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 보기 위한 영어는 이제 그만!"
[기고] 외국인 영어 교사가 본 영어 교육의 실상
"시험 보기 위한 영어는 이제 그만!"
이명박 당선인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영어교육 개혁안'을 놓고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반발이 거세게 일자 이명박 당선인은 "반대를 위한 반대는 안 된다"며 강행 의지를 밝혔고 이경숙 인수위원장은 "반대하는 사람들, 영어 배우기만 해봐라"며 논란을 '떼쓰기' 수준으로 일축했다. '찬성론자'만 모아 열었던 공청회 이후 반발이 더 확산되는 분위기이지만 인수위는 이렇다할 반박 없이 모르쇠로 일관하는 모양새다.
  
  인수위의 '개혁안'에 반대하는 대부분의 이들은 "영어교육 개혁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힌다. 단 인수위가 내놓은 방식으로는 사교육, 주입식 교육 등 문제점이 해결되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는 1년 여간 한국에서 영어를 가르쳐온 미국인 영어교사 알렉시아 사피아 씨 역시 동일하게 지적하는 점이다. 2006년부터 국내 대학 어학원 등에서 영어 수업을 진행해 왔던 그는 <프레시안>에 보내온 글에서 "한국 영어교육에 큰 문제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인수위의 해법은 잘못됐다"고 비판했다. 그는 "모든 이가 아무리 일상회화를 잘 한다고 해도 이를 활용하는 이들의 창의력과 사고력이 결여돼 있고,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다면 '세계화 시대'에서 경쟁력을 가지기 어려울 것"이라고 꼬집었다. <편집자>
  
  우선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의 교육자로서 필자는 세계화에 관심이 많다는 점을 먼저 밝힌다. 나는 세계화에 일조하기 위한 방법을 찾던 중 세계 공용어로 활용되는 영어를 가르치기로 결심하고 영어교사가 됐다.
  
  요즘 시대, 영어에 능통한 사람은 보다 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고 창의적이고 미래지향적인 혁신에 이를 활용할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영어교육은 바로 이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아무리 모든 사람이 영어로 일상적인 회화를 할 수 있어도 이것이 창의력, 그리고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표현하는 사고력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요즘 시대에 그것이 무슨 소용 있을까?
  
  영어가 가져다주는 이익을 최대한 누리기 위해서라도 영어교육의 초점은 학생들의 창의력 향상에 맞춰져야 한다.
  
  한국 영어교육, 강도는 높은 반면 매우 비효율적
  
▲ 나는 한국의 영어교육이 일반적으로 매우 강도높게 이뤄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매우 비효율적인 교육이라는 것 또한 절감했다. ⓒ뉴시스

  나는 2000년부터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중등영어를 가르쳤다. 2006년부터 한국에 있는 동안 대학 어학원에서 수업을 했으며 몇몇 공·사립 고등학교와 사립 초등학교 수업을 참관했다. 물론 여러 학원도 방문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한국의 영어교육이 일반적으로 매우 강도높게 이뤄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매우 비효율적인 교육이라는 것 또한 절감했다.
  
  가장 큰 이유는 학생들이 영어를 시험을 위해서만 공부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영어교육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이뤄지는 모든 교육에 해당한다. 지금 한국에서는 교육의 양적인 평가는 지나치게 잘 이뤄지고 있다. 여기에 더해 지역 봉사, 자원활동, 리더십 훈련 등 질적인 측면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교사가 시험을 위해 강의를 하고, 학생들이 시험을 위해 공부하는 것은 '교육'(education)도, '배움'(learning)도 아니다. 주입식 교육, 암기식 학습의 시대는 지나가 버린 지 오래다. 기술이 발전한 현대 사회에서는 교육이 학생들이 과학적인 호기심과 건강한 창의력을 길러 효율적인 혁신을 이뤄낼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것은 '비판적 사고 능력'과 직결돼 있다.
  
  그러나 대부분 아시아 국가에서는 원어민 교사를 교실에 투입시키기만 하면 학생들의 영어 실력이 '기적적으로' 향상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심지어 그들이 영어교육을 위해 전혀 훈련되지도 않은 원어민이라도 말이다. 이 같은 생각은 본질과 멀어도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언어를 '말할 수 있다'는 것은 '가르칠 수 있는 능력'을 보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외국어를 배운다는 것은 매우 귀찮고, 또 오랜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일이다. 그것은 나이가 적건 많건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그렇다. (단 7~11세 사이에 집중적으로 외국어교육을 하면 효과가 높다는 연구결과가 나온 바 있다.) 이에 더해 일반적으로 학생들은 외국어를 공부해야 할 이유를 스스로 찾지 못한다. 당장 먹고사는 데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영어 잘하는 한국 학생이 '소외'당하는 진짜 이유
  
  더 나아가 한국에서 일하는 상당수의 원어민 교사들은 적절한 훈련을 거치지 못했다. 언어교육을 효율적으로 하는 데 필요한 문화적 이해나 관점도 결여돼 있는 경우가 많다. 필자는 '예술사학'나 '무용'과 같이 언어교육과 전혀 무관한 학위를 갖고 있는 이들이 한국 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는 경우를 수도 없이 목격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상당수 한국 학생들은 전세계적으로 '최장'의 학습 시간을 자랑하면서도 자신들이 배운 외국어를 효과적으로 사용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 문제는 한국 학생들의 학업 동기를 조사하는 것에서 풀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즉 영어교육에 대해 한국 사회 전반에 걸친 '수요 분석' 조사가 필요하다.
  
  교실로 들어가보자. 한국에서 영어교육 방법론을 언급하고 있는 대부분의 이론서는 너무 낡았다. 이를테면 '죽은' 언어를 읽고 배우기 위한 문법 훈련이 지나치게 강조돼 있다. 뿐만 아니라 교과서에 실린 콘텐츠도 한국 학생들에게는 너무 따분하거나 일상생활과 연계돼 있지 않은 것들이다. 언어를 효과적으로 배우는 데 단순히 발음이나 문법규칙을 익힌다든지 단어를 암기하는 것은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문화적 문맥을 이해하는 일이 필요하다. 언제, 어떻게 말해야 될지 아는 것이다.
  
  그러나 수업교재에 보면 문맥과 연관이 없는 문구가 배치돼 있는 경우를 많이 본다. 결국 학생들은 영어 문장이 가진 본래의 의미나 뉘앙스를 익히는 데 실패하는 것이다. 이런 학습은 종종 일상 회화에서도 직설적이고 무례한 질문으로 연결되는 경우를 보았다. 이를테면 '이름이 뭐예요?(What's your name?)', '몇 살이예요?(How old are you?)', '결혼했어요?(Are you married?)' 등등.
  
  이런 것들은 한국인에게 서양인, 또는 서양식 감정을 낯설게 하는 효과로 이어진다. 슬프게도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이들이 함께 하는 '문화간 교차 이해 학습'(cross-cultural communication study) 시간에 한국인들이 종종 차별받는 현상을 본다. 그것은 그들의 발음이나 문법이 문제라기보다 사회문화적 이해가 결여된 데서 기인하는 면이 크다.
  
  경제대국 한국, 교육환경은 너무 열악해
  
  더 나아가 한국의 영어교육은 전혀 '학생중심적'이지 않다. 한국의 새 정부가 신경써서 개혁해야 할 부분은 바로 이 점이다. 한국의 경제수준이 세계 10위 안에 든다는 점을 고려하면 한 반에 35~40명의 학생이 함께 수업을 하는 환경은 참 어이가 없다. 이는 경제수준이 훨씬 떨어지는 태국과 맞먹는 환경이다. 분명한 사실은 이처럼 많은 숫자의 학생이 효과적인 외국어 수업을 받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긍정적인 면을 보자면, 한국은 각 교실마다 '멀티미디어' 장비가 잘 갖춰져 있는 것 같다. 멀티미디어가 잘 활용된다면 아마 컴퓨터에 익숙한 요즘 세대 학생들이 흥미롭게 느낄 수업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영어교육에 멀티미디어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인터넷 환경이 건전하게 갖춰져야 할 것이다.
  
  현실적으로 나는 현재 한국의 영어교육의 문제점은 단순히 영어환경에 학생들을 '노출'시키는 것으로 해결될 수 없다고 본다. 그것은 이미 한국에서 잘 발달된 인터넷이나 방송 등 다른 미디어 매체를 통해서도 충분히 충족시킬 수 있는 것 아닌가.
  
  현재 한국 영어교육의 문제점을 요약하자면,
  
  - 한국 학생들은 현재 효과적인 학습 방법을 배우지 못하고 있다.
  - 한국 학생들은 적합한 학습 방법이 무엇인지조차 배우지 못하고 있다.
  - 한국의 전반적 교육이 비판적 사고 능력과 평가 능력 개발을 무시하고 있다.
  - 너무 많은 학생이 한 교실에 몰려있고, 이는 언어교육에 적합하지 않다.
  - 학생중심적인 교육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 교육 목표가 불분명하다. ('영어'가 뭔가? 그것은 적재적소에 활용될 때 의미를 가지는 것 아닌가.)
  - 많은 학생들이 영어학습 동기가 부족하다.
  - 수업 콘텐츠와 교재가 현실과 동떨어져 학업 동기를 고취하지 못한다.
  - 외국어 학원은 지나치게 이윤에 몰두하고 실제 영어교육에는 전혀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 (만약 학원에서 자율적인 영어교육을 진행할 경우 학생들이 더 이상 교육을 받지 않게 돼 장사를 못하는 상황을 우려해서가 아닐까?)
  - 함량미달의 원어민 교사가 너무 많다.
  - 한국인 영어교사들의 수업론이 너무 낡고 지루하다.
  - 일상 생활에서 사실 영어를 활용할 기회가 거의 없다. (영어 몰입 환경이 주어지지 않는다.)
  
  (번역=강이현 기자)
  
사피아 씨는 2004년 미국 한 대학에서 영어교사 자격증(TESOL)을 취득한 뒤 일본, 태국 등 아시아 지역에서 영어 수업을 진행해 왔다. 그는 "더 궁금한 사항은 개인 홈페이지(
  AmericanEnglishCamp.com)를 통해 연락해 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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