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0억 들어간 '오세훈 졸작', 동대문 디자인플라자
[김경민의 도시이야기]<13> 장소성· 역사성 고려없는 골칫거리
5000억 들어간 '오세훈 졸작', 동대문 디자인플라자
"동대문디자인플라자는 세계적인 랜드마크가 되어 외국인 관광객이 연간 210만 명에서 280만 명으로 늘어나고, 향후 30년간 53조7000억 원의 생산 유발 효과와 44만6000천 명의 고용 유발 효과가 날 것이다." - 2010년 9월, 서울시 디자인서울 총괄본부, 세계 디자인의 메카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운영계획.

동대문을 단순히 거대한 상권으로만 바라봤을 때 가질 수 있는 편협한 생각이다. 디자인과 제조업이란 가치를 무시한 채, 단지 동대문 시장 크기가 세계적 규모란 이유만으로 그 랜드마크 역시 세계적 크기여야 한단 생각은, 이 지역의 공간적 특성(장소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랜드마크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랜드마크 규모가 초대형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랜드마크는 어떤 지역의 정체성을 알려주는 것으로, 그 지역을 다른 지역과 구별되게 만드는 객체(object)이며, 일반적으로 건물이나 상점 또는 산 등이 그 물리적인 객체가 된다.

따라서 랜드마크가 반드시 거대하거나 웅장할 필요는 없다. 한 지역을 다른 지역과 구별하거나 한 지역에서 그 지역에 위치한 다른 사물과 구별되는 것은 크기와 상관없이 랜드마크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도시의 모든 건물이 2층짜리 단독 주택이라면, 30층짜리 아파트가 랜드마크가 될 수 있다. 반대로 어떤 도시의 모든 건물이 100층짜리 오피스 건물이라면, 2층짜리 단독 주택이 랜드마크가 될 수도 있다.

랜드마크는 주변과 비교되는 독특한 성질을 가지며, 시간에 따라 변화하기도 한다. 앞의 예에서 모든 건물이 과거에는 2층 단독 주택이었는데, 시간이 100년쯤 흘러 모두 30층 아파트로 변화하였다면, 100년 전에 세워진 30층 아파트는 더 이상 랜드마크가 아니다.

▲면적8만5000 제곱미터(공원포함 면적, 연면적은 4만여 제곱미터)에 달하는 세계 최대의 비정형 건축물,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김경민

5000억 들어간 '오세훈의 졸작',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현재 동대문 패션 타운에는 수많은 문제를 내포한 거대한 건물이 들어서고 있다. 면적8만5000 제곱미터(공원포함 면적, 연면적은 4만여 제곱미터)에 달하는 세계 최대의 비정형 건축물,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가 그것이다.

2014년 상반기 오픈될 DDP는 오세훈 전 서울 시장이 추진한 '디자인 서울'의 역점 사업 중 하나였다. 동대문 운동장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디자인 관련 전시장과 컨벤션 센터를 갖춘 디자인 메카를 건설하려는 취지였다.

그러나 이 엄청난 개발 사업은 그 스케일에도 불구, 졸속으로 진행됐다. 총 공사비가 3700억 원에서 40퍼센트가량 증액되어 5000억 원 이상으로 늘어났다. 이렇게 거액을 투입하는 대형 사업을 벌이면서, 내부를 어떤 기능으로 채울지조차 결정하지 않고 무작정 건물부터 짓기 시작했다. 63빌딩 전체 면적의 4분의 1수준에 달하는 넓은 공간에 어떤 소프트웨어가 들어가야 동대문 패션 타운과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인지는 충분히 고민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새로 취임한 박원순 서울 시장은 건물 완공이 눈앞에 닥친 상황에서 '무슨 기능을 넣어야 할지' 단계부터 시민 의견을 청취하며 새로 고민해야 했다.

ⓒ김경민

유명한 건축가가 설계한다고 랜드마크가 되는 게 아니다

이는 '세계적 건축가가 지은 건물은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맹신이 가져온 만용이다. DDP는 유명 건축가 자하 자하 하디드(Zaha Hadid)가 설계했다.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다른 건물, 광저우 오페라 하우스를 위해 광저우를 방문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단지 자하 하디드가 설계했다는 이유로 이 건물이 사람들을 끌어들일 수 있을까?

광저우 오페라 하우스 건물을 보기 위해 광저우를 찾는 사람이 드물다면, 동대문 DDP를 보기 위해 서울을 찾을 사람 역시 매우 소수일 거라 예견할 수 있다. 사람들이 동대문을 찾는 이유는 그곳이 동대문이기 때문이다. 서울이라는 대도시 안에 있는 거대한 패션 상권이자, 24시간 서울 시민의 삶을 생생히 볼 수 있기에 방문하는 것이다.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광저우 오페라하우스. ⓒ최성은

자하 하디드보다 더욱 위대한 건축가, 근대 건축의 아버지로 불리는 르코르뷔지에(Le Corbusier, 1887~1965)가 설계한 작품은 미국에 딱 한 개가 있다. 하버드 대학교 카펜터 센터(Carpenter Center)라는 곳이다. 하지만 건축학 전공자를 제외한 일반인들은 그 건물을 누가 설계했는지 모른다. 누구도 카펜터 센터를 하버드 대학교의 랜드마크로 여기지 않는다.

사람들은 르코르뷔지에 작품을 보기 위해 하버드를 방문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하버드를 방문하는 이유는 하버드 대학교엔 '세계 최고 대학'이라는 설명이 필요없는 스토리(사연)가 있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20세기 근대 건축의 아버지가 지은 건물이라도, 전 세계 최고 대학이란 스토리에 묻혀버릴 뿐이다. 이 학교의 랜드마크는 그래서, 교정에 있는 존 하버드 설립자의 동상이다. 존 하버드 동상을 만지면 자손이 하버드에 입학할 거란 속설 때문에, 동상 왼발 끝 모서리는 사람 손을 타 반짝반짝 빛날 지경이다. 하버드를 찾는 사람들이 반드시 보고, 만지고 사진 찍는 이곳, 왼발 끝이 반짝반짝 빛나는 존 하버드 동상은 '스토리의 힘'이 위대한 설계가의 작품을 이긴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 예다.

▲왼쪽은 카펜터 센터. 오른쪽은 존 하버드(하버드 설립자)의 동상. 동상의 왼발을 만지면 자손들이 하버드에 합격한다는 속설로 동상 왼발 끝이 반짝거린다. ⓒ김경민

거대한 건물 DDP, 동대문 운동장에 서린 근현대 역사 유산 지워버리다

동대문에도 이런 스토리를 가진 장소가 있다. 동대문 운동장이다. 동대문 운동장은 우리에게 한일전 운동 경기, 고교 야구 경기 등 각종 스포츠 행사와 시민 행사가 열렸던 추억이 서린 장소다. 이 근현대 역사 유산인 동대문 운동장은 그러나 철거됐다. 그리고 그 자리에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가 들어서고 있다. DDP에서는 근대 한국의 정취를 느낄 수 없어 장소성이 없다. 세계적인 건축가가 만든 DDP에서는 과거 이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도저히 알 수 없다.

동대문 운동장엔 스토리뿐 아니라 역사 자원 또한 숨어 있다. 운동장을 철거한 자리에선 무려 2만5000여 점에 이르는 다양한 시기의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역사의 도시 서울, 사대문에서 나온 엄청난 '선물'이었다. 지표면 3~5미터 아래에선 멸실된 것으로 알려졌던 '서울 성곽'과 '이간수문(二間水門)'이 동시에 발굴됐다. 땅속에 파묻혀 있던 성곽은 전체길이가 123미터, 높이 4~5미터, 너비가 8~9미터에 달했다. 이간수문의 높이는 기단석을 기준으로 8미터나 된다. 그 외에도 염초청, 훈련도감의 분영인 하도감, 무기와 화약 공방, 무기고 등이 쏟아져 나왔다. 조선 전기부터 중기, 후기, 대한제국기와 일제강점기 등 서울 600년의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흔적이 발굴된 것이다. 다행히 박물관 설립과 보존 처리 등을 통해 안전하게 보관하려 한다. 그러나 DDP라는 '용도를 알 수 없는 건물'은 어쨌거나 이런 역사성을 가려버리고 있다.

▲ 2008년 12월 17일 오후 '동대문 디자인플라자&파크' 조성을 추진 중인 옛 동대문운동장 터에서 문화재 전문가들이 이간수문(二間水門) 등 총 123미터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된 서울성곽 일대를 둘러보고 있다. 서울성곽은 식민지 시대 동대문 운동장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멸실(滅失)된 것으로 추정됐지만, 최고 잔존높이 4.1미터(내벽 기준)에 바닥 폭 8~9미터에 이르는 규모로 남아있는 것이 확인됐다. ⓒ연합뉴스
▲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비즈니스 센터'와 '디자인 뮤지엄(박물관)' 뒤쪽엔 한옥 처마를 형상화했다는 폭 35미터, 길이 120미터에 이르는 지붕이 있지만, 설명을 듣기 전엔 알아채기 힘들다. ⓒ김경민

허리 굽은 봉제 노동자 동상과 DDP, 어느 쪽이 진정한 랜드마크?

처음엔 이상하게 보였던 건물도, 자꾸 보다 보면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DDP 역시 자주 마주하다 보면, 지금 생기는 이질감은 사라질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익숙해진다고 해도, DDP가 동대문 패션타운의 장소성과 역사성을 담보하는 진정한 랜드마크가 될지는 의문이다. 진정한 랜드마크는 '크기'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장소성과 역사성을 살릴 '기억'을 가진 곳이냐 아니냐가 가름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랜드마크를 만들기 위해선, 뉴욕 패션 지구의 조형물을 참고할 필요 있다. 뉴욕 패션 지구 내 인포메이션 데스크 앞에는 조형물 2개가 놓여있다. 바늘이 꽂혀있는 커다란 단추와 허리 굽은 노동자가 재봉틀을 돌리고 있는 모습의 조각상이다. 이 조형물들은 뉴욕 출신의 세계적 디자이너가 아닌, 이름 없는 노동자를 표현하고 있다. 이 조형물들만 봐도 뉴욕이 패션 중심지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즉, 패션 지구라는 장소성과 더불어, 뉴욕 패션 지구의 봉제 노동자들의 땀과 눈물이란 역사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다시 묻고 싶다. 8만5000제곱미터 규모의, 세계적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용도를 도저히 알 수 없는 DDP. 그리고 뉴욕 패션 지구의 자그마한 조형물. 무엇이 진정한 랜드마크인가?

▲ 왼쪽 사진은 뉴욕 패션 지구에 있는 두 조형물. 바늘이 꽂힌 커다란 단추와 허리 굽은 봉제 노동자 조형물은 뉴욕 패션 지구의 진정한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김경민 / 오른쪽 사진은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조감도. ⓒ동대문디자인플라자 홈페이지

□ 필자 주석
① (출처) Kevin Lynch, , 1960, the MIT Press, p. 48-49.
② (출처) 조선일보 박세미 기자, "5000억 들어간 동대문디자인플라자 'DDP'… 마음에 드십니까" (2013년 3월 8일)
③ (출처), 김병희, <동대문 발굴성과와 의의>, 《한국대학박물관협회》 제61회 추계 학술발표대회, 2009. 10, p. 35-60.

김경민의 도시 이야기
<1> 서울, '200년 역사' 상하이보다 못하다…왜?
<2> 휘청휘청 용산 개발, '티엔즈팡'만 미리 알았어도…
<3> 서울 최고의 한옥 지구, 역사 속으로 사라지나
<4> 서울 최고의 한옥 지구 만든 그는 왜 잊혔나
<5> 당신이 몰랐던 피맛골, 아직 살아 있다
<6> 박정희 시대 요정 정치 산실, 꼭 헐어야 했나
<7> MB·오세훈 '뉴타운 광풍'과는 다른 '낙원삘딍' 탄생사
<8> 음악인들의 성지, 기어이 밀어버려야겠나
<9> 동대문, 세계적 패션 도시 뉴욕·밀라노처럼 되려면?
<10> 봉제 공장 외면한 '甲' 동대문, 나홀로 생존 가능할까?
<11> 창신숭의 뉴타운 해제, "동대문 패션 타운 몰락할 뻔"
<12> 동대문에선 왜 자라·유니클로가 탄생 못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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