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의 자유'와 군대, 그리고 강의석
[기고] 시민불복종은 새로운 사회 만들기의 출발점이다
'양심의 자유'와 군대, 그리고 강의석
모든 양심의 자유는 가치로운가? 물론 아니다. 인간의 욕망이 주관적임은 말할 것도 없고 너무도 복잡하여, 모든 욕망이 양심이라는 이름에 따라, 분출될 때 사회는 자유로워지기보다는 더 혼란스럽고, 고통에 빠질 수도 있다. 그래서 자신의 쾌락을 위하여 다른 누군가를 죽이고 싶어 하는 욕망에 따른 행위가 설령 양심적일지라도 그것은 옹호 받을 수 없도록 되어 있다. 반면에 만인의 행복을 위하여 다른 사람을 살인했고, 그로 인해 스스로 제재의 길을 달게 받았던 테러리스트, 안중근은 의사라고 불리고, 그의 행위는 양심적인 행위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면 어떤 행위가 양심의 자유를 지키는 행위라고 생각할 수 있는가? 양심적 행위란 국가권력이나 지배적 권력의 구속이나 억압, 왜곡하는 힘의 실체를 폭로하거나 개인들로 하여금 불의를 강요하는 권력에 대항하여 진실을 드러내는 비폭력적 행위로서 여겨지고 있다. 예컨대 드레퓌스사건으로 인해 유태인들이나 소수민족에 대한 억압 상황을 당연시 할 때, 그러한 억압 상황을 문제시했던 에밀 졸라를 포함한 프랑스 일부 지식인의 노력에 대하여 우리는 양심의 자유를 수호한 행위로 인식하고 있다. 또한 국가 권력에 의한 베트남 민중들의 학살을 정당시 했던 국가와 체제 지향적 언론에 대항하여 미국인들의 불의를 비판했던 1968세대들의 반전 활동에 대해 양심의 자유를 수호한 행위로 보았다. 또한 소련군의 군홧발에 짓밟혔던 헝가리 등 동구 민중들의 억압 상황을 폭로했던 일부 지식인과 언론의 활동을 양심의 자유로 인식하였다. 또한 황인종을 모두 빨갱이로 인식하였고, 피난민조차 적으로 간주하여 노근리에서 무조건 민간인을 학살시켰음을 50년이 지나 고백하게 된 미군 병사의 행위도 양심적인 행위로 인식하였다.

그래서 국제앰네스티는 양심적 행위를 '폭력을 사용하거나 주창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정치적·종교적 신념, 인종, 성별, 피부색, 언어, 성적지향성을 이유로 구속·수감된 모든 경우'로 정의 내렸다. 물론 이때 양심적 행위를 둘러싼 환경은 보편적일 수 없다. 나라와 시대, 집단의 특성에 따라 양심적 행위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과 같은 분단 상황에서 군대를 둘러싼 양심적 행위는 어떻게 나타날까? 우선 군대의 주요 개념에 대해서 살펴보면, 군대는 원론적으로 말하여 국가의 폭력기구이다. 폭력은 근본적으로는 지양해야 할 개념이지만, 현실적으로 볼 때 폭력에 대한 법제도의 허용/불허에 따라 합법적, 정당한 폭력기구와 불법적 부당한 폭력기구로 나눌 수 있다. 또한 정당한 폭력기구라 하더라도 그들의 행위가 준법에 따를 때, 또는 정의에 따를 때는 정당한 폭력행위이지만, 준법을 무시하거나 불의에 기반을 둘 때는 부당한 폭력행위로 나눠 인식해야 한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폭력기구를 허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반드시 인권을 부당하게 침해해서는 안된다는 원칙이 작동하게 된다. 그러한 차원에서 전시 상황의 인권 문제를 다룬 것이 바로 1949년 '제네바협정'이다.

현실적으로 남북이 대치한 상황에서 우리는 오랫동안 남북의 분단 상황을 당연시 해왔다. 그래서 분단국가 하에서 군대는 당연히 정당성을 갖는 것이고, 군대를 기피하는 행위는 어떤 철학과 동기에 기초하건 부당한 것으로 여겨져 왔다.

군대 기피 문제를 예로 들 때 최근에는 이회창 대통령 후보의 아들의 사례를 종종 떠올린다. 대통령 후보와 같은 지배적인 권력자일지라도 국민의 의무 앞에 평등해질 것을 요구할 만큼 우리는 평등을 지향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이런 사회가 우리 앞에 도래한 것은 이제 10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과거 오랫동안 우리 사회에는 '신의 자식', '장군의 자식', '인간의 자식'이라는 말로서 군대 기피를 할 수 있는 사람과 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나눠 얘기할 만큼 기피라는 문제에 대해 사실은 관용적이었거나 체념적이었다.

이제 민주화의 시대를 맞이하여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전면에 걸고 과거에는 당연시 했던 문제들에 대해 검토하고 문제제기하는 행위는 너무도 당연하다. 그런데 재고해 봐야할 문제의 하나가 바로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이다.
국가적 이해관계를 앞장세우는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진보적인 사람들 가운데에서도 의견이 갈라지는 문제 중 하나가 바로 병역거부의 문제이다. 이는 지난 10월초 강의석 씨의 군대 반대 퍼포먼스를 둘러싼 설왕설래에서도 잘 볼 수 있었다.

분단 상황에서 평화의 상상은 허용되지 않는가

남북 분단과 대치 상황에서 남북 군대는 사실상 서로를 적대시하고 있다.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은 남북의 적대 상황을 약화시킬 수 있었으나 최종적으로 적대관계를 해소시켜 평화 체제를 만드는 데에는 실패했다. 현재 대한민국 국방부가 북한을 공식적으로 '주적'으로 삼고 있는 것이나, 2008년 7월의 금강산 해안가에서 있었던 총격사건처럼 북한 인민군 역시 남한의 관광객을 향하여 총격을 가한 것은 상호 적대시의 개념에 기초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다시 말해 기본적으로 분단 상황의 남북의 군대는 직접적으로 표현하건 하지 않건, 상대를 사실상의 '적'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분단 상황에서 현재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양심적 병역 거부자 문제에 대하여 처벌주의로 일관하는 문제에 대하여 간과하는 것은 마땅할 것인가?

많은 사람들은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에 대하여 그들은 양심을 핑계로 사실상 군대를 기피하려는 동기를 갖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 말은 전혀 현실적이지 않다. 과거 소위 '신의 자식' 또는 '장군의 자식'처럼 권력을 동원하여 군대를 기피하던 사람들은, 개인차는 있겠지만, 군대를 기피함으로써 다른 더 큰 이익을 취했던 사람들이다. 이 점에서 이회창 대통령 후보의 아들이나 최근에 사회적 물의를 빚은 어느 대중가수와 다르지 않다. 그러나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은 군대를 거부함으로써 1년 이상 3년 이하의 군인교도소에서 생활하게 되어 있고, 집총거부자들도 최소 군대 영창생활을 하여 추가적인 군복무를 해야 한다. 그들은 병역을 거부함으로써 이익은커녕, 법제도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20대 초중반의 청년들을 3년 가까운 교도소 생활을 하여 반인권적 상황을 기정사실화하는 것보다는 그런 기간 그 청년들에게 군대와는 다른 기관에서 사회봉사를 시키자는 의견이 최근에서야 출현하였다. 2007년도 국회에서는 대체복무제와 같은 논의를 진지하게 검토하였으나, 2008년 현재 국회에서는 수면 밑으로 가라앉고 말았다. 따라서 현재 한국은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 대해 유일하게 실형을 살게 하고 있는 나라라고 하는 오명을 쓰고 있다.

여기서 더 근본적인 것에 대해 물음을 던지고 싶다. 우리는 한반도의 비평화적 상황을 기정사실화하는 분단 구조를 언제까지 당연시 할 것인가? 2007년 10·4선언의 핵심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었고, 북핵 문제를 푸는 핵심 역시 한반도 비핵 평화라는 아이디어의 현실화가 아니던가?

그래서 이런 상상을 하고 싶다. 존 레논의 이메진(Imagine)의 노래가사처럼 국가도 없고, 군대도 없고, 전쟁도 없는 세상을 꿈꾸고 싶다. 그러나 현실로 돌아와 각종의 경계가 남아 있는 현실 세상에서 국가의 존재를 필요악으로서 인정하고 군대 역시 필요악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도 다른 상상을 할 수 있다. 최소한의 평화의 군대를 만들 수 없는가를 상상해본다. 예컨대 남북이 통일하여도 군대는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때 군대는 주변국들을 모두 적대시하는 군대여야 하는가? 가상의 적과 국난에 대비하여 자국민의 안녕과 행복을 지킬 때 소위 평화지키기(Keeping Peace)로서의 군대 개념이 존재할 수 있게 된다. 평화의 군대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한반도 평화 체제에 대한 구체적 개념 속에 포함되며, 통일 국가에 대한 비전이다.

또한 국민의 의무 가운데 하나인 국방의 의무 개념에도 수정이 필요하다. 국방(national defence)은 달리 말하면 안보(national security)의 표현이다. 과거 국가 안보는 정권을 위한 안보로서만 인식되어 왔으나 그건 철저하게 냉전적 사고방식이다. 민주 사회에서는 안보는 인간안보에 기초해야 한다. 왜냐하면 민주 사회에서 국가의 모든 주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이다. 국가가 주권을 취하는 목적은 국민의 행복과 안녕을 수호하는 데 두어져야 한다. 국민의 행복과 안녕을 수호하는 사명이 바로 국방이자 안보이다. 따라서 국방과 안보는 인간안보에 기초할 때 비로소 민주 국가의 작동이 가능하게 된다.

민주주의의 맥락에서, 우리가 분단을 극복하려고 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의 하나는 분단이 우리의 기본 인권을 억압하고, 양심의 자유, 학문의 자유를 포함한 기본적 인권에 제한을 가하고 있으며, 나아가 정치적인 활동은 말할 것도 없고 사회경제적 활동마저 방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시대 국가가 정당성을 가지려면 일차적으로 현재의 분단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고, 시민들의 자유와 평등의 조건을 확보하기 위해 더 이상 핑계를 대서는 안된다는 사실이다. 설령 주적으로서 북한이 있더라도 탈냉전의 시대, 우리는 왜 북한과 평화로운 관계를 가져오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는가를 국가와 사회에게 물어야 한다.

시민불복종운동은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원천

지난 10월초 강의석의 해프닝은 분단 현실 앞에서 벌린 몰지각한 행위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불행한 예단인지 모르겠으나, 과거 전방입소를 거부하며 분신자살을 했던 청년들이 있었고, 손가락을 잘라 군 입대를 거부했던 청년들이 있었으며 지금도 군인 교도소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의 입장에서 자신의 청춘을 썩히고 있는 청년들은 년간 600여명이나 있듯이, 앞으로도 계속 발생할 것이다.

역사적으로 양심의 자유를 지키려는 사상이나 운동은 많은 경우 체제나 정부에 불복종적인 것이었다. 예컨대 자유주의의 승리로 말하고 있는 프랑스혁명 당시의 자유주의 사상은 반체제 사상이었고 혁명적 사상으로 불복종사상의 원천이 되었다. 또한 양차 세계대전 앞에서도 전쟁을 반대했던 수많은 양심적 행위자들이 있었고, 일본이 성전(聖戰)으로 불렀던 태평양전쟁에 반대하여 징병을 거부하거나 탈영을 감행했던 조선 청년들이 있었다. 또한 1968년 당시 베트남전쟁 반대 운동 역시 불복종사상에 기초한 시민불복종운동이었으나 역사는 그 운동에 승리의 손을 들어 주었다. 1987년 6월 항쟁 역시 전두환 정부의 호헌 체제에 반기를 대대적인 시민불복종운동이었으나 이후 역사는 그 운동에 승리를 선언했다.

이것이 바로 강의석의 행위를 양심의 자유를 지키려고 하는 행위로 볼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현재와 같은 구조가 남아 있는 한, 모순을 파헤치려는 행위는 계속 발생하기 마련이다. 종종 진실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한다. 1990년 윤석양 이병이 보안사 도청명단을 공개했을 때, 윤 이병의 고통은 말할 것도 없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불편했던가? 그러나 그로 군대 기구가 민간인을 비밀리에 사찰하는 일이 금지되었으며, 국가의 정당한 행위의 한계, 오늘날 개인의 자기정보통제권에 대해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설령 내가 양심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내 목숨을 다 걸 수는 없더라도 누군가에 의해서 계속 양심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피해자 없는 범법자를 계속 만들고 있는 한, 시민들은 국가의 정당성에 대하여 계속 질문을 할 것이다. 국가의 모든 주권은 국민으로 나온다는 말은 언제쯤 지켜지느냐고. 국가는 이 땅의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불행하게 만드는 분단 상황을 해소하여 평화적 상태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느냐고 계속 질문할 것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inkyu@pressian.com 다른 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