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용 영구결번' 행사, 이젠 그만
[프레시안 스포츠] 주먹구구식 전시행정
2003.06.18 15:10:00
'1회용 영구결번' 행사, 이젠 그만
삼성 라이온즈 야구단은 최근 프로야구 역대 홈런 3위이자 국내 프로야구 역사상 유일하게 타격 3관왕을 달성했던 '헐크' 이만수 선수(현 시카고 화이트삭스 벤치코치)의 등번호 22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삼성야구단은 이만수 코치(시카고 화이트삭스)가 귀국하는대로 기념식을 하겠다는 공식입장까지 밝혔다.

그러나 야구계 일각에서는 이만수의 경우도 영구결번으로 지정됐던 다른 선수들과 같이 유명무실한 영구결번 지정으로 끝나지 것이라는 시큰둥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지금까지 국내 프로야구, 축구, 농구구단들은 주먹구구식의 영구결번 지정으로 비판을 받았을 뿐 아니라, 영구결번 지정 후에도 선수에 대한 특별한 배려가 없었기 때문이다.

***국내프로구단의 형식적인 영구결번 지정과 관리소홀**

한 구단에 큰 기여를 했던 선수에게 주어지는 영구결번에 관해 국내에서는 여러가지 논란거리가 있었다. 이는 모두 구단의 영구결번 선수 선정기준과 영구결번에 대한 의미가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탓에서 비롯된다는 게 뜻있는 스포츠계 인사들의 지적이다.

2002년 8월 프로축구팀 부산 아이콘스의 송종국이 네덜란드 페예노르트로 이적하면서 부산구단이 송종국의 등번호 24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했으나, 부산에서 2년을 뛴 송종국의 영구결번은 말도 안된다는 구단 팬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2003년 1월에는 프로축구팀 안양 LG가 네덜란드 아인트호벤으로 떠나는 이영표의 등번호 12번을 팀 서포터스에게 준다는 명목으로 편법적인 영구결번인 '배번 누락'을 지정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프로축구뿐 아니라 프로야구에서도 영구결번에 관한 웃지 못할 사건이 있었다.

기아 타이거스는 2001년 대형신인투수 김진우에게 이미 1996년 영구결번된 바 있는 '국보급 투수' 선동렬의 등번호 18번을 넘겨 줄 것이라는 발표를 했다. 당시 언론은 '영구결번은 단순히 숫자가 아니라 프로야구의 문화다'라는 주장과 함께 기아구단의 실수를 비난했고, 결국 김진우 투수는 선동렬의 18번 대신 등번호로 41번을 써야 했다.

국내프로구단의 형식적인 영구결번 지정과 함께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사후대책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국내프로구단은 영구결번 지정을 '1회용 이벤트'로 치부하려는 경향이 짙다는 뜻이다.

***해외프로구단의 '영구결번'을 통한 스포츠문화 만들기**

야구의 본고장 미국의 경우는 어떨까. 프로스포츠 선수사상 최초로 영구결번이 됐던 미 프로야구의 자존심 루 게릭(뉴욕 양키즈)은 2천1백64경기 연속출장기록을 남겼던 대스타였다. 게릭은 1939년 7월 4일 은퇴기념사를 통해 '나는 오늘 지구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는 감동적인 말을 남겼고 그의 등번호 4번은 뉴욕 양키즈로부터 영구결번으로 지정됐다.

일본 프로야구도 비슷하다. 1947년 최초로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사와무라와 구로자와가 동시에 영구결번 선수가 됐다. 이 중 일본의 전설적 투수 사와무라는 미국 프로야구 올스타와의 경기에서 인상적인 투구를 했을 뿐 아니라 2차 대전에 참전해 류큐섬 전투에서 목숨을 잃어 지금까지도 일본 프로야구의 영웅 대접을 받고 있으며 센트럴리그의 최고투수에게 주어지는 상의 이름도 '사와무라 상'으로 정해졌다.

미국,일본에서의 영구결번 전통은 영구결번을 통해 스포츠문화를 만들겠다는 각 구단과 지방당국의 의지가 담겨 있다는 점에서 참고할 만하다.

김병현 선수가 뛰고 있는 미 프로야구팀 보스턴 레드삭스는 '마지막 4할타자' 테드 윌리엄스를 기념하기 위해 '테드 윌리엄스 데이'를 만들었고 보스턴 시는 보스턴 동쪽 끝에 있는 로건 국제공항과 보스턴 시내를 잇는 터널의 이름을 '테드 윌리엄스 터널'로 정하기도 했다.

일본 프로야구 최고명문팀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영구결번 선수이자 '미스터 자이언츠'로 불렸던 나가시마 시게오나 '홈런왕' 왕정치를 기리기 위해 많은 출판물을 내놓았고 팬북이나 구단 브로셔에도 매년 이들을 등장시켜 팬들의 기억을 새롭게 하고 있다.

우리와는 문화가 다소 다른 미국처럼 터널 등의 명칭을 영구결번된 선수의 이름으로 정하는 것이나 시와 구단이 앞장서 '테드 윌리엄스 데이'와 같은 기념행사를 갖는 것은 힘들다 하더라도 일본과 같이 팬북에 영구결번 선수에 대한 소개는 조금만 신경쓰면 국내구단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것이다.

영구결번 선수는 당장은 아니더라도 향후 구단 마케팅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구단의 자산이다. 프로스포츠 구단이 진정으로 특정선수를 영구결번시켜 팬들에게 기념이 되게 하려면 그에 상응한 관리와 보살핌이 필요하다. '왜 이 선수가 영구결번 지정 선수가 됐는지'를 후세 스포츠 팬들도 쉽게 알 수 있는 장치가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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