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정부 "반전운동은 싫어"?
자국인 평화운동가 사망에도 모른 척
2003.03.20 11:20:00
미 정부 "반전운동은 싫어"?
미국인 여성 평화운동가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군의 불도저에 깔려 숨진 사고가 불도저 운전수의 고의적인 살인행위로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으나 미국 정부는 원칙적인 진상조사 입장만 밝혔을 뿐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어 국제사회의 비난을 사고 있다.

<사진: 사고 장면>

***"땅바닥에 내팽개치고 두번 지나가"**

사고가 난 것은 지난 16일이었다. 평화운동단체 '국제연대운동' 소속인 레이첼 코리(23)는 가자지구 라파에서 다른 동료들과 함께 팔레스타인 건물을 파괴하려는 이스라엘군의 불도저에 맞서다 불도저에 깔려 부상한 뒤 인근 병원에 이송됐으나 사망한 것이다.

코리는 미국 워싱턴주 올림피아에 위치한 에버그린 대학에 다니고 있는 학생으로 국제연대운동에 참가하며 왕성한 평화운동을 벌이다가 지난 1월 이스라엘군에 의해 고통받고 있는 팔레스타인인들을 돕겠다며 라파에 갔다.

국제연대운동은 17일 성명서를 발표, 불도저 운전수가 코리가 앞에 있는 것을 알면서도 고의로 그를 살해했다고 주장했다.

국제연대운동은 성명에서 "불도저가 멈추거나 비켜갈 것 같지 않자 코리는 불도저 운전수가 자신이 있다는 것을 볼 수 있게 쓰레기더미 위로 올라갔다"며 "하지만 불도저 운전수는 계속 불도저를 몰아 쓰레기 더미위로 코리를 밀어붙였고 그가 보이지 않자 그녀를 깔아뭉갰다"고 주장했다.

사고를 목격한 국제연대운동 동료인 찰스 스미스도 불도저 운전수가 코리를 흙더미와 함께 들어 올렸다가 땅바닥에 다시 내팽개치고 그의 위를 두 번 지나갔다고 말했다. 당시 코리는 줄무늬 반사물질을 칠한 밝은 주황색 자켓을 입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스라엘군은 코리의 죽음이 단지 갑작스런 사고일 뿐이며 불도저에 달린 창이 너무 작아 운전수가 충분한 시야를 확보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미 정부, 원칙적인 진상조사 요구만**

이 사고를 두고 미국 정부는 코리의 죽음에 애도를 표하며 이스라엘 정부에 조사를 요구했지만 진상을 밝혀내려는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정부가 한 일은 루이스 핀터 미국 국무부 대변인이 코리의 죽음에 대해 애도를 표명한 뒤 "이스라엘 정부와 접촉했으며 이스라엘 정부와 군에 즉각적이고 철저한 수사를 요구했다"고 밝힌 것이 전부다.

<사진: 장례식>

17일 가자시 유엔사무소에서 있었던 코리의 장례식에도 팔레스타인인들과 외국인 2백여명, 딸의 죽음을 듣고 라파로 날아온 코리의 부모만이 참석했을 뿐, 미국과 이스라엘 정부측에서 온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장례식에 참석한 코리의 아버지인 크레이그 코리는 "신념을 갖고 살다 간 내 딸이 자랑스럽다"며 "그녀는 사랑과 의무감을 갖고 살았으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없는 사람들을 보호해주기 위해 살았다"고 말했다.

***"역경에 맞서 저항하는 인간의 능력을 배웠어요"**

장례식에서 코리의 부모들은 라파에 머물던 코리가 지난 2월 7일 자신들에게 보낸 이메일을 언론에 공개했다.

코리는 메일을 통해 팔레스타인인들이 라파에서 겪고 있는 현실을 자신의 부모에게 전하며 "모든 역경에 맞서 사람들을 조직하고 저항하는 인간의 능력을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이 이 사고에 대해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은 코리가 돕고 있던 사람들이 팔레스타인인들이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미국 정부는 한국전쟁이나 베트남전이 끝난후 수십년이 지난 지금까지 미군 유해송환 협상을 벌이는 등 자국민의 죽음에 대해서는 끝까지 책임지기로 정평이 나있다.

이스라엘이 아닌 팔레스타인을 돕다가 비명횡사한 자국민에 대해 미국 정부는 과연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가 국제사회는 예의주시하고 있다. '미국판 여중생사건'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다음은 지난 2월 7일 코리가 그의 부모에게 보낸 이메일의 일부이다.

***엄마 아빠께**

제가 팔레스타인에 온 지 2주하고 한시간이 지났네요. 하지만 저는 아직도 별로 쓸 말이 없어요.

편지를 보내려고 자리에 앉으니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잘 떠오르지 않네요. 여기 아이들은 포탄으로 뚫린 벽이 있는 집에 살면서 늘 이스라엘군들의 감시를 받고 있어요.

대부분의 여기 아이들은 아마 사람이 산다는 게 원래부터 이런 것이라고 생각할지 몰라요.

제가 여기에 도착하기 이틀 전 8살짜리 한 아이가 이스라엘군의 총에 맞아 죽었대요. 많은 아이들은 이름을 물으면 "알리"라고 중얼거리듯 소개하거나 담벼락 포스터에 있는 자신을 가리켜요.

아이들은 "카이프 샤론?" "카이프 부시?"라고 물으며 저한테 아랍어를 가르치는 것을 좋아해요. 제가 서툰 아랍어로 "부시 마즈눈" "샤론 마즈눈" 하고 대답하면 그 애들은 깔깔대죠. ("샤론을 어떻게 생각해?" "부시를 어떻게 생각해?" "부시는 미쳤어" "샤론은 미쳤어" 라는 뜻이죠) 물론 이 대답이 제가 생각하는 것과 꼭 같지는 않아요. 영어를 하는 어른들 중에는 '부시 미쉬 마즈눈(부시는 장사꾼야)'라고 제 대답을 고쳐주는 사람들이 있어요. 오늘은 "부시는 도구일 뿐이야"라고 아랍어로 말하는 것을 배우려고 했는데, 그 의미를 정확히 번역할 말은 없을 것 같아요. 어쨌든 여기에는 국제 권력 구조의 움직임을 몇 년 전의 저보다 더 잘아는 여덟살내기 꼬마들이 많답니다. 최소한 이스라엘에 관해서는요.

하지만 제가 아무리 책을 많이 읽고, 회의에 참석하고, 문건을 읽고, 토론을 해도 이곳의 현실을 다 알 수 없었을 거예요.

직접 보지 않으면 상상할 수도 없을 거예요. 그리고 설령 직접 봤더라도 눈에 보이는 것이 현실의 전부가 아님을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이스라엘 군인이 미국 민간인을 죽였다고 상상할 때나 군인들에 의해 우물이 파괴돼 물을 얻을 수 없는 상황에 처했을 때의 괴로움을 저는 공감할 수 없어요. 또 저는 언제든지 이 곳을 떠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제가 경험했던 팔레스타인의 모습은 결코 진실이 아닐 거예요.

우리 가족 중에는 달리는 차 안에서 로켓포를 맞은 사람이 없죠. 나는 미국에 살 집도 있고 바다를 구경하러 갈수도 있어요.

제가 아무런 재판도 없이 수개월 혹은 수년간 붙잡혀 있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을 거예요. (왜냐면 저는 여기 사람들과는 달리 미국 국적의 백인이기 때문이죠)

미국에서 학교에 가거나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던 머드 베이와 올림피아 사이에 있는 검문소에 중무장한 군인들이 지키고 있을 것이라는 상상을 저는 하지 못해요. 제가 볼일을 보러 갈 수 있는지, 집에 다시 돌아올 수 있는지를 결정할 수 있는 가진 군인들 말이예요.

여기 아이들이 살고 있는 세상에 잠깐 들렀다 가는 제가 이렇게 충격을 받았는데, 제가 사는 세상에 이 아이들이 온다면 어떨까 생각해 봤어요.

미국 아이들은 총탄을 맞은 부모를 본 적도 없고, 가끔 바다를 보러 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여기 아이들도 알아요. 하지만 바다에 가본 적 있고, 하룻밤에 갈아엎어지지 않을 조용한 물가에 살아본 적이 있고, 갑자기 담벼락이 무너져 자고 있는 우리를 덮칠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해본 적이 없고, 실종됐다 돌아온 사람들을 본 적도 없고, 무시무시한 감시탑과 탱크와 군대와 철벽으로 둘러싸인 곳에서 살아본 적이 없는 엄마 아빠가, 세계 유일 강대국의 지원으로 지구상에서 네 번째로 큰 군대가 늘 시도때도 없이 감시하고 억압하는 현실을 용서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것이 제가 여기 아이들을 보고 궁금해 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들이 이 모든 것을 알게 되면 어떤 생각이 들지 궁금해요.

<사진: 코리 옛모습>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저는 라파에 있습니다. 라파는 14만명이 사는데 60%가 두세번의 난민 생활을 겪은 난민이예요. 라파라는 도시는 48년 이스라엘 건국 전에도 있었지만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은 이스라엘이 세워진 옛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쫓겨난 사람들과 그 후손들입니다. 이집트가 시나이 반도를 수복했을 때 라파는 반으로 쪼개졌다고 해요. 요즘 이스라엘군은 팔레스타인인들이 머무르는 라파와 국경선 사이에 14미터 높이의 장벽을 쌓아 국경 주변 가옥을 소개시키고 있어요. 602개의 집이 완전히 철거됐다고 라파난민위원회가 발표했습니다. 일부가 파손된 집도 많아요.

오늘 철거된 집의 잔해 속을 걷고 있는데 국경선 건너편에서 이집트 군인들이 제게 "가, 여기서 떨어져!"라고 손을 흔들며 소리쳤어요. 탱크가 오고 있었거든요. 제 이름도 물었어요.

이제는 익숙해진 저에 대한 호기심에 대해 다시 생각했습니다. 저는 우리 모두 다른 꼬마들에게 호기심을 갖는 또다른 꼬마일 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탱크 자국을 따라 걷고 있는 낯선 여자인 저에게 소리치는 이집트 꼬마들을 보고요. 담벼락 위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쳐다보다 총에 맞아 죽은 팔레스타인 꼬마들. 전쟁 반대 깃발을 들고 탱크를 막고 있는 국제 평화운동가 꼬마들. 탱크 안에서 가끔 소리를 지르고 손을 흔드는 이스라엘 꼬마들. 이스라엘 꼬마들은 여기 강제로 배치된 꼬마들도 많고 그저 공격적이기만 해 사람이 사는 집을 향에 총을 쏘는 꼬마들도 많지요.

국경지역과 라파 서부지역에 주둔하는 탱크말고도 이스라엘 군의 감시 시설이 셀 수 없이 많아요. 어떤 것은 장갑차에 있고, 어떤 것들은 누가 움직이는지 모르게 나선형 계단으로 만들어져 있기도 하고, 또 어떤 것들은 건물 옥상에 숨겨져 있기도 하죠.

며칠 전 우리가 빨래를 하고 반전 깃발을 걸기 위해 마을로 나간 사이 새로운 감시탑이 들어왔어요. 국경 부근의 일부 지역은 사람들이 최소한 한세기 이상 살아온 원래 라파지역인데도, 오슬로 합의로 팔레스타인인이 통제하는 지역은 1948년 도시 중앙에 들어온 캠프들밖에 없어요. 그래도 제가 아는 한 감시탑에서 볼 수 없는 곳은 거의 없어요. 아파치 헬기나 우리 머리 위를 쉼없이 날아다니고 있는 무인 비행기 카메라가 감시할 수 없는 곳은 아마 단 한군데도 없을 거예요.

여기서는 바깥 세계의 소식을 접할 수 없어요. 하지만 이라크 전쟁이 이미 피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소식을 들어요. 여기서는 많은 사람들이 가자지구 재점령을 걱정하고 있어요. 사실 가자는 거의 매일 어떤 방법으로든 점령당하고 있어요. 사람들이 걱정하는 것은 감시나 사격을 위해 몇시간 혹은 몇일간 들어왔다 나가는 것이 아니라 거리 곳곳에 진주해 쭉 머무르게 되는 상황일 거예요. 여기 사람들이 아직도 이 전쟁의 결과를 생각하고 있지 않다면 이제는 생각하기 시작했으면 좋겠어요.

엄마 아빠도 여기 오셨으면 좋겠어요. 저희 국제 활동가들의 숫자는 대여섯명밖에 안돼요. 저희들에게 어떤 형태로건 머물러 달라고 요청하는 곳은 이브나, 텔 엘 술탄, 하이 살람, 브라질, J지구, 조롭, O지구 등이예요.

이스라엘 군이 두개의 커다란 우물을 파괴한 후로는 라파 외곽지역에 있는 우물에도 야간 감시를 서줬으면 하는 요구도 있어요. 지난주에는 라파시의 물을 반이나 공급하는 우물이 파괴됐다고 시 상수도 사무소가 말했어요. 더 이상의 가옥 파괴를 바라지 않는 많은 지역 주민들이 저희들에게 야간 방범을 서 달라고 요청하고 있어요.

<사진: 애도물결>

이스라엘 군인들은 밤 10시가 넘어도 거리에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무조건 시위대로 간주해 발포하기 때문에 밤에 돌아다니는 것은 아주 어려워요. 그래서 우리 숫자가 이렇게 적은거죠.

우리 집이 있는 올림피아가 라파와 자매결연을 맺는다면 얻을 것도 많고 줄 것도 많을 거라는 생각을 쭉 해왔어요. 일부 선생님들과 아동단체는 올림피아 사람들과의 이메일 교환에 흥미를 표했지만 그건 연대활동이 할 수 있는 빙산에 일각에 불과할 거예요.

여기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누군가 듣기 원하고 있고, 우리는 국제 활동가 자격을 활용해 이 목소리들을 직접 미국에 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같은 국제 활동가들이 걸러 전해주는 게 아니라 직접요.

저는 매우 힘들 것이라 생각했던 과정을 통해 이제 막 배우기 시작했답니다. 모든 역경에 맞서 사람들을 조직해 저항하는 인간의 능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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