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가 정신? 삼성이 죽였다"
[인터뷰] 삼성을 '사기'로 고발한 중소기업인
2008.04.11 13:55:00
"기업가 정신? 삼성이 죽였다"
9일 치러진 18대 총선에서 여당인 한나라당이 과반수 의석을 확보했다. 이에 따라 "비즈니스 프렌들리(Business friendly, 기업친화적)"라는 표현이 상징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정책 기조에도 힘이 실리게 됐다. 이렇게 되면, 정말 '기업 하기 좋은 나라'가 될 수 있을까.

"'비즈니스 프렌들리', 그런데 왜 창업은 줄지?"

마침 9일자 <조선일보>에 눈길을 끄는 사설이 실렸다. "IT 벤처기업, 2년 새 1600개 줄었다"라는 제목의 사설이다. "정보기술(IT) 부문에서 신규 창업(創業) 열기가 급속히 식고 있다"라는 내용이다. 이 사설은 하루 전인 8일, <조선일보>에 실린 "식어버린 성장엔진 'IT창업'"이라는 기사와 짝을 이루는 내용이다. 이 기사에서는 이처럼 창업이 부진한 이유에 대해 "새로운 수익모델에 도전하는 '기업가 정신'이 사라지고 업계 전체가 보수화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라고 설명했다. '기업가 정신'의 퇴락을 우려하는 기사인 셈이다.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강조하는 정권에 힘이 실리고 있는데, 위험을 무릅쓰고 신규 창업에 도전하는 '기업가 정신'은 왜 시들어가고 있을까. "새 정부의 정책 기조가 효력을 발휘하려면,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라는 설명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설명에 고개를 끄덕일 사람들은 많지 않아 보인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역시 기업 친화적인 정책을 추진했다는 점에서는 이명박 정부와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다만 과거 정부는 "비즈니스 프렌들리"와 같은 수사를 쓰지 않았을 따름이다. 정권이 바뀌어도, 기업 친화적인 정책 기조는 바뀐 적이 없다. 그런데 왜 '기업가 정신'이 죽어가고 있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을까.

앞서의 기사를 끝까지 읽어도, 이런 질문에 대한 해답은 구할 수 없다. 싸이월드를 창업했던 형용준 이인프라네트웍스 대표의 말을 인용해 "젊은 창업자들이 마음껏 일할 수 있도록, 마케팅·재무·시장조사 등 부문별 전문가 지원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지적했을 따름이다.

"규제가 '기업가 정신' 죽인다"라고?

다시 의문이 든다. 마케팅·재무·시장조사 등 부문별 전문가 지원 시스템이 갖춰지면, 기업가 정신이 살아날까. 그래서 신규 창업이 활성화될까.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려면, 최근 창업한 기업가들을 찾아야 한다. 당연히 이들은 중소기업인이다. 처음부터 대기업으로 창업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이 내놓은 대답은 회의적이었다. '부문별 전문가 지원 시스템'이 마련되면, 기업을 운영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는 점은 분명하다고 했다. 하지만 기업가 정신을 위축시키는 원인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1997년부터 2005년까지 얼라이언스시스템이라는 IT벤처기업을 운영했던 조성구 씨는 "기업가 정신을 죽이는 것은 재벌"이라고 콕 짚어서 말했다. 재벌의 횡포 때문에 시장에 갓 진입한 중소기업이 설 자리를 잃곤 한다는 지적이다. 중소기업이 애써 개발한 기술을 가로채거나, 시장 지배력을 남용해 제품 가격을 터무니없이 깎는다거나 하는 경우가 잦아서 중소기업을 운영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보수 언론의 주장과 달리, 정부의 다양한 규제 때문에 겪는 불편은 사소한 것이라고 했다. 재벌의 횡포를 규제하지 않는 한, 위험을 무릅쓰고 창업에 나서는 이들의 수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중요한 것은 '공정한 룰'이다"

존경받는 벤처기업인을 꼽을 때면, 늘 빠지지 않는 안철수 씨 역시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국내1위 보안업체인 안철수연구소 이사회 안철수 의장은 최근 <시사인>과의 인터뷰에서 이명박 정부의 기업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당시 안 의장은 "(이명박 대통령이 강조하는) 비즈니스 프렌들리가 무법천지를 만드는 것과 동일시되어서는 곤란하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작은 정부에서 중요한 점은 공정한 룰을 만들고 기업들이 잘 지키는지 감시하고 견제하는 것이다. 무조건 규제만 푼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관련 기사: "'젊은 기업'이 없다")

"무조건 규제만 푼" 사례로 꼽히는 것은 많다. 중소기업인들이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것으로는 출자총액제한제도의 폐지가 있다. 재벌이 중소기업의 영역을 잠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중소기업이라 해서 무조건 보호받아야 한다는 주장은 잘못이다. 또 막대한 자본과 기술력을 가진 재벌 계열사가 진출하면서, 해당 산업의 수준이 한 단계 높아지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 반대의 가능성도 만만치 않다. 계열사 간 부당 내부 거래 등을 통한 잇점을 이용해 재벌 계열사가 횡포를 부릴 수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공정한 경쟁'이 이뤄지기 어렵다는 것.

그리고 이런 불공정 경쟁을 통해 재벌 계열사가 해당 시장을 독식할 경우, 독과점의 피해가 생길 수 있다. 그 피해는 소비자들에게 돌아온다.

"대기업이 사상 최대 수출해도, 열매는 외국 기업이 챙긴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대기업에게 유리한 환경을 만들겠다는 정책 기조에서 물러설 기미가 없다. 대기업의 투자가 활성화돼야 경제가 살아난다는 논리다.

하지만 <시사인> 인터뷰에서 안 의장은 이런 논리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안 의장은 "지금 나타나고 있는 양극화의 근본 원인은 대기업의 단기시각에서 비롯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불공정 관행으로 인해 중소기업이 다 죽어나갔고, 그로 인해 우리나라 대기업이 사상 최대 수출을 해도 그 열매는 외국 중소기업에게 돌아가고 있다. 대기업이 글로벌 아웃소싱이라는 이름으로 외국 중소기업으로부터 납품을 받고 있으니 말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대기업만 살리면 우리 경제가 좋아질 줄 알고 국민 세금으로 환율 방어에 엄청난 돈을 쏟아 붓는데, 그 혜택도 결국 외국 기업이나 대기업에만 간다. 정부는 한국 경제 발전이나 고용에 대기업이 어느 정도 기여하는지 객관적 분석을 하고 거기에 맞춰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대기업 위주의 정책만 내서는 안 된다"라고 덧붙였다.

대기업 요구 거부한 중소기업인의 비극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불공정 관행으로 인해 중소기업이 다 죽어나간" 사례에 대한 적나라한 증언자가 조성구 씨다. 그는 대기업의 요구를 거부하고, 소송을 벌이다 결국 자신이 경영하던 기업을 빼앗겼다.

얼라이언스시스템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난 뒤, 조 씨는 '대·중소기업상생협회'라는 단체를 조직해 회장을 맡고 있다. 대기업의 하도급 관행에 혹독하게 질렸던 그가 스스로의 경험을 보다 많은 이들과 나누기 위한 활동이다. 또 대기업의 불합리한 하도급 관행으로 인한 피해자가 더 생기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활동이기도 하다.

대학을 졸업한 뒤, 서울의 한 컴퓨터회사에서 영업을 담당하던 조 씨가 사무자동화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인 얼라이언스시스템을 세운 것은 지난 1997년 5월이다. 6년 동안의 영업 경험을 통해 정보기술 관련 시장 동향에 눈을 뜨게 됐던 그는 창업을 결심하고 1년 동안 꼼꼼하게 사업계획서를 준비했다. 그리고 이런 사업계획서를 바탕으로 장은창업투자자문에서 3억 원을 투자받아, 사업을 시작했다. 사업은 순조로웠다.

유능한 소프트웨어 개발자를 모으기 위해 온힘을 쏟았다. 그래서 기술력만큼은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는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이런 기술력을 바탕으로 미국 유니시스, 일본 히타치 등 외국 유명기업의 협력업체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2000년에는 미국 샌디에이고에 연구법인도 세울 수 있었다.

이 회사가 내놓은 간판 상품은 '엑스톰(XTORM)'이다. 금융기관 업무를 완전히 전산화하기 위해 개발된 제품이다. 비슷한 기능을 갖고 있는 외국 업체의 제품과 여러 차례에 걸쳐 성능 비교 시험을 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자료 처리 속도가 월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동안 쏟아부은 노력의 결실을 거둘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국내 금융기관을 상대로 한 영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삼성과 손 잡는 순간, 기회가 재앙이 됐다

2002년 4월, 굵직한 기회가 다가왔다. 이 회사가 국내 최초로 진행되는 BPR(Business Process Reengineering) 관련 프로젝트에 참가하게 된 것이다. '우리은행'으로 전환하기 직전, 한빛은행이 발주한 프로젝트였다. 삼성SDS, 현대정보기술 등이 입찰에 참가했다. 이 회사는 삼성SDS와 제휴하기로 했다. 하지만 기회가 재앙으로 돌아서기까지는 순식간이었다.
▲ 얼라이언스시스템 전 대표 조성구 씨. ⓒ프레시안

조 씨의 증언에 따르면, 삼성SDS 측은 당초 사용자수 제한이 없는 무제한 사용자 조건 견적을 요구했다. 그런데 얼마 뒤 말을 바꿨다. 500명 사용조건과, 300명 사용조건의 견적을 요구했다. 조 씨는 삼성SDS측의 이런 요구에 대해 "우리은행이 입찰에 대한 낙찰 예정가격을 산정하느라 다양한 형태의 가격조회를 하는 것으로 알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삼성SDS 측이 요구하는 수위는 계속 높아졌다. 당시 상황은 조 씨가 "중소기업, 삼성과 인연을 맺어 망가지다"라는 제목으로 <프레시안>에 기고한 글에 자세히 묘사돼 있다. (☞ 기고문 전문 보기)

"그 뒤 삼성SDS는 입찰조건이 300명 사용자 조건이라고 알려 왔고, 300명 사용자조건으로 집중적으로 가격 협의가 이뤄졌다. 적정가격으로는 28억 원을 받아야 했지만 삼성SDS측은 국내 최초의 큰 사업이니 전략적으로 대응해 미래시장을 개척하자고 제안해 왔다. 그래서 4월 20일 입찰 당일 오전 6시까지 밤새 가격을 협의한 끝에 12억3400만 원까지 내려갔다. 가격이 너무 내려갔기 때문에 삼성그룹에서 향후 우리 제품을 30억 원 어치 팔아 주는 조건이었다. 결국 삼성SDS는 입찰에 성공하여 사업을 따내게 되었다.

그러나 삼성SDS는 입찰이 끝난 후 일방적으로 10억4500만 원으로 가격을 맞추라면서 더군다나 5년 A/S를 공짜로 해달라고 했다. 실제로 5년 동안 A/S를 공짜로 해주면 제품가격은 6억~7억 정도밖에 되질 않는다. 세상에 28억 적정가격이 12억3400만 원을 거쳐 10억4500만 원으로 내리더니 마지막에는 6억~7억 원이 되어 버리다니 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욱 더 기가 막히는 것은 300명 사용조건을 무제한 사용자조건으로 바꾸라고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것이었다."

"당장 손해 보더라도, 대기업과 좋은 관계 맺는 게 이익"이라고 믿었는데…

조 씨가 삼성SDS 측의 요구를 수용한 이유는 "당장 손해를 보더라도, 삼성SDS와 좋은 관계를 맺어두는 게 장기적으로 이익"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래서 조 씨가 경영하던 얼라이언스시스템과 삼성SDS가 '솔루션 공동사업을 위한 협약서'를 체결하게 된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조 씨에 따르면, 대외비 문서로 작성된 이 협약서에는 삼성 계열사 관련 프로젝트에 얼라이언스시스템의 제품인 'Xtorm'을 적극 활용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그리고 삼성SDS는 'Xtorm'이 포함된 소프트웨어 개발 프로젝트를 30억 원 규모로 발주한다는 내용도 담겼다고 했다.

그런데 협약서가 체결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조 씨는 깜짝 놀랄 만한 이야기를 들었다. 삼성SDS가 우리은행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Xtorm' 대신 외국 경쟁사의 제품으로 교체하려고 은행 측과 협의했다는 것. 배신감이 몰려왔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우리은행 측 담당자로부터 "'300명 사용조건'이 아닌 '무제한 사용조건'으로 삼성SDS 측과 제품공급 계약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사무용 소프트웨어의 경우, 사용조건에 따라 가격이 바뀐다. 조 씨가 삼성SDS 측과 계약을 체결할 때, 적정가격을 28억 원으로 설정한 것은 삼성SDS 측이 '300명 사용조건'을 내걸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나마도 삼성SDS 측의 요구에 따라 가격을 크게 깎았었다. 그런데 '무제한 사용조건'이라면, 적정가격은 세 배 가까이 뛴다. 이렇게 보면, '10억4500만 원'이라는 계약가격은 적정가격의 12~15% 가량에 불과한 셈이다.

삼성을 사기 혐의로 고소하다

"삼성SDS 측이 중소기업을 상대로 사기를 쳤다"라는 생각이 머리를 쳤다. 그래서 '무제한 사용조건'이 명시된 입찰 서류 등을 증거로 제출하며, 삼성SDS를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2004년 8월의 일이다. 이에 삼성SDS 측은 고소 취소를 요구했다. 조 씨는 바로 거절했다. 조 씨의 회사는 삼성SDS와 함께 진행하던 다른 프로젝트에서 갑자기 배제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국내 시장에서는 영업하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소송에서 지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삼성SDS측의 사기 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충분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소장을 접수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은 삼성SDS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그리고 이듬해인 2005년 3월, 조 씨는 서울고등검찰청에 항고 했다. 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이어서 2005년 7월, 대검찰청에 항고했지만 역시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다. 처음 고소장을 접수한 서울중앙지검이 무혐의 처분을 내린 게 이어진 항고에서도 영향을 미쳤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우리은행(당시 한빛은행)의 입찰제안서, 얼라이언스시스템과 삼성SDS의 계약서, 우리은행 관계자와 기타 관계자들의 녹취록 등을 증거로 제출했음에도 그랬다.

삼성을 고소한 결과? "길거리에 나앉았다"

삼성을 고소한 대가는 끔찍했다. 조 씨가 경영하는 얼라이언스시스템은 과거 삼성SDS에 장비를 납품하는 회사로부터 20억 원을 빌린 적이 있다. 조 씨가 대검찰청에 항고한 직후, 이 장비업체는 당장 돈을 갚도록 요구했다. 삼성SDS를 고소한 후, 국내 금융기관 관련 전산 프로젝트에 참여할 기회를 잃어버리면서 돈줄이 말랐다. 그래서 한꺼번에 20억 원을 마련할 길이 없었다.

결국 조 씨는 총 43억원의 빚을 진 채, 이 회사 대표이사직에서 쫒겨났다. 그리고 돈을 빌려줬던 장비업체가 이 회사를 강제인수 했다. 이 회사를 인수한 측은 'Xtorm' 관련 핵심 기술에만 관심 있을 뿐, 계속 경영할 의지가 없었다. 그래서 직원들도 뿔뿔이 흩어졌다. 결국 회사는 문을 닫았다.

탄탄한 중소기업 사장인 조 씨 덕분에 넉넉하게 지내던 가족들은 갑자기 월세방으로 옮겨야 했다. 절망감에 쌓여 방황했지만, 자신과 같은 피해자가 더 생기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대·중소기업상생협회'를 결성한 것도 그래서였다.

"'이종백'이라는 이름이 귀를 때렸다"

그런데 가까스로 마음을 추스르고 지내던 조 씨에게 눈이 번쩍 뜨이는 소식이 들려왔다. 삼성 구조조정본부 법무팀장 출신인 김용철 변호사가 지난해 발표한 내용이다. 당시 김 변호사는 삼성이 돈을 주며 관리한 법조인으로 이종백, 이귀남, 임채진 등을 꼽았다. 그런데 이종백이라는 이름이 귀를 때렸다. 조 씨가 2004년 삼성SDS를 고소했을 당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장이 이종백이었다.

'구체적인 증거를 제출했는데도, 서울중앙지검이 삼성SDS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린 게 그래서 였나' 싶었다. 사실 당시 검찰이 보여준 태도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았다.

서울중앙지검은 입찰조건과 관련해 불투명한 부분이 있다고 인정했었다. 하지만 수사를 통해 이를 밝히는 대신,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그리고 대검찰청은 사기 혐의에 해당하는 이 사건을 이례적으로 마약반에 배당했다.

삼성을 다시 고소했다

이런 기억이 떠오르자, 신경이 팽팽해졌다. 그래서 다시 고소하기로 결심했다. 결국 조 씨는 올해 2월 18일 삼성SDS와 관련자 3명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사기) 혐의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다시 고소했다.
▲ 조성구 씨가 받은 문자 메시지. ⓒ프레시안

하지만 조 씨는 지난 2일 수사를 맡은 서울 수서경찰서 경제3팀으로부터 "검찰에 각하 의견으로 결과를 송치한다"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고소장을 접수한 서울중앙지검이 경찰에 통보한 수사기간은 오는 19일까지다. 아직 수사기간이 남아 있는데, 경찰이 수사를 중단한 셈이다. 게다가 조 씨는 삼성SDS를 재고소하면서, 새로운 증거를 추가했다. 우리은행 전산 프로젝트에 참가한 업체 관계자들의 녹취록과 확인서다. 그러나 경찰은 이번 사건의 참고인들이 출석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수사를 종결한다고 밝혔다.

그런데 마침 삼성 비리 의혹을 수사하는 조준웅 특검 역시 삼성에 대해 '봐주기' 수사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 때문에 구성된 특검이 김 변호사가 제기한 의혹을 오히려 덮어버리는구나' 싶었다. 조 씨가 고소한 내용에 대한 검·경의 수사 중단이 석연치 않게 다가왔던 것도 그래서였다. 경찰로부터 문자 메시지를 받은 다음날인 지난 3일, 기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조 씨의 목소리에서 힘이 풀렸다.

日 사장 "그거 우리가 30년 전에 써먹던 수법인데"

이런 그에게 물었다. "만약 다시 경영자가 될 기회가 주어진다면?" "한국에서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것, 특히 소프트웨어 사업을 하는 것은 결국 망하는 길"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어 이런 이야기가 뒤따랐다. "삼성을 고소한 직후, 국내 시장에서 쫒겨나다시피 했다. 진행하던 거래가 대부분 끊겼다. 그래서 해외 시장을 개척하기로 했다. 다행히 일본 대기업과 금융기관에서 우리 제품을 쓰겠다고 했다. 그런데 일본의 전자업체인 NEC 사장에게 제가 한국에서 겪은 일을 전했더니, 그랬다. '아, 그거 우리가 30년 전에 써먹던 수법인데'라고."

중소기업 망하면, 결국 대기업도 손해다

이어 그는 '대·중소기업상생협회' 활동을 하며, 접한 외국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협력 사례에 대해 이야기했다.

"일본에서도 과거에는 협력업체의 납품단가를 후려치고, 기술을 빼앗는 일, 그리고 대기업의 영향력을 이용해 마음에 들지 않는 협력업체를 시장에서 내쫒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났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이런 관행이 싹 사라졌다.

어차피 제품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기술과 부품을 모두 대기업이 개발할 수는 없다. 협력업체에게서 납품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협력업체들이 부실해지면, 결국 대기업에 납품하는 부품의 질이 떨어진다. 이렇게 되면, 대기업 역시 손해를 입는다. 이른바 '글로벌 아웃소싱'을 통해 외국 협력업체와 제휴하는 방안도 모색했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이런 깨달음이 번지면서, 대기업이 협력업체를 동반자로 여기는 문화가 생겼다. 일본 도요타 자동차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협력업체와 모범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물론 도요타 역시 협력업체가 납품단가를 깎도록 요구한다. 하지만 협력업체에 손해를 뒤집어씌우는 방식은 아니다. 도요타에는 원가 절감에 대한 노하우가 풍부하게 축적돼 있다. 이런 노하우를 전수해서, 원가를 절감하게 해주는 것이다."

"중소기업 현실 알았다면, 창업 안 했다"

하지만 이런 사례는 우리에게 너무 멀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2월 삼성전자에 115억7600만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공정위 출범 이래 최대 금액이다. 당시 공정위 발표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협력업체들을 상대로 저지른 불공정행위는 다양하다. 부품을 납품하는 협력업체에 지급해야 할 대금을 임의로 깎는 경우, 협력업체의 경영에 간섭하는 경우, 협력업체가 개발한 핵심 기술에 관한 자료를 요구하는 경우 등이다.

조 씨는 이런 사례는 삼성전자와 거래하는 중소기업만 겪는 게 아니라고 했다. 상당수 재벌 계열사와 중소기업 사이에서 거의 당연한 일처럼 받아들여지는 관행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런 관행이 사라지리라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 한, 새로 창업에 뛰어드는 이들은 계속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조 씨 스스로도 설령 기회가 주어져도 다시 창업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고 했다. 예전에는 세상을 잘 몰라서, 그처럼 과감하게 창업을 했다는 이야기다. 대기업에 종속된 중소기업의 현실을 알았더라면, 다른 선택을 했으리라는 것.

"바보야, 문제는 재벌이야!"

이런 그에게 '기업가 정신'을 이야기하는 것은 좀 우스워보였다. '누구 좋은 일 시켜주려고'라는 대답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그래도 물었다. "요즘 신규 IT업체가 줄어든다던데…"

"당연하죠. 결국 재벌에게 먹히게 돼 있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199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빌 클링턴 민주당 후보는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 (It's the economy, Stupid!)"라는 구호를 내세워 당선됐다. '기업 살리기'라는 명분을 내세워 재벌의 비리를 눈감아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한국에서는 "바보야, 문제는 재벌이야!"라는 구호가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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