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 함께 친북"? 진보의 딜레마, 직시하라!
[이렇게 읽었다] 정영태의 <파벌>, 진보 정당에 무엇을 말하는가?
2012.02.17 18:52:00
"노동과 함께 친북"? 진보의 딜레마, 직시하라!
'민주노동당 정파 갈등의 기원과 종말'이란 부제를 달고 있는 <파벌>(정영태 지음, 이매진 펴냄)의 출간 소식을 들었을 때 내 심정은 복잡했다. "이제야 이런 책이 나오는구나!"란 기쁨과 함께 "진보 정당 운동을 주도했던 활동가나 이론가가 이런 작업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연구자에게 공을 넘겼구나!"란 안타까움도 들었다. 이 책의 문제의식에 진보신당 창당 초기(대략 2008년 3월경) "우리는 왜 민주노동당을 떠나와야 했나?"라는 질문을 던지고 정리해야 한다고 당 게시판에서 주장했던 내 모습이 포개졌다.

진보신당 창당을 주도한 평등파 당원들은 당시 내 주장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들에겐 분당의 원인은 '자주파 탓'이란 확고한 답이 정해져 있었고, 당 운영에서 발생했던 여러 문제들은 제도 개선을 통해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편견이 있었다. 곧 총선이 시작되었고 노회찬과 심상정은 낙선했지만 '지못미' 열풍이 불었으며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시위에서 진보신당은 '아고라의 여당'으로 떠올랐다. 변화무쌍한 정세와 조변석개하는 지지율 속에 새로 입당한 촛불당원들은 민주노동당을 몰랐고 나도 민주노동당을 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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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창당 당시 선도 탈당파와 '심상정 비대위'파의 균열은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민주노동당에서 건너온 당원들과 촛불당원들의 괴리를 좁혀보려는 당 대책도 전무했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심상정은 당의 입장과 관계없이 경기도지사 후보를 사퇴했고 노회찬은 서울 시장 선거를 완주하여 시민들에게 '한명숙 낙선'의 원흉으로 비난받았다. 선거가 끝나자 김규항은 당의 문제를 애꿎은 진중권에게 전가하는 논쟁을 시작했고 진중권은 화가 나서 펄펄 뛰더니 이탈을 선언했다. 당의 존립 근거와 방향이 의문시되는 가운데 민주노동당과의 '통합' 논의가 탄생했고 '통합파'와 '독자파'의 대립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잊어버렸던 민주노동당의 기억은 어지러운 말의 다툼 속에서 선택적으로 호출되었다. 통합파는 당 대회에서 승리하지 못했지만 노회찬, 심상정, 조승수 등의 정치인들이 탈당하여 '통합연대'를 결성했다. "민주노동당이 신자유주의 세력인 국민참여당과 합당을 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민주노동당과 통합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우던 이들 통합파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국민참여당-민주노동당-통합연대 3자 통합을 통해 통합진보당에 합류한다. 비극과 희극엔 BGM 차이밖에 없다는데, 민주노동당에 6년 진보신당에 4년 당비를 갖다 바친 나 같은 당원은 꼴이 우스워졌다.

<파벌>을 읽고 좋았던 점

▲ <파벌>(정영태 지음, 이매진 펴냄). ⓒ이매진
내가 한 달에 2만원이라도 내면서 '진보 정당 운동'이란 것의 대오에 소속되어 있는 이유를 납득하기 위해, 이 책을 읽어야만 했다. 그러나 책을 펼치기는 한없이 어려웠고, 막상 책을 펼치자 펼쳐지는 기억의 파노라마와 치미는 분노에 어지러움을 느끼면서도 덮을 수가 없었다.

<파벌>은 민주노동당 내에서 평등파였던 사람에게 기분이 좋을만한 책은 아니다. 끔찍한 사건들에 대한 기억들이 다시 떠오르는 건 물론이거니와 서술이 평등파에게 우호적이지도 않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책이 좋았는데, 이 책이 당시의 사건들을 자주파의 관점에서도 한 번 바라보게 하는 반성적인 거리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특히 본래 학생 운동 사회에서부터 서로 경쟁했던 8~90년대 학번과는 달리, 자주파를 민주노동당에 입당하고 나서야 맞닥트리게 된 00년대 이후 대학에 들어온 나 같은 학생 당원들은, 자주파에 대해 대단히 피상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그 피상적인 인식은 선배들이 전해준 것이기도 했다.) 우리는 자주파들을 단일한 대오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전쟁-기계들처럼 취급했는데, 사실 당시의 우리들에겐 그렇게 보일만한 상황이기도 했다.

그러나 <파벌>은 이념과 노선이 철저하게 달랐던 두 파벌이 어찌해서 당을 함께 할 수밖에 없었는지 문제부터 설명하는데, 그 과정에서 자주파나 평등파나 서로 분리되어 말라죽어 가고 있었던 1990년대 진보 운동의 암울한 상황이 드러난다. 영화 <올드보이>의 이우진이 오대수에게 "왜 잡아갔을까를 묻지 말고 왜 풀어줬을까를 물어보라"고 주문했던가. 민주노동당에 대해 생각할 때 우리는 "왜 분당했는가?"를 묻기 전에 "왜 함께 시작했는가?"를 묻는 게 더 합당한 일인지도 모른다.

"평등파는 상당히 개인주의적입니다. 그리고 집단주의를 굉장히 원칙적으로 싫어해요. (…) 정확히 버르장머리가 없습니다."(54쪽)

"위계서열, 연공서열, 선배 앞에서 후배는 말을 안 받는다거나 담배를 안 피운다거나 술도 돌아서 마신다거나 이런 게 굉장히 많거든요.(…) 평등파에서 자주파를 바라보는 눈은 (…) 쟤들은 무슨 우두머리가 결정하면 무조건 따르는, 얘들이 공부는 안하고 (…)"(54쪽)


애초에 너무나 이질적이고 서로에 대한 편견도 많았던 이 두 파벌의 상호 인식을 들어보면, 흡사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의 한 페이지를 보거나 방송 프로그램 <롤러코스터-남녀 탐구 생활>의 내레이션을 육성으로 듣는 것만 같은 격차에 아찔하다. 앞서도 얘기했듯 평등파는 이런 문제들을 대개 제도적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고 믿었다. 그리고 민주노동당 창당 초기 평등파가 만든 그 많은 제도들은 나중에 자주파가 평등파를 권력 분점에서 배제하는데 쏠쏠하게 써먹게 된다. 저자는 분당의 원인을 아예 이렇게 정리한다.

"첫째, 이념·노선과 조직 문화가 다르고 양립하기가 어려웠다.(…) 둘째, 과거의 대립·경쟁 경험과 그 결과로서 상호 불신과 고정관념이 강하다. 셋째, 당직·공직후보 선출과 당론 결정을 위해 채택한 다수결 제도가 파벌 간의 경쟁과 대립을 조장했다."(252쪽)

문제는 상대를 이해하려는 노력 없이 제도적으로만 해결하려는 시도들이 파벌 간의 타협과정에서 더욱 심각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되었다는 것이다. 가령 '심상정 비대위'의 혁신안이 부결되어 분당이 확정된 2008년 2월3일의 그 당 대회날, 나는 자주파들이 '일심회 관련자 제명안'에 그토록 완강히 반대하는 것을 보고 '저들은 분당이 전혀 두렵지 않은가 보다'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주파는 오히려 2008년 총선 비례대표 순번은 모두 양보할 각오를 하고 있었다고 하니, 그들에게도 분당은 피하고 싶은 일이기는 했던 것이다.

다만 평등파에겐 너무나 상식적이고 1차적인 요구였던 것이, 그들에게는 결코 훼손해서는 안 되는 어떤 '원칙'이었던 것이다. 한 자주파 당원의 입을 빌리자면, "동지가 부인하면 믿어줘야 한다. 그게 우리의 정체성이다"(276쪽)인 것이다. 오히려 평등파는 비례대표 순번을 전부 차지하겠다는 생각까진 하지 못했을 것이고 '1인 다표제'를 '1인 1표제'로 바꾸는 제도개혁 같은 것에 생각이 미쳤을 텐데 말이다. 2월3일 당 대회는 이미 사태가 파국으로 치달은 다음이었지만, 상이한 문화를 고려하지 못한 타협의 실패의 사례는 이 정당의 역사에 무궁무진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파벌>에 동의할 수 없었던 부분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파벌>의 중심적인 논지에 동의할 수는 없었다. 크게 보면 두 부분에서 그러했다. 먼저 <파벌>은 민주노동당의 정파 갈등을 크게 세 시기로 구분하고, 그중 첫 번째 시기엔 갈등이 잘 통제되었지만 두 번째 시기부터 그것이 격화되어 분당으로 갔다고 설명한다. "역사적인 원내 진출을 달성하기 까지는 중앙의 지도자들이 적극 나서서 조정·중재해 원만하게 해결됐다"(251쪽)는 서술이 그 예다.

그러나 직접 겪은 사람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첫 번째 시기의 갈등이 합리적인 방법으로 해결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후로 갈등의 양상이 격렬하게 바뀔 수밖에 없었던 측면이 있다. 초기의 갈등 상황을 살펴보면 평등파는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당기위가 나서 당적 규율로 문제를 일으킨 이들에게 제재를 가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자주파는, 저자도 인정하듯 "법과 제도에 대한 인식이나 태도가 특이"(291쪽)했다. 가령 2001년에서 2002년까지 진행된 용산 지구당 사태에서, 자주파의 일부 세력은 처음에 당원이 지구당을 임의로 선택할 수 있다는 제도의 맹점을 활용하여 주소지 변경만으로 지구당을 접수하려 했다. 이 과정에서 실거주지와 직장 근처의 지구당만 선택할 수 있도록 제도가 변경되었는데, 그러자 그들은 실제로 용산 지역으로 이사를 오면서까지 원하는 바를 관철하고자 했다. 당내 선거 과정에선 세력을 불리기 위해 당비 대납 등을 서슴지 않았고, 회계 문제 부정을 고발하는 요구가 나와도 '동지'에 대한 조사를 거부했다. 이런 문제들을 당 규율로 처벌하지 않고 "중앙의 지도자들이 적극 나서서 조정·중재"하여 봉합하려고만 한 것이 이 시기 문제의 핵심이었고, 갈등의 에너지가 쌓여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다.

만일 이런 사안들에 대해 당 규율을 제대로 적용했다면 자주파가 "법과 제도에 대한 인식이나 태도"를 고칠 수 있었을까? 나도 그렇게 낙관적인 전망을 하지는 못하겠다. 그러나 만일 그랬다면 자주파 역시 평등파와 공존하기 위해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 좀 더 정확하게 파악할 수는 있었을 거다. 차후 갈등의 양상이나 분당의 시기 및 양상도 이와는 달랐을 것이다.

내가 <파벌>의 중심적인 논지에 동의할 수 없었던 또 다른 이유는 이 책이 정치 지향에 대한 판단을 생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 책이 연구서이며, 그 연구의 주제가 "정파 갈등이 어떻게 분당이란 파멸적인 결과를 만들어내는가?"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비유하자면 이 책은 누가 운전대를 잡을지를 두고 다투는 두 사람의 모습을 스케치한다. 그러기 위해서 차 내부의 풍경을 중심적으로 바라본다. 차 내부만 바라보면 자주파의 항변도 납득이 간다. "내가 핸들을 잡았다고 네가 화를 내고 있는데, 생각해봐. 그 이전엔 네가 핸들을 잡고 있었잖아?!"라는 식이다. 그런데 시선을 차 밖 풍경으로 돌리면 얘기가 또 달라진다. 평등파가 이 차안에서 분통이 터져 죽을 것 같았던 이유는 단지 내가 운전대를 잡지 못했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었고 자주파가 운전대를 잡았을 때의 운전 미숙과 방향 감각의 상실 때문이었다.

이 책에서도 뚜렷이 확인할 수 있는 특징적인 사건들로, 북한 핵실험 국면에서 자주파가 매번 당의 '북한 핵실험 반대' 입장 표명에 결사반대해 입장 표명 자체를 좌절시킨 것과, 2007년 대선에서 '코리아 연방공화국'을 기조 입장으로 관철하려고 안간힘을 썼던 것을 들 수 있다. "민주노동당은 반핵 강령을 분명히 하는 정당"(167쪽)임에도, "자주파에게 북한은 미국(과 하위 파트너인 남한 정부)보다 더 신뢰하고 지지해야 할(주사파의 경우 추종해야 할) 대상이고, 북한의 자위에 필요하다면 당론인 비핵원칙을 유연하게 적용해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167쪽)이기에 당내에서 '자위적 핵'을 인정해야 한다고 발언하거나 북한 핵을 반대하는 입장 표명을 좌절시켰던 것이다. 그러는 사이 "당 밖에서는 진보·개혁 성향의 종교인, 지식인, 법조인, 노동·시민사회단체 대표자 171명이 북한의 핵보유에 분명하게 반대한다는 성명을 냈고, 희망사회당 등 다른 진보적 정당과 시민단체들도 민주노동당의 진보성을 의심하는 내용의 논평을 냈으며"(180쪽) <한겨레>는 사설에서 민주노동당의 대응을 비판했다.

코리아 연방은 또 어떤가. 자주파는 이를 권영길 후보의 국가 비전으로 밀어붙이려고 했다. 평등파 정파인 전진이 주장한 바, "대선 후보가 제시하는 국가 비전은 당의 부문별 공약을 총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코리아 연방공화국은 부문별 공약과 논리적 연관성을 갖지 못한다"(207쪽)는 사실이 명백한데도 그렇게 한 것이다. 당시 정책위의장이었던 이용대의 발언을 인용해 보자면 이렇다.

"코리아 연방은 단순히 통일 정책이 아니라 민주노동당 말고는 그 어느 당도 낼 수 없고 동의할 수 없는 민주노동당만의 고유한 국가 대안이라는 성격을 지닌다. (…) 비정규직, 한미FTA로 민중의 생존이 벼랑에서 고통 받는 나라가 아니라 민중이 잘사는 나라, 일자리 걱정 없는 나라, 서민이 행복한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그 나라가 코리아 연방이다."(202쪽)

"대한민국 역사상 공식적으로 '대한민국'을 바꾸는 국가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올해가 사실상 최초이다. 그만큼 코리아 연방 건설은 낯설고 새로운 슬로건일 수밖에 없다. 이는 마치 2000년에 민주노동당이 창당했을 때 사람들에게 낯설고 새로운 존재였던 것이나 마찬가지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창당 4년 만에 일반의 예상을 깨고 민주노동당은 원내 정당으로 자리 잡았다. 코리아 연방은 향후 몇 년이 지나야 사람들의 의식 속에서 시민권을 인정받을 수 있을까? 필자는 5년 안에 가능할 것이라고 감히 장담한다."(204쪽)

이러한 인식에서 드러나는 상호간의 차이는 단지 견해의 차이에서 끝나지 않는다. 평등파에게, 자주파의 주장은 동의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대중정치의 현장에서 '결코 시민들의 지지를 이끌어낼 수 없는 것'에 해당한다. 그러나 자주파는 그런 현실 판단 자체에 동의하지 않는다. 자주파의 세계관이란 다소 자의적인 데가 있어서, 자신들이 열심히 선전하고 삭발도 하고 단식도 하고 그러면 대중들이 감동을 받게 될 것이고, 결국엔 무슨 말이든 통용되리라고 믿는 것이다.

2007년 대선은 한나라당 후보 이명박과 민주당 후보 정동영의 차이가 명백했기에 1997년이나 2002년 대선에 비해 진보 성향의 제3후보가 유권자 층에게 파고드는 게 지극히 용이한 선거였다. 대선후보로 노회찬이나 심상정이 나왔다면 문국현이 출마하지 못하게 하는 효과를 거두는 것까지 포함해 크게 선전할 가능성이 높았고, 권영길이 나왔더라도 선거 운동을 잘 했다면 선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자주파는 그 중차대한 시기에 코리아 연방공화국으로 대중에게 파고들 수 있다는 환상을 가졌다. 게다가 결과가 2002년 대선에도 못 미치자 그 원인을 평등파가 선거운동을 비토한 것에 돌렸고 혹자는 1997년 선거보다는 많이 나왔기에 실패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들은 정당의 세가 약할 때엔 다소 정체성을 숨기다가 민주노동당이 어느 정도 기반이 잡히자 그 정체성을 다소 황망한 방식으로 드러냈는데, 이런 경우엔 정당을 함께 할 수 있는지 여부에 심각한 회의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다만 "다수파인 자주파가 '민주주의=다수결'이라는 협소한 민주주의관으로 다수의 힘으로 모든 문제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것은 소수파에 대한 존중이라는 공존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을 어긴 것"(296쪽)만이 문제는 아니었던 셈이다.

결정적으로 저자는 정치 지향에 대한 판단을 생략하는 문제에서 정부가 국민에게 보장해야 하는 민주주의 원칙을 정당이 내부 파벌에게 비슷하게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는 오류를 범한다. 다음의 주장을 들어보자.

"특히 개인이나 집단의 정체성은 어떤 경우에도 인정되고 존중돼야 한다. 정체성은 다양성의 근원으로 독창적인 의견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자신과 다른 이념이나 노선을 취하고 있더라도 그것이 행동으로 표현돼 상대방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거나 조직 전체의 이익에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피해나 위협을 가하지 않을 경우 어떤 이념이나 의견도 존중하는 것이 진정한 민주주의자이다. 국가보안법이 반민주적이라고 하는 것은 이런 가장 중요한 민주주의의 원칙에 반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민주노동당의 소수파인 평등파가 '종북주의' 자체를 문제로 삼은 것은 결정적인 실수이고 오류다."(296쪽)

그러나 평등파는 자주파의 정체성을 인정하고 존중하지 않은 바가 없다. 이를테면 평등파는 국가보안법이 자주파 활동가를 잡아 가두는 것에 찬성하지 않는다. 그러나 '종북주의'라는 비난이 국가보안법과 비슷한 수준의 반민주주의적 책동인 것은 아니다. 정당은 비슷한 이념을 정책으로 실현하려는 이들이 모여 있는 결사체이며, 활동 과정에서 개인이 당을 떠날 수도 있고, 당이 개인을 쫓아낼 수도 있으며, 상이한 이념을 가진 집단이 결별을 선언할 수도 있다. 국가가 "우리는 우파 국가니까 좌익 국민은 나가!!"라고 하는 건 경천동지할 문제이지만 (대한민국의 큰 문제는 이런 태도에 경악할 시민이 전체의 10퍼센트가 될까 말까 하다는데 있다.) 정당이 당 규율에 의거 당원을 출당시키는 데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저자는 명백히 다른 두 문제를 뭉뚱그리면서 평등파에게 다소 부당한 비판을 한다.

그러나 저자의 비판이 부당하다는 것은 평등파의 눈앞에 닥친 현실 문제들을 해결해 주지 못한다. 우리는 "평등파가 '종북주의'라는 비난을 한 것은 부당하다."고 말하기 보다는, 다시 한 번 "왜 평등파는 스스로도 '종북주의자'임을 인지한 이들과 함께 당을 해야만 했는가?"라고 물어야 한다. 책에 나오는 인터뷰를 보면, 내가 정말로 궁금해서 선배들에게 물어 들은 내용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함께 운동을 했던 사이이기 때문에", "대중정치를 하다 보면 변할 거라고 생각해서" 끌어들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는 당장 서로 말라죽어가고 있는 처지에서 통합이 필요했고 그 정치적 조건이 서로에 대한 통제가 가능할 거라는 낙관론을 크게 키웠다는 저자의 핵심적인 분석이 더 설득력 있다.

그리고 이 문제에 담긴 양자택일의 함의는, 미워도 다시 한 번 자주파와 함께 당을 하기로 결의하고 출항한 통합진보당과, 평등파 주요 정치인들까지 장기적출 당하듯 적출당하고 고사 직전에 내몰린 진보신당의 처지로 요약될 수 있다. 한국 사회의 좌파는, 자주파와 함께 가지 않으면 대중에게 다가갈 방법이 없고, 자주파와 함께 가면 자신의 정당이 대중에게 다가가 그들이 싫어할 얘기를 할지도 모른다는 지독한 딜레마 상황에 빠져 있는 것이다.

그래서 무엇을 할 것인가?

"당 초기, 한 2000년, 2002년 정도까지는 장군님 사진 놓고 인사하고 그런 것까지 했어요. 그런데 그거를 어린 조직원들이 한 게 아니라 지금 굉장히 많이 알려진 리더급들까지 그걸 하죠. 그리고 그걸 안 한다 그래 가지고 때린다거나 이런 사건도 벌어졌었죠. 그런데 그게 당에 오고 나서는 숨기거나 흐지부지되죠. 그리고 간첩 사건도 나고 그러면서. 그런데 어쨌거나 그 조직들은 그러한 논리에 의해서 훈련받고 교육받은 사람인데 그거를 부정을 하면 그 조직이 무너집니다. (…) 왜 한참 인기 좋을 때 무슨 핵무기 좋다는 발언이 나오거나, 대선 때 권영길 후보를 가지고 나갔으면 조금 표라도 더 얻어야 되는데 갑자기 고려연방제가 나오거나, 그런 거라고 하는 거는 세계관이 그렇게 형성돼서 거기에서 나오기 때문에, 그런데 그게 대한민국의 대중정치, 진보 정당의 논리하고 안 맞고 수용할 수 없다고 판단한 거죠."(278~279쪽)

통합진보당은 어떻게 될 것인가? 많은 진보지식인들은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통합했어야 했다고 믿고, 국민참여당까지 통합하게 된 지금 상황은 진보 정당 운동의 변질을 의미한다고 믿는 듯하다. 그러나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나는 민주노동당과의 재통합을 결의한 시점에서 국민참여당의 합류를 반대할 명분은 없다고 보았다. 왜냐하면 국민참여당의 '신자유주의적 노선'이란 것은 언제든지 변화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참여당이 민주당 외부에서 생존하기로 선택한 이상 민주당과 구별되는 무언가를 보여야 하고 민주당이 전향적으로 수용하기 힘든 노동 문제는 좋은 핑계거리다. 실제로 유시민의 경우 통합 이전 인터뷰들에서 노동 문제에 대해 거의 민주노동당 입장과 차이가 없는 전향적인 인식의 전환을 보여주었다. 또한 통합진보당 창당 이후 강령 및 정책을 봐도 노동 문제의 경우 진보신당의 것과 거의 차이가 나지 않는 진보성을 보여준다.

반면 우리의 경험은 자주파가 북한 문제에 있어서는 '정치 세력의 지지율 극대화'라는 이기적인 원칙을 도외시하면서까지 (혹은 그 원칙을 거스르지 않는다고 오판하면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추구하려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만일 북한이 핵실험을 하지 않고 남북한 평화체제가 수월하게 수립된다면 자주파가 진보 정당의 외연 확장에 해가 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남북관계가 그러한 장밋빛 전망을 보장하지는 않기 때문에, 통합진보당 역시 향후 고통스러운 딜레마에 빠져들 가능성이 높다. 또한 자주파가 "법과 제도에 대한 인식이나 태도가 특이"하기 때문에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는 최근 통합진보당 내에서 불거진 몇몇 상황들이 이미 충분히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고통스러운 것은 진보 정당 운동의 참여자뿐만 아니라 이 땅의 서민들이기도 할 것이다. 서민들은, 수구세력이 진보세력에 덧씌운 '친북'이라는 굴레를 벗어난 경쟁력 있는 진보세력을 만날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통합진보당의 훌륭한 노동 정책을 보건대, 만일 진보신당 등이 고사한다면 한국의 진보진영은 흡사 서민에게 "노동과 함께 친북을 받든지, 아니면 북한 욕하며 비참하게 살든지"란 식의 '베팅'을 거는 '타짜질'을 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질 지경이다.

물론 민주노동당의 실패를 전적으로 "자주파의 비대중적인 친북성"에서만 찾는 어떤 평등파들의 논리에 나는 동감하지 못한다. 민주노동당의 실패는 그뿐만 아니라 민주노총이라는 대중조직을 업고 성장한 이 정당이, 민주노총이 노동자 중에서 대기업·정규직·남성 노동자라는 협소한 계층에 갇혀 버린 현실을 타파하지 못하고 함께 갇혀 버렸다는 데에 있다. 통합진보당이든 진보신당이든 사회당이든 계속해서 진보 정당 운동을 지속하겠다는 이들은 이 문제에 대한 성찰과 미조직 노동자·영세 자영업자에 대한 조직 운동의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를 둘러싼 통합진보당과 진보신당 등의 다툼을 보자면 이 문제에 대한 성찰 따위는 몇몇 이론가들의 텍스트에서나 이루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을 따름이다.

통합진보당원, 진보신당원, 사회당원, 기타 진보 정당 운동에 관심이 있는 많은 사람들이 <파벌>을 정독하고 진지한 고민을 해봐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파벌>은 내가 인용하면서 비판한 일부 구절을 보면 '분당'을 죄악시하는 것 같지만 전체 내용을 보자면 꼭 그렇지는 않다. <파벌>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도 있다.

"과거에 격렬한 갈등과 대립을 겪은 조직들이 통합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그 원인과 후유증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상처('트라우마')를 치유한 뒤 통합 조건을 협의해야 할 것이다. 그 과정이 없으면 통합 후 조그마한 갈등도 쉽게 통제하기 어려운 갈등으로 발전할 수 있다. 당장 조직을 살리고 세를 확장해야 한다는 강박감이나 여론의 압박 때문에 이 과정을 건너뛸 경우 다시 분열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299쪽)

우리는 <파벌>이 던진 문제제기와 함께, 그에 덧붙여 (구)민주노동당의 성공과 실패를 넘어설 수 있는 새로운 진보 정당 운동의 존립 근거를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특히 '한 지붕 세 가족' 살림을 시작한 통합진보당원들은 이 책을 반드시 심각한 마음으로 읽어보는 것이 좋겠다. 그들 외엔 누구도 관심이 없는 진보신당·사회당 통합논의를 두고 진통을 겪고 있는 진보신당원과 사회당원에게도 마찬가지 이유로 이 책을 추천한다. 이 책에 담긴 과거는 단지 '흘러간 옛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의 진보 정당 운동이 맞닥트린 질곡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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