서 통제하고 있기 때문에 버마 사람들은 해외의 미디어를 통해서만 버마의 문제들을 알 수 있는 형편이다. 그래서 몇몇 버마 출신 망명자들은 라디오 방송, 인터넷 신문, 잡지 등의 미디어를 만들기도 한다. 그중에 가장 유명한 미디어는 '버마 민주화의 소리'(Democratic Voice of Burma, DVB)라는 라디오 방송과 인터넷 신문 '이라와디'(www.irrawaddy.org)이다.
▲ '버마 민주화의 소리' 로고 ⓒwww.dvb.no

버마 민주화의 소리는 버마 시민들을 대상으로 텔레비전과 라디오 방송, 인터넷 신문을 만들어 주로 버마와 아시아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라와디 신문도 마찬가지이다. 영어와 버마어 두 언어를 통해 버마와 전세계 사람들에게 버마와 아시아의 상황을 알리고 있다.

8888 항쟁 출신 학생들은 정치 활동가, 시민 활동가뿐만 아니라 미디어 활동가가 되었다. 카메라나 녹음기 하나만 가지고 있어도 범죄자로 취급하는 군부 독재 치하의 버마에서도 소위 '시민 기자'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이번 시위 사태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9월 27일 전까지만 해도 인터넷을 통해서 버마의 시위 장면을 담은 사진이나 영상을 시시각각 확인할 수 있었다. 27일 이후 군부가 인터넷을 폐쇄해 예전처럼 그리 많은 정보들이 올라오고 있진 않지만, 여전히 현지의 생생한 소식들이 올라오고 있다.

국제사회가 이번 버마 시위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버마 내 시민 기자들과 망명자들이 만드는 미디어의 역할이 컸다. 우리는 여전히 망명자 네트워크와 미디어를 통해서 국내외 소식을 주고받고 있다. 인터넷이 버마 민주화 운동가들을 이어주는 통로가 된 것이다.

싸움의 길고 짧음에 슬퍼하지 않는다

8888 민주항쟁 이후 학생들은 꾸준히 투쟁해왔다. 망명자, 무장투쟁을 하는 사람, 지하 운동을 하는 사람들도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활동을 해왔다. 버마 학생들은 19년이 넘는 세월 동안 민주주의와 인권, 그리고 평화를 위해 싸우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이 싸움의 길고 짧음 때문에 슬퍼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은 이 과정이 진정한 평화와 인권을 위해 한 걸을 한 걸음 걸어 나가는 여정의 일부라 생각한다.
▲ 마웅저 씨 ⓒ프레시안

* 필자 마웅저(Maung Zaw) 씨는 버마 8888 항쟁 당시 고등학생으로 시위에 참가한 후 버마 민주화 운동에 투신해왔다. 1994년 군부의 탄압을 피해 버마를 탈출, 한국에 왔고 2000년 이후 현재까지 난민 지위를 인정받기 위한 소송을 진행중이다. 버마민족민주동맹(NLD) 한국지부 결성에 참여했고, 현재는 한국 시민운동에 관심을 갖고 시민단체 '함께하는 시민행동'에서 인턴으로 활동 중이다. 블로그 <마웅저와 함께(http://withzaw.net)를 운영중이다.



<버마 사태 관련 마웅저 씨 기고 모음>

"버마의 시위가 끝났다고? 천만의 말씀" (2007년 10월 4일)

버마 사람들은 왜 거리로 나섰나? (2007년 9월 27일)

버마 사태 고조…스님들, 마침내 시위 대열 가담 (2007년 9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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