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구름만 잡는' 대북정책, 좋았던 시절이여 안녕
[한반도 브리핑] 이미지와 원칙론에 중독된 이명박 정부
2009.11.18 08:50:00
'뜬구름만 잡는' 대북정책, 좋았던 시절이여 안녕
선핵폐기론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다양한 표현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핵심은 선(先)핵폐기론이다. 진보 정권 10년간의 포용정책은 북핵 문제를 해결하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한미동맹을 위기로 몰아간 실패로 규정했다. 북핵 문제를 민족이라는 특수 차원에서 보고 북한에 대한 비등가적 교환으로 해결하려 했던 전임 정권들과 달리 비가역적 비핵화를 협상 시작의 전제조건으로 삼고 있다.

패러다임의 변화'라고 자칭하면서 남북관계를 특수 관계로 보지 않고 보편 관계로 대응하겠다고 천명한 것은 북한에 대한 일방적 양보는 더 이상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임기 초 통일부 폐지 논의도 그렇고 최근 국정원 내부의 대북 파트를 축소하고 해외 파트의 일부로 흡수시킨 것도 같은 맥락이다.

현 정부는 실용정부를 지향한다고 했지만, 스스로도 자랑스럽게 '원칙론'이라고 말할 만큼 매우 이념적 대북정책 기조를 지속하고 있으며,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의 적화통일 발언이 상징적으로 보여주듯 여전히 냉전적 사고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이 주도했던 부시 행정부의 초기 6년의 노선과 매우 유사하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의 마지막 2년은, 6년간 끌어오던 세 가지 원칙, 즉 북미 양자회담 불허, 북한 압박 수단으로서의 6자회담 추구, 선폐기-후보상 원칙을 완화해 중간단계의 보상을 허용하는 조치로 전환했다. 그리고 2.13 합의와 더불어 대화국면을 열었다.

새로 들어선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의 핵보유는 곧 부시 행정부의 정책 실패의 결과로 간주하고, 부시 임기 후반 2년의 변화를 더욱 확대할 것을 천명했다.

물론 북한이 2차 핵실험이라는 도전장을 던짐으로써 이명박 정부의 강경책이 나름의 정당성을 좀 더 길게 유지할 수 있었지만, 지난 8월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을 계기로 북한은 유화적 태도로 바뀌었으며, 미국도 이에 호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런 변화 속에 한국 정부도 신평화구상이나 '그랜드 바겐' 제의 등으로 변화된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그 용어나 표현에 비해서 구체적 내용은 여전히 모호하며, '비핵ㆍ개방 3000'의 선핵폐기론이라는 본질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다.

이미지 관리론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이 부시 행정부 초기 네오콘의 정책과 유사하지만, 중요한 차이점이 있는데, 그것은 이미지 관리 부분이다.

부시 행정부 당시 네오콘들은 협상을 거부하는 노선을 선택했을 뿐 아니라, 외교적으로도 강경한 발언들을 쏟아내며 북한을 의도적으로, 그리고 반복적으로 자극하며 적대시했었다.

물론 이명박 정부도 취임 초기에는 전임 정권과의 차별화를 위해, 그리고 보수층 지지자들을 의식해 강경 발언들을 했었다. 그러나 최근 북한을 자극하는 발언의 수위는 낮아지고, 빈도 역시 줄었다.

신평화구상에서처럼 선핵폐기론에도 약간의 유연성을 부여했다. 또한 북미 양자대화에도 기본적으로 반대하지 않는다는 뜻도 밝혔고, 대북 인도적 지원 등에도 새로운 자세로 임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이런 일련의 행보는 그러나 본질보다 이미지 제고의 성격만 매우 짙다. 광범위한 의제를 던진다든지, 늘 몇 단계 후의 얘기만 한다든지, 또는 최종 목표점에 대한 언급과 구상만 내놓는 반면, 당장의 문제 해결에는 매우 소극적이다.

한마디로 말해 판은 깨지 않지만, 주도적으로 나서서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싶은 의도는 없는 것이다.

마치 국내정치에서 부자를 위한 정권이라는 국민들의 인식이 임기 초기의 어려움을 가져온 원인으로 보고, 최근 이를 불식하기 위해 서민 정권의 이미지 제고에 총력을 기울이는 것과 비슷하다.

실제로는 바뀐 것이 없거나, 바뀌었더라도 근본적 변화가 아님에도 적극적인 홍보를 통해 지지율을 확보해가는 전략이 대북정책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두 부분으로 나뉜다. 하나는 '북한이 변하면'이라는 전제 부분이고, 다른 하나는 '남한의 보상' 부분이다. 초기에는 앞부분을 강조했다면, 지금은 앞부분은 완화시키거나 덜 표현하는 반면, 뒷부분의 언급을 크게 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또한 함께 표현하기보다는 한쪽에서는 비핵화만 강조하고, 다른 곳에서는 보상만을 강조하는 방법을 병행하고 있다. 대통령이 남북관계 개선을 바라고 있다는 뜻을 표시하면, 실무자들은 다른 얘기를 한다든지, 북미 직접대화는 기본적으로 찬성한다면서 그것이 6자회담 복귀를 위한 회담에 국한되어야 한다는 식의 패턴이 이어지고 있다.

남북 정상회담 제의와 관련해서도 북한의 제안이 나온 것은 확실해 보이는데, 진정성이나 '서울 회담'이라는 조건을 걸어 응하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나는 것이 실용임에도 상대방이 무장해제를 하고 나와야 한다는 식의 입장은 해결의 의지가 없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지난 1년 6개월 이명박 정부는 북한이 변하지 않으면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것에 스스로를 묶어버렸다. 그것이 원칙론이라면 그런 의미에서 원칙론이 맞다. 하지만 취임 초기부터 비판이 있어왔듯이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대부분 구호에 머무르고 있을 뿐 실천적 내용은 없다.

만약에 해결보다는 해결하지 않은 채로 위기상황을 끌어가면서 정치적 이득을 챙기겠다는 목적이라면 유용한 전략일 것이다. 실제로 국내정책은 물론이고 대북정책에서도 이러한 이미지 제고를 위주로 한 정책이 적어도 지금까지는 상당한 정치적 효용성을 발휘하고 있다.

그러나 대북 강경책이 가져다주는 단기적 정치적 자산에 취해있는 사이, 새로 찾아온 남북관계개선의 호기를 놓치거나, 북미관계 개선의 과정에서 아웃사이더로 남을 위험이 문제다.

▲ 19일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북미 양자회담, 그랜드 바겐, 남북 정상회담 등의 이슈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난 양국의 엇박자가 어떻게 조율될지 주목된다 사진은 지난 9월 피츠버그 G20 정상회의에서 만난 한미 정상 ⓒ청와대

한미 엇박자

최근 미국의 한국 전문가들이나 관련 관료들 사이에서 '한미동맹 반세기 역사상 최악'이었다는 노무현 정부에 대한 재평가가 많은데, 그와 더불어 이명박 정부의 한미관계가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실망스럽다는 반응이 함께 나온다고 한다.

노무현 정부는 임기 초 동맹의 종속성을 극복하고 자율성을 확보하려는 과정에서 이념적으로 상반된 부시 행정부와, 그것도 9.11 직후의 상황으로 관계는 악화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노무현 정부는 정책 수행의 공과 부분을 제쳐 둔다면, 오히려 실용주의를 지향했다고 할 수 있다.

한편에서는 한미동맹의 균열을 무릅쓰면서 부시의 대북 강경책에 대응해 햇볕정책 노선을 굽히지 않았던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아프가니스탄ㆍ이라크 파병 요청을 들어주고, 전략적 유연성을 포함한 주한미군의 재편을 별 가감 없이 수용했던 것들이 이를 증명한다.

노무현 정부는 기대치가 아주 낮게 출발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적응하면서 관계가 나아진 것이라면, 현 정부는 기대 수준은 높게 해놓고 갈수록 엇박자를 노정하고 있는 양상이다.

이명박 정부는 남북관계보다 한미동맹을 우선하고, 전략동맹이라는 미래비전을 주도적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구체적 내용을 결여하고 있을 뿐 아니라, 전략동맹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이해가 부족하다는 점을 드러내고 있다.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전략동맹이라 함은 대북정책은 물론이고, 대동북아 정책, 그리고 최근 아프간 등지에서 파병을 포함한 한국의 적극적인 지원을 요구할 수 있는 동맹관계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한국은 과연 이러한 미국의 다양한 요구와 압력에 응할 생각으로 전략동맹을 언급한 것인지 따져봐야 할 것이다.

한미 간에 이러한 엇박자가 북미 양자회담, 그랜드 바겐, 그리고 남북 정상회담 이슈를 두고도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한미공조가 흔들릴 가능성은 꽤 높아 보인다.

이미지 관리의 한계

이명박 정부에 북핵으로 인한 교착이나 위기 상황이 남북관계 호전보다 정치적 효용성이 더 높다고 한다면 왜 대북정책을 더 강경하게 밀고 나가지 않고 이미지 관리에 머물고 있을까?

그것은 우선 오바마 정부가 협상외교를 선호하기에 친미라는 정책 방향과 대북 강경책이 서로 충돌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남북 경색 국면을 무한정 지속하는 것이 국내여론의 측면에서도 부담스럽다.

그래서 나온 대안이 바로 겉으로는 대북관계 개선을 원한다는 뜻을 밝히면서도 실제로는 어떤 적극적인 대북정책도 펴지 않는 방법이다. 국내정치에서 서민을 위한 정권으로의 이미지 변신을 추구함으로써 지지를 끌어올리는데 어느 정도 성공했던 것처럼 말이다.

스스로 묘책이라고 자화자찬하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구체적 내용도 없고, 문제 해결의 의지도 없는 이미지 제고 정책은 결국 바닥을 드러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책의 속성상, 그리고 핵문제가 가진 북미 양자구조의 특성상 경색 국면이 풀리고 대화국면으로 흐를 경우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 북미대화가 진행되면 한국 정부는 이미지만이 아닌 실질적 정책 변화를 어떤 식으로 요구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계속 이중적 자세를 고집해 대화국면의 중심에서 밀려난다면, 이는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당장 오바마 대통령의 방한에도 문제가 될 수 있다. 한미동맹 강화, 확장억지 보장, 금융위기 공동 극복 등의 낯익은 이슈들이 전면을 장식하겠지만, 이견으로 말미암은 조정이 필요한 부분은 아무래도 그랜드 바겐이나 북미 양자회담으로 대표되는 북핵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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