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의 전시행정이 낳은 비극, 동대문디자인플라자
[김경민의 도시이야기]<14> 5000억 들인 자원 훼손 바로잡아야
오세훈의 전시행정이 낳은 비극, 동대문디자인플라자
필자는 자본주의자다. 현재 자본주의가 초래한 전 세계적인 위기 때문에 자본주의를 대신할 새로운 체제가 도래할 것이란 의견에 대해서도 개인적으로 의구심을 갖고 있다. 필자의 주관적인 판단이긴 하나, 새로운 체제보단 외려 혁신과 공정한 경쟁, 자원의 효율적 배분, 명확한 투자 분석이 가능토록 더 나은 자본주의로 충분히 나아갈 수 있다고 본다.

외환위기가 닥쳤던 1997년, 한국의 한 IT 업체에서 근무하며 나라 경제가 몰락하는 과정을 지켜봤다. 2000년대 초반엔 실리콘 밸리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하며 실리콘 밸리의 혁신과 효율성에 감탄했다. 미국 하버드 대학교에서 박사 과정을 마치고 보스턴에 있는 상업용 부동산 리서치 회사에 근무하던 2000년대 후반에는, 아무리 좋은 시스템에서도 분석에 '주관'이 들어가거나 분석을 이중 확인(더블체크)하지 않는 경우, 한 국가를 넘어서 세계 전체에 위기를 부를 수 있단 사실도 생생히 경험했다.


그렇기에 5000억 원짜리 투자(동대문디지털플라자(DDP)의 총 건설비용)의 경우라면, 보다 면밀한 분석과 구체적인 계획이 존재했어야 한다고 본다. 민간 회사가 이 정도 비용을 들여 투자를 진행한다면, 적어도 매년 200억 원(이자율 4%를 가정) 이상 순익이 달성되어야 하고 어림잡아 600억 원 이상의 매출(순익의 3배 가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백번 양보해서 공공의 목적이기 때문에 매출과 순익을 그렇게 계산할 수 없다고 치자. 그렇다면 5000억 원짜리 공공 투자 시설 내부에 어떤 기능이 들어가야 할지 구체적으로 계획되어야 하지 않을까.

DDP 계획엔 거대한 조감도와 허황한 표어만 있었을 뿐, 서울을 전 세계 디자인의 중심 도시로 만들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만약 공공 투자이기 때문에 초기에는 민간만큼의 수익을 보장할 수는 없더라도, 10년 후, 20년 후에는 이 정도의 반환 (financial return)이 가능하다는 금융 계획안이라도 나왔다면 필자는 DDP 계획의 문제점을 비난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5000억원 짜리 DDP가 미래에 매년 1000억 원 이상의 가치를 창출할 것이고 이를 위한 구체적인 계획이 나왔다면 DDP에 대해 비판하고 싶지도 않다.

그렇지만, 한 정치인의 야망 때문에 도시 안에서 발견된 축복과도 같은 성곽이 가려지고, 성곽 내에 있던 유적지들이 전혀 엉뚱한 모양으로 옮겨지는 것이 온당한가? 오히려 이런 자원들을 효율적으로 이용하여 몇 백억 원의 가치를 창출할 수 있었다면, 투자 대비 효용을 계산하였을 때 그것이 더 나은 방향이 아닐까.

자산 활용 분석과 계획도 없이 엉뚱한 표어에 휘둘려 어마어마한 자원을 비효율적으로 사용하고, 후임자는 어찌할 바를 몰라서 고민하는 것이 현재 DDP가 맞닥뜨린 비극적 상황이다. 계획 과정상에 시민과 전문가들의 참여가 보장된 민주적인 절차가 있었는지는 언급조차 하기 싫다. 보다 나은 자본주의로 나아가기 위해서라도 DDP의 초기 계획안부터 차근차근 살펴보아야 하는 이유다. <필자 주>

▲ 면적8만5000 제곱미터(공원포함 면적, 연면적은 4만여 제곱미터)에 달하는 세계 최대의 비정형 건축물,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김경민

김경민의 도시 이야기
<1> 서울, '200년 역사' 상하이보다 못하다…왜?
<2> 휘청휘청 용산 개발, '티엔즈팡'만 미리 알았어도…
<3> 서울 최고의 한옥 지구, 역사 속으로 사라지나
<4> 서울 최고의 한옥 지구 만든 그는 왜 잊혔나
<5> 당신이 몰랐던 피맛골, 아직 살아 있다
<6> 박정희 시대 요정 정치 산실, 꼭 헐어야 했나
<7> MB·오세훈 '뉴타운 광풍'과는 다른 '낙원삘딍' 탄생사
<8> 음악인들의 성지, 기어이 밀어버려야겠나
<9> 동대문, 세계적 패션 도시 뉴욕·밀라노처럼 되려면?
<10> 봉제 공장 외면한 '甲' 동대문, 나홀로 생존 가능할까?
<11> 창신숭의 뉴타운 해제, "동대문 패션 타운 몰락할 뻔"
<12> 5000억 들어간 '오세훈 졸작', 동대문 디자인플라자

동대문 운동장을 '공원화'하려는 계획은 2000년대 중반 이전부터 세워져 있었다. 그러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2006년, 이를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공원화 계획 당시 예산은 900억 원 규모였다. 하지만 오세훈 서울시가 '2007년, 월드디자인플라자(현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건설 계획을 추가하며, 사업 규모는 네 배 이상 커졌다.

월드디자인플라자 건립에 대한 타당성 연구는 2007년 2월부터 9월까지 진행됐다. 당시 서울시는 이 연구가 종료되기도 전에, 건물 설계 절차에 들어갔다. 2007년 4월에 건축가 8명을 지정해 설계 공모를 했고, 그해 8월에 자하 하디드(Zaha Hadid)를 설계자로 지목했다. 900억 원 규모였던 예산은 3700억 원으로 증액됐다. 63시티 4분의 1 크기의 초대형 건물을 지으며, 구체적 건물 활용 계획은 세우지조차 않았다.

이처럼 새 서울 시장이 들어서고 1~2년이란 짧은 시간 만에 동대문디자인플라자 건설 계획이 세워졌다. 동대문 운동장 일대를 공원으로 만들려던 계획은 '건물'로 초점을 옮겨갔다. 최종 공사비는 무려 4932억 원에 달했다.

▲ 왼쪽 그림은 동대문 개발 구상안. 오른쪽은 현재 동대문 개발 상황을 담은 사진.

조선 시대 군사 시설 '하도감', DDP에 밀려 성곽 밖으로 내쳐지다

절차상의 문제와 무계획성 문제를 뛰어넘는 더 큰 문제는, 역사 자원 보존 문제다. 옛 동대문운동장 터에서는 123미터에 이르는 서울성곽과 함께 조선 시대 최대 군영, 훈련도감의 본영인 '하도감'이 발견됐다. 그런데 DDP를 건설하며 서울시는 과거 서울성곽 안쪽에 있었던 하도감을, 성곽 밖으로 이전시켰다.

이는 도시를 거꾸로 만들어버린 꼴이다. 서울을 방위하고 치안을 담당하며 왕을 호위하는 역할을 했던 하도감은 성곽 내부에 있는 게 당연하다. 외부에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당시 서울시 자료를 보면, 서울시는 동대문 운동장 일대에 주요 유적들이 어디에 분포하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2006년 만들어진 공원화 사업 계획대로 개발이 진척됐다면, 이런 역사 자원들은 제 위치에서 제대로 보존됐을 가능성이 높다.

일본은 달랐다. 13층짜리 오사카 시립 역사박물관 건물터는 고대 궁궐 유적지 나니와 궁터 일부였다. DDP처럼 유적 파괴 논란이 있었으나, 오사카는 시간을 두고 전문가들과 시민들이 토론하며 개발을 진행했다. 7년여에 걸쳐 의견을 수렴한 끝에, 유적을 없애거나 이전하는 방식을 취하지 않고, 유적 그 자체를 지하에 보존키로 했다. 이후 건설된 고층 박물관은 현재 오사카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반면, DDP 건설 당시 유적 조사에 들인 시간(348일)은 고작 1년도 되지 않는다. 지난 수십 년 간 서울 성곽을 복원해왔다지만, 서울 시내 평지에 있었던 성곽들은 개발 압력에 밀려 대부분 철거되었다. 성곽을 보기 위해 낙산 또는 인왕산, 북악산 남산 등으로 올라가야만 하는 이유다.

▲ 2008년 12월 17일 오후 '동대문 디자인플라자&파크' 조성을 추진 중인 옛 동대문운동장 터에서 문화재 전문가들이 이간수문(二間水門) 등 총 123미터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된 서울성곽 일대를 둘러보고 있다. 서울성곽은 식민지 시대 동대문 운동장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멸실(滅失)된 것으로 추정됐지만, 최고 잔존높이 4.1미터(내벽 기준)에 바닥 폭 8~9미터에 이르는 규모로 남아있는 것이 확인됐다. ⓒ연합뉴스

120미터 도심 내부 성곽 발견, 축복이었지만…

동대문 운동장 터에서 발견된 120미터 길이의 거대한 도심 내부 성곽은 어떤 의미에서는 축복이었다. 굳이 산에 오르지 않더라도 도심 한복판에서 거대한 성곽을 바라보면서, 역사 도시 서울의 참모습을 볼 수 있었다. 성곽을 입체적으로 보존함으로써, 성곽 내부와 외부의 기능이 어떻게 다른지도 보여줄 수 있었다.

물론 동대문 역사공원 안쪽에 있는 성곽은 나름 잘 보존된 상태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역사의 도시 서울의 성곽은 정체 모를 DDP에 가려져 있다. 지하철 2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 내리면, 우리는 역사 도시의 전통적인 성곽이 아닌 DDP라는 새로운 벽을 맞닥드릴 뿐이다.

더욱 아쉬운 점은 유적을 이전하며 새로 만든 모양새가 역사적인 느낌(Historic Feeling)을 충분히 일으키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곳이 역사문화 공원이란 것을 모르는 상태에서 바라보면, 그저 예쁜 정원 위에 돌을 규칙적으로 올려놓은 것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일본 정원과 비슷하다는 느낌마저 들지 않을까 싶다.

▲풀과 나무와 돌이 있는 '예쁜 정원'이 되어버린 동대문 역사 공원. ⓒ김경민
▲ 일본 교토 료안지 정원. ⓒ김경민

이제와 5000억 짜리 건물 부술 수 있나

DDP는 그 건물 자체로는 서울의 유구한 역사를 무시한 채 올라섰다. 그리고 주변과도 어울리지 않는다. 역사성과 장소성이 모두 무시됐다. 그렇다고 이제 와 5000억 원을 들인 건물을 부숴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제 대안은 무엇일까.

지금이라도 DDP 내부에 동대문 패션 타운의 장소성과 역사성을 채워야 한다. 서울디자인재단에서 최근 발표한 DDP 계획안은, 지나치리만큼 '패션 디자인'에만 경도돼 있다. 뉴욕 패션 지구처럼 패션 제조업의 역사를 느낄 수 있거나, 주변 지역의 장소성을 떠올리게 하려는 노력이 드러지 않는다.

지금이라도 패션 디자인만이 아닌, 봉제 산업을 포함한 패션 산업 전반의 역사를 느낄 수 있는, 또 주변 커뮤니티와 소통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려는 고민이 필요하다.

□ 필자 주석
① 서울시 산업국, <월드디자인플라자(WDP) 건립 및 운영 기본계획>. 2007.10.
② 2009.06.23 <한겨레> '후쿠오카 돔과 동대문운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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