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사 출신 엘리트에서 비정규직 투사로…
[범국민행동의날 릴레이 기고①] 김경욱 이랜드일반노조 위원장을 만나다
육사 출신 엘리트에서 비정규직 투사로…
"민심은 천심"이라고 했다.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대선을 앞둔 이 땅의 천심은 어떨까?
  
  오는 11일 범국민행동의 날을 준비하고 있는 '한미 FTA저지, 비정규직 철폐, 반전평화를 위한 범국민행동의 날 조직위원회'는 지난 5일 발표한 대국민 메시지에서 "민중의 눈에서 피눈물이 흐르고 있다"고 했다.
  
  "850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길거리로 내몰리며 분신으로 항거하고 있고 농어가 부채가 36조 원에 이르는데 지을 농사마저 없는 농민들의 한숨과 절규가 농촌마다 가득하고 직장에서 쫓겨나 아내와 함께 포장마차를 하던 노점상의 소박한 꿈은 용역깡패의 무지막지한 폭력에 산산이 부서졌다"는 것이다.
  
  경찰이 금지하겠다고 밝힌 11일 범국민행동의 날에 앞서 조직위원회와 <프레시안>은 공동기획 '범국민공동행동 릴레이 기고'를 통해 이 땅의 민심을 돌아보고자 한다. 대선 경주를 벌이고 있는 정치인의 입이나 한 사람의 죽음도 온전히 찾아보기 힘든 언론에 보이는 민심이 아닌 그야말로 평범한 우리네의 마음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이 릴레이기고는 4회에 걸쳐 연재될 예정이다. <편집자주>
  
▲ 김경욱 이랜드일반노조 위원장ⓒ프레시안

  850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길거리로 내몰리고 분신으로 항거하고 있다. 국가경제가 살아난다고 하지만 국민 대다수의 삶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차별에 또 차별에 비정규직 노조의 싸움은 점점 한이 맺혀간다.
  
  그들은 모두 원래는 평범한 일상인이었다. 그랬던 그들이 어느새 "너희를 위해 싸운다"며 투사가 되어버리고 있다.
  
  김경욱 이랜드일반노조 위원장도 평범한 일상인에서 투사가 되어버린 요즘의 비정규직 가운데 하나다. '육사 출신 엘리트'였던 그다. 그가 어느새 '비정규직 투쟁'의 대표주자가 되고 20일이 넘는 홈에버 매장점거 농성의 책임자로 구속까지 됐다.
  
  1심에서 집행유예 선고를 받고 지난 10월 22일 출소한 김경욱 위원장을 지난 3일 만났다. 육사생도가 노조위원장이 되기까지, 여름의 초입에 시작해 어느덧 겨울을 맞고 있는 이랜드 비정규직의 싸움의 과정과 지금 위치와 갈 길에 대한 두 시간 여의 긴 얘기가 시작됐다.
  
  하나, '육사출신 자존심'으로 찾아간 까르푸
  
  1998년, 잘나가는 육사 출신인 그는 선배들처럼 대기업에 취직하고 싶었다. 말리는 선후배들을 뒤로하고 제대했다. 하지만 IMF는 만만치 않았다. 취직원서를 100곳 정도 넣었지만 다 떨어졌다. 마지막 까르푸. 프랑스계 회사라고 했다. 이름 없는 국내기업은 가기 싫었다. 육사출신 자존심이었다. 2002년까지 까르푸는 급성장했고 그도 잘나갔다.
  
  '파란'은 2002년 7월, 그가 근무하던 까르푸 중동점에 새로운 점장이 오면서 시작됐다. 예고됐다. 까르푸 중동점에 있을 때 프랑스에서 새로운 점장이 왔다.
  
  오자마자 "물갈이 하러 왔다"고 엄포를 놓았던 새 점장은 어느날 날 그를 불렀다. 그는 당시 농산과장이었다. 새 점장은 그에게 몇몇 직원을 꼭 찍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내보내라"고 지시했다. 불법이다. 그는 거부했고 점장의 괴롭힘이 시작됐다.
  
  '사표를 쓸까, 지시에 따를까, 싸울까.'
  
  둘, 1% 조합원으로 벌였던 '무모한' 파업
  
  고민이 깊어가던 즈음 우연히 까르푸에도 노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2003년 1월 노조에 가입했다. 그의 인생이 180도 달라졌다. 새 점장의 막무가내식 해고는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 두려움과 떨림의 연속이었다.
  
  그해 5월, 전체 직원 6000명 가운데 1%에 불과한 60여 명의 조합원들이 '무모한' 전면파업을 시작했다. 그 무모한 파업은 14일간 지속됐다. 결과는 패배였다. 1%, 60명의 조합원은 버티지 못했다. 조합원들은 투표를 통해 복귀를 결정했다. 대신 간부파업을 시작했다. 요구사항은 △해고 중단 △임금인상 △식사비 인상이었다. 당시 까르푸에서 일하는 여성 정규직의 임금은 62만 원이었고 식사비는 3~4년째 동결된 상태였다. 그 당시만 해도 비정규직은 거의 없었다.
  
  60일 동안 프랑스대사관 앞에도 집회도 하고 전단지도 돌리고 안 해본 게 없었다. "너무 힘들었다"고 말하는 그의 눈빛은 그 때로 이미 돌아가 있었다.
  
  바로 그 해 김주익 씨, 배달호 씨가 잇따라 목숨을 던졌다. '죽어야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그는 처음 죽음을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임신 중인 아내가 눈앞에 어른거렸다. 죽을 용기가 없었다. 살아서 싸워야 했다.
  
  드디어 회사에서 노조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현장으로의 복귀였다. 바로 이어진 노조의 위원장 선거에서 그는 위원장이 되었다. 그때 그는 "조직력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1% 조직력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3년을 쉬지 않고 달렸다.
  
  이듬해 주 5일제를 이뤄냈다. 또 다음해인 2005년에는 비정규직의 노조 가입을 회사와 합의했다. 그리고 2006년 비정규직까지 포함하는 고용보장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계속 이겼다. 조합원은 늘어났고 노조에 대한 신뢰도 높아졌다. 그 즈음 김경욱 위원장은 '이제 뒤로 물러서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셋, 법도 회사를 막지는 못했다
  
  물러설 수 없게 만든 것은 조합원들이 아닌 회사였다. 고용보장을 약속한 단체협약을 어기고 외주화가 시작됐다. 이미 80% 이상이 비정규직으로 채워져 있었는데 이들을 간접고용으로 돌리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올해 3월부터 곳곳에서 계약만료를 이유로 쫓겨나는 비정규직이 생겨났다. 조합원도 있었다. 정규직도 명동점에서 울산점으로 발령이 났다. 그만 두라는 얘기였다.
  
  이직율이 191%에 이르렀다. 1000명의 일자리에 1년 동안 1910명이 들락날락한 것이다. "해고를 멈춰라" 집회도 하고 항의방문도 했다. 하지만 회사는 불법이 아니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합법이라는 회사의 주장은 거짓이었다. 6월 20일 노동위원회가 부당해고 판정을 내렸다. 이랜드가 불법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그래서였다. 김경욱 위원장이 "이길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은….
  
  하지만 '높으신' 법도 회사를 막지는 못했다. 비정규 노동자가 회사와 싸우면서 깃털만큼 법을 어겨도 바로 잡아가고 구속시키는 경찰과 검찰은 이랜드가 법을 어긴 것은 모른척 했다. 포기해야 하는 것일까. 노조가 파업을 해도 매장은 잘만 돌아가는데….
  
  김경욱 위원장은 "방법은 매장을 멈추는 것 뿐"이라고 생각했다. 마음은 이미 가 있는데 몸이 머뭇거렸다. 구속되는 것은 아닐까. 조합원들이 같이 해줄까.
  
▲ ⓒ<민족21> 김도형 기자

  넷, 두 가지 희망
  
  희망은 두 가지였다.
  
  하나, 같은 이랜드 그룹 계열사인 뉴코아노조가 파업을 시작했다. 뉴코아노조의 '매장봉쇄 투쟁'에 참석한 이랜드일반노조 조합원들이 제일 앞에 서 있었다. 오히려 뉴코아노조 조합원들에게 싸우는 법을 가르치기도 했다. '조합원의 마음을 지도부가 몰랐구나.'
  
  둘,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이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민주노총이 나서겠다고 했다. 우리만, 혼자 싸우는 게 아니다.
  
  두 가지 희망으로 "단 하루, 하루라도 매장을 멈추자"고 결심했다. 2007년 6월 30일 상암동 홈에버 월드컵점을 점거했다. 사람들이 알까. 우리의 첫 시작은 그저 '1박 2일 점거'였던 것을. 그날 밤 20명의 조합원들이 "구속되도 괜찮다"며 매장을 지켰다. 언론이 관심을 가졌다. 7월 1일이 비정규직법이 시행되던 날이었기 때문이다.
  
  조합원들과 회의를 했다. 일주일 더 싸우자. 그리고 일주일 후 또 일주일 더 가자. 그리고 마지막, 조합원은 무기한 농성을 결정했다. "오히려 지도부는 멈추려 했다"고 김 위원장은 말했다. 하지만 "끝까지 싸우자"는 조합원의 눈빛을 지도부가 외면할 수는 없었다.
  
  다섯, 변한 것은 없다
  
▲ ⓒ프레시안

  구속됐던 그는 이제 막 조합원들 곁으로 다시 돌아왔고 그가 없는 사이 각종 고소·고발과 가압류가 노조에게 날아 왔지만 변한 것은 없다. 그는 "이랜드는 계속 버티려 할 것"이라고 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파업으로 일부 조합원은 업무에 복귀하기도 했다.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집회에 나오는 조합원도 있다.
  
  '다시 힘을 모을 수 있을까. 적당히 타협하고 끝을 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는 "하지만 회사가 약속한 것이 하나도 없다"고 했다. 2년 미만 고용보장, 외주화 중단, 정규직 인사이동 중단, 차별시정. 이 4가지 가운데 어느 하나도 완전하게 합의된 것이 없다.
  
  국민들의 마음도 아줌마 비정규직들의 편이었고 국회의원들도 저마다 이랜드가 나쁘다고 했지만 아직도 그대로다. 삼성도 아닌 이랜드인데, 어느덧 5개 월이 다 되어 가는데도 변한 것이 없다.
  
  그는 "이랜드를 변하게 하려면 노조의 조직력이 유지돼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생계비와 민주적 의사결정"이 그것이었다. 민주노총이 약속한 생계비 지원이 약속대로 지급되기를 당부했다.
  
  그들이 싸우는 동안 두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고 거리에서 붕어빵을 팔던 노점상이 목을 맸다. 이제는 죽음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것일까. 그는 "모든 힘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오는 11월 11일 범국민행동의 날에 10만이든 20만이든 모이는 대로 이랜드 타격 투쟁을 하자고 하고 싶다"며 "그러면 이길 것 같은데…"라고 말을 흐렸다. 하지만 집회 한 번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한창 뉴코아, 이랜드노조가 외주화 반대로 싸우고 있을 때 현대백화점노조는 조용히 외주화를 합의하고 정규직 임금인상을 했다. 그는 "이기주의는 사용자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 근처에 또 내 마음에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이러면 이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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