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해결을 원해? 그럼 크게 바꿔봐!"
[NPT 회의 참여기] (上) 북한과 NPT
"북핵 해결을 원해? 그럼 크게 바꿔봐!"
핵확산금지조약(NPT) 준비회의가 4월 22일부터 5월 3일 일정으로 스위스 제네바 유엔 본부에서 개막됐다. 2015년 뉴욕 본회의를 앞두고 열리고 있는 이 회의는 핵문제를 둘러싼 지구촌의 갑론을박을 깊숙이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필자는 4월 23일부터 26일까지 이 회의에 참여하고 돌아왔다. 이에 두 차례에 걸쳐 이 회의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첫 번째 순서로는 '북한과 NPT'를 다루고, 두 번째로는 5월 3일 회의 폐막 직후 이 회의 결과를 총결산을 해보고자 한다.<편집자>

▲ 핵확산금지조약(NPT)회의가 스위스 제네바 유엔 본부에서 개최됐다. 왼쪽부터 콜린 아처 IPB 사무총장,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유아사 이치로 피스데포 대표, 알랜 웨어 PNND 코디네이터, 사회를 맡은 김마리아 피스데포 간사. ⓒ피스데포

1993년 3월 NPT라는 단어가 연일 언론 보도의 머리기사를 장식했다. 북한이 미국의 적대정책과 NPT의 이행기구인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편파성을 문제 삼으면서 NPT 탈퇴를 선언한 데에 따른 것이었다. 1985년 NPT에 가입한 북한이 NPT 탈퇴를 선언한 것은 이 조약의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북한의 이러한 조치는 미국의 강력한 반발과 맞물려 한반도 전쟁 위기까지 촉발시켰다. 당시 미국은 당황할 수밖에 없는 속사정이 있었다. 1995년에 NPT를 무기한 연장할 것인가의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데, 북한의 NPT 탈퇴와 핵 개발을 방치할 경우 무기한 연장에 대한 회원국들의 동의를 받아내기 힘들 것이라고 봤던 것이다. 이에 따라 NPT를 수호하려는 미국과 핵 카드를 이용해 북미관계 개선을 꾀하려는 북한은 협상과 전쟁 위기를 오가는 건곤일척의 승부를 벌였다. 그 결과 1994년 10월 제네바 합의가 체결되면서 한반도 위기는 해소되는 듯했다.

그러나 북한은 10년 후 또다시 NPT 탈퇴를 선언했다. 2001년 출범한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2000년 북미 공동코뮤니케를 무시하고 북한을 "악의 축"이자 핵선제 공격 대상으로 지목하자 북한도 제네바 합의를 더 이상 준수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결국 2002년 10월 북미간에 고농축 우라늄(HEU) 파문이 터지자, 미국은 제네바 합의의 파기를 선언했고, 북한은 2003년 1월 NPT 탈퇴 선언으로 맞섰다. 2차 한반도 핵위기의 시발점이었다.

북한이 NPT 탈퇴의 근거로 내세운 것은 이 조약의 10조였다. "회원국은 국가이익을 위태롭게 하는 비상한 상황이 발생했다고 판단하면 이 조약에서 탈퇴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다"는 조항에 근거해 미국의 적대시 정책 및 이를 제어하는데 아무런 역할을 못해온 NPT의 무능을 문제삼았던 것이다. 이처럼 북한이 두 차례에 걸쳐 NPT 탈퇴를 선언함에 따라 북핵 문제는 지난 20년간 NPT 회의의 최대 이슈가 되어왔다. 189개 회원국 가운데 북한이 유일하게 이 조약에서 탈퇴해 핵무기 개발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근거로 미국 등 여러 국가들은 북한이 NPT를 위기에 빠뜨리고 있는 주범이라고 비난해왔다. 핵문제를 북미관계의 산물로 비춰지기를 꺼려하는 미국으로서는 국제군비통제조약 가운데 최대 회원국을 확보하고 있는 NPT야말로 북핵 문제를 '국제화'시킬 수 있는 유력한 근거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2013년 NPT 회의에서 북한은 더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3차 핵실험에 이어 '서울 불바다'니 '워싱턴 불바다'니 하면서 말 폭탄을 연일 터뜨리면서 핵위협을 강도를 최고치까지 끌어올린 데에 따른 것이다. 이에 맞서 미국은 핵 투발수단인 B-52, B-2, 핵수잠함을 동원해 공개적인 무력시위에 나섰다. 과거 닉슨 행정부가 전 세계적인 핵전쟁 공포 조성으로 베트남 전쟁 종결을 시도했던 '미친 자의 이론(madman theory)'를 떠올리게 할 정도로 북한과 미국은 '핵 광기'를 선보였다. 이에 따라 북한은 NPT 탈퇴국이면서도 이 회의의 가장 큰 조명을 받고 있다.

NPT 회의 개막 이틀 전에는 5대 핵보유국이자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인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P5)가 모여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이들 나라는 "2013년 2월 12일 북한의 핵실험과 이란의 지속적인 핵 활동"을 비난하면서 "P5는 비확산 체제에 대한 이러한 심각한 도전들에 대해 우려를 재확인했다"고 발표했다. 회의 개막일에 미국 대표단은 별도의 성명을 통해 "북한의 사례는 NPT가 이 조약에서 탈퇴한 국가들에 악용될 수 있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준다"며 "오늘날에도 조약의 회원국으로 남아 있으면서 핵무기 개발로 전용될 수 있는 기술을 획득하려는 나라가 있다"며 이란을 겨냥했다.

NGO 대표들과 전문가들이 보는 한반도 문제는?

4월 25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 일본의 피스데포와 피스보트, 한국의 평화네트워크와 참여연대가 공동주최하고 1910년 노벨평화상 수상단체인 국제평화국(IPB), 국제적 싱크네트워크인 노틸러스 연구소, 핵비확산과 군축을 위한 의원연맹(PNND), 세계교회협의회(WCC) 등이 참여해 '한반도 정전 60주년 기념: 동북아 평화프로세스의 미래와 비핵지대의 전망'이라는 주제로 워크숍이 열렸다. 한반도 문제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반영하듯 세계 각국 NGO 대표들 50여명과 피폭 도시들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시장, 6자회담 참가국 가운데 북한을 제외한 5개국의 외교관들이 자리를 함께 했다. 북한 대표부에도 초청장을 발송했으나, 끝내 북한 외교관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첫 주제 발표를 맡은 필자는 오늘날 한반도의 위기는 정전체제를 유지하려는 미국의 현상유지(status quo)와 전쟁 위협을 통해 현상을 타파하려는 북한 사이의 대결이 핵심 골자라고 소개하면서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두 가지 '화학 작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하나는 레이건과 고르바초프가 첫 만남 이후 3년 만에 냉전 종식에 합의할 수 있었던 것처럼, 남-북-미-중 4자 정상 사이의 화학 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정상급 외교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또 하나는 의제 간의 화학 작용으로 '북한의 NPT 복귀-평화협정 체결-비핵화'를 화학적으로 융합할 수 있는 대타협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뒤이어 발제에 나선 유아사 이치로 피스데포 대표는 "한반도의 군사분계선의 존재는 동북아의 냉전 구조가 여전하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며 한반도와 동북아의 탈냉전을 위해서는 안보 딜레마를 격화시키는 일방적 안보에서 '공동 안보'와 '협력 안보'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를 위해서는 동북아 비핵지대 창설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창했다. "한국과 일본이 미국의 핵우산 아래에 있으면서" 북한에 핵 포기를 요구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타당하지도 않다며, "북핵 해결을 포함한 동북아에서 핵확산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한국과 일본이 비핵지대 구상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럽의 저명한 평화운동가인 콜린 아처 IPB 사무총장은 유럽의 냉전 해체 경험이 동북아에 갖는 함의를 분석해 주목을 끌었다. 그는 두 지역 사이에는 많은 공통점이 있지만, 차이점에 주목할 때 더 많은 교훈을 추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요한 차이점으로는 유럽에서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바르샤바 조약기구로 대표되는 진영 대 진영의 대립 구도가 있었던 반면에 동북아는 주로 양자 관계로 연결되어 있고, 유럽에서는 여러 중립국들이 있어서 동서 화해를 추동한 반면에, 동북아에는 이러한 국가가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특히 아처는 시민사회의 차이를 강조했다. 서유럽은 경제발전과 많은 여가 시간 덕분에 정치사회적 발언권을 강화할 수 있었고, 동유럽은 공산주의의 부정부패에 대한 실망감을 표출할 수 있는 정치적 공간이 협소하나마 열려 있었다는 것이다. 서유럽의 동서화해 운동과 동유럽의 자유화 운동이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면서 유럽 냉전 종식을 향한 "아래로부터의 토대"를 구축할 수 있었다고 한다.

아울러 유럽 반핵평화운동의 정치적 중립성과 소련 및 동유럽 인사들과의 긴밀한 유대 관계 구축도 주효했다고 강조했다. 영국의 핵군축캠페인(CND)과 함께 유럽 평화운동을 이끈 유럽핵폐기(END) 운동은 1980년대 초 소련의 SS-20 미사일과 미국의 퍼싱-2 미사일 배치 계획으로 촉발된 반핵운동단체로서 철저하게 진영 간 대립 구도에서 중립을 지키면서 "아래로부터의 데탕트, 시민 외교"를 표방했다. 또한 유럽 핵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핵군축뿐만 아니라 핵 군비경쟁의 토대가 되었던 진영 간 대립 구도를 혁파할 때 가능하다고 보고 유럽통합의 필요성을 제창했다. 이에 공감한 유럽과 미국의 대도시에서는 수십만 명이 참여하는 반핵 집회가 연이어 열렸고, 이는 고르바초프의 신사고와 레이건의 변신을 아래로부터 추동한 힘이었다고 강조했다.

아처는 동북아에는 이러한 시민사회의 기반이 부족하다는 점이 냉전 해체를 어렵게 하는 핵심적인 요인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북한의 전체주의 체제가 국가 간의 시민 외교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라고 지적하면서도 "개성공단을 비롯한 남북한의 교류협력은 흥미로운 대목"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개성공단이 폐쇄위기에 처하는 등 남북한의 교류협력이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을 접했다"며 큰 아쉬움을 토로했다.

▲ NPT 준비회의 참석자들 ⓒ피스데포

호주 현지에서 화상 발제에 나선 피터 헤이즈 노틸러스 연구소 소장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결국 미국의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닉슨이 마오쩌둥을 만난 1972년, 레이건이 고르바초프와 만난 1986년에 세계가 하루아침에도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며 이제 동북아에서도 이러한 미국의 전략적 전환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중국에 북한 관리를 맡기는 대북정책의 아웃소싱은 실패를 예고할 뿐, 아무런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작은 변화가 아니라 큰 변화"를 도모할 때라고 주장했다. 그가 말한 큰 변화란 미국이 중국과 함께 비핵지대를 비롯한 동북아 다자간 안보협력체제 구축에 적극 나서 북한에 득실 구조를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전쟁을 공식적으로 종결하는 평화협정도 동북아 안보협력체제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주장했다.

한국도 핵무장 하나요?

외국의 활동가와 전문가들은 한국의 핵무장 여부에도 큰 관심을 나타내면서 필자의 의견을 물었다. 특히 정몽준 의원이 지난 3월 워싱턴에서 "한국도 NPT에서 탈퇴해야 한다"고 말한 것을 상기시키면서 그 가능성도 물었다. 이에 대해 필자는 핵무장을 지지하는 여론이 60~70%에 달할 정도로 찬성 여론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 정부와 국회의 비핵화에 대한 입장은 분명하다고 답했다. 또한 핵무장 지지 여론이 높은 것이 사실이지만 핵보유 추진 시 득보다 실이 훨씬 클 것이기 때문에 이것이 현실화될 가능성도 극히 낮다고 답했다. 다만 현재 5개 안팎의 핵무기를 보유한 것으로 평가되는 북한이 수십 개로 늘리면 한국 내 핵무장론도 탄력을 받을 공산이 크고 이는 일본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며, 조속하고도 평화적인 북핵 해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필자는 미국 대표단과도 비공식적으로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세 가지를 물었다. 첫째는 미국이 4월에 연기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를 5월에 강행하면 한반도 위기가 다시 고조될 우려가 크다고 지적하면서 "당신들 정부에게 발사 재고를 요청해줄 수 있느냐"는 질문이었다. 이에 대해 미국 대표단의 한 관리는 "당신의 우려를 잘 알겠다"며 즉답을 피했다.

두 번째 질문은 "미국이 북한과 평화협정 체결을 꺼리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대표단의 한 관리는 미국은 이 문제를 진지하게 고려했지만, 2008년 북한이 검증의정서 채택을 거부하면서 부정적인 기류가 커졌다고 답했다. 이에 대해 필자는 검증의정서 채택은 당시 6자회담 합의에는 없는 내용으로 한국과 미국 정부가 과도한 요구를 한 것이라고 지적하자, 미국 관리는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고 응수했다.

끝으로 "북한이 핵 폐기를 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 미국은 핵우산 철수를 북한과의 협상에서 의제로 삼을 의사가 있느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미국 관리는 "북한이 국제사회의 규범을 준수하고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보인다면 미국은 모든 문제를 협의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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