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아랍 봉기, 최대 피해자는 미국"
[월러스틴의 '논평'] "권력은 거리에 있다"
"제2차 아랍 봉기, 최대 피해자는 미국"
2차 아랍 봉기 : 승자와 패자
(The Second Arab Revolt : Winners and Losers)

1916년 샤리프 후세인 빈 알 리가 주도한 1차 아랍 봉기는 아랍을 오스만터키제국으로부터 독립시키는 게 목적이었다. 그 봉기로 오스만터키는 아랍에서 축출됐다. 그러나 그 위대한 봉기는 영국과 프랑스에 의해 유린됐다. 1945년 이후 아랍권의 많은 나라들이 독립해 유엔 회원국이 됐다. 그러나 그들의 독립은 대부분 미국에 의해 유린됐다. 미국은 영국 다음으로 등장한 외부의 통치자였고 마그레브 지역과 레바논에서는 프랑스가 약간의 역할을 계속 했다.

2차 아랍 봉기가 일어날 수 있는 분위기는 최근 몇 년 동안 숙성되어 왔다. 지난달 튀니지 젊은이들의 성공적인 봉기는 엄청난 자극제가 됐다. 용감한 젊은이들이 죽음을 불사하며 엄청나게 부패한 권위주의 체제에 항거했고 대통령을 물러나게 했다. 박수를 쳐야 할 일이다. 다음에 일어날 일이 무엇이든 반갑지 않을 수 없었다. 다음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두 가지 질문이 나올 수 있다. 다른 많은 나라에서는 실패했던 봉기가 튀니지에서는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는가? 튀니지 혹은 아랍권 혹은 전체 세계 체제에서 누가 이번 봉기의 승자가 되고 누가 패자가 될 것인가?

권위주의 체제에 저항하는 것은 쉽지 않다. 권위주의 체제는 물리력과 자금을 마음대로 쓸 수 있고 거리에 나온 사람들을 간단히 제압할 수 있다. 튀니지의 청년 노점상 모하메드 부아지지가 정부 당국에 대한 항의의 뜻으로 분신했던 것처럼 어떤 상징적인 행동은 또 다른 행동을 촉발시킬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행동이 체제를 전복시키는 데까지 나아가려면 그 체제 안에 균열 요소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튀니지의 경우 균열이 분명 있었다. 군이나 경찰(gendarmerie)은 시위대에 발포할 의사가 없었다. 발포를 하려면 대통령 호위부대나 하라는 태도를 보였다. 그들만으로는 시위대의 기세를 막을 수 없었다. 결국 지네 엘 아비디네 벤 알리 대통령과 그의 가족들은 도망쳐야했고 사우디아라비아에서나 피신처를 찾을 수 있었다. 벤 알리가 소속된 당(CDR)의 수뇌부들은 폭풍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벤 알리의 핵심 측근 압델와하바 압달라(정보장관과 외무장관을 거쳐 벤 알리의 경제고문이었던 인물 : 옮긴이)를 체포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가 자신들을 체포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런 사실로 볼 때 튀니지 체제에는 분명한 균열이 있었다. 스탈린 시대 비밀경찰 총수였던 라브렌티 베리야(Lavrenti Beria)가 스탈린 사후 즉각 체포된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벤 알리가 도망친 후 전세계가 박수를 쳤지만 리비아의 카다피와 이탈리아의 베를루스코니만 예외적으로 벤 알리를 옹호했다. 외부에서 벤 알리를 지원해왔던 핵심 세력인 프랑스는 당황한 나머지 판단을 잘못했다고 고백하기에 이르렀다. 튀니지를 프랑스에게 넘겼던 미국은 그런 사과를 팔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언급했듯이 튀니지의 사례는 다른 아랍 국가들의 시민들, 특히 이집트·예멘·요르단 사람들에게 그와 유사한 길을 갈 수 있다는 용기를 주었다. 이집트의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이 살아남을 수 있을지, 필자가 이 글을 쓰는 순간까지는 불확실하다.

▲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뉴시스

그렇다면 누가 승자이고 누가 패자인가? 튀니지와 이집트 아니 아랍권 전체에서 누가 권력을 잡게 될지 우리는 앞으로 최소 6개월간 혹은 그보다 더 오랜 시간 동안 알 수 없을 것이다. 자연발생적인 봉기는 1917년 러시아와 같은 상황을 만들고 있다. "권력은 길거리에 있다"는 레닌의 말과 같은 상황을 만들고 있다. 볼셰비키가 그랬듯 조직되고 결연한 의지를 가진 세력만이 권력을 잡을 수 있다.

아랍 국가들의 정치 상황은 각각 다르다. 볼셰비키처럼 강력한 조직을 가지고 있고 세속적이며(이슬람교 신정체제를 추구하지 않음 : 옮긴이) 급진적인 정당을 가지고 있어서 권력을 잡을 준비가 되어 있는 세력은 현재 아랍 국가 어디에도 없다. 주역이 되고 싶지만 탄탄한 기반은 거의 없는 부르주아적 자유주의 운동만이 다양하게 있을 뿐이다.

가장 조직화된 운동은 이슬람주의자들의 운동이다. 그러나 이슬람주의 운동도 하나의 색깔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들이 추구하는 이슬람주의 국가의 형태는 매우 다양하다. 터키처럼 다른 세력들에게도 비교적 열려 있는 형태에서부터 (탈레반 정권 시절의 아프가니스탄처럼) 샤리아 율법의 엄격히 적용하는 가혹한 형태까지 다양하다. 이집트 무슬림형제단은 그 중간 정도에 있다. 어떤 체제가 될 것인지는 불확실하고 시시때때로 바뀌기 때문에 국내적인 차원에서 누가 승자가 될지는 너무나 불확실하다.

외부로 눈을 돌려 보면, 어떤 나라가 상황을 통제하는데 깊숙이 관여하고 있는가? 가장 중요한 행위자는 미국이다. 두 번째는 이란이다. 터키, 프랑스, 영국, 러시아, 중국 같은 나머지 모든 나라들은 그보다 덜 중요하다. 그렇지만 관련되어 있다.

2차 아랍 봉기의 최대 패배자는 분명 미국이다. 현재 미국 정부는 엄청나게 동요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미국은(세계의 모든 강대국들처럼) 다른 모든 것에 앞서는 하나의 기준을 가지고 있다. 미국에 우호적인 체제가 들어설 것인가. 미국에 적대적인 세력이 승자가 되지 않는다면 미국은 승자의 편에 서길 원하고 있다.

사실상 미국의 종속국인 이집트와 같은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 미국은 공개적으로는 더 많은 '민주주의'가 있어야 하고 폭력은 안 되고 협상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장막 뒤에서 미국은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발포를 하면 안 된다고 이집트 군에게 말해왔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을 죽이지 않고서 무바라크가 살 수 있을까?

2차 아랍 봉기는 세계적인 혼란의 와중에 불거지고 있다. 이 혼란은 세 가지를 주된 특성으로 한다. 첫째, 세계 인구의 최소 3분의 2가 생활수준의 하락을 겪고 있다. 둘째, 소수 상위 계급의 소득은 엄청나게 늘고 있다. 셋째, 소위 슈퍼파워라고 불리던 미국의 힘이 상당히 하락했다. 2차 아랍 봉기는 미국의 쇠락, 특히 아랍권에서의 쇠락을 심화시킬 것이다. 아랍국가에서 정치적인 지지를 얻으려면 자신들의 일에 미국이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을 반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관여를 원하고 옹호했던 사람들조차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위험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외부 세력 중 최대의 승자는 이란이다. 이란은 아랍국도 아니고 시아파이기 때문에 과연 승자가 될 수 있을까 싶다. 그러나 이란에게 사담 후세인 축출이라는 엄청난 선물은 준 것은 바로 미국의 정책이다. 사담은 이란의 강력한 적이었다. 이란의 지도자들은 아마 이렇게 훌륭한 선물을 준 조지 W. 부시를 매일같이 칭송할 것이다. 그들이 이처럼 뜻밖의 횡재를 얻게 된 것은 하마스처럼 이스라엘과 미국의 중동 침입에 강력히 반대하기만 하면 비록 시아파가 아닐지라도 지원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보여준 영리한 정책을 썼기 때문이다.

터키도 하나의 작은 승자가 되어 왔다. 터키는 오스만 제국의 후예라는 점에서, 그리고 미국의 긴밀한 동맹국이라는 점에서 아랍인들로부터 오랫동안 저주를 받아 왔다. (그러나) 대중의 지지를 받고 선출된 현 터키 정부는 이스라엘·미국과의 좋았던 관계가 다소 손상되는 위험이 따르더라도 2차 아랍 봉기를 지지하는 쪽으로 움직여 왔다. 터키 정부는 국민들 전체에 샤리아 율법을 따르라고 하지는 않으면서 단지 이슬람적 관습에 시민권을 부여하는 이슬람주의 운동 세력이다.

물론 2차 아랍 봉기의 최대 승자는 아랍 민중들이 될 것이다.

* <월러스틴의 '논평'>은 세계체제론의 석학 이매뉴얼 월러스틴 예일대 석좌교수가 매달 1일과 15일 발표하는 국제문제 칼럼을 전문번역한 것입니다. <프레시안>은 세계적인 학자들의 글을 배급하는 <에이전스글로벌>과 협약을 맺고 월러스틴 교수의 칼럼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2월 1일 논평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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