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사관학교, '강의노트' 트집 국사교수 '국보법 위반' 기소
[단독] <헤겔법철학비판> <아리랑>이 '이적표현물?'
2011.08.01 11:27:00
해군사관학교, '강의노트' 트집 국사교수 '국보법 위반' 기소
해군이 북한 관련 근대사를 중립적 입장에서 다룬 강의 교재를 작성하고 칼 맑스, 레닌 등의 유명한 저서를 소지했다는 등의 이유로 해군사관학교 국사 교수요원(초급장교)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해군사관학교 보통검찰부는 지난 6월 27일 해군사관학교 교수부 소속 김 모 중위(30)를 국가보안법 제7조 1항 및 5항 위반(찬양‧고무죄)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한 것으로 1일 알려졌다.

<프레시안>이 단독 입수한 해군사관학교 보통검찰부 작성의 공소장에 따르면 김 중위는 2009년 작성한 '09학년도 2학기 국사수업 강의노트'에서 고(故) 김일성 전 북한 국가주석의 항일투쟁 중 대표적인 사례로 선전되고 있는 보천보 전투와 해방 직후에 진행된 토지개혁, 수령론으로 상징되는 북한 체제의 특성 등을 설명했다.

이 '강의노트'는 한국사연구회가 편찬한 한국사 입문서 <새로운 한국사 길잡이(상, 하)>(지식산업사 펴냄)의 내용을 대부분 인용해 작성됐으며 학계에서는 이미 논쟁이 정리된 내용에 해당한다.

그러나 군 검찰관은 김 중위의 강의노트에 대해 "혁명적 수령관, 주체사상, 선군정치 등을 북한 역사의 내재적 선물로 정당화하고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옹호하며, 김일성의 조국광복회 결성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어 북한의 역사관과 대남선전을 정당화하고 고무 동조하는 문건"이라고 규정했다.

▲ 지난 6월 27일 해군은 강만길 등의 <해방전후사의 인식>, 님 웨일스의 <아리랑>, 칼 맑스의 <헤겔법철학비판> 등을 '북한에 동조하는 내용'이라며 이 서적들을 소지한 해군사관학교 국사 교수사관 김 모 중위를 국가보안법 위반 협의로 기소했다. 앞서 2008년에도 국방부는 장하준의 <니쁜사마리이인들>, 노엄 촘스키의 <507년 정복은 계속된다> 등을 '불온서적'으로 규정해 논란을 빚은 바 있다. 당시 국방부의 '불온서적'들은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뉴시스

군 검찰이 문제삼은 김 중위의 강의노트 내용은 북한 연구자들은 물론 북한 문제에 관심 있는 일반인들에게는 일반적인 사실에 대한 진술이나 상식적인 분석에 해당되는 것이었다.

김 중위는 강의노트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990년대 중반 심각한 문제들을 풀기 위한 열쇠로 경제문제 해결에의 역량 집중이 아닌 군대를 강화하는 선군정치를 내세웠다"거나 "북한은 자주노선을 지탱하기 위해 상당한 비용을 치러야만 했다. 이같은 상황이 북한으로 하여금 핵개발에 매달리도록 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북한 정권은 핵만 개발하면 그들의 가장 심각하고 어려운 문제들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등을 써 놓았다. 군 검찰이 이 부분을 문제삼은 것이다.

군 검찰은 이런 내용의 강의노트를 작성하고 사관학교 생도들이 열람할 수 있도록 해군 내부 전산망에 올린 것을 "북한공산집단의 활동을 찬양‧고무‧선전 또는 이에 동조할 목적으로 위 표현물을 제작‧소지‧반포"한 행위라고 주장했다.

군 검찰은 또 김 중위가 대학 재학시절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대의원 및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 회원으로 활동했다는 '전력'도 공소장 내용에 포함시켰다. 김 중위의 첫 재판은 오는 9일 대전군사법원에서 진행된다.

맑스의 <헤겔법철학비판>도 이적표현물?

군 검찰은 김 중위가 인터넷 논문검색사이트 '디비피아'에서 "개인 학술연구 및 강의시 생도들이 제출할 발표문의 참고자료로 제공할 목적"으로 <김일성의 만주항일유격운동에 대한 연구>, <조선인민혁명군-기억의 정치, 현실의 정치> 등의 문건을 내려받은 점도 공소사실로 적시했다.

특히 논란이 되는 것은 이미 단행본으로 발간된 유명 도서 및 학술자료를 소지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공소가 제기됐다는 점. 군 검찰의 논리에 따르면 송건호‧강만길 등의 <해방전후사의 인식>, 박현채의 <청년을 위한 한국현대사>, 님 웨일스의 <아리랑>, 맑스의 <헤겔법철학비판>, 레닌의 <제국주의론> 등도 모두 '북한 공산집단을 찬양'하기 위한 '이적표현물'에 해당된다.

군 검찰은 <아리랑>에 대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제외하고 김산 등 조선인 공산주의자들이 항일 독립투쟁활동을 했다는 북한의 주장에 동조하는 내용"이라고 규정했고, <제국주의론>에 대해서는 "사회주의 혁명을 일으켜야 한다는 북한의 주장에 동조하는 내용"이라고 폄하했다.

특히 대학의 기초 인문학 강의에서도 참고도서로 널리 읽히고 있는 <헤겔법철학비판>에 대한 공소사실은 아래와 같다. 이 책을 소지하고 있는 대학의 인문‧사회학 전공자들은 물론 일부 고등학생들까지도 아연실색케 할 내용이다.

"피고인은 위 서적이 칼 맑스의 유물론적 사고에 기초해 관념적인 헤겔의 법철학을 비판하는 내용으로 북한의 주장에 동조하는 내용이며, 칼 맑스의 유물론적 사고가 북한의 사회주의 체제의 사상적 기반임을 알면서도 지속적인 사상학습에 활용할 목적으로 (…) 압수‧수색이 이뤄질 때까지 사무실에 보관함으로써, 국가의 존립‧안전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도 반국가단체인 북한의 활동을 찬양 고무 또는 이에 동조할 목적으로 위 표현물을 소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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