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아는 거짓말…"MB만 사라지면, 지상 천국!"
[홍기빈-장석준-지주형] 신자유주의와 어떻게 싸울까?
2012.03.02 18:24:00
모두가 아는 거짓말…"MB만 사라지면, 지상 천국!"
누구나 알고 있었지만 발설하지 않았던 '1대 99의 사회'라는 구호가 탐욕의 거리를 흔들어놓은 지난해에 이어서, 2012년은 시작부터 심상치 않다. 지난 1월 '1퍼센트의 사교장'이라 불리는 다보스포럼에서도 "20세기 자본주의는 21세기 사회에서 실패하고 있는가"란 물음이 던져졌고 자본주의가 고장 났을지 모른다는 고백이 나왔다. 바야흐로 한 시대가 저물었다는 진단이 나온다. 마침 국외에서 중요한 선거가 있는 정치의 해다.

세계화와 선진국 진입을 목표로 '하나 되어' 달려온 나라. "부자 되세요"가 일상적 덕담으로 통하며 부동산 시세를 열정적으로 체크하는 것이 좋은 부모의 덕목으로 통하는 이곳 한국에서도 최근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 가운데 이명박 정부 4년간 회자되어 온 단어가 있다. '신자유주의.' 하지만 전 세계적 금융 위기로 누적된 고통들이 터지면서 생긴 시점상 일치일 뿐, 신자유주의는 결코 이명박 정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이 정권만 바뀌면 모든 것이 해결되리라 믿는다. 정반대로 국가 권력은 어차피 악이므로 아무 것도 바꾸지 못한다며 운동의 길만이 유일하다 믿는 사람도 있다. 경쟁, 낙오, 불안정 노동, 불안정 주거 등 신자유주의 체제 하에서 겪는 고통과 앞으로 있을 두 번의 선거, 두 항 사이에 놓인 연산기호는 무엇인가? 궁극적으로 이 고통은 어떻게 풀어야 할까?

지난 2월 23일 저녁,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침몰하는 신자유주의, 한국 사회의 항로를 묻다'라는 주제의 기획 좌담에서 가장 집중적으로 쏟아진 질문도 마찬가지였다.


이날 행사는 얼마 전 출판사 책세상에서 'GPE(Global Political Economy, 지구정치경제학) 총서' 시리즈를 차례로 출간한 세 저자의 연구와 분석을 통해, 한 세대 이상 '절대 진리'로 군림해 온 신자유주의의 미래와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해 논의해 보기 위해 기획되었다.

스웨덴 복지 국가의 사상적·실천적 토대를 더듬은 <비그포르스, 복지 국가와 잠정적 유토피아>의 홍기빈, 한때 정치적 힘을 획득했던 좌파들이 신자유주의와 맞서다 실패한 역사를 '암중모색'의 눈으로 살핀 <신자유주의의 탄생>의 장석준, 한국에서 진행된 신자유주의, 특히 'IMF 관리 체제'가 우리에게 미친 영향을 추적하는 <한국 신자유주의의 기원과 탄생>의 지주형이 바로 그 세 저자다. 이날 사회는 국제 관계는 물론 국내 정치·사회에 대한 성찰과 비판을 놓치지 않는 성공회대학교 교수 김민웅이 맡았다.


ⓒ프레시안(최형락)

세 저자는 국내/국제, 정치/경제라는 이분법적 학제의 한계를 인식하고 지구 규모의 변동을 총체적으로 파악하는 데 목적을 둔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에 소속되어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이날 좌담에서 쏟아진 '신자유주의와의 싸움과 정권 교체'에 관한 질문에 "정치를 선거를 포함한 좀 더 넓은 것으로 봐야 한다", "국가 권력에 대한 과도한 기대도, 과도한 저주도 피해야 한다"는 대답을 내놨다.

먼저 사회자와 세 저자가 각각 1대1 대화를 나눴고, 이후 청중과 어우러진 자유로운 토론이 이어졌다. 다음은 그 내용을 문답 형식으로 정리한 것이다. <편집자>


장석준, 신자유주의의 '장면'들을 더듬다


▲ <신자유주의의 탄생>(장석준 지음, 책세상 펴냄) ⓒ책세상
"애초에 밀었던 책 제목은 <저지할 수 있었던 신자유주의의 탄생?>이었다. 우리가 신자유주의를 막을 수 있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없었다.'

오랫동안 진보 정치 운동을 해오면서 의문이 있었다. 신자유주의가 처음 등장했을 때 외국의 여러 진보 정치 세력들은 크게 성장해 있었고, 여당이나 제1야당 수준인 곳도 많았다. 그런데 왜 그 파도를 막지 못했을까. 그에 관한 자료를 모으던 것이 출발점이었다. 어째서 막을 수 없었는가를 살펴보는 과정이야말로, 대안을 모색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봤다."


김민웅 : 장석준이 쓴 책은 <신자유주의의 탄생>이다. 처음 접하는 내용도 많고, 치밀한 분석도 돋보이는 매우 뛰어난 책이다. 먼저 오늘 좌담의 중심에 있는 개념, 신자유주의를 뭐라고 규정할 수 있는지를 묻고 싶다.

장석준 : 많은 사람이 이 개념을 좁은 의미에서만, 그러니까 경제학 속에 나오는 이야기로만 접하다 보니 살림살이와는 동떨어진 '자연 현상'에 가까운 것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니 이것이 필연적인 과정이었다고 생각해버린다. 하지만 신자유주의도 결국 사람, 집단의 세력 차이에 의해 누적적으로 전개되어 온 과정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1970년대 전후 자본주의가 도달한 지점이 그것의 막다른 골목이었다. 이후 자본 대 노동, 북반구 대 남반구의 갈등이 팽팽해졌는데, 그 긴장을 돌파한 것이 결국 자본이었다. 그 가운데서도 북반구의 금융화된 자본 세력이다. 그리고 이들이 전 지구적인 사회 세력 관계에서도 우위를 점해갔던 과정이 바로 '신자유주의의 지구화'다.

김민웅 : 이 책은 1930년대 공황의 경험과 이후 여러 경제학적 논의들부터 칠레, 영국, 미국의 세부 상황을 보는 것으로 이어진다. 전부 정리할 수는 없겠고 신자유주의의 세 국면을 이야기해 보자. 1970년대 초반 세계 자본주의가 충격을 받았을 당시 신자유주의가 최초로 부상한 장면이 있다. 그리고 칠레에서의 쿠데타와 신자유주의 실험, 이후 영국을 거쳐 진행된 신자유주의의 전 세계화가 있을 것이다. 각각에 대한 설명을 부탁한다.

장석준 : 노무현 전 대통령이 유작인 <진보의 미래>(동녘 펴냄)에서 1970년대 이전을 '진보의 시대'라 했는데, 이 구분에 나름 의미가 있다고 본다. 1945년부터 1970년까지는 자본주의의 역사상 처음으로 금융 자본이 아닌 다른 세력들이 자본주의를 주도했던 시기다. 자본주의가 처음으로 국가의 정책 결정에 '끼워 맞춰지는' 시기였고, 그만큼 현재까지는 유일한, 예외적인 시기였다.

그 시기에 신자유주의란 그저 하이에크나 프리드먼 같은 소수파의 학자들만이 주장하는 이데올로기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런 학자들이 1970년대 들어서 노벨 경제학상을 받게 되는데, 이는 그만큼 시대에 전환이 닥쳤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칠레의 경우, 피노체트가 쿠데타를 일으켜 아옌데 정권을 전복하고 자기 정권을 세울 때까지만 해도 아직 본격적인 신자유주의화가 진행된 건 아니었다고 본다. 다만 쿠데타 이후 통화 정책을 펼치면서 '화폐 가치의 안정'이 사회의 다른 모든 것들이 그것을 위해 희생되어야 할, 가장 우월한 가치임을 선포한 것이 신자유주의 역사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1976년 영국의 외환 위기, 1980년대 초 프랑스의 외환 위기가 이어지는데, 사실 무엇보다 결정적이었던 건 미국의 결정 과정이었다. 내 책에서는 그게 주인공은 아니니까 배경으로만 등장하지만, 어쨌든 1980년대 초 폴 볼커 당시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초고금리 정책을 통해 '화폐 가치의 안정이 사회의 다른 모든 것들이 희생되더라도 우선되어야 할 것'이라는 사실을 선포하는 순간, 바로 그 순간이 신자유주의가 탄생하는 진정한 출발점이었다고 정리할 수 있다. 그리고 이후 그 과정이 전 세계적으로 40년 간 이어져 온 것이다.

김민웅 : 그런데 여기서 화폐 가치의 안정을 최우선으로 둔 정책, 그러니까 통화주의에 대한 부연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그게 어째서 문제인가를 잘 모르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장석준 : 그것의 정치 사회적 의미로 돌려서 이야기하고 싶다. 통화주의가 곧 신자유주의는 아니다. 하지만 케인스주의를 통해 만들어 놓은 질서를 해체시키고 신자유주의로 넘어가는 데 있어, 통화주의가 가장 효과적인 무기가 됐다고 정리할 수 있다.

1970년대 초반의 인플레이션은 자본과 노동 사이의 팽팽한 긴장이 화폐적으로 표현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만약 자본이 노동을 제압했다면 노동이 모든 희생을 전가하게 됐을 것이고 노동이 반발하는 데 성공했다면 반대의 장면이 나타났을 텐데, 둘 사이의 긴장이 막다른 골목에 이르는 가운데 최종 소비자 가격 인상도 나타났다고 본다.

케인스주의는 이 인플레이션에 답을 내놓지 못했다. 그때 통화주의가 '화폐 가치의 안정을 중심으로 사회의 모든 것을 재편해야 한다'고 화끈하게 나선 것이다. 이 얘기는 결국 화폐를 가진 이들이 이 사회를 주도해 나가야 한다는 의미다. 통화주의 정책의 단행이라는 경제적인 표면 밑에는 이러한 정치 사회적인 전환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통화주의가 이전 질서를 해체시킨 뒤 자리를 잡았고, 그 위에서 모든 사람들이 자산 시장에 뛰어서 투기적 이익을 노리는 질서가 1990년대 들어 나타나게 된다. 따라서 통화주의는 신자유주의의 초기 이데올로기 같은 것이었고, 이후 우리가 경험한 신자유주의 전성기는 1990년대 이후부터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김민웅 : 신자유주의는 언제나 금융 자본의 강한 투기성 문제와 연결된다. 그런데 투기성과 단순한 투자를 어떻게 구별할 수 있나.

▲ 장석준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기획위원. ⓒ프레시안(최형락)
장석준 :
구별하기 어렵다. 책에도 나오지만 영국 대처 정부에서 '대중 자본주의'라는 이름의 분명한 프로젝트가 있었다. 기존 기득권 세력 뿐 아니라 상당수의 중간 계층, 나아가 노동 계급까지 금융 자산 시장 행위에 참여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대중을 투기 행위의 공범으로 끌어들임으로써 폭압적인 신자유주의가 아닌 일정한 동의에 기반을 둔 신자유주의로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 프로젝트가 성공했을까? 사실 거의 실현될 뻔 했는데, 2008년에 금융 시장 거품이 꺼지면서 동의로서의 신자유주의 기반은 상당히 무너졌다고 본다.

김민웅 : 신자유주의의 시대를 끝내야 한다고 한다. 여기 모인 사람들의 생각도 아마 같을 것이다. 그런데 신자유주의가 대체 왜 문제일까?

장석준 : 여러 가능성을 고민하고 상상하면서 자기 삶과 질서를 만들어야 하는데, 신자유주의는 전 세계인들에게 사상의 유일 체제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상상력의 범위를 좁혀놓고 그 안에서 사고하도록 만들었다. 역사적으로 이만큼 사람들의 상상력 범위를 좁혀놓은 시기는 없었다. 그게 인류사적인 죄악 아닌가 생각한다.

지주형, 'IMF 위기'의 뜻을 말하다


▲ <한국 신자유주의의 기원과 형성>(지주형 지음, 책세상 펴냄). ⓒ책세상
"1997년에 영국으로 유학을 갔다. 얼마 안 있어 외환 위기가 터졌고 환율이 두 배로 올라 유학 생활이 힘들어졌다. 그때 내가 사회학을 공부하는데도 한국 사회에 대해선 거의 아는 게 없다는 생각이 스쳤다. 전공을 정치경제학으로 바꿨고 외환 위기 이후 정치경제적 변동 과정에 대한 논문을 썼다. 기준에 맞춰 쓰다 보니 우리 현실에 적합성이 떨어지더라. 뭔가 역사적으로 풀어보고 싶었고 그래서 책으로 도전하게 됐다. 한국의 신자유주의적 전환에 어떤 세력들이 커다란 영향을 미쳤는가, 그것이 이 책의 핵심 질문이다."


김민웅 : 이 책은 <한국 신자유주의의 기원과 형성>이다. 다른 나라에서 나타나는 신자유주의와 한국의 그것이 어떻게 다른가.

지주형 : 크게 보아 두 가지 차이점이 있다. 첫째로 영국과 미국에서의 그것보다 국가 주도적인 부분이 크다는 점이다. 물론 영미에서도 국가 비중이 축소된 게 아니라 여전히 국가가 사회 경제에 개입하긴 했지만, 한국에서는 국가가 국내 자본의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것을 넘어 적극적으로 초국적 자본과 연계하면서 금융화나 축적 전략을 주도한 면이 크다. 국가가 신자유주의를 추구하는 힘이 되었고, 그 과정에서 특히 경제 관료들이 큰 역할을 했다.

두 번째는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당시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하나는 우연적 요소에서 기인한다. 한국의 국책 은행 산업은행이 당시 리먼브라더스를 인수할 뻔했다가 그러지 못했다. 만약 인수했다면 같이 파산했을 것이다. 또 하나는 'IMF 위기' 때의 구조 조정 과정에서 영미에는 없는 부채 비율 제한 등 은행의 건전성을 규제하는 기준들을 더 엄격하게 적용시켰다는 점이다. 금융 위기에 잘 견딜 수 있는 제도를 갖춰 놨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아무 문제가 없었던 게 아니다. 신자유주의는 늘 뒷문으로 무언가를 들고 온다. 가령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가계 부채다. 은행이 기업에 대한 대출을 줄이면서 돈이 기업 등 생산적 분야보다 부동산 투기나 가계 분야로 흘러들었으며, 신자유주의적 개혁 과정에서 불평등이 심화됨에 따라 생계비가 모자란 사람들이 많아져 돈을 많이 빌리게 됐다. 그게 가게 부채를 900조 원에 이르도록 만들어 놨다. 영미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의 위기와는 다른 형태의 위기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김민웅 : 그런데 'IMF 위기'는 잘못된 표현 아닌가. 우리가 겪은 위기는 '외환 위기'이고 그 때문에 IMF 구제 금융 체제로 들어선 것이니까….

지주형 : 위기에는 여러 수준이 있다. 나는 IMF 자체가 위기를 초래한 부분도 있다고 생각한다. 당시 우리는 이 위기를 '외환 위기'라 불렀다. 말 그대로 외환이 부족하단 뜻인데, 외환 외에 다른 문제는 없는 것처럼 느끼게 한다. IMF 구제 금융 체제로 초래된 구조 조정에 의해 생겨난 위기나 삶의 위기는 관심 밖이 된 것이다.

김민웅 : 한국이 '이 시점부터 본격적인 신자유주의 체제로 진입했다'고 할 수 있는 경계선이 있다면 언제, 어디에서인가?

지주형 : 1997년에 외환 위기가 일어나고 그해 12월 IMF와 두 번의 협약을 맺었다. 그때 투자자들이 생각하는 방식이 많이 바뀌었고, 이것이 결정적인 상황이었다고 할 수 있다.

1999년 대우의 붕괴를 예로 들어 보자. 당시 대우가 국내 대기업 중 자산 규모 2위로 올라섰는데, 외환 위기 이전 같았으면 투자자들이 재벌 사이즈가 커졌다며 좋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때 투자자들은 정반대로 '뭔가 잘못됐다. 그래서 빚이 많아져 자산 규모 순위가 올라갔다. 자금을 회수해야한다'는 신호를 받았다. 동일한 현상을 놓고 완전히 해석이 다르게 나타났다.

박정희식 시스템 안에선 직접적 수익성보다는 매출과 수출을 얼마나 늘렸는지, 그래서 시장을 어느 만큼 지배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 지표였다. 그러나 'IMF 체제' 이후엔 직접적 수익성이 중시되게 되었다. 다시 말해 그전까지는 발전 지향적인 관점, 즉 단기적 수익성이 없더라도 산업적 발전 가능성이 보이면 좋게 평가받을 수 있는 여지가 컸지만 그 이후로는 단기간에 얼마나 수익을 낼 수 있는가, 즉 '돈'이 가장 중요해졌다. 이 판단 기준의 변화가 한국에서의 분기점을 만들었다고 본다.

▲ 지주형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기획위원. ⓒ프레시안(최형락)

김민웅 :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세 정권을 신자유주의라는 관점에서 보면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지주형 : 김대중 정부는 기존 한국 정부가 가졌던 개발 국가, 관치 경제의 특징을 크게 지워버리고 외국 자본의 개방 등을 통해 전반적으로 제도적인 변화를 꾀한 측면이 있다. 노무현 정부는 그것을 밑바탕으로 하여, 신자유주의 체제 내에서 재벌이나 초국적 자본의 구체적 축적 전략이라 볼 수 있는 금융 허브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을 국가 수준에서 추진했다.

이명박 정부는 그러한 추진을 이어받았지만 2008년 세계 금융 위기로 인해 일시적으로나마 주춤한 시기를 가졌다. 그래서 이명박 정부에게선 거꾸로 박정희 정권 시기의 개발 모델을 도입한 측면도 발견된다. 각각 내용적으로 다를 수는 있어도, '세 정부 다 신자유주의 정부다'라는 진술은 본질적으로 맞다고 생각한다.

홍기빈, '잠정적 유토피아'를 꿈꾸다






▲ <비그포르스, 복지 국가와 잠정적 유토피아>(홍기빈 지음, 책세상 펴냄). ⓒ책세상
"최근에 와서 많은 사람들이 신자유주의적 정치 경제 질서가 벽에 부딪쳤다고 몸으로 느끼고 있는데, 그 이후의 대안적인 질서를 구성한다는 건 전혀 다른 종류의 사고방식을 필요로 한다. '대안이 뭐냐', '그게 정말 가능하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은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비판과 분석을 요구하는데, 새로운 질서를 구상하고 행동할 때 필요한 건 그런 비판적 사고가 아니라 '상상력'이다.

그 상상력을 어떻게 보여주어야 할까. 실제로 있었던 성공적인 예 하나를 소개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란 생각이 들었다. 20년 전까지만 해도 20세기에 있었던 넓은 의미에서의 사회주의 운동 가운데 유일한 성공 사례는 레닌뿐이었다고 믿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비그포르스는 넓은 의미의 20세기 사회주의 운동사에서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나 가장 성공적인 케이스였다. 이 책은 결코 '스웨덴 모델 만세!'를 외치는 책이 아니다. 그 뛰어난 정치인, 정치경제학자의 성공담이다."


김민웅 : <비그포르스, 복지 국가와 잠정적 유토피아>를 성공담이라 표현했다. 왜 비그포르스라는 사람에게 끌렸는지, 그 이유를 두 가지만 소개해 달라.

홍기빈 : 하나는 그의 실천적 운동가로서의 책임성이다. 그의 삶이나 이상을 보면, 비록 명시적으로 내세운 적은 없을지라도 그는 아나르코생디칼리스트였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이 사람은 일생동안 스웨덴 사회민주당에서 활동했고 17년 동안 재무 장관을 역임했다. 아시다시피 아나키즘과 사민주의는 대극에 있고 서로를 원수로 여긴다. 결국 그는 원대한 근본주의적 이상들을 갖고 있었음에도 실제 활동에 있어선 현실적으로 무엇이 가능하며 집단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어떤 것인가를 냉철하게 판단하며 행동했던 것이다. 이런 책임성은 한국의 진보 진영 리더들에겐 부족한 경우가 많은 덕목이다.

또 하나는 일종의 '과학성'이라 표현할 수 있겠다. 그는 1881년 생으로 20세기 초에 활동했는데, 이 당시 진보 운동의 리더들을 보면 로자 룩셈부르크나 안토니오 그람시처럼 요새는 절대 나올 수 없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전공이 뭐였건 연구할 필요가 있는 분야가 생기면 철학부터 최신 전자공학까지 무엇이든 공부하는 종류의 사람들이다. 비그포르스도 그랬다. 그는 언어학 박사였고 정규 과정으로 경제학을 배운 게 아니었다. 필요한 게 무엇인가를 보고 자기 자신을 내던지는 것, 그런 도전적인 면에 끌렸다.

김민웅 : '잠정적 유토피아'란 표현이 낯설다. 유토피아도 막막한 개념인데, 그 앞에 '잠정적'을 붙인 건 어째서일까.

홍기빈 : 그게 이 책을 쓰면서 가장 전달하고 싶었던 개념이다. 우리가 신자유주의 시대 30년 동안 진보, 좌파는 물론이요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떠올린 대안적인 정치적 옵션은 딱 두 개 뿐이었다. 하나는 소위 '제3의 길', 그리고 하나는 거리로 나와 자본주의 타도를 외치는 것. 어느 쪽을 선택하더라도 자신의 삶이 별로 달라지지 않는다는 걸 이제는 다 알고 있다. 좌절하는 동안 신자유주의는 승승장구했다.

나는 '잠정적 유토피아'로 그것을 돌파할 수 있다고 봤다. '유토피아'는 들으면 환상적인데 끝나고 나면 허탈감이 남는, 상상력의 실질적인 표현을 갖지 못하는 먼 열망이다. 잠정적 유토피아는 다르다. 토머스 모어처럼 멋진 세상을 상상할 능력을 가진 사람은 적을지 몰라도 현실이 얼마나 잘못되어 있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이런 게 없는 세상은 없을까'라는 생각이 매일 우리 마음에 차곡차곡 쌓인다. 이것이 '현실에 대한 부정적 열망'이다. 그리고 그걸 모은 구체적인 안이 바로 잠정적 유토피아다.

누가 만들어 놓은 채 하늘에서 툭 떨어지는 유토피아가 아니라 현실 문제를 체계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그림이기 때문에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지금 여기에 '없기' 때문에 여전히 유토피아이지만, 현실과 아주 동떨어진 건 아니다. 지금 여기 사는 사람들이 그려볼 수 있으며 더 많은 이들이 참여하고 싶어 하고, 거기서 더 많은 상상력을 폭발시킬 수 있게 하는 그런 종류의 유토피아다.

김민웅 : 비그포르스가 던져준 '잠정적 유토피아'의 단초 내지는 예시가 있다면 무엇인가.

홍기빈 : 최근 '복지 국가'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는데, 이것이 충분히 잠정적 유토피아가 될 수 있다고 본다. 복지 국가가 심오하고 복잡한 뜻을 담고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경제가 어려워지니까 안 사고 덜 먹으며 돈을 줄이고 줄이는데, 더 이상 개인의 힘으론 줄일 수 없는 부분들이 있다. 전월세 비용, 아이들 교육비 같은 거다. 이런 건 어떻게 해야 할까? 사회 전체적으로 합의를 봐서 안 써도 되게 하거나 그냥 주면 된다. '사회 전체의 합의로 풀어야지 내 힘으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 그게 현재 한국의 현실에 대한 부정적 열망이다. 2011년 말부터 복지 국가가 대세가 된 배경엔 그게 있다.

김민웅 : 비그포르스가 추진했던 복지 국가의 틀은 당시 스웨덴 사회 경제가 차지하는 위치에서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 한국에 접목시킨다면 가능성도 있지만, 어려움도 있을 것 같은데 가장 큰 것은 무엇인가?

▲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 ⓒ프레시안(최형락)
홍기빈 :
제일 아쉬운 건 역량 있는 진보 정당이 없다는 사실이다. 스웨덴 복지 국가는 비그포르스 한 사람 잘나서 나올 수 있었던 게 아니다. 그 외에 뛰어난 사람들과 뛰어난 '정당'이 있었고, 무엇보다 스웨덴 사민당과 노동 운동의 긴밀한 관계가 있었기에 그들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국의 진보 정당이나 노동 운동의 경우, 전 국민적인 역량을 모을 리더십을 만드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다.

하지만 이렇게 다른 점들도 있고 70년도 더 된 지구 반대편의 이야기를 반복하는 게 우습기도 하지만, 차이점만 강조하는 이야기도 맥없긴 마찬가지다. 어떤 분들은 "스웨덴 사람들이 원래 민주적이라 부르주아들이 타협해준 부분이 있다"고 말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스웨덴 중산층들도 1930년대까지 노동 계급을 완전히 깔봤고, 심지어 평화적으로 행진하는 노동자들을 학살했던 적도 있었다.

"우리의 고통이 이명박 탓이라고요?"

김민웅 : 신자유주의를 둘러싼 세 저자의 문제의식을 들어봤다. 본격적인 신자유주의의 문제와 해결 방법을 논하기에 앞서,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현재 한국의 이른바 진보 진영이 지난해부터 계속 외치는 구호가 '반(反) 이명박'이다. 그런데 이게 과연 의미가 있는 건가? 문제는 시스템인데 대통령 한 명을 공격한다고 영향이 있을까?

지주형 : 흔히 '전략'과 '전술'을 구분하는데, 현재의 이명박 정부 비판은 전술 면에선 훌륭할지 몰라도 결국 네거티브하다는 단점이 있다. '이명박 타도하면 우리가 잘할 것이다' 수준이 아니라 좀 더 구체적인 뭔가가 있어야 한다. 예전에 박정희,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 구호를 비교한 논문을 읽었다. 김 전 대통령은 '지식 기반 경제' 같은, 멋있지만 와 닿지는 않는 이야길 주로 한 데 비해 박 전 대통령은 그가 작사한 버전의 '새마을 노래'만 봐도 '소득 증대 하세', '초가집 없애자' 같은 매우 구체적인 이야기를 한다. 마음을 파고드는 건 결국 후자, 즉 포지티브하고 구체적인 것들이다.

장석준 : 이명박 시대가 얼른 끝나야 하긴 할 것 같다. 사람들이 다른 문제를 다 제쳐 놓고 '이명박 타도'를 외치고 있으니까. 이명박 한 사람이나 그 정권 하나로 환원될 수 없는 전 지구에 걸쳐져 있는 문제인데 그 시대가 저물지 않아 의제를 제대로 잡지 못하고 있다.

김민웅 : 말 그대로 이 문제는 전 지구적인 문제다. 미국에서 도합 20년 이상 살았는데, 얼마 전 3주간 다녀온 미국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사회의 활기가 이만큼 떨어진 것은 처음 봤다. 거대 슈퍼 체인점이 창고가 되어 있고, 사람들은 지갑을 여는 데 벌벌 떤다. 2008년 이후 거대 부동산 회사들을 국유화했고, 60년 만에 처음으로 국방 예산을 삭감했다. 물론 쉽게 망하지는 않겠지만 과거에 비해선 버티기 어려워졌다. 모든 모습은 결국 신자유주의가 이끌어 온 시스템이 깨져가고 있다는 의미다.

이게 우리의 미래가 아닐까 긴장될 수밖에 없다. 우리가 현재 겪고 있는 고통들에 대해 생각해 보자. 이건 신자유주의 체제 하에서 생긴 새로운 고통일까?

지주형 : 새로운 고통이라고 볼 수 있는 것 중, 의외로 경제적인 부분이 적을 수도 있다. 생활 수준은 과거에 비해 전체적으로 향상됐기 때문이다. 구제 금융 시기 직후에 한국의 TV 프로그램, 영화를 보면 과거 지향적인 내용이 꽤 많이 나왔다. 과거엔 '열심히 일하면 나은 미래가 올 것이다'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지금은, 열심히 해도 내일이 오늘보다 나을지 회의하게 되는 거다.

노동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한 건 맞는데, 그게 양적으로 심화되긴 했지만 1997년 이전이라고 없었던 문제는 아니다. 그보다 양극화, 경쟁 논리가 사회를 지배하게 된 현상, 공동체와 연대성의 파괴, 그로 인해 화와 싸움이 퍼져 나가는 것들이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장석준 : 앞에서 지적한 대로 신자유주의 체제라고 해서 생계를 이루는 요소의 절대치가 과거에 비해 떨어진 것은 결코 아니다. 내가 보기에 가장 큰 문제는 '경제적 인간'이라는 인간 유형을 확산시킨 데 있다고 본다. 자본주의 역사가 오래되었고 그 가운데 그런 인간 유형이 일반화되었다고 하지만, 마르크스가 <자본>에서 묘사하는 영국 노동자들조차 나름의 공동체를 만들고, 공동체 의식을 갖고 있었다. 자본주의 경제에 환원되지 않는 살림살이가 집단적으로 존재했고 그게 조합으로 표현되었다.

그런데 신자유주가 지배하는 시기에 이르러서는 그런 부분들이 유사 이래 가장 많이 파괴되었다. 또한 전형적으로 자본가들한테만 나타났던 경제적 인간 유형, 즉 자기 삶을 자본주의의 수치와 가장 우선적으로 연결 짓는 그런 인간 유형이 노동하는 사람들에게까지 크게 확장되었다.

홍기빈 : 동의한다. 전에 없던 고통에 대해 하나 덧붙이자면 '불안'인 것 같다. 인생을 살다보면 '안정된 맛은 있지만 지루한 길'과 '자유롭지만 불안정한 길', 대략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건 몇 천 년 동안 대부분의 인간 사회 성원들에게 주어진 옵션이었다. 그런데 신자유주의 체제 하에서 대부분이 경험하는 것은 뭐냐, 바로 지루하고 불안정한 길이다. 전혀 새로운 사태인 것 같다.

왜 그럴까. 인간 사회의 만사, 만물과 산업적 관계들을 수익성이라는 하나의 황금자로 다 재편해버리기 때문이라고 본다. 인간관계나 자기의 행동 역시 수익성이라는 기준, 즉 '도움이 되느냐 안 되느냐'를 적용하면서 끊임없이 구조 조정을 한다. '스펙'도 마찬가지다.

가장 재밌는 예로 성형 수술 신드롬을 들 수 있다. 구조 조정과 성형 수술의 공통점은 바로 칼질이다. 성형 수술에도 여러 목적이 있겠지만 결혼이나 취직 시장에서 자산 가치를 높이기 위한 목적이라고 한다면, 구조 조정과 본질적으로 똑같다. 성형 수술 한다고 안정되느냐, 그것도 아니다. 자본 시장의 수익성은 항상 변하기 때문에 행위자는 그 짓을 계속 반복해야 한다. 일생이 이루 말할 수 없는 불안 상태가 되어버린다. 프리터나 니트족도 마찬가지다. 인생을 계획하지 못하고 지루한 불안 상태를 반복해야 한다. 이런 현상이 지난 30년간 나타나 왔다.

진보 정당, '랩'하지 말고…

▲ 김민웅 성공회대학교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김민웅 :
이런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일차적으로 해야 할 작업은 무엇인가?

장석준 : 내가 보기에 가장 필요한 작업은, "더 이상 이 문제 갖고는 싸우지 말자. 우리가 원래 싸워야 할 세력과 싸우자"라는 사회적 정리 작업이다. 적이 필요하다면 누가 진짜 적인지 지목할 수 있어야 한다. 가령 한국 사회에서 가장 꼬인 문제인 교육과 주거 문제가 있다. 한국이 신자유주의화되기 이전부터 이 두 가지는 중산층에 진입하는 통로였고, 이를 놓고 경쟁이 계속되어 왔다.

집단적 연대 의식을 만들고자 한다면 이 통로를 앞에 두고 벌어진 경쟁들에 일제히 '사격 중지' 선언을 해야 한다. 특히 주거 문제의 경우, 일단 아파트 가격이 떨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상태론 어떤 세력이 어떤 해결책을 내놓아도 해결이 어렵다.

홍기빈 : 등록금 인하나 노사 문제 조정 같은 사람들이 흔히 갖는 부정적 열망이 있는데, 그것들을 모순되지 않도록 하는 총체적인 사회상, 정치경제 모델의 맹아를 만들어야 한다. 당연히 시행착오가 있을 것이고 지적인 노력도 필요하다.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가 '삼성을 해체하자'고 외치는데, 불만이 많다. 그건 래퍼들이나 하는 이야기다. 진보 정당들이 진보 정당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김민웅 : 그런데 진보 정당이 잘 하려고 해도 대중들에게 불이 잘 안 붙는 것 같다. 고통을 받는다고 하면서 호응이 없다.

홍기빈 : (고통을 해결할 수 있는 총체적인 안을) 짜서 내놓은 적이 없으니까 불이 안 붙는다고 생각한다. '삼성 해체' 같은 선거철에나 하는 얘기 대신, 차라리 과거 민주노동당 시절 내세웠던 무상 의료, 무상 교육, 부자 세금 같은 이야기를 하라. 거친 이야기였지만 상상력을 불러일으켰고, 실제 지지율 상승으로도 이어졌었다.

지주형 : 국가론적인 관점에서 보면 국가는 과거의 역사가 퇴적된 제도 위에 서 있고, 대부분의 자본주의 국가들이 그런 특성을 강하게 갖고 있다. 그 견고한 구조를 진보 정당이 바꿀 수 있을까? 절대 쉽지 않다. 국가 외부까지 포함한 사회적 세력 관계를 고려하지 않고 아무런 계획 없이 그 구조에 맞부딪히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대선 날까지 정권을 잡느냐 마느냐에만 모든 관심을 집중시키지만, 사회를 바꾸기 위해서는 누가 대통령 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집권 정당이 되어 국가 구조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동반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정당과 정부에서 연구 기능이 훨씬 더 강화되어야 한다.

김민웅 : 그렇다면 정당 운동 차원에서가 아니라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한국에서도 거대한 움직임이 일어날 것이라고 보는가?

장석준 : 정당이 사회를 결집시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부분도 있지만, 반대로 정당이 사회를 반영하는 부분도 있다. 사회가 제대로 자리잡아갈 때여야지만 정당에도 제대로 반영이 된다는 이야기다. 1981년 프랑스에서 미테랑 사회당 정부가 들어설 수 있었던 배경엔 1968년의 커다란 학생, 노동자 봉기가 있었다. 그 여진 속에서 무능을 벗어나 사회당이 집권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도 지난해 스페인에서 벌어진 시위나 아랍 혁명처럼 사회적 주체들이 사회 문제를 제대로 짚고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이 가시화되는 국면이 있어야 할 것이다.

최근 미국이나 유럽의 상황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이제까지 금융 회사에 취직하려 애쓰던 젊은이들이 왜 월가 한복판에 몰려들었을까? 스페인의 젊은이들은 왜 밤새 농성을 벌일까? 개인이 잘나고 못나고의 문제에 천착하는 것만 가지곤 더 이상 상황이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대중적 감각이 생긴 것 같다. 시차 문제일 뿐, 한국에도 곧 이런 감각이 도착하고 확산될 거라 믿는다.

"신자유주의랑 어떻게 싸우나요? 선거로 뭐가 바뀌긴 하나요?"

Q1 : 학생들이 하루에 한 명 꼴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수익성이 모든 것을 재단하는 시스템 속에서 폭력에 노출되거나 성적을 비관하며 절망을 안고 죽는다. 당장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는데 너무 추상적인 이야기만 하는 것 같다. 이 기반을 바꿀 주도권을 대체 누가 잡아야 하는 건지 구체적으로 논했으면 좋겠다.

Q2 : 장석준이 "미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초고금리 정책을 펼치기 시작한 것이 신자유주의 전 세계화의 시초였다"고 말했다. 그런데 홍기빈이 "새로운 사회를 위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고 말한 무상 의료나 무상 교육도 역시 정부가 적극 개입한다는 데선 같은 것 아닌가? 문제가 되는 정부의 개입이 어디까지인가를 묻고 싶다.

홍기빈 : 종합해서 대답하겠다. 먼저 대부분의 사람들이 국가의 역할에 대해 과대 평가하거나 과소 평가하는데, 그 폐해가 정말 크다는 점을 지적해야겠다. 이 '과대 과소 평가'의 문제점을 넘어서는 팁이 있다. 국가를 대단한 것으로 보지 말고, 사회의 연장선으로 보면 된다.

먼저 과대 평가하는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국가라 해봐야 그것을 움직이는 관료들, 국회의원들은 다 배 나온 50대 아저씨들이다. 생각하는 것이나 말하는 것은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다. 그들의 국가 운영 논리를 보면, 사회에 존재하는 이런저런 세력의 이해관계와 대립이 그대로 나타나는 걸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국가는 학교나 교회와 마찬가지로 사회의 연장이고, 사회의 한 부분일 뿐이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정권 교체나 선거에 지나친 기대를 하는 건 말이 안 된다.

하지만 과소 평가해서도 안 된다. 정권이 안 바뀐 상태에서 신자유주의 극복이 가능한가? 그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1970년대 당시 주로 유럽 쪽 신좌파들이 저지른 큰 잘못 중 하나가, 신자유주의 파도가 몰려올 때 국가 역할이 줄어드는 데에 큰 역할을 한 것이다. '국가는 악이요, 적이다', '웬만하면 국가는 뒤로 빠져라', '모든 권력은 시민 사회, 풀뿌리에서 나와야 한다' 같은 구호를 계속 반복한 것이다.

이것도 지나친 편향이다. "모든 게 MB 때문이고, 그만 사라지면 새 세상이 온다."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 여러분? (웃음) 하지만 한편으론 새로운 정당 창출, 국가 권력 교체를 피하거나 두려워할 일은 또 아니라는 거다. 신자유주의를 전복해나가는 전체적인 프로젝트 속에서 정권 교체가 맡아야 할 역할이 있고, 시민, 노동 운동이 맡아야 할 역할이 있다. 그걸 지혜롭게 잘 짜야 한다는 거다.

자, 그럼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자는 건가? 앞서 질문하신 학생들의 자살 문제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다. 무슨 정당처럼 교문 앞에 경찰을 깔아 놓고 일진들을 때려잡겠다고 해서, 참교육을 실현한다며 아이들을 타이른다고 해서 자살이 줄어드는가. 절대 아니다. 폭력과 자살이 '왜' 끊이지 않는지에 대해선 굉장히 많은 연구가 필요할 텐데, 그것은 차치하고 일단 해결 방법에 대해 얘기해 보자.

'그건 신자유주의 때문이다'라는 가설이 있다고 하자. '친구한테 지면 끝이야. 시험 못 보면 인간도 아니야'라는 무언의 압력이 존재하는 경쟁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건 누구나 다 안다. 그런데 시스템을 바꾸려면 일차적으로 손대야 할 것이 교육 정책이 아니라, 노동 시장과 산업 정책이다. 아이들이 명문대 안 가더라도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하려면 "학벌은 허구요!" 해보았자 아무 소용없다.

고등학교만 졸업하든, 2년제 대학을 졸업하든 자기 삶을 선택할 수 있도록 실질적으로 노동 시장이 바뀌어야 하고, 그 지점에서 교육 정책과 결합해야 한다. 이건 '풀뿌리의 힘' 갖고는 안 되는 규모다. 정권도 20년은 잡아야 한다. 몇 차에 걸친 'O개년 경제 개발 계획'처럼 점진적으로 학력 경쟁으로 운명이 결정되는 시스템을 폐기하고 다른 걸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정권, 운동 그 밖의 요소들이 서로 이해하고 협력하면서 스크럼을 짜고 같이 가야 한다. 이 과정에서 가장 장애가 되는 사고방식이 바로 국가 권력 장악에 대한 지나친 기대나 지나친 저주다. 성숙된 관점에서 운동 전체와 정권 교체의 과제를 바라봐야 하지 않나 싶다.

김민웅 : 우리가 겪는 문제들은 자본이 우선적으로 이해를 관철시킬 수 있게 하는 권력 관계가 있기 때문이기에, 권력 관계 교체는 일차적인 과제이며 굉장히 큰 의미를 갖는다. 의사 결정의 주도권을 이쪽으로 가져오지 않으면 원하는 걸 절대 이룰 수 없다. 그러나 거기에 필요한 내용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또 하나,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국가의 비율이 축소된다는 것은 신화에 불과하다. 자본의 이익을 위해서, 그리고 노동을 통제하기 위해서 국가 기능이 강화된다. 결국 국가 개입은 '어디까지'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를 위한 개입인가'의 문제다. 노동자를 위한 국가 개입과 정책 강화는 필요하지만, 자본의 이해를 관철시키기 위한 국가 개입은 저지시켜야 하는 것이다.

Q3 : 좌담회의 주제는 '침몰하는 신자유주의'이지만, 나는 이것이 침몰하기보다 앞으로 더 커질 것 같다. 대안적 시민 연대가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를 띠어야 할지, 우리가 어떤 연대망을 가져야 할지 알고 싶다.

장석준 : <신자유주의의 탄생>의 문제의식은 크게 두 가지다. '정치를 중요하게 보자', 그리고 '정치를 좀 넓게 보자'. 물론 정치의 중심은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선거, 즉 국가 권력 선출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그게 중요하기 때문에라도 더 넓게 봐야 한다는 얘기를 하고 싶다. 어떤 정책이 관철될 때, 그 토대가 되는 사회적 세력 관계가 있다. 그 세력 관계를 아래로부터 바꾸는 것 역시 정치로 봐야 하지 않을까. 신자유주의 체제가 지배하기 전에는 넓은 의미에서 정치를 하는 주체들이 (여럿) 있었는데, 신자유주의 하에서는 그런 주체가 기업이었다.

그 중에서도 강조하고 싶은 건 노동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결국 국민이란 범위와 가장 흡사한 것은 결국 노동자다. 신자유주의가 호적수 없이 유지되어 온 데엔 일찍이 노동을 깼다는 배경이 있다. 과거에는 정규직으로 종사하면서 직업적 정체성을 갖고 노동조합을 만들어 그 주체로서 협상하는 전통적인 노동 계급이 두텁게 존재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가 양산한 노동 세력은 '프리카레이트'다. 이들은 직업적 정체성을 가지기 어렵다. 이 두 집단을 어떻게 만나게 할 것인가 고민하는 지점에서 신자유주의가 파괴한 주체의 부활을 얘기해볼 수 있다고 본다. 이 과제가 돌파될 때 정치 역시 자기 갱신이 이뤄지지 않겠는가.

홍기빈 : 나는 개개인부터가 사회 지향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결코 사회 복원이 이루어지지 않을 거라고 본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주의'는 개인주의가 아니라 '내 새끼 주의'다. 이게 있는 한 교육이나 산업 제도를 어떻게 바꾸어도 학교 폭력이나 자살 문제를 개선할 수 없다.

사회를 복원하는 작업을 국가에 맡길 수는 없다. 그러면 파시즘이 나온다. 정말 신자유주의를 이겨내기 위해선 정책과 제도보다 먼저, 우리가 사회 지향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영국 신자유주의 기수였던 마거릿 대처가 '사회란 없다. 개인밖에 없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는데, 우리가 신자유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원리를 이에 빗대 말하자면 '중요한 건 사회밖에 없다'고 할 수 있겠다. 우리 스스로가 여러 단위에서 해야 할 일이다.

지주형 : KDI(한국개발연구원)에서 2007년쯤에 낸 비교 조사 자료를 보면, 한국은 사회 전반에 대한 신뢰도가 굉장히 낮다. 알다시피 우리는 못 믿는 것투성이다. 그게 결국 다른 나라와 어떻게 달라지느냐 하면, 국가 정책과 개인 간에 상호 작용 같은 게 안 나타난다. 요즘 복지 국가 담론이 각광을 받으면서 여야가 다 복지를 하겠다고 나서는데, 딱 정책 결정자들 수준에서만 이야기된다. 그 담론은 신자유주의와 완전히 호환이 가능하다.

그러나 알다시피 사회적 관계를 바꾸고 사회를 복원시킬 수 있는 속성을 가진 복지여야지만 삶이 바뀔 수 있다. 산업이나 노사 관계와 어떻게 맞물리는지 고민해야 하는데, 현재 논의를 보면 그런 게 없다. 예전에 '퍼주기'라 욕했던 것을 '이제는 퍼주겠다' 하는 수준이다. 심각한 고민이 필요하다.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하는 고민이 아니다. 이건 절대 돈 문제가 아니다.

대부분이 복지 국가 할 돈이 어디서 나오냐며 현실성이 없다고 비판하는데, 내가 보기에 그건 '현실적'이란 말에 대한 단 하나의 해석에 불과할 뿐이다. 가령 '돈이 없다'던 나라도 전쟁이 터지면 어떻게든 전쟁을 수행할 것이며, 환경오염 때문에 사람들이 죽을 지경이 되면 모든 걸 다 퍼부어서라도 생태계 복원을 제1 과제로 삼을 것이다. 자금이 없다고 고통을 방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Q4 : 지금 한국에서 정권 교체를 통해 뭘 바꿔봐야 결국 그들도 신자유주의 세력이 아닌가. 정권을 맡을 인간들이 의심스러운데, 누구를 뽑아야 하는 걸까?

홍기빈 : 미래 예측은 전문 소관이 아니지만, 아마 어떤 정권이 들어서든 상당한 압력을 받을 거다. 미래 권력이 굳이 신자유주의에 대한 깊은 생각이나 그것을 바꿔야겠다는 뜨거운 열망이 없더라도, 반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펼칠 가능성이 높다. 전 세계적인 분위기가 그렇다. 그런데 소위 진보 세력이 재집권하더라도 재벌 정책 같은 부분에 있어선 과거 이리 저리 쓸려갔던 것과 마찬가지로 휩쓸리게 될 가능성이 크다.

여기서 어떤 것이 신자유주의적인 정책이며 어떤 것이 다른 정책인지에 대해 사회 담론 차원에서 지적, 도덕적으로 명확하게 선을 그을 수 있어야 한다. 그동안 신자유주의가 무엇인지에 대해 정책적으로든 학술적으로든 이야기를 거의 안 해왔다. 오늘 좌담도 비슷할 거라고 보는데, 그걸 구체화시켜서 담론으로 만들어 놓는 작업이 많이 벌어져야 한다.

장석준 : 실망스러운 얘기 하나, 희망적인 얘기 하나가 있다. 먼저 실망스러운 얘기부터 하자면, 신자유주의의 극복엔 한 세대에 해당하는 시간이 걸리리라는 것이다. 신자유주의가 '등장'하기까지도 한 세대의 시간이 걸렸다. 1970년대 전후자본주의를 거쳐 1980년대 초부터 꼴을 갖추었고 1990년대 세계를 재패해 이어져 오다가 2010년대 초반에 위기에 빠졌다. 거의 40년이다. 사회 복원이 겨우 국가 정책 몇 개로 될까. 사람들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다만 희망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우리가 결코 제로(0)부터 시작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요즘 민주당조차 한미 FTA 폐기를 이야기하는데, 그건 정확히 민주당이 바뀐 게 아니라 한국 사회가 알게 모르게 바뀌었다는 뜻이다. 그걸 민주당이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속도가 만족스럽지 않을지 몰라도, 세상은 지금 바뀌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많은 학자들이 2011년에 벌어진 반란이나 혁명의 양상을 보고 놀라고 있다. 과거엔 좌파 정당이나 노동조합의 대중 '동원'이 있었는데 최근엔 그런 게 없었기 때문이다. 트위터 같은 것을 통해 자기들끼리 모이고 있다. 한쪽에선 노동조합 같은 사회적 개인의 전통적인 틀들이 무너졌지만, 예측하지 못했던 또 다른 부분에선 여전히 사회적 개인들이 존재하며 발견되고 있다. 인간은 결국 사회적 존재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들 나름대로 사회적 개인이고자 하는 또 다른 틀을 진화시켜 온 것이다.

어떻게 보면, '위임형'이었던 과거에 비해 훨씬 더 민도가 높다. 그러니 우리는 결코 제로에서 시작하는 게 아니다. 이런 사례들을 적용시켜 보면, 대안이 어느 방향으로 가야할지 알 수 있을 거다. 거대한 노동조합과 케인스주의적 복지 국가만을 수단으로 갖고 있었던 과거의 그런 방식은 아닐 것이다.

Q5 : 우리가 바라야 하는 리더상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

지주형 : 서구에서 복지 정책을 처음 펼친 독일의 비스마르크가 남긴 유명한 말이 있다. "정치는 가능성의 기술이다." 돈 때문에, 시장 논리 때문에 안 된다는 것은 경제학자들의 언설이다. 참된 정치가는 국민들 앞에서 '안 된다', '못 한다'는 말은 하지 않는, 국민이 원하는 바는 어떻게 해서든 하겠다는 의지를 가진 정치가라고 생각한다. 정치는 불가능하게 보이는 걸 가능하게 하는 과정이다.

지금까진 정치가 더럽다며 참여 안 하고 외면했던 사람들도 최근엔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것 같아서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최근의 상황들은 흔히 정치에 대해 갖는 실망과 무관하게, 우리가 아무리 피해도 정치를 회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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