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시즘의 악취를 풍기는 '뉴또라이'의 나라"
[기고] 김기협의 <뉴라이트 비판>을 읽고
2008.12.29 11:25:00
"파시즘의 악취를 풍기는 '뉴또라이'의 나라"
2008년 한해는 '역사'가 몸살을 앓다 못해 아예 골병이 든 해였다. 광복절을 '건국절'이란 명칭으로 대체하려는 시도, 검·인정 국사 교과서에 대한 불법적인 강제 수정, 4·19 혁명을 '4·19 데모'로 폄하한 교육과학기술부 제작 영상물(DVD) <기적의 역사>, 임시정부의 법통을 부인한 문화체육관광부의 홍보 책자 <건국 60년 위대한 국민 : 새로운 꿈> 등등.

역사란 '사실의 기록'이 아니라 취사선택된 것이자 해석된 것이다. 하므로 대한민국 근대사를 둘러싸고 위와 같은 논쟁이 벌어 졌다면, 우리는 그걸 반기는 게 맞다. 어떤 소모적인 논쟁도 약간은 우상 파괴적이고, 아무리 소모적이라 해도 거기서 건질 소득이 전무하지는 않다고 믿으면서 말이다. 하지만 올해 벌어진 온갖 역사 소동은 역사학계 내에서, 역사학의 새로운 이론이나 해석을 둘러싸고 벌어진 게 아니었다. 맞춤한 예로, 앞서 거론되었던 문화부의 홍보 책자 <건국 60년 위대한 국민 : 새로운 꿈>의 경우, 문화부와 건국60주년기념사업회가 뉴라이트 단체인 교과서포럼에 의뢰해서 완성됐다.

한 나라의 문화적·역사적 정체성을 유지하고 홍보하는 업무를 담당한 문화부에서 건국 60주년 홍보 책자를 만든다면, 당연히 역사에 정통한 전문가들에게 맡기는 게 상식이다. 그렇다면 문화부가 집필을 의뢰했던 교과서포럼이, 과연 그런 임무를 수행할 자격과 능력을 갖춘 단체냐고 묻는 것 역시 자연스럽다.

교과서포럼은 2005년 1월 25일, 뉴라이트 운동 단체 가운데 하나로 창립됐다. 창립 선언문에 따르면 이 단체가 만들어진 이유는 "역사를 바로 세우기보다 역사를 바로 씀으로써 중·고등학교 교육 현장을 바로잡고 미래세대를 올바르게 인도해야 해야 하겠다는 절박감"에서며, 이들의 활동 목적은 "대한민국의 근·현대사와 관련된 각종 교과서를 분석·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면서 사실을 추구하는 학도로서의 성실성과 엄숙성, 및 겸허함을 견지하는데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엽기적 단체는 '역사를 바로 쓰고' 또 '역사 교과서를 분석·비판'하겠다는 선언이 무색하게도 준비위원회의 간부 5명과 대안 교과서의 편집자로 참여한 학자 11명 가운데, 역사학자가 전무하다. 아무리 21세기의 인문학이 학제 연구를 지향하고 나아가 자연과학과 사회과학 간의 통섭마저 운위 된다지만,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빠진 학제 연구와 통섭이 어디 있단 말인가?

▲ <뉴라이트 비판>(김기협 지음, 돌베개 펴냄) ⓒ프레시안
김기협의 <뉴라이트 비판>(돌베개 펴냄)은 위의 의문에 답하는 책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교과서포럼 내에 한 명의 역사 전문가도 참여치 않은 것은, 그들이 말하는 역사가 '역사가 아니라 정치 논리'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뉴라이트에 대한 나의 비판은 뉴라이트 정책이 아니라 '역사관'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그러나 들여다볼수록, 몰상식한 역사관이 몰상식한 정책을 밀어주는 추세에 기가 턱턱 막힌다."(187~189쪽), "(이번) 작업을 통해 내가 얻은 결론은 뉴라이트 역사관이 엄밀한 의미에서 역사관이라 할 수 없는, 하나의 정치적 구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207쪽), "교과서포럼의 '대안 교과서'는 극우 정당의 수련 교재는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역사 교과서를 바라볼 물건은 아니다."(235쪽)

시의 적절하게 출간된 이 책은 <뉴라이트 비판>이란 제목을 달고 있지만, 뉴라이트 정책 보다는 '뉴라이트 역사관'에 대한 비판'에 정향되어 있다. 저자의 간파에 따르면 뉴라이트 진영이 정책의 기조로 삼고 있는 "규제 완화, 민영화, 부유층과 고소득층의 감세 등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p.25)은 뉴라이트 역사관과 직결된다. 즉 그들의 역사관과 경제 정책은 동전의 양면이자, 서로를 견인한다.

뉴라이트 사관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인간의 본성을 '이기적 존재'로 본다는 것이다. 그들은 "인간의 본성은 본래 이기적인 것이므로, 이 이기심을 살려두어야 거기에서 무한한 발전의 동력이 나"(안병직·이영훈, <대한민국 역사의 기로에 서다>)온다고 말한다. 인간 본성에 대한 이런 이해는 결코 본질적인 게 아니라, 역사적인 것이기에 협소하다고 해야 한다.

홉스가 사회를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고 말했던 1651년 즈음엔 농본적인 공동체 대신 자본주의 산업 경제체제가 서서히 자리 잡아 갈 때였다. 그래서 인간성의 한 부분으로 자연스레 인식되어 온 이기심은 좀 더 중시될 필요가 있었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를 가열히 추동할 의식으로 인간의 여러 본성 가운데 하나인 이기심이 호명된 것이다. 자본주의 이전엔 이기심이 인간 본성 노릇을 한 적이 없었고, 자본주의 이후엔 또 어떻게 처리될지 모르는 게 이기심이다. 그러므로 인간 본성을 '이기적 존재'로 규정하는 것은 무리지만, 여기서는 백번 양보해서, 이기심을 자본주의의 본능이라고 해두자.

뉴라이트 사관의 두 번째 특징은 '자본주의가 곧 문명'이란 정의다. 우리가 현재 누리고 있는 문화적 축적(종교·언어·학문·예술)·과학적 발명(종이·화약·활자·나침판)·수학적 발견의 대부분이 자본주의 이전에 이루어졌다는 것에 대해서는 차치하자. 이들은 문명의 미래를 더는 자본주의에 의탁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데서, 역사적 현상으로서의 자본주의에 대해 무지하다.

근세 이전의 사람들도 시장 경제의 원리를 알고는 있었으나, 오늘처럼 자본주의가 한 사회의 조직 원리가 되고 세계의 운용 원리가 되기까지는 산업혁명을 기다려야 했다. 자본주의는 산업혁명이라는 기술적 도약에 힘입어 흔히 식민지라고 일컬어지는 광대한 자연(자원)을 침탈했다. 그게 자본주의 문명의 실질적인 동력이었으나, 1970년대 이후 산업혁명과 자본주의라는 환상의 콤비는 자원의 고갈과 환경 문제라는 미증유의 장벽을 만나게 됐다. 자본주의가 곧 문명이 아니라 '문명의 암'이 된 것이다.

인간을 '이기적 존재'로 단정 짓고 '자본주의가 곧 문명'이라고 믿는 뉴라이트 인사들에게 역사가 증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들이 일제 강점기 친일 협력자를 옹호하거나 일제의 조선 지배를 찬양하는 것은 하등 이상한 일이 아니다. 친일파는 인간 본성에 충실했을 뿐이고, 아시아적 정체성에 허우적거리던 조선이 선진 문명을 보유한 일본의 속국이 된 것은 행운이다. 뭐, 어떤가? '뉴라이트'라고 쓰고 '뉴또라이들'이라고 읽히는 그들이 과거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는 것 쯤, '개그 콘서트'삼아 구경하면 되는 것을!

▲ 스스로 '뉴라이트'라 부르는 이들이 집권하는 동안 대한민국은 망가지기 시작했다. 국민은 벼랑 끝에 내몰리고 도처에서 파시즘의 악취가 풍긴다. ⓒ프레시안(만평=손문상)

<역사란 무엇인가>를 쓴 E H 카는 "역사가의 기능은 과거를 사랑한다는 것이 아니다. 과거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킨다는 것도 아니다. 현재를 이해하는 열쇠로서 과거를 지배하고 과거를 이해한다는 것이다"고 쓴 바, 뉴라이트 인사들의 과거 역사관은 곧바로 우리들의 현실을 농단하기 때문에 마냥 웃을 수 없는 심각한 문제가 된다. "자본주의화를 뜻하는 '문명화'를 지금의 세계사에서 거역할 수 없는 필연으로 보아 민족주의를 벗어던지고 고속 성장에 매진할 것을 제창하는 뉴라이트 역사관"은 70년 전 일제 강점기 친일 협력자들의 "주장과 놀랄 만큼 틀을 같이"(127쪽)한다.

그런데 문제는 고속 성장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1970년대 이후 서구의 자본주의 경제는 성장의 한계에 봉착했고, 그것의 돌파구가 1980년대 레이건 정부가 추진한 신자유주의 정책과 군비경쟁이다. 미·소 간의 '치킨게임'은 1990년을 전후해 공산권 붕괴라는 일시적인 승리를 자본주의 진영에 안겨 주었지만, 올해의 미국 금융 공황이 보여주듯 승리의 독주는 20년을 지속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는 미국에서조차 재고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정책 노선을 고수하며 대기업과 부자들을 위한 정책을 쏟아낸다. 까닭은 절대적인 자원(부) 감소라는 상황 앞에서 상위 2%만 만족시키기 위한 양극화 전략을 택한 게 신자유주의의 정체이기도 하지만, 대통령이 매몰되어 있는 뉴라이트 역사관도 한 몫 한다. 저자는 쓴다. "나는 이것이 공산권 붕괴를 '자본주의의 성공'으로 믿는, 그래서 자본주의를 유일한 '문명'으로 숭배하는 뉴라이트 신앙과 관계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183쪽)

뉴라이트의 저열한 역사관이 민족주의나 민주주의를 부정하듯이, 신자유주의 역시 민족주의와 민주주의를 말살 하고자 한다. 국민에게 인기 없을 뿐 아니라, 고통을 안겨 주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정부는 점점 권위주의적이 되어야 하다. 그전에 계급정치의 하수인이 된 입법부를 거수기로 만들어 악법을 양산하고(사이버명예훼손죄·마스크법, 나왔다), 공권력과 사법부를 장악하며(검찰은 이미 '떡찰' 또는 '떡검'으로 개명된 지 오래다), 끝으로는 언론을 길들인다(방송 파업은 마지막 힘겨루기다). 골병든 역사? 이건 고작해야 분위기 조성용으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교과서포럼은 금세 해체 된다. 애초 자기 전공도 아니었으니 계속할 이유도 없다.

끔찍하게도 저자는 이 정부가 '권위주의 정권' 정도에서 끝나지 않을 거라고 예견한다. "국민들의 눈에서 시대의 흐름을 오랫동안 가리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그들이 시도할 일은 한 가지다. 시대의 흐름을 진짜로 뒤집어놓는 것이다. '경제 살리기'의 절박함만으로는 평화와 민주적 가치를 바라는 국민의 마음을 억누를 수 없다. 한반도의 긴장을 최대한 격화시켜놓아야만 독재 시대 억압 체제의 복원을 정당화할 수 있을 것이다."(162쪽) 여기저기서 파시즘의 악취가 피어오르는 까닭이 다 여기 있다.

뉴라이트는 천황이든 부시든, 이승만이든 박정희든 전두환이든, 우리 얼굴을 짓밟는 파시스트를 숭앙한다. 아마 이들은 김일성·김정일이 북한을 강국으로 만들어 놓았다면, 거기 가서 빌붙었을 것이다. 인권이고 자유고 민주고 아무 상관없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역설적인 사태를, 박정희 독재정치를 침이 마르도록 미화하고 있는 사실이 잘 웅변해 준다. 한 마디로 이들의 세계관은 19세기 말, 사회진화론이 득세하던 시절에서부터 한 치도 자라지 않았다.

사족이다. 1948년에 공표된 헌법은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로 되어 있고, 1987년의 개정 헌법은 좀 더 구체적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밝혀 놓았다. 그런데 뉴라이트는 1948년 8월의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대한민국 건국이라고 명토 박는다. 1987년 개정 헌법이 남·북한으로 분단되기 전의 한반도 전체를 아우른다면, 뉴라이트의 주장은 남한 만을 대한민국의 영토로 삼는다. 사견이지만, 이런 주장은 뉴라이트가 꿈꾸는 '북한 패망과 흡수 통일'의 순간, 중국의 간섭을 국제법상으로 허용하게 만든다.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헌법을 바꾸지 말아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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