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빵점 '천조국'! 이래도 '미국인' 되고 싶니?
[프레시안 books] <하버드 경제학자가 쓴 복지 국가의 정치학>
복지 빵점 '천조국'! 이래도 '미국인' 되고 싶니?
리틀아메리카? 빅 스웨덴?

요즘은 "한국 경제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은 리틀 아메리카(Little America)"라는 말을 전혀 듣지 못한다. 그렇지만 6년 전만 해도 그런 말을 보수 인사들만이 아니라 진보 인사들에게서도 많이 들을 수 있었다. "리틀 아메리카가 아니라 '빅 스웨덴(Big Sweden)'이 우리의 살길"이라 말하는 이들은 아주 드물었다.

요즘에는 복지 국가와 보편적 복지에 관해 이야기하는 사람을 흔히 볼 수 있다. 박근혜 당선인의 인수위조차 "복지는 스웨덴식, 경제는 독일식으로 가자"고 이야기한다는 뉴스를 읽는 판이다. 그런데 불과 5년 전만 해도 대다수 사람들에게 복지 국가는 생소하고 생뚱맞은 단어였다. 하물며 개혁을 말하는 시민단체와 정당들조차 "복지 국가라는 용어는 너무 좌파적"이라며 거부할 정도였다. 상전벽해 같은 변화가 지난 5년간 일어난 것이다.

보수적 인사들이 즐겨 쓰는 '선진화'라는 말을 거부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 모두는 선진국 국민처럼 살고 싶어 하고, 더 이상 개발도상국 국민이고 싶지 않아 한다. 그런데 선진국이 모두 같은 선진국이 아니고, 모든 선진국 국민들이 행복하고 풍요롭게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만약 어떤 한국인에게 "선진화라니? 당신은 미국의 가난한 흑인들처럼 살고 싶다는 겁니까?"라고 묻는다면 기겁하며 부인할 것이다. 적어도 미국의 평균적인 중산층처럼 살고 싶다는 것이 한국인들의 바람일 것이다.

평균적인 미국인들은 행복하지 않다, 왜?

그런데, 과연 평균적인 미국인들의 살림살이가 행복할까? 미국인과 유럽인의 삶의 질을 비교하는 책들은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오히려 평균적인 유럽인들의 살림살이가 훨씬 더 행복하고 풍요롭다. <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토마스 게이건 지음, 한상연 옮김, 부키 펴냄)가 이 점을 아주 상세하게 잘 보여준다.

▲ <하버드 경제학자가 쓴 복지 국가의 정치학>(알베르토 알레시나·에드워드 글레이저 지음, 전용범 옮김, 생각의힘 펴냄). ⓒ생각의힘
미국인과 유럽인의 살림살이가 왜 이렇게 다른지, 그 경제적·정치적·제도적·역사적 이유는 무엇인지를 상세하게 밝혀주는 책이 나왔다. <복지 국가의 정치학>(알베르토 알레시나·에드워드 글레이저 지음, 전용범 옮김, 생각의힘 펴냄)가 그것이다. 두 저자 중 한 사람인 알레시나는 이탈리아인이고, 글레이저는 미국인이다. 이 책의 목적은 시종일관 왜 미국은 복지 국가가 되지 못했고, 그에 반해 유럽은 왜, 어떻게 복지 국가가 될 수 있었는지 그 차이와 이유를 분석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우리처럼 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복지 국가에 대하여 논의를 시작한 나라에서 매우 시의 적절하게 읽힐만 하다.

세계에서 가장 부자인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모두 민주주의 사회이고, 공통의 문화적(유럽문화), 종교적(기독교) 뿌리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미국과 유럽은 소득 재분배와 노동권에 관한 한 매우 큰 차이를 보인다. 미국인들은 서유럽인들에 비해 부유한 사람들로부터 가난한 이들에게 소득을 재분배하는 복지 정책에 인색하다. 유럽의 정부는 미국보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훨씬 더 많은 혜택을 줄 뿐만 아니라 조세 정책도 훨씬 더 재분배 지향적인 특색이 있다. 또한 유럽의 소득세율은 미국보다 훨씬 더 누진적이다. 게다가 노동조합의 강력한 지원을 얻는 노동시장 규제(비정규직과 사내하청 규제 등)도 미국보다 유럽에서 훨씬 노동자들에게 유리하게 되어 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차이가 발생했을까?

양극화가 IT 기술과 세계화 때문이라고? 천만에!

주류 경제학자들은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소득 격차가 벌어지고 양극화가 심화되는 원인으로 IT 기술의 확산과 함께 세계화를 지적한다. 보수적 시장주의(신자유주의)를 신봉하는 인사들도 그렇게 믿고 있으며, 더구나 개혁적 시장주의(좌파 시장주의)를 신봉하는 인물들도 자주 그렇게 말한다. 참고로, 노무현 정부 하에서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낸 김병준 교수는 지금도 그렇게 강연하고 다닌다. 주류 경제학자들의 설명을 철석같이 믿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IT 기술 없이 살 수는 없는 법이며, 더구나 북한처럼 폐쇄 경제를 하고자 하지 않는 한 세계화 역시 거부할 수 없다. 그런데 IT 기술과 세계화(시장 개방)가 철의 법칙처럼, 빈익빈부익부와 함께 20대 80 또는 10대 90의 사회를 만든다니?

이런 설명 방식에 대해 정면으로 반기를 드는 사람들도 많다. 대표적으로 폴 크루그먼은 <미래를 말하다>(박태일 외 지음, 현대경제연구원BOOKS 펴냄)에서, 미국에서 1940~60년대에는 소득 격차 등 양극화가 해소되었다가 1980년대 이후로는 다시 양극화가 심화되는 것을 주류 경제학의 시장주의 시각으로는 도무지 설명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1940년대부터 미국에서 소득 격차가 줄어든 것에 대해서는 오로지 '뉴딜 동맹'이라고 하는 '정치적' 요인 말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고 분석한다.

즉 지난 수십 년간 미국에서 소득 양극화의 변화(즉 경제적 변화)를 이끈 것은 경제 시스템의 내적인 요인(내생적 요인) 때문이라기보다는 정치적 변화 때문이었다. 뉴딜 동맹이라고 하는 정치적 변화가 20세기 중반에 나타났고 그것이 전후 오랜 기간 지속된 호황과 함께 소득 격차 해소를 가능케 했다. 그리고 1980년대 초반 이래 미국에서 이와 정 반대로 나타난 현상-레이건-부시 정권이 등장하면서 뉴딜 동맹이 해체된 것, 노동조합의 파괴, 복지 국가의 파괴 같은 정치적 변화-가 경제적 변화, 즉 소득 격차의 심화 등을 만든 원동력이라는 것이다. 로버트 라이시 역시 최근 발간한 책들에서 폴 크루그먼의 의견에 동의하고 있다.

공정한 시장 질서를 구축하면 복지 국가는 불필요?

이 책에 따르면, 주류 경제학자들은 유럽에는 복지 국가가 있는데 반해 미국에는 없는 '경제적 이유'를 여러 가지로 제시한다. 첫 번째 설명은 미국은 세금을 내기 전의 1차 소득 분배가 유럽보다 더 평등하기 때문에 소득 재분배가 덜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와 아주 비슷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도 많다. 대표적으로 정운찬 전 서울대학교 총장과 김광수 김광수경제연구소 소장, 그리고 장하성 교수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들은 '공정한 시절 질서를 구축하는 시장 개혁을 수행하게 되면 1차 소득 분배가 평등해지고, 그 경우 굳이 국가 재정이 많이 소요되는 2차 소득 분배에 주력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이들이 공통적으로 드는 공정한 시장 질서 구축의 모델이 바로 미국식 자본주의이다. 즉 미국 '리버럴'들이 선호하는 시장주의 방식으로 우리나라의 시장 개혁(재벌 개혁 및 모피아 개혁 등)을 하게 되면 1차 소득 분배가 더욱 평등해지기 때문에 2차 소득 분배는 보조적인 것이 된다는 요지다.

그렇지만 이 책에서 저자들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실제로는 미국의 1차 소득 분배 역시 유럽에 비해 더욱 불평등하다. 지니계수 같은 총괄적 불평등 지표로 보나, 경영자(CEO)와 일반 종업원 간의 봉급 차이를 보나 그렇다.

아메리칸 드림? 꿈 깨시라!

주류 경제학자들이 제시하는 두 번째 경제학적 설명은, 미국에서는 '아메리칸 드림'이 작동한다는 것이다. 즉 미국에서는 열심히 노력하기만 하면 가난한 이들도(예컨대 이민 간 한국 교포들도) 부자가 될 수 있는 계층 상승의 기회가 유럽에 비해 훨씬 더 많으며, 따라서 미국에서는 유럽에 비해 복지가 약해도 국민들의 불만이 적다는 것이다. 이것은 1차 소득 분배 평등론의 또 다른 변종인데, 실제 미국인들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를 보면 대다수 미국인들이 아메리칸 드림의 신화를 굳게 믿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들은, 설문조사로 나타난 미국인들의 '믿음'과 통계 데이터로 나타난 실제의 계급 상승 추이는 전혀 다르다고 말한다. 즉 실제의 통계는 계층 상승이 미국에서 거의 단절되었으며, 오히려 유럽에서 더 활발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가장 큰 이유는 명백한데, 유럽에서는 평등한 공교육이 발달한데 비해 미국에서는 부유층 자제들만 누리는 사교육이 발달해 있기 때문이다.

게으른 자에게 웬 복지 국가?

앞의 두 가지 설명이 모두 반박 당하자, 주류 경제학자들이 제시하는 궁여지책의 설명이 있다. 바로 '유럽의 가난한 이들은 열심히 노력하여 가난에서 벗어나려 하는데 반해 흑인 등 미국의 가난한 이들은 (공교육 등 계층 상승의 기회가 열려 있는데도) 게으르다'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 게으르고 가난한 자들에 대한 사회적 반감 때문에 미국에서는 복지 국가에 대한 정치적 지지가 발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역시 우리가 주위에서 흔히 듣는 말이다. 특히 서울 강남의 부자들은 흔히 '가난한 자들은 게으르고 교활하며 성실하지 않고, 술만 처먹고 논다'고 비난한다. 그런 타락한 자들에게 왜 복지 혜택을 늘려야 하며, 그들을 위해 자신들이 왜 세금을 더 내야 하냐는 항변이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들은 실제로는 미국의 가난한 사람들은 유럽의 가난한 사람들 못지않게 또는 그 이상으로 근면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가난한 사람들 역시 강남 부자들 못지않게, 또는 그 이상으로 (무지막지한 노동 탓에 과로사로 죽을 정도로) 근면하게 일한다. '워킹 푸어', 즉 일은 열심히 하는데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들이 우리 주변에는 무수히 많다.

정치가 우선한다!

저자들은 결국 유럽에는 복지 국가가 있는데 반해 미국에는 없는 이유를 경제학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어냈을까? 결국은 정치적 요인이다. 정치가 우선하는 것이다. 저자들은 미국과 유럽의 정치적 안정성의 차이, 정치제도의 차이, 정당 정치의 차이, 그리고 인종적 분열 양상 차이 등의 요인으로 미국에는 복지 국가가 약한 이유를 설명한다. 우선 미국은 유럽에 비해 정치적으로 안정된 나라이다.

"미국은 정치적으로 안정된 나라이다. 미국의 지리적 고립, 군사력, 넓은 영토 등이 미국 정치를 안정적이게 만든 요소들이다. (…) 많은 유럽 나라들이 비교적 최근에 개정된 헌법을 가지고 있는데, 이 헌법들은 많은 노동자 대중이 정치 분야에서 목소리를 냈던 혁명 시대의 산물이다. 그에 반해 미국 헌법도 개정된 적이 있기는 하지만, 1787년 소수의 부유한 백인 남성이 승인한 상태에서 거의 변화한 것이 없다." (35쪽)

우리나라의 진보 정당들이 요구하는 비례대표제가 미국에는 없지만 유럽에는 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차이가 나타난 것일까? 이 책의 저자들에 따르자면, 비례대표제라는 정치 제도조차도 좌파 정당들이 20세기 초반에 유럽에서 집권하여 자신들에게 유리한 선거법 개정을 했기 때문에 출현한 것이었다.

저자들은 미국과 유럽은 전혀 다른 세계라고 말한다. 예컨대 스웨덴이나 네덜란드 같은 유럽의 작은 나라들의 경우, 1차 대전 이전에는 총파업 한번으로도 전국을 마비시킬 수 있었다. 그에 반해 미국은 광대한 영토를 가진 큰 나라이다. 미국의 시카고나 뉴욕에서 총파업이 일어나도 나머지 도시들엔 아무 문제도 없었다. 총파업을 통해 유럽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정당들은 자신의 집권 및 장기 집권에 유리한 비례대표제를 관철시킬 수 있었다. 그에 반해 미국은 비례대표제를 관철할 정당 자체의 발전이 없었다.

그렇다면 다시 질문이다. 왜 20세기 초중반에 유럽에서는 좌파 정당들이 집권했는데 미국에서는 그렇지 못했나? 저자들은 그 이유로 유럽에서는 전쟁(제1차 및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나라들에서 정치적 공백이 나타났고 그래서 좌파 정당들이 집권할 수 있었던 점을 지적한다. 예컨대 독일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등의 경우 1, 2차 대전에서의 군사적 패배 또는 점령군 철수로 야기된 정치적 공백에서 사회주의, 공산주의 정당들이 집권하였다. 그리고 이렇게 집권한 좌파 집권당들은 비례대표제를 관철시켰다. 그에 비해 미국은 20세기 초중반 이래 전쟁에서 연이어 군사적으로 승리했고, 따라서 대내적으로도 급진적인 정치적 변혁이 일어날 환경이 조성되지 않았다.

삼권 분립·지방자치 발전은 복지 국가에 방해?

또한 저자들은 미국에서 유달리 발전한 행정부와 사법부, 의회(상원 및 하원)간의 견제와 균형의 원칙은 급격한 사회 개혁(여기서는 복지 국가)이 출현하는 것을 제도적으로 막았다고 말한다. 특히 미국의 대법원(헌법재판소)과 상원은 매번 복지 국가의 확대를 저지하는 역할을 하였다. 저자들에 따르면 미국뿐 아니라 대법원(헌법재판소)이 대통령과 국회의 입법을 저지하는 권한을 가진 나라들에서는 GDP에서 사회 복지 지출이 차지하는 비율이 낮다.

또한 저자들은 미국에서 발전한 지방자치제, 즉 주(州) 정부의 막강한 권한 역시 복지 국가의 발전에 역행했다고 말한다. 즉 미국의 주 정부들은 소득 재분배-노동 시장 규제가 부유한 개인과 기업들을 다른 주로 쫒아내는 효과를 가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따라서 되도록이면 복지 정책을 줄이려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상당 부분 발견되는데, 지방자치제의 발전에 따라 개혁·진보적 성향의 시장과 도지사 등이 집권했음에도 불구하고 복지 정책의 확대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경우가 태반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예외성, 이민자와 노예?

게다가 미국은 이민자들의 나라이다. 그리고 "이민자들은 자신이 떠나온 조국에서 사회혁명을 일으키기보다는 자신의 곤경을 신대륙에서 개인적으로, 개인주의적으로 해결하려는 성향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며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예를 찾을 수 있다. "대한민국이 싫다"며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인사들 역시 비슷한 성향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벨기에의 리에주에서 일어난 파업은 브쉬셀 정부를 위협할 수 있었지만, 미국의 시카고에서 일어난 파업은 멀리 떨어진 워싱턴의 상원을 위협할 수 없었다. 스웨덴의 경우 영토는 상대적으로 넓지만 인구가 소규모 지역에 집중되어 총파업이 나라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이와 달리 동부 도시의 가난한 미국인들은 언제든지 광대하고 거의 개척되지 않은 서부를 향해 부자가 될 것을 꿈꾸며 떠나갈 수 있었다." (34쪽)

복지 국가를 이룩해낸 스웨덴 사람들은 매우 동질적이어서 민족적·인종적·종교적 특성에 따라 분리되지 않는다. 이것은 우리의 경우에도 거의 마찬가지인데, 아직까지 한국인들은 매우 동질적이다. 그에 반해 미국인들은 노예 제도의 영향과 백인종과 황인종, 라틴계 등의 다양한 이민자들의 인종적 분리가 노동 계급의 통일과 단결을 불가능하게 만들었고, 그것이 복지 국가 지향성을 크게 약화시켰다고 저자들은 지적한다.

미국의 선별적 복지와 유럽의 보편적 복지

이뿐만이 아니다. 이 책은 유럽과 미국의 각종 복지 제도를 상세하게 비교한다. 물론 유럽 쪽의 것이 대부분의 경우 더욱 액수도 많고 질적으로도 뛰어나다는 것은 대부분 알고 있다. 그런데 사회 복지 및 노동 시장 규제의 영역에서 구체적으로 하나하나씩 비교하는 데 있어서는 비슷한 수준의 예를 다른 책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아동수당을 보자. 이 책에 따르면 독일과 스웨덴에서는 보편주의 원칙에 따라, 즉 부모가 부자건 가난하건 무관하게 모든 아이들이 18세(독일) 혹은 16세(스웨덴)가 될 때까지 아동수당(자녀수당)을 받는다. 이에 반해 미국에는 아동수당 제도가 없고, 그 대신 세액공제(비과세감면)가 있다. (한국의 경우에도 연말정산에 적용되는 자녀 세액공제면 제도가 있다).

그런데 미국에서 이 혜택은 저소득 노동자들에게만 적용되는 선별적 복지 제도이다. 따라서 미국의 전형적인 평균 가정의 아이들은 아무런 아동수당도 못 받는다. 그에 반해 독일에서는 아이 1인당 136달러(1999년 구매력 평가 환산 기준), 스웨덴에서는 87달러를 지급받는다.

또한 독일과 스웨덴의 전형적인 가정은 공공의료 제도에 따라 의료비의 대부분을 복지 국가로부터 보장받고, 일부분만을 본인 부담금 형태로 부담한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전형적인 가정의 경우 한 명이 아파서 병원에 가서 치료받거나 입원하더라도 공공기금이나 공공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없다. 단지 회사가 종업원 보수의 일부로 건강보험을 제공하는 경우가 많을 뿐인데, 이 경우 실직과 함께 건강보험도 잃어버린다.

복지 국가와 사회민주주의에 관심이 있다면

하버드대학의 저명한 학자들이 썼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일반 독자들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쉽다. 그러면서도 우리 주변에서 흔히 벌어지는 복지 국가와 사회(민주)주의에 관련한 다양한 토론과 논란, 논쟁점들에 대해 대하여 분명하고 명쾌한 답변을 제시한다. 따라서 나는 이 책에 대한 저자들 자신의 다음과 같은 추천을 다시 돌려주고 싶다.

"우리는 자유지상주의자들이 이 책을 읽고 미국이 어떻게 유럽 대륙의 (그들의 생각으로는) 은밀하고도 달갑지 않은 사회주의를 피할 수 있었는지를 이해하기를 바란다. 또한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이 책을 읽고 어떻게 (그들이 생각하기에) 부끄러울 정도로 불공정한 미국 시스템을 모면할 수 있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23쪽)

나 역시 복지 국가와 사회민주주의에 대해 관심을 가진 모든 이들이 이 책을 읽기를 바란다. 그 속에서 어떻게 하면 앞으로 우리나라가 부끄러울 정도로 불공정한 미국 시스템을 모면할 수 있으며, 보편적 복지와 경제(노동)민주주의, 생태 환경적 개선 등 사회민주주의가 꿈꾸는 잠정적 유토피아를 만들어나갈 수 있는지, 그 지혜를 얻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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