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궁' 김명호는 '망상증' 환자…어디서 빗나갔나?
[석궁, 대한민국을 쏘다] 르포 <부러진 화살>을 읽다
2012.02.24 16:59:00
'석궁' 김명호는 '망상증' 환자…어디서 빗나갔나?
1

멧돼지 가죽을 뚫는 석궁 화살을 맞았지만 판사는 약간의 피가 나는 상처만을 입은 채 자기 발로 구급차에 탔다. 세계적인 저널에 논문을 실을 정도로 실력이 있다던 수학 교수는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음모론을 횡설수설 늘어놓으며 자기만의 법 이론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정의로운 개인과 권위적인 사법부의 대립을 놓고 흥행몰이를 하려던 영화 관계자들은 주섬주섬 목청을 낮췄다. 징계를 각오하며 합의 내용을 공개한다던 판사는 역시 징계를 받았고, 그와 함께 신문 지면에 오르내리던 또 한 사람의 '개념 판사'는 재임용에서 탈락한 후 대법원을 상대로 법적 대응을 준비 중이다.

그런데 이 모든 논란 속에서조차, 영화 <부러진 화살>의 원작인 논픽션 <부러진 화살>(서형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은 전혀 거론되지 않고 있다. 이것은 놀라운 일이며, 동시에 그만큼 문제적인 현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법부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현재의 논란은 당연히 그동안 쌓여온 불신이 터져 나온 것이다.

하지만 그 폭발의 뇌관 역할을 한 것은 영화 <부러진 화살>이며, 작품을 연출한 정지영 감독이 말했다시피 영화는 몇 해 전에 출간된 논픽션 <부러진 화살>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른바 '석궁 사건'과 그 파장을 되짚어보기 위해 마땅히 이 책을 검토해야 하지 않을까?

▲ <부러진 화살>(서형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 ⓒ후미나타스
일단 결론부터 이야기하자. 정지영 감독의 말은 결코 책임 떠넘기기가 아니다. 영화가 보여주는 논리의 구조를 책도 그대로 가지고 있으며, 바로 그 논리에 허점이 존재한다(고 이후 나는 지적할 것이다). 그러나 영상 매체가 아닌 텍스트 매체인 덕에 논픽션 <부러진 화살>은 영화보다 훨씬 폭넓은 토론의 기회를 제공한다.

그것을 통해 우리는 현재 진행 중인 사법부의 진통과 난국을 비교적 심도 있게 짚어볼 수 있을 것이다. 즉, 이 글은 서평이지만 책에 '담겨 있는' 텍스트에서 멈추지 않고, 책으로 말미암아 '불거져 나온' 텍스트도 함께 책을 통해 비춰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2

"만약 이것(범행 현장에서 발견된 장갑)이 맞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무죄를 선고해야 합니다!(If it doesn't fit, you must acquit!)."

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검찰에 기소된 전 미식축구 스타 오린설 제임스 심프슨(O. J. 심프슨)의 변호사 조니 코크런은 현장에서 발견된 '물증' 중 하나인 가죽 장갑에 주목했다. 검찰의 시나리오에 따르면 심프슨은 그 장갑을 끼고 아내를 죽였다. 장갑에는 혈흔이 묻어 있었고 그것은 당연히 피해자의 것이다.

검찰은 그 장갑이 피의자의 것이라고 주장했고, 심프슨과 변호사는 부인했다. 밀고 당기는 실랑이 끝에 배심원 및 TV 생중계로 그 재판을 바라보던 모든 이들의 이목을 한껏 주목시킨 후, 그 장갑과 같은 종류의 장갑을 구해온 변호사 코크런은 심프슨에게 직접 끼워보라고 말한다. 저 유명한 문장을 배심원들에게 내뱉으면서.

그 결과는 우리 모두가 아는 바와 같다. 검찰이 '범행 현장에서 발견된, 범행 당시 끼고 있었던 장갑'이라고 주장하던 그 물건은, 가장 유력한 용의자의 손에 맞지 않았다. 너무 작았다. 물론 무죄 판결이 나온 이유는 그것 때문만이 아니겠지만 이 법정 드라마는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정황 증거, 그 외의 물증, 도주하다가 체포된 용의자 등 모든 것들이 한 방향으로 심프슨의 유죄를 외치고 있었지만 저 장갑은 손에 맞지 않았다. 장갑이 손에 안 맞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유죄라고 본 배심원보다는, 그렇다면 무죄를 선고받아야 한다고 판단한 배심원들이 더 많았다.

물론 O. J. 심프슨 사건은 한국의 경우가 아닐 뿐 아니라, 미국에서조차 옳지 않은 재판으로 곧잘 인용되곤 한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어떨까? 검찰 측에서 제시한 유죄의 증거가 사실과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외 기타 정황을 통해 볼 때' 유죄 선고가 떨어진다면, 우리는 그것을 정의로운 판결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3

소송을 진행하던 김명호 교수, 박훈 변호사 그리고 그 과정과 결과를 기록한 논픽션 작가 서형의 논증 모두 위 사건과 비슷한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근대적인 형사 재판의 상식대로라면, 검찰은 범죄가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발생하였고 그것이 형법에 금지되어 있는 어떤 범죄에 해당하는지를 밝혀야 하며(구성 요건), 그러한 범죄 행위에 법적으로 처벌받지 않을 수 있는 특별한 사유가 있는지를 따지고(위법성), 마지막으로 그 죄를 저지른 사람이 자신의 범행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검토해야 한다(책임).

중요한 것은 위법성과 책임의 경우와 달리, 구성 요건을 주장하고 입증해야 할 책임은 전적으로 원고, 즉 검찰 측에 있다는 것이다. '김명호 교수는 석궁을 의도적으로 발사하여 박홍우 판사에게 상해를 입혔다'라는 주장을 사실로 입증할 수 있는 내용들을 빼곡하게 채워 넣어야 할 사람은 검사이며, 그 주장을 판사에게 납득시키지 못하는 한 유죄 판결이 내려져서는 안 된다.

정황상으로 볼 때 심프슨이 부인을 살해했다는 것은 너무도 명백해 보였고, 심지어 민사 재판에서는 부인의 유가족에게 거액의 손해 배상금을 지불하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하지만 검찰은 자신들이 제시한 '시나리오'를 제대로 입증하지 못했고, 그 지점에서 게임은 끝났다.

한국의 경우에도 비슷한 방식의 무죄가 선고되는 일이 없지 않다. 두 명의 미국계 한국인 중 누군가가 한 대학생을 밀실인 화장실에서 칼로 찔러 살해했다. 어설픈 초동 수사를 통해 지목한 '진범'이 그 범죄를 저지를 수는 없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두 사람은 모두 살인죄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았다.

우리가 아는 이른바 '이태원 살인 사건'의 전말이다. 둘 중 한 사람은 살인을 저질렀을 테지만, 그것이 누구에 의해 어떻게 저질러졌는지를 입증하지 못하면, 유죄 판결은 선고될 수 없다.

'만약 박홍우 판사가 석궁 화살에 맞지 않았다면, 김명호 교수는 무죄입니다!'

<부러진 화살>에서 피고인의 무죄를 주장하는 논증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바로 이렇다. 피고인 측이 주장하는 바를 종합해 보면 박홍우 판사는 석궁에서 발사된 화살에 맞지 않았고, 그러므로 그가 고의로 화살을 쏴서 상해를 입혔다는 검찰 측의 주장은 옳지 않으며, 따라서 해당 혐의에 대해서는 유죄가 선고될 수 없다. 그 논리 전개의 과정을 천천히 짚어보도록 하자.

4

송파경찰서에서는 박홍우 판사가 말한 계단 3~4개 위에서 석궁을 발사해 보았다. 예상과는 달리, 2센티미터 두께인 합판을 관통하고도 뒤쪽으로 화살이 15센티미터나 '살벌하게' 튀어나왔다. 화살을 누름판에 충분히 장착('완전 장착')하고 발사하면 배를 뚫어 버릴 정도의 위력이었던 것이다.

이때부터 위력이 약하게 날 수 있는 발사를 고민하게 된다. 그리하여 고심 끝에, 불완전하게 장착된 상태를 생각해 낸다. 그것은 화살을 다 끼우지 않고 중간에 걸쳐 놓은 상태를 말한다. 송파경찰서는 "불완전하게 장착된 상태에서 박홍우 판사가 말한 계단 3~4개를 내려오면서 쐈기 때문에 2센티미터의 상처가 났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이를 두고 석궁 전문가 고영환 씨는 이론적으로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일어날 수 없는 '소설'이라고 했다.

"화살 누름판에 눌리지 않은 상태에서 걸쳐 놓고 이렇게 하향 사격하면 (화살이) 흘러내리거든요. 경찰이 소설을 쓴 거예요. 말이 안 되는 이야기를 쓴 거예요. 화살이 흘러내리는데 될 수 있는 이야기냐고. 경찰이 소설을 쓴 거야. 곤두박질을 치는데, 화살이……."

고영환 씨는 이런 석궁 실험 수사 내용에 대해 2007년 4월 2일 3차 공판에 나와서도 같은 이야기를 했다. (67~68쪽)

박홍우 판사는 제대로 발사된 석궁 화살에 맞지 않았다. 그랬다면 1~2센티미터짜리 상처가 아닌 치명상을 입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박홍우 판사는 제대로 발사되지 않은 석궁 화살에 맞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석궁이 "불완전하게 장착된 상태", 즉 "화살을 다 끼우지 않고 중간에 걸쳐 놓은 상태"라면 화살은 아래로 흘러내리고, 계단 위에서 아래로 걸어 내려오며 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피고인 측에서는 어떤 식으로건, 검찰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이 '계단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며 박홍우 판사를 향해 석궁을 쏘아 상해를 입혔다'는 공소 사실이 입증되지 않았음을 보였으므로, 이 사건에 대해서는 유죄가 선고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자 검찰 측에서는 공소장을 변경하여, 피해자가 정확히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아무튼 어떻게 화살 한 발이 발사되었고 그것으로 인해 상해가 발생했다고 공소 사실을 확정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작은 상처가 석궁으로 인해 발생했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을까? <부러진 화살>에 인용된 다른 경찰 실험에 따르면 그렇지 않다.

그런데 실험을 주관했던 김홍석 형사는, 불완전 장전인 경우에 1.5미터 거리에서 내복, 조끼, 와이셔츠를 입힌 돼지고기에 화살을 발사해 보니, 6.5센티미터 정도 상처가 났다고 말했다. 덧붙여 당시 피해자의 증언과 상해 정도에 맞춰서 실험을 계속해 보았는데, 경찰 실험으로는 피해자의 상처(좌측 복벽 좌상 길이 2센티미터, 깊이 1.5센티미터)와 일치하지 않았다고 했다. (88쪽)

설령 불완전 장전인 경우라 하더라도, 피해자가 입고 있었던 것과 같이 내복, 조끼, 와이셔츠를 뚫고 화살은 6.5센티미터 가량 파고들어간다는 것이 실험 결과인 것이다. 설령 불완전하게 발사된 화살에 피해자가 맞았다 하더라도 그런 경미한 상처만을 입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그와 같은 상처가 어떻게 발생할 수 있는지를 입증해야 할 책임은 검사에게 있으므로, 피고인은 무죄다.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치과 의사 모녀 살해 사건'이 아니라 바로 이 사건이야말로 '한국판 O. J. 심프슨 사건'으로 불려야 마땅할 것 같다. '석궁에 맞았다면 이런 상처로 끝날 수 없습니다. 만약 박홍우 판사가 석궁 화살에 맞지 않았다면, 김명호 교수는 무죄입니다!'

5

영화와 책이 공유하고 있는 이 '무죄 시나리오'에는, 그러나 한 가지 커다란 구멍이 존재한다. 그리고 애석하게도 우리는 그 내용을 책이나 영화를 통해서는 확인할 수 없다. 송파경찰서의 실험과 달리, 석궁이 불완전하게 발사될 때 그것이 너무도 하찮은 상처만을 낼 가능성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 내용을 다름 아닌 피의자, 즉 김명호 교수가 진술하고 그 내용이 사실임을 확인하여 서명까지 한 문서, 즉 검찰 피의자 신문 조서에서 확인할 수 있다.

판사 : 검찰 피의자 신문 조서 1회의 요지는 검찰에서 설명한 것 외에 (…) (피의자, 즉 김 교수는) 석궁의 위력에 대해서 검찰에서 사람에게 쏠 경우 치명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가라는 신문에 대해서 다다미 연습을 할 때에 어떤 곳은 1센티미터 정도 꽂히고 다다미가 풀려진 곳은 좀 더 깊이 꽂혔는데 그렇게 치명적인 위력을 가졌다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라고 답했습니다. 박홍우가 화살을 배에 맞아 입원 치료를 받고 있는데 피고인이 발사한 화살에 다친 것을 인정하느냐는 신문에 대해서는 밀고 당기는 과정에서 화살을 맞은 반응을 전혀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저로서는 화살에 맞아 다쳤는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항소심 3차 공판 기록문 中. 이 문서는 인터넷 사이트(☞바로 가기)에서 확인 가능하다.)

그가 다다미를 걸어놓고 석궁 발사 연습을 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가 "다다미 연습을 할 때에 어떤 곳은 1센티미터 정도 꽂히고 다다미가 풀려진 곳은 좀 더 깊이 꽂혔는데 그렇게 치명적인 위력을 가졌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고 말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리고 그 진술은 대단히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왜냐하면, 다른 석궁 전문가가 아니라 김명호 본인이 자기 소유의 석궁을 발사할 때에는, 다다미 즉 일본식 돗자리를 고작 1센티미터 뚫고 들어가는 정도의 위력밖에 내지 못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다른 전문가, 특히 불완전 장전이 된 석궁은 아래를 향하면 화살이 흘러내린다고 말한 그 전문가의 의견보다 더욱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할 사실이다. 김명호 교수가 일부러 석궁을 불완전 장전한 상태로 발사 연습을 했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기 때문이다. 송파경찰서에서 실험을 위해 초빙한 '전문가', 혹은 경찰의 불완전 장전과, 김명호 교수 본인이 하던 방식의 장전은 대단히 다를 수 있다.

즉 '모든 불완전 장전은 발사되지 않거나 발사되더라도 6센티미터 이상의 상처를 입힌다'라는 주장, 그러므로 '어떤 경우에도 우발적으로 발사된 석궁 화살은 박홍우 판사에게 직접 맞지 않았다'라는 피고인 측의 주장에 일말의 허점이 생기고 마는 것이다.

다른 그 누구도 아닌, 사건 현장에 있었던 두 사람 중 석궁을 쏜 것으로 여겨지는 바로 그 사람이 다다미를 걸어놓고 연습을 할 때, 석궁 화살은 형편없는 위력을 보였다.

적어도 그는 검찰에서 그렇게 진술했다. 그렇다면 검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석궁의 위력과 발사 방식에 대한 논의는 항소심의 3차 공판에서 이루어졌다. 이후 적어도 일곱 차례 이상의 공판이 있었다. 이미 피의자 김명호 교수는 구치소에 수감된 상태였고, 따라서 검사는 변호인의 입회 하에 얼마든지 '김명호 교수 본인의 손으로' 석궁 발사 실험을 추진할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

어떻게 화살이 발사되었기에 석궁에서 날아간 화살이 폭 2센티미터 깊이 1센티미터의 상처만을 남길 수 있는지, 그 의문을 해결하고 군더더기 없는 유죄 판결을 받아낼 수 있는 기회가 얼마든지 있었다.

이 논점에서 확실하게 승기를 잡았더라면 이후 '재판을 개판'으로 만든 수많은 논의들, 가령 '박홍우 판사 자해설' 같은 것이 제기될 여지는 매우 좁아졌을 것이다. 그 모든 어처구니없고 비상식적인 주장들은, 모두 피고인 측이 '어떻게 박홍우 판사가 발사된 석궁에 맞지 않고 그 상처를 입게 되었는가'를 설명하기 위한 발버둥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검사가 유죄를 적극적으로 증명하지 않고 방조하기 때문에, 피고인은 무죄를 적극적으로 증명하려고 한다. 하지만 검사와 달리 피고인은 직접적인 증거를 수집할 수도 없고, 여론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몰아가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유일한 희망임을 잘 알고 있다. 굳이 검증할 필요도 없고 실익도 없는 증거물들을 확인하자고 달려드는 것은, 용납되기는 어렵지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행동 아닐까?

하지만 검사는 '이미 제출된 자료를 통해 입증'되었다고 말할 뿐, 대체 어떻게 석궁 화살이 그렇게 미약한 상처만을 남겼는지에 대한 적극적(positive) 입증을 하지 않은 채, 모든 것을 판사의 '종합적 판단'에 맡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승산이 있음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6

어떤 철학자가 지적하는 바에 의하면 서양 사람은 한 가지 문제가 있으면 그것을 여러 가지 요소로 나누어서 모든 각도에서 철저히 알아본다. 이에 반해 동양 사람은 한 가지 문제가 있으면 그것과 비슷한 문제를 자꾸 모은다. 그리고 큰 지혜 보따리 같은 것에다 계속 집어넣는다. 얼마 후 그 보따리는 우주만큼이나 커지고, 따라서 그 내용에 관한 논쟁도 우주적인 논쟁이 되어 처음의 문제 따위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고 한다. 내 경험에 비추어 보아도 재미있는 지적이라고 생각된다. (<학문의 즐거움>(히로나가 헤이스케 지음, 방승양 옮김, 김영사 펴냄), 121-122쪽)

일본의 유명한 수학자인 히로나가 헤이스케의 책에 등장하는 이 재미있는 인용구가 우리의 논의에 한 줄기 통찰을 선사한다. "한 가지 문제"를 '어떻게 석궁에서 발사된 화살이 폭 2센티미터 깊이 1센티미터짜리 상처를 만들 수 있는가'로 치환해보자.

서양의 법정, 혹은 우리가 기대하는 '과학 수사'가 이루어지는 어느 가상적인 이성의 왕국에서라면, 앞서 내가 제안한 것과 같은 다양한 실험을 통해 '석궁에서 발사된 화살과 상처의 관계'를 모든 각도에서 철저히 살펴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대한민국, 어엿한 '동양'에 살고 있고, 그래서 법정의 분위기는 대략 이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핵심적인 범죄 사실의 적극적인 입증이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 피해자의 상처가 생각보다 작게 발생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입증"(89쪽)할 수 있다고 검사가 주장하는 가운데, "김 교수 측은 검찰 측이 유죄를 입증한다면서 증거를 낼 때마다 재판장에게 "검사가 입증한 것은 없지 않습니까?"라고 항의"(90쪽)했지만, 판사는 "법에 따라 판단은 제가 하는 거고요", "검찰에서 제대로 못하면 제가 무죄 판결할 겁니다. 그것은 염려하지 마세요"라고 대답할 뿐 검찰에서 제시한 증거 신청을 속속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요컨대 검사는 다른 그 모든 쟁점들의 근거가 되는 하나의 중요한 쟁점에 대해 모든 각도에서 다루는 대신, '그것과 비슷한 증거들'을 긁어모아서 제출했다. 판사는 그것들을 '증거 보따리' 같은 것에다 계속 집어넣었다. 얼마 후 그 보따리는 사회적 논란의 크기만큼이나 부풀어 올랐고, 그 판결에 대한 논쟁도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상해를 끼쳤느냐 아니냐가 아니라, 대한민국 사법부가 왜 이러느냐 혹은 사람들이 어떻게 판사에게 이럴 수 있느냐는 식이 되어, 처음의 문제 따위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어쩌겠는가. '증거 보따리'에는 '의혹 보따리'로 맞설 수밖에.

항소심 판결문에서 '피고인의 주장에 대한 판단'을 하는 부분을 보자. 일단 목차는 대략 다음과 같다.

1. 증거 부분
가. 피해자 박홍우의 진술의 신빙성
나. 부러진 화살과 관련하여
(1). 피고인 및 변호인의 주장
(2). 판단
다. 혈흔이 없는 와이셔츠 등
(1). 피고인 및 변호인의 주장
(2). 판단

2. 상해의 고의

피고인의 주장에 대한 판단을 하는 부분에서, 일단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었던 것들에 대한 반론이 앞서고, 이후 가장 핵심적인 판단의 내용이 뒤따르고 있다. 하지만 가장 본질적인 의문, 즉 '어떻게 발사된 석궁의 화살이, 심지어 우발적으로 발사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고작 1~2센티미터의 상처를 입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판결 보따리'는 말이 없다. 판결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위 피해자의 진술을 비롯하여 원심 및 당심이 적법하게 조사하여 채택한 증거들에 의하면, 피고인은 피해자의 이름을 불러 확인한 후 미리 화살을 장전하고 안전장치를 풀어둔 석궁을 들고 계단에서 내려와 피해자에게 접근하였고 마주보고 서 있는 피해자를 향하여 주저함이 없이 석궁을 발사한 사실이 인정되므로, 피고인에게는 상해의 고의가 있었다고 인정하기에 충분하다.

2007노1060, 2008년 3월 14일 선고.

대법원 판결문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결론에 도달한다. 목격자가 존재하고, 석궁의 안전장치를 풀어놓은 상태였으며, 죽여 버리겠다고 소리를 쳤고, 가방 속에 회칼이 들어있었으므로, 그 모든 사정을 종합하여 볼 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실험에 성공한 적 없는 '석궁에서 발사된 화살이 1~2센티미터의 상처를 입히는 상해'가 성립하였고, 그러므로 유죄 판결을 내리는 것은 정당하다는 것이다. 모든 증거는 법관 앞에 평등하고, 그러므로 검사는 하나의 결정적 증거를 두고 피해자와 싸울 필요 없이, 수많은 비슷한 증거들을 던져놓음으로써 '종합적 판단'을 이끌어내면 그만이다.

검사는 굳이 '불필요'한 실험을 하자고 할 필요도 없었고, '피의자 본인이 직접 쏘면 어떨까?'라는 합리적인 실험 가설을 수립해야 할 사회적·제도적 압박도 느끼지 못했다. '유죄를 입증하지 못했으므로 무죄'라고 주장하는 그런 물렁한 방식으로는 무죄 판결을 얻을 수 없다고 직감한 피고인 측에서는 이런 저런 '음모론'을 던져가며 미디어 쇼를 시작했고, 심지어 법원의 판결문조차도 그 현란한 놀음에 말려들어가 버렸다.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의 모습이다.

7

권력은 말이 없다. 권력은 '일개 아무개'와 싸우지 않는다. 권력은 단지 다른 권력이 제시한 증거, 팩트, 사실 관계 등을 차곡차곡 모은 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그 결과만을 툭하고 던져줄 뿐이다. 권력은 말이 없고 싸우지 않는다. 일개 아무개와 싸우는 순간 권력은 권력으로서의 '가오'를 상실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검사는 석궁 화살의 불완전 발사 가능성에 대해 완전히 조사하지도 않았고 그 세부 사항에 대해 김명호 교수와 다투지도 않았다. 어차피 결론은 '종합적'으로 나온다는 것을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이므로. 마찬가지로, 대법원 인사위원회는 서기호 판사 따위와 싸우지 않는다. 일개 판사 따위가 어찌 대법원 인사위원회의 '종합적 인사 판단'에 대해 타당성을 논할 수 있으며, 격 떨어지게 철없는 젊은 판사의 가타부타에 일일이 대거리할 것인가 말이다.

이른바 '개념 판사'로 언론에 알려진 서기호 판사의 재임용 탈락 건에 대해서도 우리는 같은 사고방식의 작동을 관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기호 판사가 법원 내부 게시판에 올린 글을 읽어보자. 이 순간만큼은 김명호 교수와 서기호 판사의 거리가 그리 멀지만은 않다.

오늘 아침, 각종 언론에서 저의 재임용 탈락 소식이 보도된 것을 보고, 매우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지난 월요일과 수요일 법원 게시판 글을 통하여, 그리고 인사위원회에서 충분히 소명하였기에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인사위원회에서는 구체적인 '근무 성적 현저히 불량' 부분의 사유를 제시하지 못하였고, 근무 평정에 관한 저의 문제제기에 대하여도 충분한 답변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재임용 탈락 공문을 받고서, 또 한 차례 충격을 받았습니다. 법관 인사 규칙 제8조 제2항에 의하면,'대법원장은 연임 신청 판사 중 연임하지 않기로 결정된 판사에 대하여는 그 취지 및 사유를 통지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저는 그래서 적어도 공문에는 구체적인 사유가 기재되어 있으려니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공문에는 다음과 같은 취지의 기재만 있었습니다.

'귀하에 대한 10년 동안의 근무 성적 평정 결과 및 법관인사위원회의 연임 적격에 관한 심의 결과 등을 종합하여'

제가 법원 게시판과 인사위원회에 제출한 방대한 소명 자료에 대하여는, 아무런 판단도 기재되지 않은 채, 종전의 말만 반복할 뿐이었습니다.

설령 당신이 판사라고 하더라도, 하늘 위에는 우주가 있는 법. 그 누구도 이 '종합적 판단'의 헛기침 소리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한국에서 권위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8

나는 김명호 교수가 제기한 온갖 '설'들을 믿지 않는다. 와이셔츠의 구멍에 혈흔이 없다는 것과는 별개로, 사건 현장에서 나온 옷가지에 묻은 피가 모두 동일한 한 사람의 남성의 것이라면, 당연히 그것은 박홍우 판사의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이 올바르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병원까지 합세하여 증거를 조작하였다는 이야기나, 명성을 노리고 상처를 만들거나 키웠다는 가설 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회의적이다.

이와 같은 음모론적 망상을 조롱하기에 앞서, 우리는 좀 더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왜 이 사람은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것일까? 그것은 그가 그만큼 절박하였다는 것, 누군가가 반드시 들어줘야 할 말을 들어주고 있지 않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닌가? 왜 재판부는 검사가 적극적으로 증거를 들고 와 싸우도록 하지 않았는가? 이와 같은 침묵의 증거 채택 속에서 사법 정의는 어떻게 왜곡되어가고 있는가?

'평화는 전쟁 당사자들 간에 힘의 균형이다'라고 누군가가 말한다면 나는 동의할 수 없다. 하지만 법정에 있어서만큼은 사실이다. 정의는 원고와 피고, 검사와 피고인 사이의 치열한 싸움을 통해 비로소 '만들어지는' 것이다. 자유심증주의에 따라 증거를 종합적이고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판사가 뚝딱 던져주는 것이 아니며, 아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법 현실은 멀고도 멀다. 당사자끼리 치열하게 싸우는 가운데 최대한 중립을 지키는 판사가 결정을 내려주는 것이 아니라, 사태를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권위를 지닌 누군가에게 고개를 조아리고 선처를 호소하는 것이 정답이다. 심지어 그러한 권위의 구조는 판사가 판사를 재임용하지 않겠다고 결정을 내릴 때조차 섬뜩하리만치 정확하게 작동한다. 서기호 판사 본인은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지금 그의 모습은 김명호 교수를 비롯한 수많은 '사법 피해자'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부러진 화살>은 결코 공정한 책이 아니다. 앞서 말했듯, 피고인 김명호 교수 측의 논거를 무너뜨릴 수 있는 중요한 대목이 빠져있다. 권력 기관과 개인의 갈등을 다루는 작품에서 그와 같은 '중립성'을 요구하는 것은 잘못된 일일 수 있고, 국내에서 드물게 시도된 법정 르포르타주인 만큼 더 후한 점수를 쳐주어야 하겠지만, 안타깝고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특히 이 책의 스토리텔링에 영화가 고스란히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이 책은 영화가 갖지 못한 미덕들을 보여준다. 제6장 '석궁 사건을 보는 시선들'에는 김명호 교수와 함께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일인 시위를 했던 김성순 씨, 석궁 사건을 두고 이용훈 대법원장을 비판하는 의견을 법원 게시판에 올렸던 정영진 판사 등 다양한 사람들과의 인터뷰가 실려 있다.

더불어 부록으로 실린 이기욱 변호사의 글과 뒤이어지는 두 개의 판결문 역시 일독을 권한다. 이정렬 판사가 쓴 교수 지위 확인 소송의 판결문과, 대법원에서 석궁 사건에 대한 상고를 기각하면서 내놓은 판결문이 담겨 있는데, 모두 직접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저자가 직접 김명호 교수를 인터뷰한 내용이다. 그는 한국의 권위주의가 형사 재판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잘 알고 있고, 그에 굴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다. 나는 그의 방식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그 의지만큼은 존중한다. 새로 클럽에 가입하게 된 서기호 판사를 포함하여, 수많은 '사법 피해자'들에게 이 말이 큰 용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내가 있는 동안만 해도 강간 치사한 사람이 집행 유예로 나갔어요. 강간 치사는 살인만 안 했을 뿐이지 살인하고 같은 거야. 그 사람 나갔어. 이게 말이 됩니까. 여기 온 사람들, 죄를 짓지 않았다 해도 한마디 말도 못 해. 그걸 거부했을 때는 괘씸죄에 걸려서, 없는 죄도 지었다고 인정해야 적게 형 때려.

"너 이런 죄 있지?" 하고 검찰이 윽박지르면, 항변 못 해. 제멋대로 구형을 때려 버리면. 우리나라 큰 문제가 검경의 협박, 윽박지름에 저지르지도 않은 죄를 인정해야 판사도 좋게 봐서 온정주의 판결을 내린다는 거, 그게 큰 문제예요. 지금 세간 사람들이 나에게 "왜 재판장에게 대드느냐?"고 하는데, 난 이런 사법부 행태들에 대해 논리적으로 따져 보고 싶어. (107~1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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